제 2 장 9

 

제 2 장. 발은 현실에, 눈은 멀리에

9

 

금오리에서 원산까지는 편도로 50여리이다. 왕복 100리가 넘는 길을 빈차로 가고 올수 없어 짐을 마련하느라 시간을 잃는 바람에 자동차가 원산시내에 들어선것은 점심시간이 지난지도 이슥한 2시 5분전이였다.

려관앞에서 차를 내린 정여삼은 운전사더러 싣고온 벼짚을 종이공장에 넘기고 자기 동생네 집에 먼저 가 점심을 먹으라고 이른 다음 길을 건너 도농촌경리위원회 정문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접수실에 앉아있는 상냥스럽게 생긴 녀인이 재미없는 말을 했다.

《어쩌나, 조만규부상동지는 몇시간전에 승용차를 타고 나가셨는데···》

(아하, 이런 난사라구야!···)

《언제쯤 들어오는진 모르겠습니까?》

접수원은 그러지 않아 부상동지를 만나겠다고 먼저 찾아온 사람이 있어 자세히 알아봤는데 부상이 저녁늦게야 돌아올것 같다는것이였다.

《허, 이거 랑패로군. 모처럼 시간을 낸 걸음인데 그냥 돌아설수도 없고···》

정여삼의 락심한 기색을 살펴본 녀인이 《저, 어디서 오신분이신데요?》하고 동정어린 어조로 물었다.

《고산군 금오리에서 왔지요. 내 거기 관리위원장이올시다.》

《어마나! 아까 먼저 온분도 금오리에서 오셨다고 하던데요.》

《우리 금오에서?···》

정여삼은 대체 누가 왔겠는지 짐작이 가지 않아 머리를 기웃거리는데 위원회청사 현관으로 돌격대정치책임자인 박민석이 걸어나오고있었다. 정여삼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아니, 부부장은 웬일로 여기 오셨소?》

박민석의 본 직무가 구역당부부장이고 정치책임자라는 말은 길어서 정여삼은 입에 편리하게 부부장이라고 했다.

박민석이도 이쪽을 알아보고 반색을 했다.

《관리위원장동지는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난 조만규부상한테 500평짜리 설계를 승인받을가 해서 왔소만···》

《그렇다면 우린 결국 같은 일로 왔구만요.》

《같은 일로 오다니? 하믄 부부장도 500평짜리 설계때문에 왔단 말이시오?》

박민석은 그렇다고 하며 간저녁 정여삼이 왔다간 후에 돌격대원들이 모여앉아 심중한 토의를 한데 대해 이야기했다.

《···글쎄 조건이 허락치 않는다면 몰라도 할수 있는거야 왜 그렇게 쪼물짝하게 하겠습니까. 관리위원장동지의 호소에 감심한것도 있지만 우리 동무들이 장군님의 령을 받들고 이왕 하는바엔 농민들의 소망을 받아들여 통이 크게 해보자고 찬동해나서더군요. 그래서 제가 제창 설계원들과도 토론해봤는데 설계원들은 난색을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말은 그러지 않아 금오리에서 제출했던 500평짜리 설계때문에 말을 많이 들었는데 다시 제기해봐야 기각이고 자기들의 경우엔 문제가 서기 쉬우므로 중앙지휘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겁니다. 제 그래서 왔는데 부상동지가 안계시는구만요.》

정여삼은 가슴이 뭉클 젖어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고맙구만, 고마워··· 근데 원산까진 어떻게 오셨소? 혹시 걸어라도 온건 아니요?》

《마침 연유창에 디젤유 실으러 오는 차가 있어서 타고 왔습니다.》

《내가 공연한 욕심을 부려서 부부장만 욕보이는구만.》

《욕보는건 없는데 일이 좀 별나게 됐구만요. 우리 금오리에서 제기했다가 기각된 500평짜리 설계 있지 않습니까? 그게 승인되여 토지정리도 그렇게 하는것처럼 소문나서 설계분과사람들이 여간 골치아파하지 않는구만요, 저마끔 자기네도 그렇게 하겠으니 승인해달라고 해서···》

《그건 누가 그럽디까?》

《제 이제껏 설계분과에 있다가 나오는 길입니다.》

《허, 이 정여삼이 농사를 잘해서 소문을 내는게 아니라 지경을 넓히는것으로 소문놓는 판이군.》

정여삼은 허구픈 웃음을 짓고나서 다시 물었다.

