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

 

제 2 장. 발은 현실에, 눈은 멀리에

1

 

홍산옥은 지배인실문을 두드리기 전에 자신의 결심이 옳은가를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옳다는 생각이 들자 손에 머리수건을 벗어쥔채 조심히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두런두런 말소리는 나는데 응답이 없어 다시 두드렸다. 그제야 대답이 있어 문을 당기고 들어가니 지배인은 마흔댓쯤 돼보이는 웬 손님과 마주앉아있었다.

무슨 긴요한 이야기를 나누는것 같아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산옥동무가 무슨 일로?》하고 지배인이 불러세웠다.

《좀 있다 다시 오겠습니다. 무슨 중요한 토의를 하시는것 같은데···》

《일없소, 말하오. 이분은 구역당부부장 박민석동진데 이번에 우리 구역돌격대 정치책임을 지게 됐소. 출발행사를 토의하던중이니 달리 생각말고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하오.》

그렇다면 더구나 맞춤한 좌석이라고 생각한 산옥은 고개를 들며 바재이던 말을 내놓았다.

《저, 저도 가겠습니다.》

말을 해놓고서야 산옥은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했다는걸 깨달았다. 아닐세라 지배인이 대뜸 의아한 기색을 지었다.

《가다니, 어딜?》

《강원도···》

지배인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런 눈으로 잠시 쳐다보더니 잘 믿어지지 않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따져물었다.

《하니 토지정리전투에 나가겠다 그 말이요?》

《네.》

《그렇다― 좋구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지배인은 어째선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자근자근 앞상을 두드렸다.

《한데 동무까지 강원도에 나가면 집식구들은 누가 건사하오? 상돈동무 말이 인차 친정아버지까지 온다던데···》

지배인이 말하는 상돈이란 산옥의 남편이름이다.

《친정아버진 일없습니다. 우리 영순이가 있지 않습니까?》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만. 영순이야 아직 아인데 갸가 어떻게 늙은이를 거둔단 말이요?》

《···》

《산옥이, 동무도 생각없이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다시 잘 생각해보오. 솔직히 말해 동무같은 기능공들이 한명이라도 더 나가면 우리로선 좋으면 좋았지 나쁠게 하나도 없소. 그러나 동무야 가정부인이 아니요. 남자들도 가정사정때문에 선뜻 결심을 못하는데 가정주부를 데리고 나간다는게 어쩐지 별나구만. 더구나 한집안에서 둘씩이나··· 내 말은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라는거요. 나갔다가 도중에 들어오는 일이라도 생기면 안 나가기만 못하지 않겠소.》

산옥은 지배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 예견했었다. 자기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때껏 잠잠히 듣고만 있던 박민석부부장이 그들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이 동무도 불도젤운전숩니까?》

지배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부장은 산옥이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집에 식구가 몇인가고 물었다.

《아들은 군대에 나가고 지금 세식구가 삽니다.》

산옥의 말을 지배인이 정정했다.

《왜 세식구라고 그러오? 친정아버지가 온다니 이제야 네식구나 같지.》

지배인의 말에 박민석이 다시 물었다.

《듣자니까 세대주도 이 직장에 있는것 같은데?···》

《남편과 한차를 탄다니까요.》

부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딸은 어느 직장에 다니는가고 물었다.

홍산옥이 대답하기 전에 지배인이 가로챘다.

《직장이 다 뭡니까? 엊그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직장배치를 기다리고있는데··· 내 그래서 걱정하는겁니다. 산옥동무, 그런 코풀레기한테 집을 맡겨놓고 동무나 상돈이가 강원도에 나가서 무슨 일이 손에 잡히겠소, 시름스러워서···》

《요새 누구에겐들 그만한 시름이 없겠습니까. 일없습니다. 우리 영순이가 어리긴 해도 이악해서 집간수 같은건 얼마든지 합니다.》

한동안 말없는중에 지배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 기어이 가겠다는 소린데··· 난 동무가 사리원에까지 갔다오며 남먼저 차를 살려내길래 그걸 강원도에 못 가는 봉창인줄 알았구만.》

《실은 저도 첨엔 그렇게 생각한바가 없지 않았습니다. 부속이랑 구해다 차를 살리고 영순이 아버지를 강원도에 보내는것이면 나로선 할바를 다 하는셈이라구요. 나까지 강원도에 가지 않는다고 누가 나무라지 못할거라는 위안도 있었구요. 그런데 암만해두 량심이 허락치 않습니다. 새로 입직하여 토지정리가 뭔지도 모르는 최인국동무까지 나가는데 기능공으로서 집살림만 돌본다는게 어쩐지 죄스러워서··· 지난 기간 직장에서랑 구역에서랑 부부운전수라고 얼마나 내세워주고 칭찬해줬습니까. 남다른 평가를 받았으면 남달리 처신해야 할게 아닙니까. 더구나 이번 강원도토지정리는 단순한 이동작업이 아니고 장군님께서 직접 발기하신 사업인데 이런 때 제집 생각만 한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산옥은 심정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힘들게 여기까지 말해놓고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지배인과 부부장의 시선을 마주보지 못하고 수건으로 감싼 손만 내려다보았다.

