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7

 

제 2 장. 발은 현실에, 눈은 멀리에

17

 

해질녘.

《승리―58》자동차가 안변읍을 지나 남계리와 접경한 고산군경계를 넘고있었다. 운전칸에는 운전사와 함께 밤색솜옷에 검스레한 개털모자를 쓴 체격이 그리 크지 않은 사람이 차가 들추는대로 몸을 맡긴채 끄덕끄덕 졸고 앉았다. 금오협동농장관리위원장 정여삼이였다.

정여삼은 지금 안변에 갔다가 사흘만에 돌아오는 길이다.

한해의 영농사업일체가 결산되는 드바쁜 철에 그렇게 사흘씩이나 외지에 나가 묵은것은 안변군상업관리소 소장과 약속이 있은대로 금장골 원료기지에서 거둔 강냉이를 탈곡하여 가져다주는 겸사 토지정리돌격대원들에게 해산물을 맛보이려고 수산협동조합에 갔다가 조금이 끼여 늦어졌기때문이였다. 그런대로 며칠 묵은 덕에 명태에 가재미에 잡어를 반차나마 실었으니 손해는 없는셈이였다.

길이 나빠서 자동차가 왈칵덜칵 들추는 바람에 정여삼은 눈을 뜨며 정신을 차렸다. 눈덕으로 흘러내린 털모자를 춰올리고보니 차는 어느새 금오리지경안에 들어섰는데 해는 이미 먼 북대봉산줄기의 서남쪽준봉인 대사봉너머로 기울고있었다.

정여삼은 무심한 눈길로 차창밖의 논벌을 내다보았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으―응?》하며 눈에 의문을 담았다. 의아할수밖에 없는것이 벌에서 정리작업을 하는 불도젤들이 불과 몇대밖에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세여보니 도무지 다섯대뿐인데 게다가 움직이지도 않는것 같았다. 혹시 눈에 착각이라도 오지 않았나싶어 운전사에게 네 눈에는 벌판에 일하는 불도젤들이 몇대로 보이느냐고 물어보았다. 이쪽저쪽 두루 살피고난 운전사의 대답 역시 다섯대라는것이였다.

그렇다면 다른 불도젤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락랑구역돌격대는 스무대의 불도젤을 가지고있다. 사흘전 안변으로 나갈 때만 해도 그 스무대가 저기 삼형제틀어방에서 정리작업을 하고있었는데 그새 벌써 끝내고 재등이라도 넘어갔는가? 그럴수는 없었다. 재등너머 3작업반쪽은 아직 설계합의도 하지 않았거니와 면적으로 봐서 부엉틀을 벌써 다 정리했을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는가? 다섯대만 남겨놓고 다른 불도젤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남아있는것들은 왜 또 저렇게 다 서있고···

정여삼은 다시 불도젤들이 어디로 갔겠는가를 짐작해보았지만 종시 납득할만 한 답을 얻지 못한채 마을에 도착하여 자동차를 창고에 보내고 관리위원회로 들어섰다. 다른 관리일군들은 담당작업반들에 나갔다 아직 들어오지 않은 모양 기사장이 혼자 방을 지키며 천평으로 무얼 달다가 맞아주었다. 기사장은 농업대학을 나온지 3년밖에 안되지만 농학자가 될 꿈을 안고 짬만 있으면 천평과 씨름질하는 야심만만한 젊은이였다.

관리위원장전용의 앉은뱅이책상곁에 가서 앉으며 정여삼은 그새 별로 휑뎅그레 넓어진것 같은 방안을 둘러보다 말고 기사장에게 벌에서 정리작업을 하는 불도젤이 다섯대밖에 보이지 않는 까닭을 물었다.

《란정리로 갔습니다.》

《란정엔 왜?》

《아니, 소식을 못 들었습니까? 장군님께서 란정리를 현지지도하셨다는?》

《그야 들었지. 장군님께서 포전정리를 소극적으로 했다고 지적하셨다며? 더 크게 하라구···》

정여삼이 안변에서 들은 소식이란 고작 그 정도였다.

