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7

 

제 2 장. 발은 현실에, 눈은 멀리에

7

 

정여삼관리위원장에게 새벽마다 마을을 돌아보며 그날 일을 계획하는 습관이 있다면 리소재지 유치원교양원인 딸 몽금의 습관은 출근전 아침마다 유치원에 나가 청소부터 깨끗이 하고야 들어와 조반상에 마주앉는것이였다.

오늘 아침에도 몽금은 잠을 깨기바쁘게 일어나 칠흑같은 머리를 대충 빗어 수건밑에 넣고는 총총히 집을 나섰지만 얼마 못 가 인차 되짚어 마당으로 들어왔다. 낫을 가지고 간다는걸 깜빡 잊었던것이다.

오늘 금오리에는 토지정리를 하기 위해 불도젤들이 도착한다. 평양시 락랑구역에서 온다는 그 불도젤들을 성의껏 맞아들이는데서 주동적역할을 할 과업이 청년동맹에 떨어졌다. 엊저녁 각 초급단체들은 협의회를 열고 해당한 대책을 토론했다. 정몽금이 속한 리소재지작업반 봉사초급단체에서는 불도젤운전수들에게 걸어줄 꽃목걸이를 세명이 하나씩 만드는것으로 락착지었다. 몽금은 셋이 아니라 혼자서 하나 만들겠다고 장담해나섰다. 유치원꽃밭에 꽃은 얼마든지 있고 꽃테는 금오천방뚝에 있는 버들가지를 베오면 되였다.

집집에서 끓이는지 구수한 토장국냄새와 두엄내가 엇섞여 떠도는 마을길을 걷는 사이에 잠기를 말짱 털고 기분이 뜬 몽금은 저만치 동네 안쪽으로 유치원이 보일 때쯤 해서는 제법 코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유치원마당에 들어서자 그는 노래를 그치고 신중한 표정으로 마당안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코끼리모양의 높고 든든한 미끄럼대, 키낮은 철봉과 쇠그네, 평형대··· 모든것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이 확인되자 그는 마루에 올라가 방방의 자물쇠를 열고 나들문과 창문들을 활짝 열어제꼈다.

청소를 시작했다. 언젠가 군적인 참관사업을 치른적도 있는 유치원이라 방이 여러개고 넓기까지 해서 청소가 헐치 않았다. 모두 장판방이여서 일일이 물걸레를 놓고나면 한겨울에도 이마에 땀이 돋고 무릎이 아파서 한참 쉬다가 집에 들어가는 때도 있다. 몽금은 그것을 조금도 타내지 않는다. 뭣때문에 탓하랴, 방이 많고 넓으면 그만큼 아이들이 맘껏 뛰놀며 키도 빨리 크고 마음도 넓어져 더없이 좋은데··· 청소를 잘하는것이 아이들의 건강과 정서발전에 유익하고 우리 고향의 미래를 키우는데 이바지된다면 어떤 힘겨움도 기꺼이 이겨낼 자신심을 가지고있었다. 아이들과 유치원을 꼭같이 사랑하는 몽금이였다.

팔을 걷어붙인채 걸싼 솜씨로 방안이며 마루를 닦아낸 그는 손이 마를새없이 창고에서 비자루를 꺼내가지고 마당을 쓸었다. 마당도 여간 드넓지 않다. 오죽 넓으면 유치원교양원을 하던 초기 딸이 애처롭다고 어머니가 밤에 나와 몰래 쓸어주기까지 했으랴. 이젠 옛말로 되였다.

근 한시간가량 그렇게 쉴새없이 쓸고 닦고 정돈한 몽금은 문들을 도로 닫아걸고 낫을 찾아쥐자 곧장 금오천방뚝에 나가 버들가지를 잘랐다. 쓰고 남으리만큼 푼푼히 버들가지를 잘라가지고 집에 들어오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였는가싶은 7시 50분경이였다.

《아버진 여태 안 들어오셨어요?》

출출한김에 늄소랭이에 담겨있는, 밥솥에 쪄서 밥알이 드문드문 붙은 고구마를 집어 껍질을 벗기며 몽금은 물었다.

《들어와 조반 자시구 벌써 나갔다.》

《기분이 좀 밝아지셨어요?》

《글쎄 자구나니 옹친것이 좀 풀리기두 했겠지만 오늘이야 불도젤들이 오는 날이 아니냐. 옷두 군에 회의갈 때 입는 옷을 입구 나갔다. 근데 불도젤이나 맞아놓군 원산에 다녀올 소릴 하더라.》

《원산엔 왜요? 삼촌네 집에요?》

《삼촌네 집일게 뭐냐? 도농경엘 가겠다는거지.》

《거기 가면 된대요?》

《되구 안되구 네 아버지성미에 가만있을것 같니.》

몽금은 고구마를 한입 베여 오물오물 씹으며 고개를 꼬독거렸다.

