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2

 

제 2 장. 발은 현실에, 눈은 멀리에

12

 

황해남도의 《천리마》들이 평강군에 도착하는 바로 그날 저녁 고산군 금오리에도 평양시 락랑구역인민들이 보내는 지원물자를 실은 두대의 자동차가 도착했다. 지원물자차를 인솔하고 온것은 뜻밖에도 구역당책임비서였다.

키가 그리 크지 않지만 몸이 거방져보이는 책임비서는 돌격대장과 박민석을 만나 인사를 나누자 강원도토지정리문제를 안건으로 시당 비상회의가 있은 사실을 알려주었다.

불도젤과 돌격대원들을 강원도로 떠나보낸 후로 드문드문 지원물자나 보내주는것으로 할바를 다 하는것처럼 생각하던 시안의 구역, 군당책임비서들은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받고 모두 자기반성을 하였다. 그리하여 강원도토지정리에 대한 관심으로 온 평양시가 부글부글 끓게 되였다.

《그새 욕을 많이 했으리라고 보오.》

책임비서는 싣고온 지원물자를 부리우게 하고 돌격대책임자인 구역농촌경영위원회 부위원장과 박민석을 데리고 숙소에 들어가 앉았다.

《동무들이야 알고도 남겠지만 황해남도와 평양시려단이 제일 뒤꼬리고 평양시에서는 또 우리 락랑구역이 그중 막자리라는데 왜 이렇게 되였소? 원인이 뭣이요?》

돌격대책임자가 구원을 청하듯 얼핏 박민석에게 눈길을 보냈다. 박민석이도 그것을 느꼈지만 머리를 수그렸다. 전국적으로 맨 뒤꼬리인 평양시려단에서도 막자리에 있는 형편에 무슨 말을 해야 책임비서가 리해할것인가.

《제 잘못이 많습니다. 제가 토지정리경험이 워낙 없는데다 조직사업을 잘하지 못하고 또 농장일군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가지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돌격대책임자의 요령부득한 대답에 책임비서가 즉시 인상을 찌프리며 약간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 동무들의 그런 자기비판이나 듣자고 온게 아니요. 내가 알고싶은건 어떻게 되여 한날한시에 모두 똑같은 조건에서 정리작업을 시작했는데 평양시치고도 유독 우리 락랑구역이 제일 막자리를 차지하게 됐는가 하는거요. 그걸 좀 명확히 말해주오. 그래야 대책을 찾을게 아니겠소.》

박민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침묵만 지키던 끝에 드디여 입을 열었다.

《이번에 우리가 마지막자리를 차지하게 된것은 우리 동무들이 일을 쓰게 못해서도 아니고 조직사업에 걸린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제를 그렇게 명백히 한 민석은 자신들이 금오리에 와서 부딪친 문제, 즉 중앙지휘부에서 규정해 내려보낸 기준보다 포전을 크게 정리해달라는 농장측의 요구와 그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 어쩔수없이 실적이 떨어지게 된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다보니 우리 동무들이 사실 고생은 남들보다 곱절 더 했습니다. 책임비서동지도 이제 만나보시면 알겠지만 누구라없이 모두 피곤에 몰려 볼이 깎이고 입술들이 헤졌습니다. 홍산옥동무의 경우는 어쩐줄 압니까? 최인국이라는 동무가 고열이 나서 일을 못할 형편이 되자 그의 교대까지 맡아 뛰느라고 옹근 사흘동안 숙소에 들어와보지 못한적도 있습니다. 》

책임비서의 얼굴에 덮였던 무거운 그늘이 놀라움으로 변했다.

《하니 동무들이 막자리를 차지한건 일을 잘못해서가 아니고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주다나니 그리 됐다, 그거요?》

《전 그렇다고 봅니다.》

《음.》

리해되는바가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책임비서의 얼굴에 안도감같은것이 어렸다. 꼴찌는 꼴찌라도 일을 잘못해서 된 꼴찌가 아니고 농민들의 소망을 들어주느라고 스스로 선택한 불명예라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였다.

