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5

 

제 2 장. 발은 현실에, 눈은 멀리에

5

 

《그럼 대책은 뭐요? 그걸 말하오. 혹시 동무네 아무 대책도 없이 앉아있는게 아니요? 눈이 머룩머룩해서···》

조만규는 허부위원장을 무섭게 다그어댔다.

《부상동지, 거 왜 아침부터 열을 올리면서 이러십니까? 사실 이거야 뭐 제가 욕먹을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상대방은 억울하다는듯 두덜거렸다.

《동무, 무슨 소리 해! 위원장이 없을 때는 동무가 농경사업을 주관해야 하지 않소? 그래 벼단철수가 늦어지는 리유를 동무 아니면 누구한테 추궁해야 하오? 동문 언제 봐야 늘쿠데한게 도무지 기백이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야, 사람이 통···》

조만규는 도적으로 벼단철수가 늦어지고있는데 조바심을 느끼고 아침 첫시간에 도농촌경리위원장을 불렀다. 그러나 위원장이 없었다. 위원장은 농업성 자재상사에 올라간지 사흘이나 되였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지금 대리사업을 보는 허부위원장을 불러다놓고 닥달질을 하는중인데 부위원장은 성격이 늘어진 사람이라 추궁이 잘 먹어들어가지 않았다.

《벼단철수가 늦어지는 리유라면 뭐니뭐니해두 성에서 기름을 제때에 보장 못해주는데서 찾아야 합니다.》

허부위원장은 아침부터 위원장대신 욕을 먹는것이 화가 나는지 엇드레질을 했다.

《뭐요? 동무 점점 한다는 소리가··· 여보, 그럼 동무네는 아무 책임질것도 없단 말이요? 벼단은 논판에 놓아둘수록 감모가 난다는걸 모르는가, 가을하는족족 걷어들이라는데 그렇게 손맥을 놓고 앉아있을것 같으면 이 도농경에 있는 그 숱한 사람들은 뭣때문에 필요하오? 자기 사업을 연구하고 방도를 찾아야지, 방도를!》

《우리도 머리를 짜내고 또 짜냈습니다. 도안의 농업기업소들은 물론 공업부문의 륜전기재들과 운송사업소 달구지들까지 총동원하도록 대책도 취했구요. 그뿐인줄 아십니까? 도인민위원회와 토론해서 로동자, 사무원, 가두인민반까지 벼단철수에 총동원했단 말입니다.》

《그런데두 왜 자리가 나지 않는가 말이요, 자리가···》

《부상동지는 뭐 지방이라는게 어떤지를 통 모르는것처럼 그러십니다. 도안의 륜전기재를 총동원한다고 해야 실지 논에 들어갈수 있는거야 몇대 됩니까, 거개 자동차들이지··· 그리고 인력으로 벼단을 꺼들인다는건 허실이나 많고 좀처럼 축나지 않습니다.》

조만규라고 그의 말을 리해 못하는건 아니였다. 하지만 논판에서 벼단이 별로 축나지 않으니 문제였다.

《위원장동무한테선 무슨 소식이 왔소?》

《엊저녁에 전화가 왔는데 래달 열흘께나 받을것 같답니다.》

조만규는 눈이 덩둘해서 부위원장을 쳐다보았다. 이 무슨 소린가? 래달 열흘께면 어떻게 되는가?··· 벼가을을 시작한 날로부터 계산해도 열사흘후의 일이다.

《여보,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나겠소. 안되겠소, 이렇게 하기요.》

조만규가 말꼭지를 떼자 허부위원장은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는가싶은지 앞상에 가슴을 붙이며 귀를 강구는 인상이였다.

《전반적인 철수가 늦어지는건 어쩔수 없는 일이요. 그러므로 방책은 10월 초하루날부터 불도젤들이 일할수 있게 조건부터 우선 만들어주자는거요. 무슨 소린지 알겠소? 리유불문하고 설계가 먼저 비준된 필지의 벼단을 다 가까운 옆배미들로 옮기오. 설계원들이나 시공일군들과 잘 토론해서··· 그런 방향에서 조직사업을 하오.》

궁여지책인건 사실이지만 당장엔 그렇게라도 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었다. 허부위원장은 눈알을 굴리며 속으로 한참 속구구를 해보더니 그닥 내키지 않지만 별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지 한숨을 내불었다.

《글쎄요. 정 곤난하면 그렇게라두 해야겠지만 낟알허실이 많을겁니다. 벼단을 한번 옮기는데 손실이 얼마만큼씩 나는지야 부상동지도 잘 알지 않습니까.》

《물론 나도 알고있소. 그래서 여태 그 말만은 꺼내지 못했던거요. 하지만 오늘이 몇일이요? 정리작업을 시작해야 할 날자가 코앞에 다가왔소, 코앞.》

조만규는 뒤말을 이을수 없었다. 복도에서 누군지 문기척을 요란스레 내고 들어오는 손님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으리으리한 군복차림인 류광선차수였다. 차수를 따라 두툼한 가방을 옆구리에 낀 젊은이가 문간에 들어섰다. 부관인것 같았다.

