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3

 

제 2 장. 발은 현실에, 눈은 멀리에

13

 

유치원의 낮잠시간이 되여 아이들을 재우고 자기 방으로 돌아온 몽금은 앉은뱅이책상에 마주앉아 계획한 일을 시작하였다. 그가 계획한 일이란 30명 유치원생(두명은 나오지 못했다.)의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것이였다.

무릎을 눕혀 책상밑에 넣은채 유치원생들의 명단을 펼쳐놓고 만년필을 뽑아쥔 그는 글귀를 고르다가 드디여 쓰기 시작했다. 생각했던것보다 힘들어서 도중에 두장을 꾸겨내치고 세번째만에야 마감까지 가닿은 이런 내용을 써냈다.

 

광일이 어머니에게.

광일이랑 아이들이 토지정리하는걸 몹시 보고싶어하길래 래일 유치원생 전원이 벌에 나가 불도젤들이 일하는걸 구경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불도젤에 달아줄 꽃을 한송이씩 준비시켰는데 혹시 아이들이 꽃종이를 가지고 서툴게 가위질을 하다가 손이라도 상할것 같아 그러니 잘 도와주세요. 그러나 꽃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이 만들게 해주세요.

이제 새로 정리된 넓은 벌의 주인이 될 아이들인데 자기들이 만든 꽃을 달고 달리는 불도젤을 보면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먼 후날에도 잊혀지지 않을거예요.

꽃종이는 내가 장만하여 애들의 가방안에 넣어 보내겠어요.

정 몽 금

 

읽어보니 그이상은 더 잘 써낼것 같지 않아서 견본으로 앞에 놓고 다음부터는 이름만 바꾸면서 같은 내용의 편지를 부지런히 썼다.

몽금은 일에 얼마나 열중했던지 낮잠시간이 끝난줄도 모르고있다가 마당에서 아이들이 왁짝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고서야 놀라며 시계를 보니 벌써 3시가 넘었다. 원,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갔담. 황황히 일어나 마당에 나가보니 소문난 싸움군들인 석재와 진천이가 그네옆에서 드잡이를 하고있었다. 몽금은 달려가 우선 둘을 떼놓고 싸운 까닭을 캐물었다. 대답은 처녀애들이 했는데 잘못은 역시 석재에게 있었다. 진천이가 처녀애들앞에서 그네를 멋지게 타는것이 샘이 나 무작정 줄을 잡으며 제가 타겠다고 우긴것때문에 일어난 싸움이였다. 그렇다고 석재만 꾸중하면 진천이쪽에서 우쭐하며 그때문에 또 싸울것 같아 몽금은 싸우는건 둘이 다 나쁘다는 식으로 판결해서 화해까지 시켰다.

손목을 뒤집어 시계를 보니 벌써 3시 20분, 그는 아이들더러 선생님이 나올 때까지 마당밖으로 일체 나가지 말라고 이른 다음 방에 들어와 다시 책상에 마주앉았다. 그는 갑자기 써나가던 글을 멈추었다. 벌에 나가선 구체적으로 어느 차에 꽃을 달아주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것이다.

그의 솔직한 심정은 이왕이면 불도젤이 오던 날 꽃목걸이를 걸어준 그 운전수의 차에 달아주고싶었다.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면 그 동무가 열성스레 앞내벌정리를 500평으로 주장해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그 운전수가 낮교대에 일하는지를 모르거니와 설사 낮교대라도 다른 차들이 많은데서 유독 그의 불도젤만을 골라 찾아간다는것이 우습게 생각되였다. 잘못하면 말이 별나게 번질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그런 생각을 두루 하던 끝에 결국 래일 아침 벌에 나가 첫참으로 맞다들리는 차에 달아주는것으로 락착짓고 다시 써나갔다.

드디여 편지를 다 썼다. 그때쯤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시간도 되여 몽금은 편지를 가지고 마당에 나가 아이들을 모이게 했다.

《자― 조용, 모두 조용하세요. 인범이와 옥수는 가까이 오고 종만이는 그 손에 쥔 막대기는 뭐예요? 가서 버리구 와요. 그리구 저―기 석재와 진천인 그냥 밀칠내기 하겠어요? 어서 떨어져요. 더··· 좀더···》

그제야 조용해진 아이들에게 몽금은 약속한대로 래일 불도젤들이 토지정리하는걸 구경하러 간다는것을 선포하고 편지를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은 몹시 기뻐하였다. 뜻밖으로 석재가 편지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리유를 물었더니 볼에 밤알을 물고 하는 말이 전에도 선생님이 주는 이런 편지를 집에 가지고 갔다가 아버지한테 종아리를 맞았다는것이였다. 몽금은 웃음이 나왔지만 참고 리해시켰다. 그적에는 옥수의 머리태에다 메뚜기를 매달아주었기때문에 그랬던것이지 이번에는 그런 편지가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고··· 누구에게나 편지를 다 주는걸 보면 모르겠는가고 하는데도 석재는 그래도 불안이 다 안가셔지는지 마지못해 받기는 했지만 인상은 그리 밝지 못했다. 그것은 그대로 아버지한테 얼마나 되게 혼쌀났는가 하는 무언의 고발이였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 방들을 청소하고난 몽금은 점심때 어머니가 건위산을 타다달라던 생각이 나서 리병원에 들렸다가 간호원 송희를 만나 한바탕 이야기추렴까지 하다나니 어슬녘에야 집에 들어섰다. 어머니는 일찍 들어오신 모양 저녁밥을 안쳐놓고 부엌바닥에 앉아 늄양재기를 닦고있었다.