《어떻소? 부부장이 보기엔, 내가 실현 못할 욕심을 부리고있는것 같진 않소?》

《아닙니다. 여기 사람들도 관리위원장동지를 충분히 리해합니다. 할수만 있다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는거지요. 다만 그 실천을 놓고 우려할뿐인데 그건 어떻게 하나 우리 돌격대가 맡겠다고 했습니다. 부상동지에게 그대로 전달하겠답니다. 이쯤 이야기해놨으니 우선 시작하고 봐야지요. 늘쿼놓은 포전을 아무렴 줄이기야 하겠습니까.》

《부부장의 결심이 그렇다면 됐구만. 암, 됐고말구요.》

정여삼에게는 박민석이 정녕 고맙기 그지없는 사람이였다.

《참, 점심은 어떻게 자셨소?》

《가서 먹지요.》

《그럼 갑시다. 나도 식전인데 마침 여기 장덕동에 내 막내동생되는 아이가 삽네다.》

 

도농촌경리위원회 정문에서 정여삼과 박민석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에 조만규는 김화군에서 볼일을 다 보고 평강군으로 가고있었다.

《차소리가 왜 이리 불편한가?》

조만규의 물음에 운전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말두 마십시오. 평양에선 철령을 넘어봤는가 못 넘어봤는가 하는게 운전사들의 화제거리고 넘어본게 자랑거린데 이건 하루건너 철령을 넘나드니 찬들 견디겠습니까?》

《이제 평양에 가면 존경을 받겠구만.》

《웬걸요. 지금 같아선 존경은 고사하고 이 차로는 평양까지 가낼것 같지도 못합니다.》

《허허허··· 그럼 도보행군을 해야겠구만.》

언덕굽이를 돌아서자 길 우측으로 정리작업을 하는 불도젤들이 보였다. 하나, 둘, 셋··· 모두 열다섯대인데 따로 떨어져있는 한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길에 수리차가 서있는걸 보니 고장난 모양이였다.

조만규는 수리차옆에 차를 세우게 하고 내렸다. 그는 허리를 짚고 서서 불도젤들이 널려 일하는 모습을 둘러보고는 길아래로 지나간 수로를 뛰여건너 장화발로 흙덩이들을 걷어차며 서있는 불도젤을 향해 걸었다. 걸으면서 수평고루기의 질적상태며 논판의 크기를 가늠해보는것을 잊지 않았다. 이곳 평강군은 벌방이고 안변군과 같은 1부류에 속하기때문에 기준이 400평을 넘겠지만 어쩐지 좀 작아보였다.

기관실덮개를 열어내친 고장난 불도젤옆에는 세사람이 곡축을 마주하고 앉아있었다. 손에 온통 기름칠을 한 두명은 걸레로 금방 분해한것 같은 곡축의 량축머리를 닦아내는중이고 잔등을 돌려대고 앉은, 검스레한 낡은 양복우에 잠바를 덧걸친 세번째사람은 무슨 설명을 하고있었다.

조만규는 그 세번째 양복쟁이의 등뒤로 다가서며 수인사를 건넸다.

《수고들 하오.》

《?···》

손에 기름칠을 한 사람들이 먼저 눈길을 들고 양복차림은 앉은채로 목을 돌려 쳐다보더니 어름어름 일어났다. 마흔댓전후로 보이는 사무원냄새가 풍기는 사람이였다.

《어느 군이요?》

《옹진군입니다.》

양복차림의 대답이였다.

《내 중앙지휘부에 있는데 여기 동무네 책임자가 나오지 않았소?》

《우리 책임자동무는 오후에 나옵니다. 저와 교대로 현장에 있는 원칙이라서···》

《동문?》

《전 시공참모입니다.》

조만규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시공참모면 모르지 않을것이라고 보아 옹진군돌격대의 구성과 사업실태를 두루 알아보고 불도젤들이 일하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저 차는 어디가 고장이요?》

《곡축목을 잡아주는 토시가 나갔는데 지금 수리차에서 깎고있습니다.》

수리차를 현장에 접근시켜 고장퇴치를 최대한 앞당기는것은 류광선이 강하게 요구하는 문제였다. 조만규는 다시 물었다.

《동무는 어떻게 생각하오? 동무네 황해남도가 맡은 여기 평강군과 저 웃쪽에서는 평양시가 담당한 고산군이 제일 뒤떨어졌소. 동무네 경우엔 뭐가 걸려서 일이 그렇게 처지는것 같소? 동무생각을 기탄없이 말해보오.》

그가 오늘 여기 평강군에 온것은 바로 그 부진의 원인을 캐보자는것이 기본목적이였다. 이제 돌아가는 길에는 고산군에 들릴 계획이였다.

