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3

 

제 2 장. 발은 현실에, 눈은 멀리에

3

 

락랑구역도 포함하여 평양시불도젤들이 무개화차에 실려 서평양화물역을 떠나던 9월 14일 아침 황해남도에서는 륙로로 해주시가 출발한데 이어 10시경에는 연안군돌격대원들이 군안의 책임일군들과 읍내 학교학생들, 돌격대원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륙로로 강원도를 향해 떠났다. 책임일군들속에는 새벽에 해주시의 출발행사를 보고 곧장 연안에 온 도당책임비서 로영태의 얼굴도 보였다.

지금은 11시. 나팔소리, 북소리가 울리고 학생들이 꽃다발을 흔들며 배웅하는 속에 불도젤을 실은 마지막 《자주》호자동차가 읍어귀를 벗어나자 로영태는 시계를 보며 군당책임비서쪽으로 돌아섰다.

《오후 첫시간에 안악과 재령에서 떠나는걸 봐야겠기에 난 가겠소. 엊그제 중간총화때도 말했지만 불도젤을 강원도에 보내는것으로 국방위원회명령을 수행했다고 손을 털어서는 안되오. 후방사업도 그래, 예비부속을 마련해주는것도 그래 토지정리가 끝날 때까지 수시로 관심을 돌려야 하오. 동원된 운전수들의 가정을 돌봐주기 위한 대책도 세워야 할거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야단났습니다. 당장 벼가을전투를 해야겠는데 기름을 도무지 260t밖에 안주니 어느 코에 바르라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군당책임비서의 우는소리였다. 로영태는 그걸 받아줄수 없었다.

《100t은 어따 감추고 260t이요? 360t을 주었겠는데··· 어쨌든 기름소리는 더 하지 마오. 그래두 동무네와 배천, 청단은 많이 받은 셈이요. 재령이나 안악엔 그렇게도 못 주었소.》

간저녁 도농촌경리위원장을 통해 연유분배정형을 료해했고 늘 우는 소리를 하면서 호박씨를 까는 연안군당 책임비서를 잘 아는 로영태여서 그렇게 잘라말하고 승용차에 한발을 올려놓았다.

읍거리를 벗어난 승용차는 그새 서있은 봉창이라도 하듯 갑자기 속력을 놓았다. 가로수들이 바삐 달려왔다가는 가뭇없이 물러가고 가을걷이를 앞둔 누런 논벌은 반원을 그리며 멀어지다가 마침내 지평선에 녹아버리고만다.

로영태는 연줄연줄 다가오고 물러가는, 예상수확고를 판정하느라고 평뜨기한 자리도 드문히 보이는 길옆의 논배미들을 주의깊게 살피며 나름으로 작황을 가늠해보았다. 분명 풍작은 아니였다. 그렇다고 흉작이라고 할수도 없는, 지난해보다 조금 나은 중간작황인데 실수확고가 예상수확고보다 더 나오는 경우라도 국가계획을 수행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승용차는 정촌리와 풍천리를 지나 벌써 청단군린접인 청정리지경에 들어섰다.

오늘도 떠나기 전에 만나본바 있는 불도젤운전수 임성춘의 고향이 바로 이 청정리이다. 그리고 이곳은 로영태자신이 당일군으로서의 많은 경험과 교훈을 얻은 고장이다. 리의 절반이 조국해방전쟁전 리승만통치를 받던 지역인데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이후에도 적들이 한달동안이나 강점했던 관계로 삼거웃처럼 뒤엉킨 주민구성때문에 놀라던 일이 엊그제같다. 당시만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경력의 오점과 가정주위환경의 복잡성에 짓눌려 번민하며 한숨속에 살았던가.

로영태는 바로 이곳에서 임성춘이와 첫 상면을 하였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것이 언제였더라··· 그래, 1964년 봄이였지.)

도당학교를 졸업하고 군당위원회 조직부부원으로 사업하기 시작한지 반년도 채 안되던 그해 봄 로영태는 군급일군들로 무어진 영농사업추진그루빠성원으로 여기 청정리에 나와있었다.

그무렵의 어느날 일이였다.

온종일 모내기전투로 들끓던 벌판에 어둠이 내려앉고 제세상을 만난듯 개구리들만 야단스레 울어대는 늦저녁이였는데 3작업반마을에 나가 강연을 하고 리소재지로 돌아오던 그는 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논판에서 나는 철썩! 소리를 듣게 되였다. 놀라와 자세를 낮추고 살펴보니 희뿌연 하늘을 배경으로 논뚝에 웅크리고앉은 사람의 형체가 시꺼멓게 보이는것이였다. 이 어두운 때 웬 사람이 혼자 논판에서 무얼 하는것인가, 철썩― 하고 난 소리는?··· 신해방지구로 불리우는 고장이고 계급적원쑤들의 암해책동도 가끔 나타나는 때여서 수상쩍은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또 한번 철썩!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로영태는 그것이 논판에 모춤이 떨어질 때 나는 소리라는데 짐작이 미쳐서 논뚝을 따라 사람이 있는 곳까지 갔다.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옆에 큰 지게를 작시미로 뻗쳐놓은채 쭈글쭈글한 농립모를 눌러쓴 한 농장원이 수로뚝에 쭈그리고앉아 낮에 모내기를 하면서 흘린것 같은 벼모들을 주어 춤을 만들어서는 논판에 던져넣고있었다.

