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2

 

제 2 장. 발은 현실에, 눈은 멀리에

2

 

팔다리가 저려나는통에 잠을 깨서야 조만규는 자신이 새벽 3시가 넘도록 설계를 검토하다가 책상에 엎드려 깜빡 잠들었다는것을 알았다. 저린 팔과 책상우에 실린채 굳어질번 했던 앞가슴을 두드리고 주무르며 시계를 보니 5시가 가까와오고있었다. 장밤을 팬것도 아니건만 몸이 여간 곤하지 않았다. 그런대로 견딜만은 하고 날도 이미 밝아서 의자를 뒤로 드윽― 소리가 나게 밀어버리며 일어난 그는 공기갈이가 되라고 이문저문 열어제낀뒤 마당에 나가 천천히 거닐며 하루일을 계획해보았다. 비준에 제기된 설계가 적지 않아서 오전중에는 아무래도 사무실에 있어야 할것 같았다. 오후에는 안변군에 나가 엊저녁에 도착했다는 함경북도돌격대의 형편과 설계원들의 사업을 료해하고 오면서는 연유창에 들려 연유의 현장공급체계를 세워줘야겠다고 생각하다가 토지정리시범을 보여주기사업과 관련한 인민군지휘부와의 협의회를 하기로 한 약속이 떠올라 생각을 고쳐하였다. 그 협의회를 오후 첫시간에 하는것으로 보고 시간을 분배해보니 결국 설계원들과의 사업이 일정에서 빠져나갔다.

피곤도 풀리고 머리도 거뜬해져 방으로 올라온 조만규는 각 군경영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밤사이에 새로 도착한 불도젤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알아보았다. 많지 않았다. 평강군에 2차로 황해남도에서 31대, 이천군과 판교군에 황해북도에서 각각 14대, 철원군에 개성시에서 16대, 함경남도에서 법동군에 10대, 통천군에 22대가 도착한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대부분은 린접도들에서 륙로로 온것들이고 철도로 수송된것은 함경남도의 불도젤뿐인데 어제도 그렇고 와야 할 대수가 그중 많은 평안남북도와 평양시, 남포시가 오지 않는걸 보아 철도에 무슨 이상이 생긴것이 분명하였다.

(안되겠군, 급한 일들이나 초벌 죽이구선 철도성에 올라가 아예 사령에 틀고앉아야지···)

조만규는 전화기를 밀어놓고 간밤에 하다만 판교군의 정리계획도를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몇분 안되여 도면에서 눈을 떼며 금방 밀어놓은 전화기를 도로 끌어당겨 판교군담당인 황해북도농업설계연구소 소장을 찾았다.

《여보, 동무네가 설계한 풍현농장도면들 말이요. 이게 왜 이렇소? 400평에 500평짜리까지도 있으니··· 풍현리뿐아니구 다른 리들두 다 같구같구만, 응?》

《허허··· 그렇게 됐습니다.》

《뭐, 그렇게 됐다? 여보,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소?》

조만규가 꽥소리를 치는통에 저쪽에서는 흠칠 놀랐는지 한동안 대꾸가 없었다.

《내가 페강식때 말하지 않았소. 나라형편이 어렵고 기름과 기계가 다 원만치 못한 조건이므로 정무원지도서는 무시하고 현실에 맞게 기준을 정하라구··· 못 들었소?》

《듣기야 했지만···》

《들었는데 왜 이렇게 했는가 말이요, 왜? 안변이나 평강 같은 벌방이면 또 몰라도 동무네 판교 같은데서야 기준을 이렇게 높이 놓을 필요가 어디 있소, 어디!··· 답답하지 않는가?》

상대는 조심스럽게 사유를 밝혔다.