《좌우간 사정은 그렇다 하고 앞으론 어떻게 할 작정이요?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주는건 리해되는 문제라쳐도 그때문에 그냥 막자리만 고수하고있을수야 없지 않겠소? 장군님께 걱정까지 드린 형편에···》

민석은 대답이 궁했다. 책임비서의 물음이자 그것은 이즈막에 그가 방책을 찾지 못해 줄창 속을 태우는 문제였다.

《저는 이제라도 생각을 달리하여 300평으로 돌아가는것이 방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형편에 그냥 500평에 매달려있어야 지금의 형세를 돌려세우지 못합니다.》

돌격대장의 말에 민석은 비로소 대답이 떠올라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300평으로 되돌아가선 안됩니다. 500평짜리 포전을 만들어달라는건 이곳 농민들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외면하고 300평으로 돌아가면 막자리는 면할수 있겠지만 그때문에 우리는 량심에 가책을 느낄것이며 농장원들을 보기가 미안할겁니다. 우리가 농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500평짜리 포전을 선택한건 결코 잘못한 선택이 아닙니다.》

박민석이 그런다고 돌격대장도 순순히 꺾이려 하지 않았다.

《그럼 부부장동문 언제까지 그냥 꼴찌에서 욕만 먹고있자는겁니까? 난 이젠 려단에서 무슨 회의가 있다는 소리만 들어도 몸에 닭살이 돋습니다. 가서 닥달질을 당할 생각에···》

《그건 나도 같습니다. 그러나 난 300평으로 되돌아가는덴 절대로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토지정리가 농민들을 위한 일이 확실하고 농장원들의 요구가 있는 이상 우리는 그 요구를 외면해선 안되며 들어주는것이 옳습니다. 500평때문에 실적이 떨어지는 문제는··· 조만간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조만간?··· 조만간에 무슨 방도가 있어서 어떻게 해결된다는겁니까?》

그때 책임비서와 같이 온 구역당부원이 문간에 나타나 작업현장에서 불도젤운전수들이 들어왔음을 알리였다.

《그래? 그럼 이 론의는 이따가 마저 하기로 하고 지금은 우선 운전수동무들부터 만나보기요.》

돌격대원들이 숙소인 농장기계화작업반실에 다 들어와앉고 자리가 정돈되자 책임비서가 일어나 인사말과 함께 자기비판을 했다.

《···동무들한테 무얼 감추겠습니까. 솔직히 말해 나는 동무들을 강원도로 떠나보내고는 시름을 던것처럼 생각하면서 관심밖으로 돌려놓았습니다. 현지에 나와 볼 생각같은건 애당초 하지부터 못했구··· 그렇던 나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정신차리게 해주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강원도토지정리는 현시기 당에서 매우 중시하는 사업인만큼 누구보다도 당일군들부터 앞장서 관심을 돌려야겠는데 무관심하다고, 숱한 불도젤운전수들이 외지에 나가 고생하며 국방위원회명령을 관철하느라고 애쓰고있는데 아무리 바쁘기로 어떻게 그럴수 있는가고, 량심들이 없다고 엄하게 꾸중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평양시가 토지정리전투에서 앞장에 서지 못하고있는데 대해서도 지적하시면서 평양시가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것은 수령님의 유훈이기때문에 강원도토지정리전투에서도 반드시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동무들, 우리 장군님의 말씀을 깊이 명심하고 나는 나대로 그리고 동무들은 동무들대로 각자 자기 할바를 다하겠다는것을장군님앞에 맹세합시다.

그럼 이제부터 집에서 부모처자들이 보내는 인사를 들어봅시다.》

책임비서가 눈짓하자 부원이 록음기를 가져다 탁우에 올려놓고 모두의 호기심어린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카세트를 끼우고 스위치를 눌렀다.

가요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의 힘찬 선률이 끝나자 록음기에서는 성미가 담찰것으로 짐작되는 녀인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저는 불도젤운전수 강일찬동무의 안해 손경옥입니다.···》

뒤쪽에서 《뭐이, 일찬동무?··· 헛!》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강일찬일것이다.