방안에는 잠시 침묵이 깃들었다. 각자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지배인도 부부장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을 토막내며 마당 건너 수리직장쪽에서 함마로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이뜨게 들려왔다.

마침내 철판두드리는 소리가 멎었다. 그 소리가 멎기를 기다린듯 박민석부부장이 지배인을 돌아다보며 자기 생각을 내놓았다.

《지배인동무, 본인의 요구대로 보내는게 옳지 않을가요? 저런 마음을 안고 가는데야 왜 일이 안되고 무슨 시름인들 이겨내지 못하겠습니까?》

동감이라는듯 지배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럼 어서 들어가 준비하라고, 정비된 불도젤들을 강원도 해당 지역들에 빨리 수송전개할데 대한 국방위원회지시가 떨어졌기때문에 (평양시는 고산군을 담당하였다.)모레나 늦어 글피엔 떠나게 된다고 하는것이였다.

《어마, 그렇게 빨리 떠납니까?》

허락을 받아 기쁜중에도 산옥은 출발날자가 너무 박두한 사실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빨리라니? 상원군과 중화, 승호에선 어제 벌써 떠났소. 강남과 형제산은 오늘 가구··· 한데 왜, 빨리 떠나면 안될 일이라도 있소?》

산옥은 딸 영순이 배치를 기다리는 기간 상원 외할아버지한테 가있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박민석부부장이 그 문제는 걱정말라고, 자기가 상원군당에 련락해서 영순이를 래일중에 돌아오게 해주겠으니 외할아버지네 집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부부장이 수첩에 주소를 적는 사이에 지배인이 혼자소리처럼 뇌이였다.

《영순이가 와서 울고불고하면 야단인데···》

《그런 일은 없을겁니다.》

산옥은 지배인이 공연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지어 남의 집 귀하고 참한 딸을 교양이 부족한 경박한 처녀애들처럼 여기는것 같아 내심 고깝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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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한 믿음은 그렇듯 강했지만 정작 살림살이를 맡기고 떠날 생각을 하니 안심치 않아서 산옥은 퇴근길에 선교에 내려가 동생한테 부탁했다. 짬이 있는대로 가끔 집에 올라와 영순이가 살림살이하는걸 살펴보고 아버지를 모셔오는 일이랑 관심을 돌려달라고··· 그러느라고 저물녘에야 집에 들어섰는데 언제 왔는지 영순이가 반기며 달려나왔다.

《어머니, 지금 들어오세요?》

워낙 명랑한 성격인 딸은 외할아버지네 집에 며칠 가있는 사이에 한결 더 활발해진것 같았다. 하긴 이번 길에 외할아버지를 모셔온다고 얼마나 좋아했던가. 영순이는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르고 자라서 어려서부터 외켠을 끔찍이 따랐다.

《외할아버지가 섭섭해하셨겠구나.》

《섭섭해하잖구요. 며칠만 더 있으면 이사짐이랑 싣고 같이 올수 있었는데 구역당에서 련락이 오지 않았겠어요. 엄마가 련락을 띄웠나요?》

《그래.》

《그런줄 알았어요. 할아버진 집에 무슨 일이 생긴줄 알고 걱정하지요 뭐. 그래서 내가 안심시켰어요. 내 직장문제가 해결되였기때문에 부르는거지 집에 다른 일이 있는건 아니라구 말예요. 그래서 오는 길에 제창 로동과에 들렸더니 이렇게 파견장을 주지 않겠어요.》

영순이는 기분이 붕 떠서 손에 든 파견장을 가슴에 꼭 댔다.

《그래, 어느 직장에 받았니?》

홍산옥의 얼굴도 기쁨으로 빛났다.

《엄만 어떻게 내 생각을 그리도 딱 알아맞췄나요. 난 막 기뻐죽겠어.》

어디에 배칠 받았기에 저리도 기뻐할가. 홍산옥은 궁금하여 딸의 배치지를 물었다.

영순이는 어머니가 뒤공작을 다해놓고 련락까지 띄우고는 시치미를 떼는줄 알고 방글방글 웃으며 《엄만 모르는척 하면서··· 난 랠 아침부터 출근할테야.》하면서 파견장은 펼쳐보이지도 않고 당장이라도 첫 출근을 할듯이 기뻐 돌아갔다.

