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5

 

제 2 장. 발은 현실에, 눈은 멀리에

15

 

앞좌석에 앉아 오른손으로 문우의 손잡이를 틀어쥔 조만규는 승용차가 마식령밑을 에돌아 원산시경내에 들어서자 또 한번 운전사에게 독촉했다. 빨리 가자고, 이제는 평지길인데 왜 이리 속력을 내지 않는가고···

조만규의 조급한 속마음을 모르는 운전사는 이때다 하고 평소에 하지 못하던 자기 소리를 냅다 해댔다. 이번 토지정리기간에 차가 어떤 험한 곳으로 다니였는지 부상동지가 한번 생각해보라, 그 험한 길들을 내가 스스로 선택한적이 한번이나 있는가, 나는 매번 할수없이 갔을뿐이다, 차가 이렇게 반병신이 된것은 전적으로 부상동지탓이다.···

조만규는 운전사의 말이 틀리지 않고 또 더없이 성실한 그의 성미도 잘 아는지라 잠자코 있을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속에서 불이 일고있었다.

《일을 위해 차가 있나, 차를 위해 일이 있나?》

그전같으면 웬간해서 노여움을 잘 타지 않고 아들벌이 되는 자기의 응석을 곧잘 받아줄줄 알던 조만규의 얼굴에 진짜 노여움이 어리자 운전사는 심각해서 조심스레 사정을 이야기했다.

평지는 평지라도 이런 정도의 도로에서 그전처럼 여기고 밟다가는 차축과 바퀴를 이어주는 《볼》이 빠져나오던가 완충기에 이상이 생길수 있고 그러면 차가 주저앉아 로상에서 오도가도 못하기 쉽다고··· 거기에는 대응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지만 조만규는 가만히 있게도 안되여 다시 입을 열어 으름장을 놓았다.

《어쨌든 일이 튀는 날엔 동무 운전사노릇은 다 하는줄 알라구!》

조만규가 말하는 튀는 일이란 현재 자신이 예감하고있는 고산군 란정리에 대한 김정일동지의 현지지도를 의미하였다.

자기가 국가계획위원회에 무슨 일로 왔는지를 알고도 남음이 있는 류광선이 전화상으로 일을 다 봤으면 빨리 돌아오라고 했을 때 그는 그것을 륙감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목적하고 간 일들을 대수 마무리고 바삐 돌아선 길인데 운전사가 급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것이였다.

승용차가 원산시내 초입인 세길동을 지나 장덕동에 들어선것은 오후 2시 20분경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지휘부에 들어가 정황부터 알아볼것인가? 아니면 도당이나 인민군지휘부에 가는편이 빠르겠는가?···)

조만규는 첫번째 안을 선택했다. 류광선과 전화련계를 가진것이 오전 11시경이고 그사이에 점심시간이 끼여있다는것이 위안을 주는데다 어쨌든 지휘부에 들어가 정황부터 알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이 옳았달가. 중앙지휘부는 예나 다름없이 정상적인 자기 사업을 하고있었다. 각 분과들에서 하는 지시 반, 추궁 반의 끊임없는 전화, 독촉, 부지런히 복도와 현관을 오고가는 인원들의 움직임, 마당이 비지 않게 무시로 들고 나는 각종 자동차··· 김정일동지의 현지지도가 있었거나 예견이라도 된다면 분위기가 이렇게 례사롭지 않을것이였다.

《무슨 지시가 내려온건 없었소?》

《오전에 당중앙위원회 리한철부부장동지가 왔다 갔습니다.》

종합분과장의 말이였다.

《부상동지를 찾다가 급히 인민군지휘부에 가겠다고 하며 가고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부부장동무가 왔던게 몇시쯤이요?》

《10시쯤 되겠는지··· 좀 긴장된 인상입디다.》

(부부장이 왜 갑자기 나타났는가? 어제 오후 평양에서 전화를 할 때까지도 별소리 없지 않았는가?)

조만규는 류광선의 전화를 리한철부부장의 출현과 련결시켜보며 마음 한귀퉁이로 어떤 불안같은것이 파고드는것을 느끼였다. 조만규는 송수화기를 들어 인민군지휘부를 찾았다. 종합참모로부터 뜻밖의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였다. 리한철부부장이 와서 류광선은 물론 때마침 거기 와있던 도당책임비서까지 데리고 고산군으로 나갔다는것, 그때가 오전 10시반경인데 여태 돌아오지 않고 다른 소식도 없다는것이였다.

(그럴테지,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조만규는 내동댕이치듯 송수화기를 놓고 벌떡 일어서며 종합분과장에게 빨리 운전사를 찾으라고 하고는 문건함을 열고 흥분으로 손을 후들후들 떨며 필요한 보고자료들을 찾아 가방에 넣었다.

리한철부부장이 방에 들어선것이 그때쯤이였다.

그의 손에는 새까만 가죽뚜껑을 씌운 수첩이 쥐여져있었다. 그 수첩과 엄엄한 인상만으로도 짐작되고 남는것이 있어 조만규는 입안의 인사말을 삼키고 앞상밑에서 걸상부터 뽑아 권했다.

말없는 속에 두사람은 앞상에 마주앉았다. 그제서야 조만규는 물었다.

《그래 어찌되였습니까? 장군님께서 오셨더랬습니까?》

《···》

리한철도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이였다.

《장군님께서 어떤···》

부부장은 앞에 놓았던 수첩을 도로 쥐였다. 대답은 그다음에야 했는데 어조가 자못 무거웠다.