로영태는 기뻤다. 모범으로 내세울만 한 미거를 발견한것이 반가와 한달음에 다가가 이름부터 물었다. 애젊어보이는 농장원은 그를 한번 흘끔 쳐다보더니 이름은커녕 어느 분조에 있다는것조차 말하지 않았다. 물음을 던질 때부터 아무런 반응도 없이 웅크리고앉아 모춤만 만들어 논판에 던져넣더니 할일을 다하자 일어나 《전 그럼···》하고 지게를 진채 인사를 꾸벅 하고 가버리는것이였다.

무안을 당하고 어안이 벙벙해진 로영태는 리에 올라와 리당위원장(당시)에게 목격한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놀랍게도 리당위원장은 말만 듣고도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대뜸 알아맞추는것이였다.

《성춘이 소리같은데··· 키레 헐썩 크구 눈이 살구씨겉이 생긴 애가 아닙디까? 다리가 이만치 긴 지게를 지구요.》

리당위원장은 두손바닥을 어깨넓이 곱되게 벌려보였다.

《옳습니다. 어두워서 눈이 살구씨같던건 잘 모르겠는데 지게만은 굉장히 크더군요. 어려보이구.》

《어린애지요. 올들어 열일곱살이니까··· 하지만 벙어린 아닙니다.》

《허허, 그런걸 난··· 어쨌든 어린 동무가 정말 기특합니다.》

《기특하다마다요, 나인 어려두 일은 어른들 찜쪄먹게 잘합니다. 그 대짜지게루다 혼자서 한개 분조의 모를 다 보장하니까요.》

《그런 동무면 왜 내세우지 않습니까? 우리 농촌의 훌륭한 미래라고 할수 있는 사람인데··· 이제라두 빨리 자료를 만들어 군당에 띄웁시다. 널리 소개선전하게 말입니다.》

《원, 부원동무두. 그게 어떤 반동놈의 자식인데 소개선전한다는겁니까? 그건 안됩니다.》

《?···》

로영태는 무슨 소린가싶었다. 그리하여 듣게 된 리당위원장의 이야기가 자못 놀라왔다.

《갸 애비란 작자가 워낙은 근실한 농군이였소다. 전쟁전엔 다수확농민이란 소리도 들었구요. 그렇던 놈이 우리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자 갑자기〈치안대〉원으로 둔갑해가지구 벼낟가리보초를 선다, 저와 척을 졌던 사람네 집에서 소를 끌어다 잡아먹는데 끼운다 하며 되우 못나게 놀았지요. 그러다 인민군대가 재진공하니 원자탄바람에 놀라 처자권속을 버리구 남으로 줄행랑을 놓았소다.》

한마디로 임성춘은 적기관에 가담하였다가 월남한자의 아들이였다.

《두고간 식구들은 몇이나 됩니까?》

《워낙은 성춘이 할아버지와 성춘이 모자 해서 셋이였는데 성춘이 엄마되는 녀잔 반동놈의 녀편네소리를 들으면서는 못살겠다며 전후에 해주서 사는 어느 홀애비와 재혼했답니다. 어린 성춘이를 제 할애비한테 떨궈두고···》

《그 죄많은 인간이 결국 아이에게서 에미마저 빼앗았군요.》

로영태는 그때 분노와 동정을 같이 느꼈다. 얼마나 나쁜 아버지에 불행한 아들인가. 한 가정이 겪은 이 비극을 전쟁탓이라고만 밀어붙일수 있겠는가. 아니, 이건 전쟁탓이라고만 할수 없는 일이다. 한 인간이 옳은 신념과 리지력 그리고 인생의 라침판을 가지지 못했던 관계로 빚어진 결과로 보아야 한다.

그건 그렇다치고 저 성춘이는 장차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람이 인간으로서 사는 보람을 느낄수 있는 필수적인 조건은 육친의 따뜻한 정과 밝은 래일에 대한 꿈 그리고 자신이 몸담은 사회와 집단의 리해와 믿음이라고 보아 틀리지 않을것이다. 당시 임성춘에게는 그중의 어느 조건도 온전히 차례진다고 볼수 없었다.

로영태는 임성춘의 문제를 더 론의에 올리지 않았고 시간과 함께 기억에서도 사라져갔다. 그러나 우리 당만은 병신자식에게 더 정을 쏟는 어머니마냥 가정주위환경이 복잡한 그에게도 남들과 꼭같이 따뜻한 사랑과 밝은 미래를 안겨주었으니 기능공학교에도 남먼저 보내주었고 40대에는 입당준비까지 시키였다.

로영태는 임성춘이 입당청원서를 쓰면서 얼마만 한 눈물을 흘렸겠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던 그가 과오를 범하고 입당은커녕 법적제재까지 받았으니 그는 평생을 두고 아니, 대를 물려가며 갚아도 다 갚지 못할 당의 믿음을 너무도 쉽게 저버린것이였다.

(못난 인간 같으니, 당의 믿음을 그렇게 저버리다니···)

로영태는 청정리지경을 훨씬 넘어설 때까지도 그렇게 임성춘의 생각에 골몰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