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6

 

제 2 장. 발은 현실에, 눈은 멀리에

16

 

위대한 장군님의 란정리현지지도말씀관철을 위한 협의회가 끝난지도 이슥하였다. 협의회에서 토론된 문제는 세가지였다.장군님의 현지지도말씀관철을 위한 군민합동궐기모임일정과 평양시려단의 기본력량으로 란정리에서 집중전투를 벌려 금년중으로 끝내는 문제 그리고 장군님의 란정리현지지도말씀에 따라 포전정리를 800평과 1 000평으로 하기 위해 정리면적과 밭으로 전환하는 면적을 새로 확인하는데서 나서는 실무적대책이였다.

리한철부부장과 도당책임비서가 한발 먼저 떠나가고 한동안 말없이 담배만 태우다가 마지막으로 류광선차수도 일어섰다.

류광선은 문을 나서기 전에 조만규를 돌아다보며 한마디하였다.

《마음이 무겁더라도 그 인상은 좀 펴오. 아래사람들이 쳐다보는데···》

조만규는 입을 꾹 다문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류광선이 방을 나간지 얼마 안되여 종합분과장이 들어와 사업총화를 어떻게 하겠는가고 물었을 때도 그는 《래일 보기요.》하고는 돌려보냈다. 그뒤로 또 몇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용건을 말했는데 조만규는 그들이 뭣때문에 찾아왔었고 무슨 대답을 주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사고가 정지되고 머리속이 그저 텅 빈것 같은 느낌이였다.

그는 온통 혼란되여 아무것도 정확히 생각해낼수 없는 정신으로 말없이 담배만 태우고 또 태웠다. 그러다가 몽유병자마냥 휘청거리는 몸을 일으켜 마당에 나와 운전사를 찾았다.

《어딜 가시렵니까?》

《란정리···》

란정리에 왜 가야 하는지는 그자신도 딱히 짚어 말하기 힘들었다.

눈은 멎었으나 언제 터졌는지 모를 바람이 세차게 불고있었다. 앙칼진 바람소리가 차안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기온도 갑작스레 뚝 떨어졌다. 추위가 닥쳐오는 징조였다.

30분가량 달리여 차가 란정리 2작업반 《또아리틀》에 이르렀을 때는 열시 가까운 밤중이였다. 그러나 란정리사람들은 자지 않고있었다. 벌판 여기저기에서 우등불이 타오르고 불도젤동음에 땅이 들들 울리고있었다. 벌 저쪽끝 룡지원리와 린접한 벌판에는 별스레 우등불이 많았고 와―와― 환성이 끊길새없이 터져오르고있었다. 군인들이 일하는 포전인 모양이였다.

조만규는 술에 취한 사람마냥 비척거리며 도로에서 갈라지는 벌판길로 들어갔다. 가다가 발에 밟히는 흙이 꾸둑꾸둑하여 신발에 매달리지 않는데 생각이 미쳐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땅을 더듬해보았다. 손에 잡히는대로 흙덩이를 하나 쥐여 부스뜨려 보니 형태가 잡혔던 흙덩이가 손안에서 인차 흐물흐물 녹으면서 손가락짬으로 흘러내렸다.

지금이 이러니 김정일동지께서 오셨을 때는 아마 온통 질쩍질쩍한 죽탕이였을것이다. 장군님께서 그런 궂은길을 걷도록 한것도 모자라 크게 실망까지 안겨드렸은즉 나야말로 진정 얼마나 전사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많은 인간인가!···

그는 죄책감을 금할수 없었다. 리한철부부장이 말해주던, 장군님께서 우리 일군들이 눈앞의 어려운 현실만 보면서 거기에 손발이 묶이우고 근시안이 되여버렸다고 하신 말씀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자기에게 하신 질책이였다.

800평, 1 000평!··· 그는 숨이 차올랐다. 목단추를 풀어제끼며 숨을 크게 들이그었다. 어둠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입안으로 몰려들며 숨이 꺽 막히는듯 했다. 그러나 답답한 가슴은 조금도 열리지 않는다.