《우리가 장군님의 구상을 옳게 받들지 못했습니다.》

리한철은 수첩을 펼쳤지만 보지는 않고 김정일동지의 란정리현지말씀을 사상으로 전달해주었다. 조만규는 장군님의 말씀을 들었다기보다 온몸으로 빨아들였다.

(300평이 아니라 1 000평이나 800평?!··· 후손들이 토지정리만은 두번다시 하는 일이 없게 하는것이 우리 당의 의지··· 자신을 21세기 대문안에 세우고 100년이나 200년후의 조국을 생각하며 일해야··· 바로 그런 사고방식과 일본새가···)

조만규는 정신이 아찔해지며 눈앞이 어질거리는것을 느꼈다.

아, 내가 무슨 엄청난 실책을 범했는가. 어쩌면 내가 장군님의 뜻을 이다지도 모르고 이토록 그이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은것인가! 아니, 이건 단순히 의도상의 탈선이나 사업상의 실책이라고 할수 없다. 장군님의 토지건설사상에 대한 몰리해, 그로부터 출발한 외곡집행이라고 하는것이 옳다. 그렇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일군들에게 자신께서 벽을 울리면 일군들은 강산을 울려야 한다고 하시였다. 이것은 우리 일군들이 매사를 생각하고 일하는 일체가 다 그이의 사상과 령도를 백분의 일의 탈선도 없이 명실공히 그대로 집행되여야 함을 뜻하는 말씀이다. 그런데 나는 장군님의 토지건설사상을 잘못 리해하고 그 집행을 외곡했다. 오늘날 일군의 잘못치고 이처럼 큰 잘못은 없을것이다. 내가 인생말년에 이런 엄중한 과오를 범하다니, 그것도 장군님의 크나큰 신임으로 재생의 기회를 받은것이나 다름없는 지금같은 때에···

조만규는 부부장의 말이 언제 끝났는지 알지 못했다. 아는것은 자신이 장군님의 뜻을 심히 잘못 받들었고 따라서 강원도토지정리에 엄중한 난관을 조성했다는것뿐이였다. 토지정리를 책임졌다는 자기가 장군님의 의도와 이처럼 멀리 떨어져있었을진대 토지정리가 과연 어떻게 잘 진행되였겠는가. 이 과오를 어떻게 씻는단 말인가. 심장에 무거운 부담이 실리면서 가슴이 답답한것이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 누가 제발 창문을 좀 열어줬으면··· 그는 참다못해 목밑의 단추를 벗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쪽으로 한발을 내짚는데 몸이 휘청― 했다.

조만규는 창문까지 걸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제자리에 도로 주저앉았다. 그의 심정을 알아차린듯 리한철이 일어나 환기창을 열었다. 한겨울의 찬바람이 몰려들었지만 조만규는 그것을 감촉하지 못하고 한숨속에 망연자실하여 눈앞의 책상만 뚫어지게 응시하였다.

《됐습니다, 부상동무. 한숨을 불며 자책이나 한다구 300평짜리 포전이 800평이나 1 000평으로 되겠습니까? 잘못한건 잘못한거구 이제부터라도 장군님의 뜻대로 일을 잘해서 과오를 씻도록 합시다. 우리 같이···》

리한철부부장의 고무적인 말이였다. 그러나 조만규는 회오의 감정에서 쉽사리 해탈할수 없었다.

《다 나의 불찰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당초에 잘못한 생각도 생각이지만 류광선부위원장동지가 이의를 보였을 때도 그렇고 금오리관리위원장동무가 포전을 크게 정리해달라고 했을 때도 그렇고 일을 바로잡을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내가 암둔하고 어리석다보니 기회를 다 놓쳐버렸습니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된건 전적으로 나한테 책임이 있습니다.》

《부상동무, 그건 무슨 소립니까? 그럼 일이 이렇게 잘못된 책임이 부상동무 혼자에게만 있구 다른 사람들에겐 없다는겁니까? 책임을 느끼는건 좋지만 그렇게는 말하지 마시오.

지금 류광선부위원장동지도 심각하게 자기반성을 하고있습니다.》

조만규는 정색해서 말하는 부부장의 심정이 리해되였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은 하나에서 열까지 다 나, 조만규한테 해당되는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해당되는건 하나도 없습니다. 어쨌든 내가··· 장군님의 토지건설사상을 너무도 모르고있었기때문에 이런 결과가 빚어졌습니다. 조만규가, 이 조만규가 생의 말년에 어떤 믿음과 영광을 받아안았기에 오늘 이런··· 음―》

듣다못해 리한철부부장이 막아섰다.

《부상동무, 우리 책임문제는 더 론하지 맙시다. 지금은 책임문제보다도 잘못된 일을 어떻게 바로잡겠는가 하는걸 생각해야 합니다.

좀 있으면 류광선차수동지도 오고 고산군당에 간 도당책임비서동무도 여기로 옵니다. 장군님의 란정리현지지도말씀관철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그러니 부상동무, 그 인상부터 좋게 가지고 당장은 빨리 대책안을 만들도록 합시다. 내가 이제 대책안을 가지고 평양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장군님의 현지지도말씀관철을 위한 궐기모임을 어떻게 조직하면 좋을것 같습니까? 장소는 응당 란정리여야겠지만···》

그때 마당으로 승용차가 들어와 멎는 소리가 났다. 강원도당책임비서가 도착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