《엄마, 밥을 다 하곤 불을 내가 써야겠어요.》

몽금은 출출한김에 입에 넣을것이 좀 없을가 하여 찬장안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어머니는 불을 써야 할 까닭을 물었다. 몽금은 래일 아이들에게 토지정리하는것을 보여주기로 작정한거며 자기도 아이들처럼 꽃이나 난딱 들고갈수 없어 간식을 좀 장만하기로 생각했으니 강냉이와 콩을 각각 몇되박씩 닦아야 할 필요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런데 생각을 잘했다고 칭찬할줄 알았던 어머니의 반응이 의외로 정반대였다.

《아니 야, 강냉이라니··· 우리한테 온 돌격대는 모두 평양사람들이라는데 하필이면 강냉이를 닦아다 준단 말이냐? 떡이나 엿 같은거면 몰라 그런 루추한걸··· 》

《엄마, 그건 잘못하는 생각이야요. 강냉이나 콩 닦은것이 왜 루추해요. 일없어요. 평양사람들도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고생해봤기때문에 다 리해할거예요.》

《글쎄 리해는 하더라도 속으론 웃는다. 웃기만 할가, 촌것들은 손님대접두 과히 촌스럽겐 하누나 하구 욕할지도 모른다.》

《원, 엄마두··· 그럼 그만두라는거예요?》

《관두는게 좋지 않니? 신수 궁하면 호랑일 잡아주고도 볼기 맞는댔다.》

몽금은 대답이 궁했다. 은연중 어머니의 말대로 이제라도 그만두는 편이 옳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차 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며칠전 청년동맹에서 모은 말린 산나물을 가져다주었을 때 고기반찬이 왔다가 울고 가겠다고 하며 기뻐하던 돌격대원들의 모습이 생각나서였다.

산골음식은 그대로의 진미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이미 약속을 했었다.

몽금은 식사후 강냉이와 콩을 닦았고 이튿날 아침 그것을 여러 몫으로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유치원으로 나갔다.

한송이씩 들고온 꽃으로 꽃다발을 만드느라 시간을 좀 지체한 몽금은 드디여 꼬마부대를 인솔하고 앞내벌로 떠났다.

들놀이라도 가는가싶은지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밝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오늘따라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가. 구름 한점 없는 파아란 하늘에서는 한쌍의 수리개가 떠서 나날이 아름답게 변해가는 대지를 내려보고있었다.

포전정리의 작업장이 가까와오자 몽금은 어느 불도젤에 접근할것인가를 살펴보았다.

좋기는 길에서 될수록 가깝게 있으면서도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일하는 불도젤이였다. 마침 그런 리상적인 목표가 있어서 몽금은 아이들을 멈춰세우고 몇가지 안되는 조건을 강조하였다. 불도젤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선 안되고 운전수아저씨한테 버릇없이 굴어도 안되며 움직이는 불도젤앞이나 뒤로 건너다니는건 절대로 안된다는 등··· 그런 뒤에야 기뻐날뛰는 아이들을 단속해가며 아이들을 데리고 목표한 불도젤이 일하는 논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불도젤이 흙을 부리고 뒤걸음쳐와 거기서 다시 전진하는 논판 웃쪽에 가서 자리잡았다.

운전수는 랭담한 사람이였다. 아니면 일이 너무 바빠서인지 그들이 포전머리에 도착한지 20분나마 되도록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정리작업만 하는것이였다. 이런 경우를 예견 못했던 몽금은 실망을 금할수 없었다. 정말 무정한 사람이구나! 일이 좀 바쁘기로 어쩜 문을 열고 한번 내다보지조차 않는담, 아무리 철없는 애들이 왔기로서니···

그는 시계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제 7분을 더 기다려 10시가 되면 다른 불도젤을 찾아가리라. 드디여 10시가 되였다. 바로 그때 흙을 밀어다 버린 불도젤이 곧추 뒤걸음쳐와 멀지 않은 곳에 멎어서더니 운전수가 뛰여내렸다. 순간 몽금은 저도 모르게 눈이 커지며 (어마나!) 하고 놀랐다. 불도젤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아닌 환영식때 그가 꽃목걸이를 걸어준 그 운전수였다.

몽금은 그새 토지정리돌격대식당 취사원으로 동원된 동무를 통해 그에 대해 좀 알아본바가 있다. 최인국, 27살, 강원도 평강군일대에서 복무하다가 지난 6월초에 제대되여 불도젤운전수로 되였다는것이 동무가 알아다준 내용이였다.