《우리 후손들이 다른건 몰라도 토지정리만은 다시 하지 않도록 합시다!》

100년이 지나고 또 100년이 지나고 아니, 1 000년이 몇번 바뀐다 해도 후손들이 다시는 이 땅에 불도젤을 댈 일이 없게 하자는 그이의 위대하고 심원한 구상을 새기기에는 자기의 가슴이 너무도 비좁다는것을 그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땅과 함께 땅을 위해 한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자기, 누구보다 땅을 사랑하고 땅에 온 심혼을 바쳐왔다고 자처하던 나에게 강원도토지정리의 의미만은 왜 그렇듯 왜소하게 자리잡고있었단 말인가. 그는 자기의 과오를, 여기 새 세기의 문전에서부터 너무도 멀리 뒤떨어진 낡은 사고방식과 일본새를 인식하는 순간 그는 자기의 한생이 부정당하는듯싶은 무서운 환각에 사로잡혔다.

그런즉 이제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이 과오를 씻는단 말인가.

《장군님!》

그는 끝내 치미는 오열을 주체하지 못했다.···

조만규는 란정리를 떠나 원산으로 들어오면서 자신의 한생을 돌이켜보았다. 해방전 이름없는 소작농의 아들로 태여난 자기가 나라의 토지를 총괄하는 농업일군으로 성장하게 된것은 전적으로 어버이수령님과 김정일동지의 분에 넘치는 사랑과 신임의 결과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시기 그가 전선동부 월비산계선에서 미국놈들과 결사전을 벌리고있을 때 그를 전선에서 소환하여 류학의 길로 떠밀어보내주시였다. 그리하여 그는 류학기간 관개기술을 배워가지고 돌아와 그때부터 오늘까지 농업부문에서 일해오고있었던것이다.

그가 수령님과 장군님 두분을 처음으로 함께 만나뵈온것은 1958년 평안남도 도설계사업소 부원으로 어지돈관개공사장에 나가있을 때였다. 그때로부터 꼭 40년세월이 흘렀다. 그 40년세월 두분으로부터 받아안은 사랑과 신임은 또 얼마였던가.

《동무한테는 무슨 일을 맡겨도 마음이 놓이거던.》

이것은 수령님으로부터 그가 여러번 들은 치하의 말씀이다. 그런 내가 과연 얼마나 시대에 아득히 뒤떨어져 장군님께 실망을 안겨드리는 인간이 되였는가.

토지정리지휘부에 도착해서도 그는 마음의 안정을 찾을수 없었다. 자신은 이번기회에 그야말로 일군으로 살아온 한생을 당앞에서 해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이 그의 생각이였다.

란정리현지지도과정에 장군님께서 하신 모든 지적의 말씀은 그것이 단순히 토지정리를 잘못한데 대한 지적만이 아닌, 강원도토지정리를 총책임진 자신의 근시안적사고방식과 낡고 진부한 일본새에 대한 엄한 비판이고 평가라는것이 그가 스스로 내린 결론이였다. 그때문에 더욱 번민이 크고 자책 또한 끝없는것이였다.

(···그런즉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장군님의 토지건설사상을 옳게 받들지 못했고 가뜩이나 긴장한 강원도토지정리기한을 옹근 두달이나 랑비함으로써 국방위원회명령집행에 난관을 조성하였다. 그자체만으로도 엄중하기 이를데 없다. 거기에 앞으로 다시 그런 실책을 범하지 않으리라는 자신 또한 없다. 그러니 어떻게 하는것이 옳은가? 좀 늦은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자신의 무능과 재발할수 있는 실책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주동적으로 물러서는것이 옳은 선택이 아니겠는가? ···)

허리뒤에 손을 모아쥐고 고개를 깊이 떨군채 조만규는 벌써 몇번이나 자신앞에 제기한 물음을 다시 던지고는 대답을 찾아가듯 무거운 걸음으로 책상과 이어진 앞상앞의 공간을 걷고 또 걸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자신앞에 그렇게 묻고 또 물었지만 바라는 대답은 아니 떠오르고 문득 지난 6월엔가 평안북도에서 불리워들어와 강원도토지정리를 책임지고 할데 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받는 자리에서 리한철부부장이 하던 말이 상기되였다.