《그건 말입니다.》 이미부터 품고있던 문제인지 시공부원은 별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즉시 대답했다. 《불도젤운전수들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낮기때문입니다. 기능이 낮으니 그만큼 차에 고장이 많고 가동하는 경우에도 응당한 실적을 내지 못합니다. 우리 군의 형편만 봐도 보조운전수들의 대부분이 토지정리를 처음 해보는 생둥이들인가 하면 책임운전수라고 해도 수평고루기를 제대로 할줄 아는 사람이 불과 몇이 안됩니다.》

불도젤운전수들의 구성이 허약하고 기술기능이 낮은 문제는 옹진군이나 황해남도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고 다른 도, 군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동무의 말도 일리는 있소만 운전수들의 기능이 낮은것이 남보다 뒤떨어지는 리유로 되지 않소. 다른데라고 운전수들의 형편이 나은건 아니니까.》

《토질도 문제입니다. 여기 평강일대는 대략 12억년전 상부원생대시기에 형성된 토양인데 별스레 굳습니다. 골파기를 하면서 삽날조절을 조금만 서툴게 해도 인양기유압호스가 팡팡 터져나가는 정도니까···》

처음 알게 되는 사실이라 조만규는 장화발로 흙덩이를 밟아 부스러뜨려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지 잘 부스러지지 않는감이 들었다.

《토질이 굳으면 〈천리마〉에 보습을 채워가지고 갈아주며 밀면 되지 않겠소.》

《저희들도 그 생각을 못해본건 아닌데 〈천리마〉가 도무지 한대밖에 없는데다 후방보장때문에 작업에 돌리기 힘듭니다. 》

《천리마》가 한대밖에 없다··· 조만규는 다른 도돌격대들이 가지고있는것을 소환하여 황해남도에 배속시켜주면 어떻겠는가를 생각해보았지만 인차 고개를 저었다. 금방 시공참모도 말했듯이 각 군돌격대들이 한대씩 가지고있는 《천리마》호뜨락또르로 말하면 작업을 위해서라기보다 자동차대신으로 쓰이는 수송수단이여서 소환이 쉽지 않을것이였다.

《그건 그렇고··· 또 뭐가 걸린것 같소?》

대답이 벌써 궁해졌는지 시공참모는 묵묵히 불도젤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걷기만 하더니 문득 입을 열었다.

《우에서 말입니다, 기름소요정량을 일률적으로 내리먹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유정량 말이요?》

《예, 여기 평강 같은데는 다른데와 달리 땅이 굳기때문에 불도젤들이 작업하기 무척 힘이 듭니다. 운전수들한테 기름정량을 놓고 따지기때문에 책임적으로 하지 않는 현상까지 나타납니다.》

조만규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충분히 그럴수 있다. 토론에 붙여봐야 한다!)

시공부원에게서 들을 소리를 다 듣고 길에 나와 승용차에 오른 조만규는 평강읍에 도착하여 곧장 군농기계작업소로 들어갔다. 황해남도돌격대지휘부는 거기 농기계작업소에 동거하고있었다. 그러나 지휘부에서 정작 만난것은 책임일군들이 아니라 내부사업을 맡아보는 종합부원뿐이였다.

《대장은 어데 갔소?》

《류차수동지가 불러서 전승리에 갔습니다.》

《류차수동지라니, 류광선차수가 전승리에 와있소?》

《예, 거기서 39군단 공병련대군인들이 수로파기와 구조물공사를 하는데 무슨 참관사업을 조직한것 같습니다.》

순간 조만규는 자기 사업에서 무엇인가 불찰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류광선차수는 어제 평강, 김화, 창도쪽으로 돌아오겠다고 하며 떠났는데 토론도 없이 현지에 나와 참관사업을 조직한걸 보면 분명 자기가 모르는 어떤 문제점을 포착했기때문일것으로 판단되였다.

그는 급히 방을 나와 차에 올랐다. 전승리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2시가 가까운 때였다.

길가녁에 류광선의 승용차와 군용차가 서있는 뒤에 차를 세우고 내린 조만규는 류광선을 찾아 두루 살폈으나 보이지 않았다. 눈에 뜨이는것은 사처에 꽂혀 가을바람을 안고 펄럭이는 기발과 줄줄이 서있는 대형속보판들 그리고 멀찌감치 벌판을 가르며 간선수로가 지나간 어방에 수백명의 군인들이 둥그렇게 모여있는 모습이였다. 휴식참에 오락회라도 하는듯 모두 흰 내의바람이였다.