《예, 1, 2부류로 나누어서 1부류는 1 000평으로 하고 2부류는 800평으로 기준을 정해주셨답니다.》

《뭐이, 800에 1 000?··· 아니, 그렇게까지 크게?》

정여삼은 하도 놀라와 눈을 한껏 치뜨며 잠시 헤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놀랄수밖에 없었다. 장군님께서 란정리를 현지지도하시면서 토지정리를 보다 크고 규모있게 하도록 가르치심을 주셨다는 소식을 안변에서 기쁜 마음으로 들을 때만 해도 그는 이렇게 생각한바가 없지 않았다. 아무렴 그럴테지, 국가가 온 나라의 불도젤들을 동원하여 강원땅을 통채로 정리하면서 고작 300평짜리로 한다는건 어느모로 보나 잘하는 일이라고 할수 없다. 간대로 60년대에 우리가 조합자체로 하면서도 300평짜리 포전을 만들지 않았는가. 등고선을 따라가며 포전을 앉히다나니 꼴모양이 좀 말이 아닌건 사실이지만 면적상으로는 어쨌든 대등했다. 그가 이제껏 속이 불편했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해보려 설계원들을 설복한다, 원산에 올라가 조만규부상을 만나 사정한다 하며 뛰여다닌건 다름아닌 그때문이였다. 그런즉 포전을 지금보다 크고 규모있게 할데 대한 장군님의 말씀은 천만지당하다. 하기사 지금이 어느땐가? 21세기가 눈앞에 다가온 때인데··· 허허, 강원도토지정리가 인제야 제대루 되는가부다! 암, 제대루 되구말구.

그 제대로 된다는 의미가 아직 명확한 표상으로는 안겨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는 장군님의 란정리현지지도말씀을 전해들으며 이제는 500평짜리 포전으로 내놓고 정리해도 되겠구나! 하는 기쁨은 분명 체험했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800평도 넘어 1 000평짜리 포전으로 정리하라고 하셨다니 정여삼은 놀라운 나머지 정신이 다 얼떨떨해지는것 같았다.

정여삼은 앉아있고싶은 생각이 없어 벗어놓았던 개털모자를 집어 쓰고 일어났다.

《내 벌에 나갔다 오겠네.》

기사장이 물었다.

《금방 들어섰는데 벌엔 왜 또 나가십니까?》

《1 000평짜리 포전을 정리하는걸 한번 구경하구 올라네.》

기사장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원, 위원장동지두. 1 000평짜리는 아직 설계가 되지 않아 시공을 못합니다.》

《그럼 800평짜리에야 붙었겠지?》

《붙기는 했지만 남은 불도젤이 몇대 안되는데다 오후부터 시작해서 논꼴이 잡히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형편이 그렇다면 나가볼 필요가 없다고 보아 정여삼은 개털모자를 도로 벗으며 주저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토방밑에 자전거를 세우는 소리가 난데 이어 나들문이 벌컥 열리며 돌격대정치책임자 박민석이 사무실에 들어선것이 그때였다.

《이거 부부장이 마침이구만.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이시오?》

《란정리에서 옵니다.》

《어서 앉으시우. 란정리가 굉장하겠군.》

《예, 굉장합니다.》박민석은 솜옷앞자락을 가르고 앉으며 활기있게 말했다.

《불도젤이 100대나 들어간데다 경쟁바람이 나서 사람이구 땅이구 온통 들썽거리며 부글부글 끓습니다.》

《암, 끓어야지.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영광의 땅인데 식어있어서야 안되지. 그렇다니 말이지 임자들두 경쟁에서 꼭 이기구 와야 하네.》

경쟁소리가 나오자 박민석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경쟁에서 이기는건 걱정마십시오. 지금 우리가 단연 1등으로 나가고있습니다. 우리야 위원장동지한테서 단련된 부대가 아닙니까?》

《?···》

무슨 소린가싶어 정여삼은 눈이 덩둘해서 박민석의 입을 쳐다보았다.

《관리위원장동지의 고집으로 500짜리 포전을 정리해본 경험이 우리한테는 지금 큰 도움이 되고있습니다. 300평짜리만 정리해본 다른 구역 운전수들은 800평만 돼도 수평고루기를 힘들어 하는데 우리 동무들은 히쭉 웃으며 해제낍니다.》

정여삼은 리해되였다. 락랑구역돌격대는 여직껏 남들과 달리 500평짜리 포전을 정리하느라고 이래저래 고생하며 욕도 많이 먹은 대신 그 과정에 포전을 크게 정리할 때의 경험을 알게 모르게 쌓았다. 일종의 시련속에서 축적된 그 경험이 이제 와서 도움이 된다는 소리였다.

《허허허, 이랑이 고랑되고 고랑이 이랑된다는 말은 그래서 생겨났는가 보군.》

담배를 피우며 옆에서 듣기만 하던 기사장도 한마디 고무적인 말을 했다.

《형세가 그렇게 좋으면 위원장동지 말씀마따나 꼭 1등을 하는게 옳겠습니다. 이랬든저랬든 우리 금오리출신돌격대가 아닙니까? 수령님의 현지교시단위인···》

《우리 동무들도 지금 그렇게 결심하고 노력하고있습니다.》

거기서 이야기가 동강나 잠시 동안을 흘리던 끝에 정여삼이 물었다.

《헌데 부부장은 웬일로 오셨소? 아주 돌아왔을순 없는게고···》

박민석은 매사에 시원시원하던 평소의 성미와는 달리 어딘가 좀 주눅이 든것 같은 인상으로 담배만 거퍼 빨더니 역시 힘들게 입을 열었다.