걸상을 뒤로 밀어제끼며 바삐 일어선 조만규는 문간에 달려나가 손님들을 맞이했다. 지난 5월인가 류광선이 불도젤실태를 료해하느라고 농업성에 왔을 때 만난 뒤로 다시 만나보지 못한터여서 피차 반가움이 컸다.

《공화국창건 50돐때 차수칭호를 받으신걸 알면서두 기회가 없어 인사 못했는데 늦은대로 축하를 드립니다.》

《고맙소.》

조만규는 류광선의 손을 이끌어다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앞상밑에서 다른 걸상을 꺼내 앉았다. 허부위원장과 부관은 벽밑에 놓여있는 걸상에 자리잡았다.

《한데 웬일로 이리 갑자기 오셨습니까? 혹시 장군님께서··· 》

조만규는 자기가 묻지 말아야 할것을 묻는다는 생각이 얼핏 들어 말꼬리를 여물구지 못했다. 장군님의 인민군부대시찰에 자주 수행하는 류광선이 갑자기 나타난것을 제나름대로 분석하면서 혹시 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울렁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류광선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느슨히 미소를 담은 표정으로 건너편 벽이며 천정, 방안기물들을 두루 살피고서야 입을 열었다.

《내가 토지정리하러 나왔다면 부상동문 믿지 않겠지?》

《믿기 힘들지요.》

《하지만 믿소. 장군님의 뜻으로 내 강원도토지정리전투에 국방위원회전권대표로 나왔소.》

《예―에?!···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류광선은 시뭇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조만규는 그제야 류광선의 말이 믿어지면서 더없는 기쁨과 함께 가슴이 뭉클해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장군님께서 강원도토지정리를 매우 중시하신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전권대표로 파견해주시리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해본 그여서 토지정리의 중요성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면서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정세는 또 얼마나 긴장한가.

《그래 지금 일은 어떻게 되여가오? 정리작업은 언제부터 하는걸로 계획하고있소?》

류광선은 걸상에 앉아 담배에 불을 달기 바쁘게 사업상이야기로 들어갔다.

《계획은 래달 초하루부터로 하고있지만 계획대로 돼주겠는지 모르겠습니다. 논판이 나지 않아서···》

《아닌게아니라 오면서 보니 큰길 옆에다 좀 치웠두만. 왜 벼단철수가 그렇게 늦어지오?》

《디젤유가 걸려서 그럽니다.》

조만규는 강원도에서 가을걷이전투는 거의 끝내고있지만 디젤유를 받지 못한 관계로 벼단철수를 소달구지와 인력에 의거하고있는 형편을 이야기했다. 류광선은 리해되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무슨 생각인가 하더니 불쑥 말했다.

《형편이 그렇게 막부득하면 이보, 토지정리용으로 들어온 기름을 먼저 돌려쓰면 되지 않겠소? 두주일후에 온다는 기름만 쳐다보지 말고···》

《토지정리용기름을 돌려썼다가 무슨 문제라도 서는 날엔 어떻게 합니까?》

사실 조만규도 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건 아니지만 토지정리용기름을 류용했다는 소리를 들을가봐 감히 손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류광선은 생각이 달랐다.

《토지정리용기름이면 뭐 다른 기름이요? 누가 떼먹는것도 아니고 먼저 돌려쓰고 후에 들어오는 차제로 보충받으면 되는건데··· 》

《그랬다가 벼단철수용기름이 늦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조만규는 매사에 주도세밀한 사람이라 만약의 경우까지 예견하지 않을수 없었다.

《복잡해질 땐 복잡해지더라도 두주일이라는 시간을 그저 잃을순 없소. 그 기간에 동무도 그래 여기 도농경사람들서껀 농업성에 채근을 하란 말이요. 아마 농업성에서도 우리 사정을 알면 다른덴 좀 밀더라도 강원도에 우선 돌릴게요.

무슨 말썽이 생길가봐 너무 걱정할건 없소. 다른 일도 아니고 토지정리와 직접 련결되여있는 일에 돌려쓰는데야 무슨 말썽이 생기겠소. 만일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으니 내게다 미오.》

《그럼 기름은 돌려쓰기로 합시다만 그 부위원장동지, 말씀은 좀 섭섭하게 하십니다. 난 뭐 목대가 없는 놈이라고 책임을 혼자만 지겠습니까? 나누어 져야지···》

《그렇게 섭섭하면 갈라 지자구, 반반씩··· 허허허.》

류광선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조만규도 기뻤다. 장군님께서 얼마나 든든하고 배짱이 센 일군을 전권대표로 파견해주시였는가! 그는 큰 산이라도 업은듯 한 심정이였다.