류광선이 거기 있으리라는 짐작으로 논판에 내려선 조만규는 군인들을 향해 걸었다. 한 사오십m가량 걸었을가. 등뒤에서 문득 《누구십니까?》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내의바람이여서 군사칭호를 알수 없는, 키가 엄장 크고 군모채양우에 누런 금줄이 얹혀있는 초면의 장령이였다.

《예, 제 중앙지휘부에 있는 농업성 부상입니다.》

《그럼 조만규부상동지십니까? 이거 반갑습니다. 저는 강룡이라고 39군단장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수고많겠습니다.》

초면이고 군인과 사민이라는 먼 직책상의 거리도 있건만 김정일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함께 토지정리를 한다는 공통된 의식때문에 그들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오랜 지기와도 같은 친근감을 느꼈다.

《류부위원장은 어디 있습니까?》

《예, 저기서 우리 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습니다.》

《무슨 참관사업을 조직했다던데?》

《참관사업이라기보다 류차수동지가 군인들이 어떻게 일하고있는지를 사회사람들이 보아야 한다고 돌격대와 군책임일군들을 부른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두사람은 군인들이 모여앉아있는 곳에 당도하였다.

《그럼 이젠 전쟁때 이야기는 그만하고 문제를 하나 내겠소.》

손에 휴대용확성기를 든 류광선이 눈이 초롱초롱해서 올려다보는 수백명의 군인들을 마주보며 하는 말이였다. 그가 쥐고있는 확성기로 말하면 고질적인 후두염때문에 강원도에 파견되여 나올 때 우정 구한것인데 현장지휘용으로는 그저그만이였다.

《문제라 해서 별건 아니고 우리 장군님께서 누구네들을 믿고 이 력사적인 강원도토지정리를 결심하셨겠는가 하는건데··· 자신이 있으면 누가 대답해보오.》

거의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여러명의 군인들이 일어섰는데 모두 다섯명이였다. 류광선은 일어선 군인들을 앉지 말라고 하고 그중 가까이에 있는 군인에게 언권을 주었다.

《저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우리 군인들을 믿고 강원도토지정리를 결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음, 동무는 앉고 이번엔 동무가 말해보오.》

류광선은 다음군인을 짚었다.

《저도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군대를 믿고 결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음, 다음은 동무···》

그렇게 류광선은 다섯명을 일일이 짚어가며 대답을 받아냈는데 모두 하나같은 대답이였다.

《아주 좋소. 모두 옳게 대답했소.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직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고있지만 당에서 강원도토지정리를 하기로 결심한것은 우리 군인들을 믿기때문이며 강원도의 모범으로 온 나라에 토지정리의 불길을 지펴올리기 위해서라고 하시였소.

장군님의 믿음, 우리들에게 있어서 표창이면 이보다 더 크고 높은 표창이 또 어디 있겠소. 그리고 믿음에는 보답이 따라야 하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동무들이 있는 여기 평강군은 토지정리가 잘되지 않고있소. 도적으로 보면 평강군과 고산군은 실적이 쌍둥이형제처럼 제일 뒤꼬리를 차지하고있소. 물론 이건 동무들, 군인들이 일을 잘못했기때문에 빚어진 결과는 아니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겠는가? 장군님께서 군인들을 믿고 강원도토지정리를 결심하셨다면 평강군의 토지정리가 잘되고 안되는 책임을 응당 우리 군인들이 져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오늘 평강군에 온건 바로 동무들에게 이걸 묻고싶었기때문이요.

자, 그럼 누가 대답해보오. 평강군에서 토지정리가 잘되고 안되는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침묵··· 한동안이 지나도록 반응이 없던중에 뒤쪽에서 후리후리한 키에 결패있게 생긴 젊은 군관이 벌떡 일어났다.

《차수동지, 솔직히 말하면 저희들은 평강군이 그렇게 락후한줄을 몰랐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앞에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믿어주십시오. 군인의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이제 평강군이 어떻다는걸 안 이상 저희들이 반드시 형세를 바꾸어놓겠습니다!》

그 군관의 말꼬리를 바투 붙잡고 중간쯤에서 용수철이라도 깔고앉았던것처럼 다른 군관이 튕겨일어나더니 주먹을 높이 들며 격동된 웅근 목소리로 고동구호를 웨쳤다.