《위원장동지한테 한가지 도움받을 일이 생겨서 오긴 왔는데··· 우리 돌격대에 최인국이라고 있습니다.》

《알고있네. 땅크병출신제대군인에 아직 총각이라더군.》

《예, 옳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못했지요. 란정리에 가서 집중전투를 하며 경쟁에만 신경을 쓰다나니 오늘이 그 동무 생일인걸 그만 잊고있지 않았겠습니까? 글쎄···》

정여삼은 박민석이 말하자는것이 무엇인지를 벌써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최인국이에게 생일상을 차려주어야겠는데 손이 비였다는 소리였다.

《줍시다. 기껏해야 닭 한놈에 알 몇개면 될걸 가지구···

허나 부부장한텐 좀 섭섭한 소릴 해야 할가부오. 그게 무슨 못할 말이라고 그리 힘들게 하시오? 정말 섭섭하구만. 난 500평짜리 포전때문에 도농경에 갔다가 부부장을 만났을 때 기쁜김에 속으론 눈물을 흘렸소다. 그이후부턴 돌격대를 내 집식구들처럼 여기면서 이래저래 마음쓴바도 없지 않았구··· 헌데 그 별치 않은 말을 그리도 힘들게 하니 이게야 우리가 마주앉아 얘기랑 나누고 서로 웃기도 하지만 맘상으로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걸 의미하는게 아니겠소? 다신 그러지 마오. 임자들이야 장군님의 령을 받아 우리 농민들의 숙망을 풀어주자구 온 장군님의 특사나 같은 사람들인데 뭐이 두려워서 그리 조심이요, 부부장답지 않소.》

정여삼은 진정으로 섭섭하였다.

《제가 위원장동지의 그런 마음을 모르고 미안한 생각만 하다나니··· 량해하십시오. 다시는 위원장동지를 섭섭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박민석의 그 정도 사죄에도 섭섭하던 속이 풀리고 남아서 다시 우선우선해진 정여삼은 큰소리로 회계과장을 불렀다. 회계과는 바로 옆방이여서 회계과장은 인차 나타났다.

《내 말을 명심해 듣소. 창고에 가면 자동차가 수산물을 톤반가량 부렸겠는데 절반은 차에 도루 싣고 나머지는 다시 절반 갈라서 한몫은 합숙에 주고 한몫은 돌격대식당에 갖다주오. 그리구 자동차에단 80키로짜리루 돼지 한놈에 닭 한놈에 닭알을 다섯꾸레미 싣소.》

《알겠습니다. 그런데 차에 싣는건 어디 갈겁니까?》

《우리 돌격대가 란정리에 가있질 않나? 거기 보내자구그래.》

회계과장이 나가기를 기다려 박민석이 미안한 소리를 했다.

《위원장동지, 이거 좀 과하지 않습니까? 우리때문에 농장에서 밑천을 놓겠습니다.》

《그런 소리 말라구, 우리 농장 밑천이 그리 밭지 않기도 하려니와 임자들한텐 아까울것이 없네.》

그때쯤 문소리가 나며 작달막한 키에 무릎아래까지 내려온 누비솜옷을 입고 귀덮개를 올린 밤색털모자를 쓴 사람이 들어왔는데 리당비서였다.

《무슨 토론인지 나도 좀 끼웁시다.》

박민석이와 인사를 나누고 앉으며 하는 리당비서의 스스럼없는 말이였다.

《이 부부장동무네한테 뭘 좀 보낼 공론을 하던중이지요다.》

정여삼은 박민석이 왜 왔고 마침 수산물도 좀 실어왔겠다, 기회에 그러지 않아 계획하고있던 부식물지원사업을 조직한데 대해 알아들을만 하게 설명하였다.

《그거 아주 생각 잘했습니다. 한데 부식물만 가지구 돌격대원들의 사기를 올려낼수 있을가요? 주식물은 없이···》

《?···》

정여삼은 무슨 소린지 알수 없어 리당비서의 무던하게 생긴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리당비서는 얼굴에 사람좋은 미소를 담고 잠시 무슨 생각인가 하더니 말했다.

《난 말입니다, 이왕 지원사업을 할바엔 좀 크게 하자는겁니다. 돼지두 몇마리 더 싣고 농장예술소조원들이랑 같이 말입니다.》

《뭐이, 예술소조원들꺼정?!···》

리당비서의 제의가 너무 뜻밖이여서 정여삼은 일순 어리둥절한바가 없지 않았으나 인차 리해되여 공감을 표시했다.

《옳수다. 이런 땐 뭐니뭐니해두 예술소조원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애들이 예술적기량두 있구 인물들도 다 잘났겠다 란정리것들이 아예 눈알이 희뜩 뒤집히게 한바탕 휘저어놓고 옵시다.》

그리하여 농장문화회관에서 련습을 끝내고 막 헤쳐지려던 리예술소조에 출동지시가 떨어지고 그로부터 한시간가량 지났을 때쯤에는 후방물자와 푸른색복장에 악기를 든 15명의 예술소조원들을 태우고 자동차가 란정리를 향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