《하긴 어제 밤에 보니까 아버지가 막 불쌍해요. 근데 뭐 이게 어느 한두사람이 결심한 일이겠어요. 다 우에서 통일적으로 하는 일이겠는데 아버지의 욕심이 통할가요?》

간밤에 정여삼은 집에 들어와 자정이 넘도록 담배만 피우며 질정을 못하고 우울해있었다. 리에 내려온 설계책임자로부터 우에 올려간 500평설계가 기각됐다는 말을 들었던것이다. 당장 불도젤들이 들이닥치게 됐는데 설계가 300으로 눌러졌으면 이제는 용빼는수없이 300이 되고만셈이다. 원래부터 300으로 하라는 과업을 받았다는 설계원들을 꾸준히 설복하고 구슬려서 500짜리 설계를 해놓았는데 그 설계가 물거품이 되고말았다니 정여삼의 속에 재가 앉지 않을수 없었다. 이번의 기회를 놓치면 금오리의 논이 영영 300평을 넘어서보지 못한다. 그래서 정여삼은 밤새 뜬눈으로 밝히면서 원산행을 생각해냈던것이였다. 전번에 가서 풋낯이나마 익힌 농업성 부상이 이번 토지정리사령관격이라니 그 어른에게 한번 하소연을 해보자. 그 어른도 농업일군이니 나의 소망을 알아줄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속에 매달렸던 고민거리가 좀 내려가는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불도젤들을 맞으러 나갔던것이다.

《엄마, 아버지가 너무 욕심부리는건 아닐가?》

《그런감도 없지 않다만 땅에 대한 네 아버지 욕심은 죽기 전에 못 고치는 병인걸 어쩌겠니.》

몽금은 식사후 옷차림을 다시 하고 유치원에 나가 아이들과 섭쓸려 꽃목걸이를 만들기 시작해서야 번거로운 생각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그는 이왕이면 꽃목걸이를 매 아이들의 기억에 남도록 의의있게 만들고싶어 만들기 전에 아이들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동무들― 오늘은 말이예요. 우리 금오리의 논밭을 정리하기 위해 불도젤들이 많이 오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꽃목걸이를 만들어가지고 환영하러 나가는데 선생님은 그 꽃목걸이에 꽃을 서른두송이 붙이자고 해요. 왜 꼭 서른두송이를 붙이자고 할가요? 누가 알만 한 동무 있으면 대답해보세요.》

모두 새까만 눈을 까박거리며 쳐다보는중에 한 아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 그건 우리 반동무들이 모두 서른두명이기때문입니다.》

1작업반 어느 농장원네 아들이였다.

《어마나!··· 옳아요. 딱 맞았어요. 진천이 정말 용쿤요.》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느라고 묻기는 했어도 알아맞히기는 힘들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답이 아주 정확해서 몽금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뜻밖으로 다른 목소리가 질투하였다. 관개부원네 둘째였다.

《힝, 기딴건 난두 알아. 애들이 서른둘이니끼 한 아이 한개씩 붙이는거지 뭐, 힝.》

몽금은 웃음을 머금었다.

《옳아요, 석재 말두··· 그럼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겠나요. 선생님이 이 버들가지로 테를 만드는 동안 동무들은 모두 꽃밭에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꽃을 한송이씩 보아두고 놀다가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는 순서로 잘라오세요. 이 막대기 길이만큼씩··· 알겠습니까?》

《예―》

아이들은 일제히 대답하며 눈을 반짝이였다. 인차 질문이 뒤따랐다. 백일홍을 꺾어도 되는가? 노란꽃은? 나는 두송이를 꺾고싶은데 안되는가? 우리 집에는 누나가 심은 타래붓꽃이 있다, 가져오라는가? 쌍둥이 정국이와 충국이는 오늘 유치원에 안 왔는데 그 애들것도 붙이는가? 등등. 그 모든 물음에 일일이 대답을 주고 풀어놓으니 다음은 서로 꽃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였다. 벌써 사내아이한테 밀치워 잉잉 우는 계집애도 있다. 키 큰 홍초 한송이를 가지고 둘이 서로 제것이라고 우길내기를 하다가 아예 드잡이로 넘어간 패들도 있었다. 그런 말썽군, 심술쟁이, 울보, 애꾸러기들을 거느리고 한시간 가까이 역사질한 끝에 드디여 꽃목걸이를 만들어냈다. 또 그때쯤 불도젤이 도착할 시간이 됐으므로 빨리 나오라는 련락도 있어서 몽금은 아이들을 줄세워가지고 바삐 집합장소인 동구로 나갔다. 거기에서는 손에손에 꽃다발을 든 금오소학교 학생들과 리소재지사람들 그리고 가까운 2, 3작업반에서 온 농장원들이 리청년동맹비서의 지휘에 따라 길 좌우로 길게 늘어서고있었다. 유치원은 리소재지작업반과 2작업반사이에 배치되였다. 환영행사의 절정이라고 볼수 있는, 불도젤운전수들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는것도 분공되였는데 몽금은 앞으로부터 일곱번째 차를 맡았다.