《영미 아버지, 그새 앓지 않았어요? 집식구들은 모두 잘 지내고있어요. 영미 아버진 겨울 날 탄을 해결하지 못하고 떠나서 여태도 걱정이겠는데 이젠 안심하세요. 세대주가 장군님의 뜻을 받들고 강원도에 가서 수고가 많다고 구역인민위원회에서 탄을 한차 해결해주었어요. 탄은 또 얼마나 좋겠어요. 난 너무 고마와 인사도 온전히 못하고 눈물만 지었군요.

그런줄 아시고 영미 아버지, 집걱정은 일체 말고 부디 건강하여 일을 잘하세요. 집식구들은 그것밖에 바라는것이 없어요.》

조금 사이를 두고 록음기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저는 새로 제대되여 강원도에 나간 최인국이 아버지올시다. 얘, 인국아, 그간 수고가 많았으리라 본다. 집에선 모두 무고하다. 네가 떠날 때 할 말을 다 해서 따로 할 소린 별로 없다. 대신 기쁜 소식을 알리련다. 엊그제 인희네 부대에서 우리 직장 당위원회로 편지와 함께 사진이 도착하였다. 글쎄 인희네 녀성해안포중대가 얼마전에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시찰을 받고 전투정치훈련과 살림살이를 아주 잘한다는 높은 치하의 말씀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다는구나. 우리 집에도 대를 두고 전해갈 가보가 생겼다. 네 어머니와 나는 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그 기념사진을 보고 또 보며 눈물을 흘렸다.··· 너도 의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인희가 받아안은 영광은 곧 우리 가정에 안겨진 영광이고 행복이다. 인국아, 우리모두 일을 잘하도록 하자. 나와 어머니는 여기 직장에서, 너는 거기 토지정리전투장에서··· 그게 인희를 통해 우리 가정이 받아안은 장군님의 은덕에 보답하는 길이다.》

구두편지는 계속되였다.

《우리 아버지는 시공부원 김준도입니다. 아버지, 안녕하세요? 나 인철이예요. 엄마가 마이크엔 죽어도 말을 못하겠다 해서 내가 대신 해요.

아버지, 두가지 기쁜 소식 알리겠어요. 첫째는 내가 이번 학기말시험에서 모두 5점 맞은거예요. 두번째는 누나가 공부를 잘하기때문에 교장선생님말씀이 래년도에 대학추천을 받을수 있을것 같대요. 누난 너무 좋아 요새 노상 터진 콩자루처럼 입을 다물지 못해요.

그럼 토지정리전투에서 혁신의 불바람을 일으키고있는 아버지를 축하하여 나와 누나가 같이 〈그이만을 생각하네〉를 불러드리겠어요.

 

간밤에도 인민들의 행복을 가꾸시며

쪽잠에 드신채로 새날을 맞으셨네

자애론 장군님 안녕 바라며 그이만 생각하네

아침에 남먼저 잠을 깨여도 그이만 생각하네

···

 

아버지, 끝으로 어머니명령을 말하겠습니다. 술은 쪼꼼, 밥은 많이, 발은 덥게, 히히···》

《저는 운전수 윤길중의 안해입니다. 여보, 당신이 집을 떠난지 벌써 두달이 되는군요. 집에선 다들 무고해요. 한가지 부탁할것이 있어요. 어머님이 텔레비를 보며 뭐라시는지 알아요? 〈모를 일이구나. 텔레비에서 매일 저녁 토지정리하는게 나오는데 아애비얼굴은 어째 한번두 볼수 없느냐?〉 이러시니 여보,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두 일을 잘해서 텔레비에 꼭 나와주면 좋겠어요. 나도 직장에 나가 자랑하게··· 날이 차지는데 밤일 나갈적에 옷을 든든히 껴입고 나가세요.》

···

그렇게 집집의 소식을 다 전달하고 드디여 록음기가 입을 다물었다.