《동무들! 최고사령관동지의 전사들에게는 점령 못할 요새란 있을수 없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의 토지건설구상을 빛나게 관철하기 위한 결사전에서 우리모두 영웅이 됩시다!》

그러자 앉았던 군인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주먹을 들어올리며 호응하였다.

《영웅이 되자!》

《영웅이 되자!》

《영웅이 되자!》

군인들은 일제히 와― 아! 하고 소리치며 작업장으로 내달았다. 결국 남은것은 휴대용확성기를 든 류광선과 39군단장 그리고 조만규였다.

《부상동무가 마침 왔구만. 내 그러지 않아도 지휘부에 들어가면 말하려댔는데 거 이동수리차들 말이요, 아직도 현장이 아니라 수리장에 박혀있는것들이 있소.》

《무슨 말씀입니까? 이자두 오면서 보니까 이동수리차들이 대체로 포전에 나와있던데···》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저기 회양이나 창도 같은 산골에는 길이 험하다고 수리차가 현장에 못 나간다는게요. 수리차야 전쟁때 전방치료대나 같은건데 길타령을 하면 어쩌는가 말이요.》

《알겠습니다. 래일 도책임자들 회의가 있는데 단단히 강조하겠습니다.》

조만규는 이럭저럭 오늘은 소득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현장에 나와서 많은 문제점들을 포착할수 있었던것이다.

《들어가시겠습니까?》

조만규가 류광선에게 물었다.

《아니, 난 철원쪽에 가겠소. 거기서 이천으로 해서 판교와 법동까지 보고 들어가겠소.》

자주 느끼는것이지만 조만규는 사업을 대하는 류광선의 적극성과 열정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류광선의 고질적인 후두염은 장군님께서 몹시 걱정하시는 병이다. 하건만 강원도에 나온 첫날부터 산많고 령많은 강원도의 산골길을 누비다싶이 하면서 헌신적으로 토지정리전투를 지휘하는 그였다.

장대한 체구에 꿋꿋한 허리, 어깨에 얹은 무거운 차수별로 하여 얼핏 보면 장년나이같지만 그도 어언 70고개를 넘어섰다.

보통늙은이들 같으면 손자들의 재롱이나 받아주며 살아갈 나이지만 찬바람 부는 강원도땅에 와서 장군님의 령을 앞장에서 받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전화의 언덕을 함께 넘은 전우로서 그를 잘 도와주어 장군님의 걱정을 덜어드려야 하겠다는 마음이 더 굳혀졌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조만규는 길에 나와 차에 오르는 그에게 《이제는 왕년의 대대장시절이 아니라는걸 아셔야 합니다.》라는 례사로운 말을 한것이 다였다.

류광선의 승용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려 39군단장이 뜻밖의 화제를 꺼냈다.

《안변에 상업관리소장을 하는 사촌녀동생이 있지요?》

《예, 그런 애가 하나 있습니다.》

《제 수하에 있는 한 련대장이 부상동지의 그 사촌녀동생을 마음에 두고있는데··· 그쪽에서 좀 왼새끼를 꼬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날더러 협력해달라 그 말씀입니까?》

군단장은 그렇다고 하며 련대장이 어떤 사람이고 안해를 어떻게 잃었는가 하는것을 이야기하면서 곁들어 그가 지금은 련대장이지만 장차로는 더 무거운 직무도 수행할수 있는 사람임을 강조하였다.

조만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곁들이는 떼버리고라도 군단장의 관심속에 있는 현직 련대장으로 사람이 듬직하고 발전성도 있다는것만으로도 마음이 동하는바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혼사란 곁가마가 끓어서 되는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당사자들의 문제로서 첫사랑을 잃고 비애를 체험해본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군단장동무가 모처럼 하는 부탁이니 노력은 해봅시다. 실은 나도 그 일이 성사되면 기쁘겠습니다. 그런데 애가 말을 듣겠는지··· 내 동생이 인물은 좀 있지만 성미가 예사치 않은데다 상업관리소 소장을 하면서부터는 통 일밖에 모르고 재혼같은건 아예 생각도 않고있습니다.》

《그래서 부탁하는거지요. 듣자니 부상동지가 그 동무에게 있어선 부모나 같다고 하던데··· 사위를 삼는셈치고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고맙겠습니다.》

《노력해봅시다.》

《그럼 믿겠습니다.》

수하의 련대장을 재혼시키는것이 그리도 성수나고 벌써 반승낙은 받은것처럼 생각되는지 군단장은 얼굴에 만족한 웃음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