《나는 부위원장동무가 정말 부럽습니다. 정무원부총리와 큰 별을 단 여러 후보들을 다 물리치고 장군님께서 조부위원장동무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셨으니 부위원장동무야말로 진정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우리 강원도토지정리를 잘해서 장군님의 그 신임에 보답합시다!》

그때 조만규는 스스로도 자신이 행복자라고 생각했으며 신임에 보답하리라 결심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이 무슨 꼴인가? 보답은 고사하고 장군님의 토지건설구상을 잘못 관철했으니 이런 배은망덕이 또 어디 있는가?···

깊어가는 초겨울밤과 더불어 그는 생각하고 또 했다. 생각끝에 마침내 결심이 서자 그 결심이 흔들릴세라 즉시 책상에 마주앉아 송수화기를 들고 류광선대장을 찾았다.

혹시 잠들지 않았는가 하고 걱정하며 전화를 걸었는데 그도 잠들지 못하고있었는지 인차 응답신호가 왔다.

《조만규입니다. 주무시지 않습니까?》

《잠이 오지 않누만.》

《그럼 제 드릴 말씀이 있는데 가도 일없겠습니까?》

《어서 오오. 그러지 않아 나도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소.》

그로부터 10분이 채 안되여 조만규는 류광선의 처소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부위원장동지.》조만규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침착한 목소리로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전 아무래도 자격이 없는 놈인것 같습니다. 저는 사표를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류광선은 뜻밖의 제의에 처음 의아한 눈길로 조만규를 바라보다가 인차 눈섭을 모으며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벽장쪽으로 갔다. 그는 벽장 아래단 미닫이를 열더니 거기에서 술병과 마른 낙지를 들고 제자리로 돌아와 탁자우에 놓았다.

《저기 차탁에 가서 물고뿌를 좀 가져오오.》

조만규가 일어나 유리고뿌를 가져다 그의 앞에 놓았다.

《하나 더!》

《전 그만두겠습니다.》

《사임할 땐 하더라도 한고뿌씩 나누기요. 식사는 했소?》

조만규는 하는수없이 다시 일어나 고뿌를 가져다 제앞에 놓았다.

《저는 오늘처럼 자신의 무능력과 로쇠를 느껴보기는 첨입니다. 전 방금전에 란정리에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류광선의 귀에는 조만규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병을 기울여 고뿌에 술을 붓는데만 열중하였다. 그리고 작지 않은 두개의 고뿌에 맑은 액체가 찰랑찰랑하게 차자 술병을 세우고 만족한듯 손바닥을 비볐다.

《부상, 동무가 전화를 걸어오기 전까지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오? 전쟁때를 추억했소. 지나간 일은 되새겨야 아프지 않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것 같애. 피를 흘리며 생사를 다툴적 일인데두 별로 싫지 않거던.···》

상대를 조롱하여 우정 엉너리를 치는것 같은 류광선의 말에 조만규는 속이 끓어올랐다.

《부위원장동지는 심사가 편안해 좋겠습니다. 고망옛적소리나 하시는걸 보니···》

《그래, 난 심사가 과히 불편하지 않아. 한데 제 심사가 꿰졌다고 남의 말은 막지 마오. 아마 그때가 겨울이였지? 그래, 그때 동무는 귀덮개가 너덜거리는 솜모자를 쓰고 어깨에 흰 위장포를 걸쳤댔으니까. 그런 차림새로 중대부참호에 나타나 내앞에서 최고사령부의 소환명령을 흥정하자고 들었댔지.》

그것은 사실이였다. 전쟁이 한창 가렬하던 그때 조만규는 전선에서 소환한다는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받게 되였다.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중대에 내려온 류광선이 그에게 소환장을 쥐여주며 말했었다.

《오늘 저녁 6시까지 전선사령부에 도착해야 하오.》

조만규는 떠날수 없었다. 인원을 반수이상 잃은 상태에서 그의 중대는 결사전을 준비하고있었다.

《대대장동지, 전 중대와 운명을 같이하겠습니다.》

류광선이 눈을 흡뜨더니 갑자기 수류탄이 터지듯 폭발하였다.

《이건 뭐야? 최고사령부명령을 흥정할셈인가? 응? 군관이···》

《···》

《허튼 생각말구 명령대로 하오. 동무는 아직 사민이 아니라 군복을 입은 군인이요!》

《군복을 입었기때문에 이 고지를 떠나지 못하겠단 말입니다!》

조만규는 대대장의 입에서 다시 《수류탄》이 터질것을 각오하면서 그 말을 했다. 그러나 류광선은 터치지 않았다. 오히려 포연에 그슬어 검스레해진 얼굴에 느슨히 웃음을 담더니 조만규앞에 다가와 어깨에 손까지 얹었다.