처음에는 강일찬이처럼 안해가 동무란다고 해서 어이없어하는가 하면 킥킥 웃기도 하고 지어 처가 집안허물을 들추어낸다고 두덜거리기까지 하던 사람들이 차차 적어지더니 그때쯤 되여서는 모두 생각에 깊이 잠겨 말들이 없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집소식을 듣지 못한 두사람이 있었다. 홍산옥이와 그의 남편이였다. 어째선지 록음기에서는 그의 집식구들의 목소리만은 나오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가? 혹시 영순이가 앓아누운것이 아닐가? 그렇다면 아버지가 있지 않는가? 아버지가 아직 이사를 못 온 모양인가? 그렇지 않다면 왜 아무 소리도 없겠는가?··· 홍산옥은 불안에 시달리며 닥치는대로 추측해보았지만 꼭 짚어 단정할만 한 리유는 잡히지 않았다.

《그럼 홍산옥동무네 내외분과 부부장동무만 남고 다른 동무들은 돌아가 제 일들을 하면 되겠습니다.》

모두 우르르 일어나 나간 뒤 책임비서는 홍산옥이네 량주를 마주하고앉아 우선 남자들에게 담배부터 권했다.

홍산옥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 우리 집엔 가지 못했습니까?》

《갔댔소.》책임비서가 라이타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말했다.

《우리 구역당동무들이 세번이나 갔다가 끝내 집식구들을 만나지 못해서 이웃에 알아보니 만나기 힘들게 됐더라는구만. 딸은 교외에 있는 원예림에 실습을 나가구 산옥동무 아버지는 선교에 있는 둘째딸네 집에 림시 가있다는데 낮에 어느 짬에 와선 손녀가 오지 않았는가 하는걸 알아보군 선자리에서 돌아간다오.

화초사업소에 알아보았는데 그곳 당비서동무 말이 딸이 일을 아주 잘한다오. 수도의 거리들에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을 활짝 피워 먼 전선길에서 돌아오시는 장군님께 다소나마 기쁨을 드리겠다는 훌륭한 꿈을 가지고있다는거요. 산옥동무, 첫 사회생활을 하는 딸도 그래, 년로하신 아버지도 그래 마음이 편치 않겠는데 한번 집에 들어가보는게 아니요? 마침 차편도 있겠다···》

그러나 홍산옥은 손에 감아쥔 머리수건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여기 일이 잘된다면 몰라도 이런 처지에 무슨 렴치로 집에 들어가겠습니까? 우리 영순이 소식을 알려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젠 집일이 마음놓입니다.》

부부일심이라고 남편의 심정도 안해와 다르지 않았다.

《책임비서동지, 우리 집 일때문에 마음쓰지 마십시오. 우리 영순이가 일을 잘하고있다니 집걱정은커녕 힘이 생깁니다.》

그들부부의 말에 더 크게 감동된것은 책임비서보다도 박민석이였다. 그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말 못하는 그의 마음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울렸다. 얼마나 소박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인가. 이런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어찌 구역의 명예를 어지럽힌단 말인가.

《고맙소, 동무들! 동무들의 말을 들으니 나도 힘이 나오.》

이날밤 책임비서는 포전정리작업장에서 밤을 새웠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떠나기에 앞서 박민석에게 말했다.

《나는 동무의 결심을 지지하오. 그러나 내 말은 500평짜리 포전을 정리하는것이 막자리를 차지해도 좋다는걸 의미하지 않소. 1등까지는 바라보지 못한다 해도 어쨌든 막자리에서는 벗어나야 하오.

불도젤운전수들과의 사업을 잘하오. 성과의 비결은 그들의 정신력이 어떻게 발휘되는가 하는데 달려있다는걸 잊지 마오.》

《명심하겠습니다. 꼭 반가운 소식을 알리겠습니다.》

《믿고 가겠소. 설밑에 다시한번 오겠소.》

그런데 첫모 방정에 새 까먹는다는 격으로 책임비서가 떠나가자마자 고산군도 포함한 강원도산간지대에는 눈이 내렸다. 첫눈치고 그리 많이 오지 않은데다 내리는족족 녹아서 정리작업에 크게 지장은 안되여도 어쨌든 동장군이 보낸 차거운 도전장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