발동소리가 차차 가까와지더니 드디여 불도젤행렬이 나타났다. 모두 열다섯대였다. 학생들이 나팔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꽃다발을 흔드는 속에 마을어귀에 이른 첫 불도젤이 멈춰서자 뒤따르던 차들이 줄줄이 멎어서고 처녀들이 달려가 운전수들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정몽금이 맡은 일곱번째 차 운전수는 제대군인인지 머리칼이 풋밤송이가시처럼 짧은데다 큰 키에 희멀쑥하게 잘생긴 청년이였다. 그런데 꽃을 걸어주는 순간 몽금은 문득 상대가 어쩐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떤 계기점에서 만났던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의 생활속에 일시 들어왔다가 기억의 어느 갈피에 어렴풋이나마 모색을 새겨놓은 사람이였다.

(그래, 이 사람은 꼭 어디서 본 사람이야! 아니라면 확신이 이토록 대뜸 갈수 없어!)

환영행사가 끝나 아이들과 함께 유치원으로 돌아오면서 몽금은 멀고 가까운 기억들을 죄다 뒤져가며 그 운전수청년과 만난것이 언제 어디였겠는가를 따져보았다. 어찌된셈인지 아무리 더듬어봐야 짚이는데가 없었다. 나중에는 (아니야, 내가 누구 다른 사람과 헛갈린게 분명해. 이다지도 통 생각이 안나는걸 봐선···) 하고 실망하며 헛수고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기적은 바로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어머니가 구멍탄을 갈아넣느라고 아궁이에서 꺼내는 시뻘건 탄덩이를 보는 순간에 일어났다.

《어마, 불!··· 옳아, 그 사람이야. 그때 불속에 뛰여든 군인이 분명 그 동무였어!》

너무도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이고 또 기쁜김에 몽금은 손벽까지 딱 쳤다. 그바람에 놀란것은 어머니였다.

《이 애, 무슨 새빠진 소리냐? 웬 군대가 불속에 뛰여들었다는거냐?》

《새빠진 소리 아니예요. 오늘 내가 꽃목걸이를 걸어준 일곱번째 불도젤운전수 말이예요. 어쩐지 낯이 익다했더니 글쎄 지난 봄 세포군에 교양원강습 받으러 갔을 때 본 사람 아니겠어요. 글쎄···》

《모를 소리다. 그 사람들은 평양서 온 사람들이라는데 네가 세포에서 보긴 어떻게 본다고그래. 세포와 평양이 어느 천리라구···》

《흥, 엄만 아무것두 모르면서··· 우리가 강습갔을 때 거기 읍거리 뒤골목의 어느 단층집에서 불이 났단 말이예요. 소학교 1학년생이 셋이 모여 숙제를 하다말고 무슨 장난을 했다는지··· 난 그때 강습이 끝나 이모네집에 가댔는데 보니 벌써 창문과 부엌문으로 불길이 내뻗치겠지요. 집안에선 아이들이 엄마, 아버지를 찾으며 아우성치고··· 불끄러 나온건 전부 아낙네들 아니면 늙은이들뿐이여서 모두 발을 구르며 아부재기만 쳤지 뛰여들어가 애들을 안아내올념은 못하더군요. 나도 같았지만···》

《같지 않음 그 불속에 뛰여들었을테냐? 네레···》

탄을 다 갈고 후렁에 가마를 올려놓으며 하는 어머니의 나무람이였다.

《원, 엄마두. 나야 청년동맹원이 아니예요, 청년동맹원.》

《듣기 싫다. 하던 말이나 마저 해라. 아이들은 어찌됐냐, 죽었니 살았니?》

《가만 놔뒀으면야 별수 있어요, 죽었지.··· 다행히 그때 지나가던 한 군인동무가 달려왔는데 물을 찾는거예요. 예서제서 물소랭이니 물바께쯔를 주자 군인동무는 바께쯔의 물을 머리우에 들쓰더니 창문을 넘어 불붙는 집안으로 뛰여들어가더군요.

그러니 어찌되였겠어요. 용감한데다 힘은 또 어찌나 센지 아이 셋을 한아름에 안아서 창밖으로 떨구겠지요. 자기는 좀 있다가야 뛰쳐나왔는데 군복자락에선 불이 펄펄 붙지 않겠어요. 가슴에단 모포로 싼 초상화를 안고있고요.》

몽금은 그때의 일이 실감으로 느껴지면서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 젖어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감심되기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였다.

《그참, 훌륭한 사람도 있구나! 네가 꽃을 주었다는 불도젤운전수가 바로 그 군대란기냐?》

몽금은 그렇다고, 그새 제대되여 불도젤운전수가 된것이 틀림없다고 자기의 판단까지 덧붙였다.

(세상이 넓고도 좁다는건 정말 명담이야. 그 동무가 우리 고장에 토지정리하러 오리라고야 어찌 알았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