《이봐 만규, 걱정말고 떠나라구. 왜? 우리가 고지를 내놓을가봐 안심치 않아서 그래? 천만에! 우리 대대가 살아있는 한 이 고지는 조국의 고지로 남아있어. 그리구 만규가 떠나는것이 우리한텐 더 힘이 된다는걸 알아야 해.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동무같은 대학생들을 소환하시는건 승리가 눈앞에 박두했다는걸 의미하니까. 어서 가라구. 피로써 지켜낸 조국땅우에 미국놈들 보란듯이 락원을 건설해야 할게 아닌가.》

그날 저녁 조만규는 류광선의 바래움을 받으며 전선사령부로 향하였다.

《···그때 동무가 떠난 후에 우린 정말 힘겨운 전투를 치렀소. 희생도 많았소. 동무후임으로 두명의 소대장이 배치되여왔는데 둘다 전사한 정도니 더 말해 무얼하겠소. 한명은 고중출신이고 한명은 농촌에서 농사하던 사람인데 전사한 다음 보니 량손에 줌이 벌게 흙을 그러쥐고있더구만. 그들이··· 전사한 그 농민출신 소대장이 조국땅을 전변시키는 오늘의 전투에서 조만규가 뒤걸음치는 모습을 본다고 생각해보오. 그들이 동물 용서할가?》

류광선은 물음을 던져놓고는 고뿌를 들어 입에서 떼는 일 없이 단숨에 마셔버렸다.

조만규는 흠칫했다. 원래 술을 못하는데다 목탈까지 심한 류광선이 이럴 때는 얼마나 속이 타 그러랴싶어 속이 쓰렸지만 이왕 내친 걸음이라 생각을 모질게 먹지 않을수 없었다.

《부위원장동지, 전 많이 생각하고 제기하는겁니다. 제가 더이상 여기 있으면 그들 전우들의 피를 욕되게 할뿐만아니라 그만큼 토지정리도 손해를 봅니다. 저에게는 이미 강원도토지정리전투를 지휘할 능력이 없고 권리도 상실했습니다. 제가 중앙지휘부에 앉아있어야 이젠 거치장스런 존재밖에 안됩니다.》

《부상동무, 그러지 마오. 나는 뭐 마음이 편안해서 이러고있는줄 아오? 오늘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은 동무보다도 내게 하신것이요. 장군님께서 토지정리를 이렇게나 하자고 큰 별을 단 사람들까지 동원시킨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실 때의 내 심정을 동무는 생각해봤소?

능력같은 소린 하지도 마오. 능력으로 말하면 동무는 나보다는 썩 선생이요,선생···》

《전 실무능력을 두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장군님의 뜻을 옳게 헤아릴줄 아는 정치적안목과 애국의 열도를 두고 하는 소립니다.》

《이보, 부상!》높지는 않았으나 류광선의 갈린 목소리에서는 서리발이 느껴졌다.

《그만큼 알아듣게 말했는데 그냥 이렇게 고집을 부릴텐가?》

《이건 고집이 아니라 제 량심의 결단이고 이 조만규라는 인간이 자신에게 내리는 처벌입니다. 이 점을 리해해주십시오.》

《리해? 무얼 리해해. 한 간부당원이 국방위원회명령을 중도에서 줴버리고 도주하는걸 리해하라는건가? 다시 상기시키지만 강원도토지정리는 국방위원회명령으로 하는 일이요. 암만 어리석기로 국방위원회명령이 어떤 명령이라는거야 모르지 않겠지?》

《압니다. 각오···》

류광선이 책상을 꽝 치며 소리쳤다.

《조만규!》

그 서슬에 탁자우에 놓였던 송수화기가 놀라 한길이나 튀여올랐다.

《내 너의 옛 대대장으로서 묻는다. 군사명령을 관철하지 못한 주제에 뒤로 물러서겠다는것이 진정인가?》

《진정입니다, 부위원장동지. 저로서는 이것이 나라의 토지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수 있는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유익한 일? 비겁한 몸뚱이에 분칠하면서도 유익한 일을 한다?··· 가소롭군. 알겠소. 조만규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 하는걸 내 오늘에야 알았소! 나가오. 이 방에서 썩 나가오!》

벽력같이 소리치며 류광선은 왼손 지시손가락을 곧게 펴 나들문을 가리켰다.

조만규는 조용히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