평강일대에서 군사복무를 했다면, 그럼 세포에서 불붙는 집에 뛰여들어 아이들을 구원한 군인은 누구란 말인가? 몽금은 그에 대한 대답을 찾을수 없었다. 그래서 차차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게 되였고 종당에는 심드렁해지고말았다. 그건 그렇다 하고 원참, 별일도 다 있구나. 어쩜 번번이 이 사람하고만 맞다들가? 벌써 두번씩이나···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그를 만났으면 하고 바랐지만 정작 만나고보니 우연치고도 너무한 우연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이거 안됐습니다. 점검시간을 맞추느라고 좀 늦었는데··· 량해하시오.》

손에 끼였던 흰 장갑을 벗으며 하는 최인국의 서글서글한 말에 몽금은 고깝던 감정이 금시 풀리며 마음속이 오히려 따뜻해졌다.

《아니예요. 저희들은 구경이나 하러 온걸요. 일에 방해되지 않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방해되겠습니까. 꼬마들이 지켜보니 오히려 마음이 즐거워지고 더 성수납니다. 실은···》

그렇게 리해해주어 고맙다고 사례한 몽금은 아이들을 향해 돌아섰다.

《자, 그럼 가져온 꽃송이들을 불도젤에 달아주자요.》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아이들은 오구구 불도젤곁에 모여들었다. 잠간사이에 불도젤은 아이들이 가지고온 꽃으로 화려하게 단장되였다.

《고맙다. 너희들 덕분에 불도젤이 꽃단장을 다 해보는구나.》

꽃다발을 손에 든 최인국이 환하게 웃으며 하는 말이였다.

그바람에 아이들은 더 승기가 나서 야단법석이였다.

몽금은 가지고온 간식꾸레미를 슬그머니 운전칸에 올려놓았다.

《아니 선생, 그건 뭐요?··· 원, 이런···》

어느새 띄여본 최인국이 다가와보고는 질색을 했다.

《변변치 않지만 성의로 알고 받아주세요. 닦은 콩과 강냉이랍니다.》

《그래요.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뜻밖에도 최인국이 기뻐했다.

《산골이다나니 이런것밖에···》

몽금은 간저녁에 어머니가 하던 말을 그대로 외울가 하다가 반색하는 최인국을 보고 그만두었다.

《이게 어떻다는겁니까. 밤작업을 할 때 몇알씩만 입에 넣고 씹어도 졸음이 말짱 달아나는게 그저 그만이지요.

근기는 또 얼마나 있다구요. 몇줌만 먹어도 새벽까지 끄떡없답니다.》

최인국은 이목구비가 널직널직하게 박힌것처럼 성미도 시원시원하였다. 그는 작업장을 한바퀴 돌며 몽금이 몫을 지어 가지고온 비닐봉지를 다른 운전수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한봉지만 들고 돌아와 차를 점검하더니 아이들앞에서 선언했다. 이제부터 엇바꾸어 운전칸에 두명씩 태우고 두번씩 갔다왔다 하겠다고···

아이들이 너무 좋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속에 조가 짜졌는데 승벽이 센 석재네 조가 모두의 부러운 눈길을 받으며 첫 순서로 타고 떠났다. 부러운것으로 말하면 몽금의 경우도 아이들 못지 않았다.

한시간나마 걸려 32명 아이들이 다 불도젤을 타보고 내리자 몽금은 렴치불구하고 운전칸에 올랐다. 차가 떠나자 진심으로 사례했다.

《정말 고마워요. 애들이 일생토록 오늘을 잊지 못할거예요.》

《그럴가?··· 하기야 사람이 한생에 자동차는 많이 타봐도 불도젤을 타보는건 쉽지 않지.》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침묵속에서 불도젤은 흙을 부리우고 뒤걸음을 시작했다.

몽금이 자신의 수수께끼를 이 기회에 풀어야겠다고 작정한것은 그때였다.

《군대복무를 평강근방에서 했다면서요?》

《그렇소. 동무가 그걸 어떻게 아오?》

《우연히··· 제대되기 전에 세포에 가셨던적은 없었는가요?》

《가도 많이 갔지요.》

몽금은 갑자기 목마른감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그럼 혹시 세포에 가셨다가 어느 불붙는 집에 뛰여들어 아이들을 구원해낸 일이 있지 않어요?》

최인국은 우뜰 놀라는 눈치였다. 말은 그다음에 했다.

《아따, 이 동무가··· 아니, 어떻게 그것까지 다 알고있소? 그건 우리 부대에서도 모르는 일이였는데··· 》

《난 알아요. 난 그날 그 화재현장에 있었어요.》

《그렇다― 그럼 그때 피를 씻으라고 나에게 손수건을 준게 바로 동무였구만, 진달래꽃을 두송이 수놓은···》

몽금은 미소를 짓는것으로 그것을 시인하였다. 그 손수건을 어떻게 했는가고 묻고싶었지만 어째선지 말이 나가지 않았다.

《허허, 인간세상이 넓은것 같으면서도 좁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손수건 임자가 동무일줄이야··· 》

너무 뜻밖의 일이여선지 최인국은 골을 휘저으며 말을 더 잇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