《답답한걸로 말하면 우린 숨막힐 지경입니다. 부위원장 아니, 부상동지 말씀대로 하면 기준을 팍 떨구고 설계를 다시 그려야 한다는 소린데··· 사실 우리도 처음엔 기준을 300으로 놓았더랬습니다.》

《그런데?》

《관리위원장들이 찾아와서 막 펄펄 뜁니다. 다른데서는 500평짜리를 한다는데 왜 우리는 300평이냐고···》

《대체 어디서 500평을 했다는거요?》

《고산쪽에서 그렇게 한다는것 같습니다. 내 그래서 고산을 담당한 평양시설계에 물어까지 봤는데 금오리를 그렇게 했다던지···》

《금오리?》

조만규는 이렇게 뇌이고나서 한동안 생각을 굴리였다. 토지정리지휘부가 전개된 후에 제일먼저 지원물자를 가지고 찾아왔던게 금오리관리위원장이였다. 키가 작달막하고 녀자들처럼 곱게 늙은 관리위원장을 보면서 조만규는 이 관리위원장이 젊어서는 처녀처럼 곱다는 소릴 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가 돼지를 세마리나 가지고 찾아와 평생소원을 풀게 됐다고 말할 때는 자기도 감심이 되였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다 엉큼한 속궁냥이 있어서였다.

《동무! 떨떨한 소리 하지도 마오. 설계의 주인이 동무네요 아니면 농장이요?》

《글쎄 설계의 주인은 우리지만 땅의 주인이야 농장원들이지요. 땅주인들의 욕심이 너무 큰감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현지의견을 참작하라는 강조도 있었구 하길래···》

《그래서 소장동문 기준을 무시하고 농민들의 요구에 맞추자는거요? 내 말을 명심해듣소. 우리가 기준을 300에다 놓은건 나라의 어려운 형편도 형편이지만 골바람이 센 강원도의 지대적특성을 고려했기때문이요. 알겠소? 례외란 없소. 저마끔 그렇게 례외를 보아줄내길 하다간 명년 태양절까지 토지정리를 끝내지 못하오. 국방위원회명령도 물론 관철하지 못하고··· 그걸 알아야 하오. 설계는 내려보내주겠으니 기준을 300에 놓고 다 다시 그리오. 무조건!》

전화를 끝낸 조만규는 서둘러 고산군 금오리 토지설계도면을 찾아보았다. 아닌게아니라 그곳도 500평기준으로 설계되여있었다.

설계분과가 일을 떨떨하게 한다는 생각을 하며 분과장을 찾으려고 송수화기에 막 손을 뻗치는데 문기척과 함께 들어온 사람이 마침 김흥복이여서 송수화기를 놓고 물었다.

《동무도 이 설계를 보았소? 고산군 금오리걸 말이요.》

《예, 저먼저 부상동지가 도착하신 날 말씀을 드릴가 하다가 피곤해하시는것 같아 관두었는데···》

김흥복은 금오리설계가 왜 넓어졌는가 하는 리유를 설명하였다. 듣고보니 금오리관리위원장이란 령감이 보통떼군이 아닌것 같았다. 선 하나, 점 하나를 놓고도 연필방아를 찧는 설계원들까지 휘여잡은걸 보면 수완도 보통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시공은 그때 가서 불도젤운전수들과 사업해서 한다? 허허허. 그 령감이 아주 웅클하구만. 안되겠소. 각 군설계단위들에도 알아보오. 현재 진행하던 설계중에 농민들의 요구라고 해서 기준을 넘어서는 일이 없는가 하는걸··· 한 단위도 놓치지 말고 구체적으로 장악하고 다시 설계하도록 하오. 마침 설계단계에서 발견한게 다행이요. 동무들도 떨떨하게 이풍저풍에 놀지 말고 대를 세우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인민군지휘부에서 전달해달라는 전화내용이 있어서 왔는데 말입니다. 지금 평양시와 평안남북도에서 오던 불도젤들이 거차령을 넘지 못해 양덕과 신성천사이 역들에 백여대나 머물러있답니다.》

《넨장, 엊그제부터 그쪽차들이 안 온다 했더니 거기서 잡혔구만.》

조만규는 오만상을 찌프리며 팔굽을 책상우에 놓은채 왼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쥐였다. 오늘이 벌써 9월 스무하루다. 10월 1일부터 정리작업에 들어가자면 지금쯤 모든 불도젤들이 현지에 도착하여 운전수들이 지대를 익히며 대기하고있어야 하는데 아직 도착하지 못한 차들이 수백대나 되니 문제가 아닐수 없다.

조만규는 다른 일은 못해도 불도젤을 실은 차량들이 거차령을 넘지 못하는 원인부터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아 아침모임을 끝내기 바쁘게 양덕으로 향했다. 그가 양덕역에 도착한것은 10시가 다된 때였다.

