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8

 

제 2 장. 발은 현실에, 눈은 멀리에

18

 

자동차는 11시가 넘어서야 란정리 초입에 들어섰다. 바람세는 초저녁때보다 조금 약해졌으나 대신 기온이 더 떨어진 느낌이였다. 눈까지 펄펄 쏟아지는 12월의 깊은밤이지만 100여대의 불도젤이 들어와 집중전투를 시작한이래 언제나 그랬던것처럼 이밤도 란정벌은 자지 않고있었다. 온 천지가 흰눈에 덮였으나 불도젤들이 널려 정리작업하는 구역은 어디라없이 거멓게 보인다.

눈내리는 토지정리전투장의 밤풍경은 장관이였다.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땅크서렬인양 횡대로 늘어서서 나아가는 불도젤들, 어둠을 헤가르며 사방에 번뜩이는 전조등빛, 가속을 줄 때마다 배기통에서 솟구쳐오르는 불씨, 웅글진 기관소리, 리대판련결못을 박아넣는 사이 뜬 쇠망치소리속에 전지불이 번뜩이는 곳들에서 《48호! 좀더 붙으라!》, 《창호! 삽날을 더 박으라!》하는 웨침소리들이 섞여들린다. 온벌이 들들 진동하며 어디론가 가고있는듯싶다.

그 한가운데 난 포전길로 자기네가 맡은 3작업반으로 차를 인솔해가던 박민석은 도중에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였다. 집중전투를 시작한 초기 자기네가 맡아 정리하고 넘어간 2작업반 1분조 《리을틀》에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히며 우등불이 꽉 차있었다. 큰 우등불만도 수십개나 되고 불뭉치는 몇백을 헤아리는지 알수 없었다.

여긴 분명 끝난 곳인데··· 내가 포전을 헛갈렸나?

민석은 눈을 비비며 시창밖을 다시 눈주어 바라보았다.

분명 《리을틀》이였다.

민석은 운전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하였다. 이 한밤중에 저렇게 《리을틀》에 우등불을 주런이 피워놓고 누구들이 무얼하는것인가?

논뚝짓기나 용배수로파기를 하는것은 아니였다. 후속공정도 그들이 3작업반으로 넘어갈 때쯤 군인들이 거의다 해치운 상태였다. 그러면 저 우등불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시 우리가 포전정리를 질적으로 못한것이 문제되여 농장원들이나 지원자들이 교정작업을 하느라고 피운건 아닐가 하는 생각에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 같았다.

박민석이 차에서 내리자 금오리청년들이 《여깁니까?》하면서 같이 뛰여내렸다. 민석은 그들을 도로 타게 하고 운전사더러 자기가 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따라나서는 몇몇 청년들과 함께 《리을틀》을 향해 걸었다.

《리을틀》이란 추가령지구대의 어느 골안에서 시작되여 동해로 흘러드는 안변남대천 중류가 란정리 2작업반에 이르러 《ㄹ》자를 그리는 근방의 논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리을틀》한쪽에 어느해 모내기철에 써레를 끌던 소가 빠져죽은 때로부터 《백정필》로 불리운다는 한정보가량 되는(그 한정보안에 지난 전쟁때의 폭탄구뎅이도 여러개 있다.) 랭습논이 있는데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였다. 허벅다리까지 빠지며 고생스레 손모를 내야 장마철이면 물에 잠기고 랭해로 가을에는 종자값도 못 거두는 찬물구뎅이였다. 그런 땅인줄 모르고 들어가 정리작업을 하던 홍산옥의 불도젤이 수렁에 빠졌었다. 자체로 나와보려고 여러모로 애쓰는 사이에 불도젤은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가 나중에는 운전칸까지 잠겼다. 근처에서 용수로작업을 하던 군인들이 달려와 감탕을 파내고 통로를 만들어준 상태에서 두대의 불도젤이 쇠바줄로 끌어당겨서야 겨우 나올수 있었다. 다른 불도젤이 들어가보았지만 결과는 같아서 안타깝던중에 농장측의 의견이 설사 무슨 방법이 있어 정리한다 해도 수렁창이기는 마찬가지기때문에 차라리 이번기회에 비경지로 떨구겠다는것이였다. 결국 농장의 제기가 승인되여 락랑구역돌격대는 안도의 숨을 쉬며 《리을틀》에서 철수하여 3반으로 넘어갈수 있었다.

지금 수백명의 군인들이 그 《리을틀》―《백정필》로부터 한 5백~6백m가 실히 될 《ㄹ》굽이 물가까지 늘어서서 곧추 도랑을 파고있었다.