그는 시화초사업소에 배치받았던것이다. 처녀시절에 얼마나 맞춤하고 고상한 직업인가. 게다가 어려서부터 화분가꾸기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있는 영순이는 앞으로 원예사가 될 꿈을 안고있었다. 수도의 거리들을 아름답게 단장하는 화초재배! 영순이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부풀었다. 자기의 희망에 꼭 들어맞고 너도나도 욕심내는 그 직업을 어머니가 이렇게 손쉽게 해결할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지라 영순은 먼길을 다녀온 피곤도 다 잊은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후 영순은 자기의 직업해결에 어머니가 아무런 도움도 보태지 못했을뿐더러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도 강원도에 나가며 자기가 그때문에 상원에서 불리워왔다는걸 알고는 금시 눈이 꼿꼿해졌다.

《아니 엄마, 어쩌자는거예요. 엄마까지 강원도에 가면 난 어떻게 해요? 당장 외할아버지가 오시고 나도 직장출근이랑 해얄텐데?···》

딸애는 자기한테 집안일이 들씌워지게 되자 겁이 더럭 나는지 얼굴에 울상을 지었다. 딸이 그럴수 있으리라 얼마간 짐작은 했지만 그렇다고 리해를 보이면 더 우는소리를 할것 같아 산옥은 우정 엄한 기색을 지었다.

《어쩌긴 뭘 어쩐다구 그러니. 출근이야 하면 되는거지. 외할아버지가 아무렴 네 발목을 붙잡을것 같니?》

《엄마두 참, 그러다가 혹시 내가 동원이라두 나가면 그땐 어떻게 해요? 직장에 들어가자마자 가정사정을 내대겠어요? 할아버지가 앓을수도 있고요.》

딸한테는 온갖 가상정황이 다 떠오르는 모양이였다.

《정 힘들면 이모한테 알리려마. 외할아버지더러 당분간 이모네 집에 가계시라고 하던가.···》

《엄만 것도 말이라구 해요? 이모는 영예군인인 이모부시중만 들재도 바쁘겠는데···》

영순이는 암만해도 걱정스러운 모양이였다. 그는 첫 출근의 환희를 가뭇없이 잊고 시름이 가득한 눈으로 동원준비를 하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걱정스러운지 뜻밖의 엉뚱한 말을 했다.

《엄마! 내가 지배인아저씨를 한번 만나보는게 어때요? 만나서 외할아버지가 온다는 소리두 하구 또 엄마에게 신장염이 있다는거랑 얘기하면 엄마를 떨궈놓지 않을가?》

의농속에서 남편과 자기의 내의들을 꺼내 짐속에 넣던 산옥은 어이없는 눈으로 딸을 쳐다보았다. 야가 어쩜 이리도 나약하구 제 생각만 하는 애로 되였을가?··· 정말이지 어이없어 말이 다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기회에 단단히 신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아 산옥은 부러 엄준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을 똑똑히 들어라. 강원도에 가는건 내가 자원해서 가는거다. 지배인동지도 만류하는걸 말이다. 지금 어느 집치고 우리 집만한 사정이 없겠니. 그렇다고 사람마다 제 사정만 내들고 나라사정을 모른다고 하면 나라가 어찌 되겠니. 너도 영화를 보았을테지. 우리 매 개별적 사람들의 행복은 나라의 번영과 곧바로 이어져있다는 영화··· 그런데 너는 청년동맹원이라는게 옹졸하고 락후한 생각밖에 못하니 도대체 어찌된거냐? 으응?··· 난 네가 이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렇게 나약하고 옹졸한 처녀로 보일가봐 걱정이다. 손바닥만 한 집안일을 가지고 잔걱정이 그리 많으니 사회생활을 하면서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겠니. 다신 그런 생각을랑 말아라. 17살이나 먹은 처녀가 집 하나도 건사하지 못한다면 그건 바보계집애지 온전한 녀자라고 할수 없다. 알겠니?》

우는소리를 더 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이 드는지 영순은 뾰로통한 인상으로 방바닥을 내려다볼뿐 대꾸가 없었다. 그러는 딸을 보며 산옥은 저도 모르게 호― 한숨을 불었다. 지배인방에 찾아갔을 때만 하여도 몰랐는데 정작 집을 떠나자니 발목을 잡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불현듯 눈앞으로 부속품을 구하러 사리원에 갔다 오던 밤길에 자기때문에 멈춰섰던 야전차들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것은 아직 남편한테도 터놓지 못한 사연으로 산옥은 그날 밤에 멈춰선 그 야전차들중의 어느 차엔가 꼭 장군님께서 계셨을것만 같은 예감을 마음속에 안고있다. 그렇지 않다면야 어떻게 일개 군관이 숱한 차들을 세우고 불도젤부속품이 든 배낭밖에 진것이 없는 자기를 위해 따로 승용차를 낼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홍산옥은 자기의 예감이 스스로도 너무 무엄하고 엄청나게 생각되여 감히 입밖에 내지 못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