역사앞에 차를 세우고 안마당에 들어간 그는 불도젤들을 실은채 대피선에 서있는 화차들을 이쪽저쪽 둘러보고는 사령실로 들어갔다. 사령실에는 붉은 모자를 쓴 사령말고도 철도제복을 입은 사람이 두명이나 더 있었는데(한사람은 소장이였다.)인사를 나누어보니 한명은 역장이고 소장은 불도젤수송때문에 철도성에서 내려온 수송국장이였다.

《차가 왜 거차령을 넘지 못한다는거요?》

조만규의 물음에 수송국장이 대답했다.

《전압이 너무 떨어져서 견인기들이 맥을 추지 못합니다. 엊그제 장진강발전소에서 발전기를 한기 세웠다나봅니다.》

《그럼 어디 다른데서 전기를 좀 당겨서라두 불도젤이야 넘기구봐야지 않겠소. 동무들이 지금 제정신이요. 국방위원회명령을 놓고···》

《그런들 글쎄 여유전기가 어디 있어야 당겨써도 쓸게 아닙니까. 금년엔 가물이 심해서 허천은 1호와 3호가 서고 부전도 벌써 사수위에 접근하는 형편이여서 전기를 얼마 내지도 못합니다. 북창은 보수중에 있고···》

여전히 태연한 수송국장의 말이였다. 나라의 그러한 전기사정은 조만규도 모르는바가 아니였다. 그렇다고 리해를 보여야 철도사람들로 하여금 변명의 구실이나 만들어줄것 같아 무작정 따지고들었다.

《그렇다면 동무네 철도에선 이 정황을 어떻게 처리할 결심이요? 무슨 대책안이 있소?》

국장은 고통스러운 인상으로 대피선에 서있는 화차들을 내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현재로선 대책이 없습니다. 장진강발전소에서 발전기정비를 끝내기 전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였다.

조만규가 다시 물었다.

《발전기는 언제쯤에나 살릴수 있다오?》

《거기서두 지금 주야로 전투를 하는데 최소한 한주일은 걸려야 될것 같답니다. 해체했다니까.》

최소한이면 한주일도 확정적인건 못된다는 소리였다. 전망이 암담하다는 느낌에 한숨을 불던 조만규의 머리속에 한가지 떠오르는 그럴사한 방법이 있었다.

《이보 국장, 견인기의 힘에 관한 문제라면 한 서너방통씩 달아 넘겨보기요. 넘겨서는 수동쪽에 대피시켰다가 모아서 끌어가는 식으로 말이요.》

《그건 안됩니다. 어제 두량을 달고 한번 시도해봤는데 하마트면 견인기를 녹일번 했습니다. 전압문제지 물동량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국장의 말에 조만규는 그만 화를 벌컥 냈다.

《여보, 이것두 안되구 저것두 안되구 대책은 없어··· 그럼 발전소에서 전기를 보내줄 때까지 한주일간 이러고있을셈이요?》

《···》

《철도에 문제가 있어도 단단히 있소. 국방위원회명령을 집행하는 본새가 이러니 려객수송이나 일반화물수송이 어떻게 제대로 되겠소.··· 동무네 철도엔 주인이 있는것 같지 않소, 주인이···》

《아니 부상동지, 그거 뭐 철도신세는 영 안 져본것처럼 말씀하시누만요. 글쎄 우리가 일을 잘못하는것도 더러 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선사람들이 기차를 타고다니고 기차가 실어다주는걸 먹으며 쓰고 살았지 언제 다른 신세로 살았습니까? 말은 바른대루···》

궁지에는 몰렸어도 자존심까지 잃어버린 국장은 아니였다.

그때였다. 빠금히 틔여있던 나들문이 활짝 열리며 한 인민군장령이 문간에 들어섰다. 키꼴이나 한데다 살갗이 흑토처럼 검고 눈에서 불이 펄펄 이는것 같은 감때사납게 생긴 젊은 소장이였다. 조만규의 경우는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다 구면인듯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눈 뒤 역장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어보니 주둔군부대 부대장이였다.

《부상동지는 무슨 일로 여기 오셨습니까?》

소장의 물음에 조만규는 대피선에 서있는 화차들을 얼핏 내다보았다.