처음 민석은 군인들이 왜 도랑을 파는지 의도가 리해되지 않았으나 인차 도랑을 따라 드문드문 실어다 놓은 돌무지들을 보고는 그것이 땅밑으로 찬물을 뽑기 위한 암거작업이라는것을 알았다.

이미 가슴이 묻힐만큼 깊어진 도랑안에는 무릎을 치게 물이 차있었다. 물속에서 군인들은 기합을 쓰듯 윽, 윽··· 악, 악··· 소리를 질러가며 삽으로 흙을 파올려서는 기운껏 멀리 던져버린다. 흙을 파 떠올려 던지는 률동에 맞추어 토막진 《유격대행진곡》을 부르는 군인들도 있다. 추위를 이겨내느라고 하는 소리고 노래다. 멀리 아래쪽 어디선가 지휘관의 《교대!―》구령이 울린다. 그러면 도랑속에서 일하던 군인들이 나오고 대신 우등불주위에서 몸을 녹인 군인들이 삽을 넘겨받아쥐고 도랑으로 뛰여든다. 뒤따라 힘찬 고동구호가 울린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의 란정리현지지도말씀을 결사관철하자!》

거기에 모두가 따라 호응한다.

《관철하자!》

《관철하자!》

그때였다. 멀지 않은 아래쪽 도랑가에서 누군지 군인들에게 야단야단 하였다.

《아니, 이 사람들아! 이 추위에 얼어죽자구들 이러나, 어서 나오라구, 어서들··· 여기 대대장이 어디 있나? 아니, 귀들이 먹었어? 빨랑 나오지 못할가?》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란정리관리위원장이였다. 모르고있다가 인제야 알고 바삐 달려나온 모양인 관리위원장의 그런 야단에 어느 병사의 여물지 못한 챙챙한 목소리가 반응한다.

《관리위원장아바이, 걱정 꽉 놓으십시오. 얼음은 0도씨이상이면 녹는 법인데 우리야 36도씨가 아닙니까. 아무렴 우리가 얼겠나요? 얼음이 녹겠지···》

그러자 다른 목소리가 익살을 부린다.

《여,어디 녹기만 하는가? 나한테선 막 끓을라구그래. 벌써 김이 나는데 뭘.》

그 말을 또 다른 목소리가 받는다.

《체, 김이나 나는걸 가지구. 위원장아바이, 전사 박광남은 너무 끓어서 지금 막 식히는중입니다, 하하하.》

···

그것을 목격하는 민석이와 금오리청년들은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민석의 경우에는 감동만이 아니라 크게 자책도 느꼈다. 그는 이제껏 자기네야말로 가장 강한 의지와 정신력을 발휘하고있다고 자부했다. 현재 경쟁에서 남들보다 앞서나가는것도 그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도젤로도 어쩔수 없어 비경지로 돌려놓은 땅을 옥답으로 만들려고 눈보라치는 이밤 얼음물속에서 물도랑을 파는 저 군인들의 정신력과 의지에 비기면 자기들이 발휘한 의지와 정신력은 너무도 보잘것 없는것이였다.

(고맙소, 군인동무들! 나도 한때는 군인이였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어느새 군사복무시절의 그 정신력과 군인정신이 사라져가고있었소. 그것을 깨닫게 해준 동지들에게 충심으로 경의를 표하는바요!)

박민석은 《리을틀》을 떠나 차가 서있는데로 돌아오며 여전히 감동에 젖어있는 금오리청년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바로 저 군인동무들의 강의한 정신을 배워야 하오. 강원도토지정리는 불도젤로가 아니라 바로 저 힘, 저 혁명적군인정신으로 해나가는것이요.》

박민석의 일행이 《리을틀》에서 그런 체험을 하고 락랑구역대대가 맡은 3작업반포전에 도착한것은 11시가 다된 때였다. 그런데 민석은 거기서 뜻밖의 정황과 맞다들렸다. 전국적으로도 제일 뒤자리를 차지했던 자기네가 이번 집중전투에서 단연 앞서나가고있어 기세도 드높이 정리작업을 하고있을줄 알았던 불도젤들이 한군데로 모여들고있는것이였다.

《웬일이요? 왜 작업을 중단하는겁니까?》

《날씨가 차지는데다 바람까지 세서 랭각수가 얼것 같더라니···》

민석의 물음에 대한 돌격대장의 맥적은 대답이였다.

《그래두 오면서 보니 다른데선 작업들을 그냥 합디다.》

민석은 인상이나 어조에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대장에게도 나름의 리유가 있었다.