그때 여직껏 말없이 벽밑에 부관과 같이 나란히 앉아있던 허부위원장이 벌떡 일어서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차수동지, 고맙습니다. 기름만 돌려주면 우린 한주일이내로 벼단철수를 끝내보겠습니다.》

류광선이 걸상에 앉은채로 몸을 돌리며 물었다.

《동문 누구더라?》

《도농경 부위원장인데 벼단철수를 빨리 못한다고 불려와 한바탕 추궁받던중에 차수동지가 들어오셨습니다.》

《그래? 하니 내가 동무를 구원해줬구만. 기름이 있으면 벼단을 한주일내로 다 철수할수 있소?》

《스물네시간 만가동하면 가능합니다.》

《좋소, 나는 동무 말을 믿겠소!》

허부위원장이 싱글벙글하며 방을 나간 뒤 조만규는 그새 진행한 사업들, 장군님의 관심속에 성과적으로 끝나가고있는 불도젤수송전투며 설계추진정형, 연유보장실태, 세멘트와 강재를 비롯한 구조물공사용자재가 들어오는 형편 등을 요약해서 알려주었다.

《일들을 많이 했구만. 한데 포전규격 말이요. 300평이나 400평 기준이면 좀 작지 않소?》

《작지 않습니다. 글쎄 황해도나 평남도 같은 벌방지대에 비하면 작다 하겠지만 강원도에선 안변군과 평강군을 내놓고는 기준을 300평에 놓는게 맞춤합니다. 뜨락또르나 모내는기계가 들어가는데도 별로 지장이 없고··· 》

《그와 관련해서 농민들의 의견은 어떤지 들어봤소?》

《들어봤지요. 설계때문에 별로 많이는 못 나가봤지만 현지에 내려갈적마다 농민들에게 의견을 들어봅니다. 개중엔 글쎄 될수록 크게 해달라는 요구도 없지 않는데 오랜 토배기농사군들은 강원도의 경우 봄철이면 해풍과 골바람이 세기때문에 논판이 지내 크면 모가 뜰수 있으니 크기를 적당히 해달라는겁니다. 그 말에도 일정하게 일리가 있다고 봐야지요. 그러한 농민들의 요구와 지형조건, 시공기한 등 이것저것 타산해보고 명년 태양절에 맞추어 산출해낸 답이 300평입니다.》

《주인들의 요구가 그렇다면 좋고··· 동무자신이 농업일군이니 어련하겠소만 어쨌든 앞으로도 농민들의 의견을 많이 참작하면서 일해야겠소. 이건 내가 떠나올 때 장군님께서 특히 강조하신 문제요.》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류광선은 재털이에 담배재를 털면서 말을 이었다.

《동무가 보기에 현재로서 제일 걸린 문제가 뭐인것 같소? 시급히 해결을 보지 않으면 안될 일이라고 하겠는지···》

(이 어른이 앉은자리에서 저리 실태료해를 다하고야말 작정이군! 잡도리가···)

《내가 지금 제일 불안하게 생각하는건 예비부속을 가지고있지 못한것과 도내 각 군, 리들의 불도젤수리기지가 든든치 못한것입니다.

지금 속속 도착하는 불도젤들이 다 대수리를 거쳤다고 하지만 이제 정리작업에 진입하면 사방에서 고장이요, 수리요 하겠는데 부속품공급과 수리를 따라세우지 못하면 기대들의 만가동을 보장 못합니다.

토지정리실적은 곧 불도젤가동률입니다. 그야말로 하루가 천날맞잡이로 귀한데 부속과 수리가 따라서지 못해 차들이 줄줄이 서게 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속에 재가 앉는것 같습니다.》

《부속보장을 맡은 단위가 어데 어데요?》

《한두군데가 아니지요.》

류광선은 군복 안주머니에서 새까만 가죽뚜껑을 한 수첩을 꺼내놓고 조만규가 부르는대로 생산단위들을 수첩에 받아적었다. 적기를 다하고 기억에 새기듯 다시 훑어보더니 수첩을 접어 안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럼 사업분담을 하기요. 이제부터 불도젤수리와 부속품보장은 내가 전적으로 맡겠으니 동무는 나머지 일들을 책임지오.》

《!···》

《난 가겠소. 우에서 날 찾으면 이자 수첩에 적은 단위들에 가있을거라구 하오.》

류광선은 재털이에 담배불을 비벼끄고 움쭉 일어섰다.

《아니, 이제 가실랍니까?》

《가야지. 장군님께서 책상을 지키고 앉아 호령질이나 하라구 나를 강원도에 파견하신건 아니니까···》

그런 말을 남기고 류광선은 올 때처럼 급작스레 떠나갔다.

현관에 나가 그를 바래운 조만규는 정문밖으로 사라지는 차를 바라보며 속으로 감심하여 중얼거렸다.

(장군님을 가까이에서 보좌해드리는 일군이 역시 다르구나! 일하는 본때가···)

머리 숙어지는바가 없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