《저 불도젤들을 가져가려고 왔소만··· 난 지금 강원도토지정리때문에 나와있소.》

《아, 그렇습니까? 저도 불도젤때문에 왔습니다. 불도젤수송을 도와줄데 대한 최고사령관동지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

《?!···》

모두가 놀라움에 한껏 커진 눈으로 소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한 눈길을 받으며 소장이 전달하는 김정일동지의 말씀내용은 이러했다.

···지금 양덕과 신성천사이에 강원도로 가다가 전압관계로 거차령을 넘지 못한 불도젤들이 며칠째 머물러있다고 한다, 전력사정이 풀리자면 아직도 여러날 더 있어야 한다는데 그렇게 되면 전반적철도수송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강원도토지정리가 시작에서부터 큰 지장을 받게 된다, 이 문제는 군대에서 풀어주어야 할것 같다, 거차령이 열릴 때까지 부대에서 수송차를 몇십대 내여 화차에 실려있는 불도젤들을 현지에 집중수송해주면 철도의 공백도 메꾸고 강원도토지정리도 수나롭게 될것이다, 륙로는 전에 최현동지가 건설한 도로를 리용해야 한다, 삼계쪽으로 빠지는 구도로를 타면 아호비령을 넘을 때 사고가 날수 있다.···

《···좀 돌더라도 꼭 최현동지가 건설한 도로를 타야 한다고 재삼 당부하시였습니다.》

모두 숙연한 감정에 휩싸여 말을 못하는중에 조만규가 감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장군님께서 비상조치를 취해주셨구만. 말씀만 듣고도 벌써 숨이 나가오. 난 이번에 거차령이 막힌 후유증으로 서도의 불도젤들이 강원도에 다 오자면 10월말이나 11월 중순까진 씨름질해야 될것으로 보았소. 하지만 이젠 풀렸소. 정말 숨이 나가오.》

《숨이 나가는건 우립니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거차령이 이제 며칠만 더 막혀있으면 불도젤수송뿐만아니라 온 나라 철도에 다 문제가 생깁니다. 려객, 화물, 화차회귀··· 정말이지 장군님께서 큰 문제를 풀어주셨습니다.》

철도성 수송국장의 말이였다. 뒤따라 조만규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젠 작전협의부터 합시다. 한시가 새로운데···》

김정일동지께서 수송방식과 로정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자상히 가르쳐주셨기에 작전협의는 인차 끝났다.

화차에 실려있는 불도젤을 어떤 방법으로 자동차에 옮겨싣겠는가, 옮겨싣는 장소는 어디로 하며 하차대와 상차대는 각각 몇개씩이나 설치하겠는가, 또 인원수송 등 몇가지 실무적문제들만 합의보면 되였는데 그나마 군부대장의 머리속에 미리 짜둔 생각이 있었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조만규는 성격상 일손이 좀 거칠더라도 제낄손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며 그자신도 한뉘 일솜씨가 드세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그러나 통나무를 실어다 철길옆에 하차대와 상차대들을 만들어세운데 이어 불도젤을 옮겨싣고 지역별로 수송대렬을 편성하기까지 군인들의 헌걸찬 일솜씨앞에서 시종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역시 군대가 달라, 패기도 있구 잡도리도 큼직큼직하고··· 보니까 이런 일을 수태 많이 해본것 같구만. 그렇지 않소, 중대장동무?》

그들과 함께 한나절을 씨름하고난 조만규가 그새 낯을 익힌 한 중대장에게 물어보았다.

《첨입니다.》그는 씽긋 웃어보였다.

《우리야 혁명적군인정신을 창조한 군대가 아닙니까. 우리 전사들은 지금 누구나 그것을 자각하며 일하고있습니다.》

조만규는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다.

무엇을 맡겨주어도 막힘이 없는 인민군대였다. 바다를 막으라면 바다를 막았고 물길굴을 뚫으라면 물길굴을 뚫렀으며 명승지를 꾸리라면 명승지를 꾸리였다.

드디여 32대로 편성된, 목적지는 회양군과 금강군이지만 철령밑에서 부리우고 돌아올 임무를 받은 첫 수송차행렬이 출발하였다. 뒤이어 빈 화차들로 이어진 회귀하는 렬차가 안도의 숨소리인양 기적을 길게 울리며 양덕역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