《다른데서야 실적이 처졌으니 좀 모험을 하겠지만 우리야···》

우리는 남들보다 실적이 단연 높으므로 들어가 휴식할 권리가 있다는 소리였다. 자만··· 아니, 이건 해이이다. 금오리에서 예술소조원들까지 왔는데 이 무슨 망신인가.

《나는 대장동무가 생각을 잘못한다고 봅니다. 물론 동파가 나는건 막아야지요. 하지만 아무리 춥기로 어쨌든 동지추윈데 벌써부터 쫓길내기 하면 이제 금오리에 돌아가 설밑에랑은 어떡할셈입니까?》

민석은 《리을틀》에서 목격한, 자신들도 동조하여 비경지로 돌려놓은 《백정필》을 개량하기 위해 지금 인민군군인들이 어떤 헌신성과 투지를 발휘하고있는가를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실적이 좀 앞섰다고 어떻게 자만할수 있으며 이제 들어간들 잠은 또 어떻게 잘수 있겠습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돌격대장은 한동안 손에 쥔 벙어리장갑만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하더니 드디여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을 잘못한것 같소. 작업을 계속합시다. 군인동무들이 그렇게 찬물속에서 일하는데 우리가 들어가 잠을 자서야 도리가 안되지요.》

그때쯤 불도젤운전수들이 무슨 기미를 느꼈는지 그들 돌격대장과 정치책임자의 주변에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랭각수를 뽑아도 되는가고 묻는 운전수들도 있었다. 민석은 그러는 운전수들에게 랭각수를 뽑지 말라고, 우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며 다시한번 《리을틀》에서 목격한, 군인들이 발휘하고있는 헌신과 의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동무들. 저기, 저기에 누구들이 왔는가 보오. 사회주의경쟁에서 단연 앞서나가고있는 우리 전투원들을 고무격려하자고 금오리에서 예술소조원들이 왔소.》

그제야 돌격대원들은 저만치 포전길에 세워놓은 자동차와 그옆에서 악기를 들고 서성거리는 예술소조원들을 보고 환성을 올렸다.

다섯대의 불도젤이 나란히 서있는 앞에 금오리에서 싣고온 나무로 우등불이 지펴졌다. 우등불둘레의 절반을 돌격대원들이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을 무대삼아 기동예술소조원들이 공연을 하였다. 합창에 이어 대화시가 있고 노래와 손풍금독주가 따랐다. 쿵,쿵··· 심장을 뒤흔드는 힘찬 북소리, 녀성고음독창은 재청을 세번이나 받았다. 혼성2중창,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트럼베트의 맑고 아름다운 음향, 기지에 넘치고 웃음을 자아내는 재담··· 공연이 끝났을 때 시간은 밤 12시였다.

정리작업이 시작되였다. 민석은 금오리청년동맹비서에게 이젠 돌아가도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년동맹비서는 듣지 않았다.

《우리도 오늘 밤을 여기 란정리에서 새우겠습니다. 군인동지들이랑 돌격대원동지들이 이렇게 밤을 패는데 우리가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청년비서동무, 그러지 마오. 동무넨 이젠 할 일을 다 했소. 우린 만족하오.》

그러자 공연때 고음독창을 부르던 처녀가 나서며 총알같이 내쏘았다.

《왜 할일이 없다구 그럽니까? 있습니다. 우린 한명씩 불도젤들에 올라가 노래를 불러주겠어요.》

《옳지. 거참 좋은 생각이요.》

청년동맹비서가 동의하고 모두가 찬성했다. 그자리에서 불도젤이 분담되였다. 최인국의 27호불도젤을 타게 된 중창조 처녀가 제 동무에게 이런 귀속말을 했다.

《얘, 어쩌니. 27호차 운전순 몽금이와 통하는 사인데 몽금이가 알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가?》

《기분 나빠하긴··· 노래랑 불러주어 기쁘게 해주었는데 몽금이가 왜 나빠한단 말이야.》

《너 몰라서 그래. 몽금이 고거 얼마나 질투쟁인줄 아니? 코가 오뚝해 가지구···》

《너 몽금이가 그렇게 무서우면 나와 바꾸자.》

《그건 싫어. 아무렴 애아버지와 총각을 바꿀가? 난 애아버지 다섯하구 총각 하날 안 바꾸는 사람이야, 알겠어?》

《흥, 바람둥이 같은거···》

이날 밤은 금오리기동예술소조원들과 락랑구역돌격대 불도젤운전수들에게 있어 잊을수 없는 밤이였다.

날이 밝을무렵 작업현장을 돌아본 돌격대장과 박민석은 저저마끔 놀라서 눈이 커졌다. 놀랄수밖에 없는것이 아직 이틀은 더 밀어야 할 3작업반 1분조 포전을 거의다 정리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