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8

 

제 1 장. 이 땅, 저 하늘

8

 

류광선대장이 농업위원회에, 그것도 자기를 찾아왔을 때 조만규는 반가움보다 먼저 긴장감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 문제는 부위원장동무가 더 잘 알고있으니 말씀을 나누십시오.》

신중한 표정으로 류광선을 안내해온 농업위원회 위원장이 그를 떨궈두고 간 뒤 앞탁을 마주하고 앉을 때까지도 그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보매 위원장은 류광선이 찾아온 사연을 알고있으며 그 사연이 몹시 심중한것이라는것까지는 짐작이 되였으나 조만규로서는 종시 짚이는데가 없었다.

가방안에서 자그마한 수첩을 꺼내놓은 류광선은 이쪽의 심리는 알고도 남는다는듯 시뭇이 웃더니 불쑥 왕청같은 질문을 하였다.

《여보, 우리가 기관차체육단부업지때문에 책상을 두드리며 다투던게 언제더라?》

《원, 부위원장동진 총기두 좋수다. 그게 언제적 일인데 여태 잊지 않구 계시오. 82년가을이지요.》

《동무 총기두 괜찮구만 뭐. 82년이 맞아. 동북리와 중이사이에 복선철길을 놓느라고 콩튀듯 할적이니까···》

류광선이 금방 철도부정치국장사업을 시작한 때의 일이였다. 체육부문에서는 나라의 체육기술을 세계적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1970년대부터 백두산상체육경기대회를 진행하였는데 유감스럽게도 기관차체육단은 그해 경기대회에서 단 한개의 금메달도 획득하지 못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류광선은 대노하였다. 그자신 축구를 비롯하여 체육을 대단히 좋아하는것은 다른 문제로 치고라도 나라의 동맥이고 정복을 입은 일군만도 수만을 헤아리는 단위가 경기대회에서 단 한개의 금메달도 쟁취하지 못했다는것은 분해도 이만저만 분한 일이 아니였다. 그는 정치국사업을 부국장에게 맡겨놓고 체육단에 나가 실태를 료해한데 기초하여 훈련시설과 선수들의 영양공급체계를 갱신하는 사업에 달라붙었다. 부 당위원회에서 토의하고 정치국장이 틀고앉아 내미니 얼음판에 박밀듯 일이 쭉쭉 풀렸다. 한가지만은 례외였다. 체육단부업기지를 가지기로 정무원의 승인까지도 받았는데 농업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는 토지관리를 맡은 조만규부위원장이 나가누우며 땅을 주지 않는 문제가 그것이였다.

류광선은 성이 독같이 났다. 정무원에서 승인한 문제가 일개 농업위원회 부위원장한테 걸려 진척되지 않는것만도 분노하기에 충분했지만 그들은 피차 매우 잘 아는 사이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류광선이 전선군단에서 대대장의 직무에 있을 때 조만규는 그의 대대 소대장이였다.

(조만규! 수하에 있을 땐 내 기침소리만 듣고도 설설 기더니 이젠 다 지나간 일이라 옛날 대대장쯤은 우습다는거지. 좋다. 어디 한번 맞서보자, 누가 이기나···)

그래서 류광선은 농업위원회에 가게 되였고 옛 부하와 상관은 마주앉아 앞상을 두드리며 한바탕 다투지 않으면 안되였다. 마감에 조만규가 협동농장의 경작지를 떼주지 못하는 대신 시농촌경리위원회가 장악하고있던 비경지중에서 그중 좋은 땅을 골라주겠다는 대답을 해서야 다툼은 끝났다.···

《그때 동무의 립장이 옳았소. 저마끔 특수를 운운하며 협동농장의 경지를 떼낼 내기를 하면 나라의 토지가 어떻게 남아나겠소. 가뜩이나 부침땅이 제한된 나라에서···》

조만규는 옛 대대장의 말을 들으면서도 속으로 분주히 생각했다. 이 어른이 왜 하많은 추억중에 하필 땅문제를 걸고 말꼭지를 떼는가. 왕년의 회고담이나 할라치면 펴놓을 얘기가 좀 많은가. 속을 대중할수 없는 표정으로 허리띠를 풀어놓는 품이 분명 땅문제때문에 온것 같은데 어디에 필요한 땅을 얼마나 내라는것인가. 국방부문에 필요한 땅이라면 응당 내놓아야겠지만 그만큼 농경지가 줄어든다는 생각에 나라의 토지를 맡아보는 그로서는 심사가 복잡하였다.

《토지 몇정보때문에 그렇게 아웅다웅 싸우던 때가 옛날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어찌된 판인지 간석지랑 그냥 막는데도 경지가 별로 늘지 않고 쫄아드니 문젭니다.》

조만규는 이쯤 울타리를 쳐놓았다.

《싸워야지. 다른 문제는 몰라도 경지를 침범하는 현상과는 골이 터지게라도 싸워야 해. 장군님께서 최근에 또 말씀하시였소. 공장이나 다른건 다 사올수 있지만 땅만은 사올수 없기때문에 국토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땅이자 곧 조국이라고···》

《현실은 그런데 집행이 잘 안되니 문제지요. 저마끔 정당한 리유와 근거를 가지고 달려드는데야 이기는 수가 있습니까. 나도 인젠 지쳤습니다. 제대될 때도 되기는 했지만서···》

《제대?》

류광선은 조만규의 나이를 물었다. 조만규가 예순다섯이라고 하니 그는 고개부터 저었다.

《오성산에서 나와 헤여지던 때가 언제든가?》

《52년 2월이지요.》

《맞아, 적들의 〈하기 및 추기공세〉가 끝난 뒤니까. 그때 부위원장동문 스무살안팎이였지? 허허··· 세월이란 참, 그게 엊그제같은데 벌써 퇴임을 론할 때가 됐구만.》

조만규는 제대소리를 꺼낸 자기의 마지막말을 후회하였다. 영농사업지도차로 평북도에 출장갈 준비를 하고있던중이라 별로 바쁠것은 없었지만 근간에 있은 중앙기관 책임일군들의 회의에서 되게 비판받으며 직무수행능력까지 론의된 처지라 다른 문제는 몰라도 퇴임문제만은 입에 담고싶지 않은 조만규였다. 그때는 정말 자리를 내놓는가 했었다.

다행이랄가, 이쪽의 그런 심정을 들여다보기라도 한듯 류광선은 때맞추 화제를 돌려주었다.

《위원장동무의 말이 불도젤은 다 동무네 부서에서 관할한다며?》

《장악이야 우리가 하고있지요.》

《그럼 문서를 꺼내놓소.》

《문서야 있지만 까닭도 모르고 어떻게 꺼냅니까? 그것도 국가기밀에 속하는건데··· 》

까닭도 알겸 조만규는 한번 삐뚤서한 소리를 해보았다.

《그리구 국방위원회에서 불도젤문세는 왜 관심을 돌립니까?》

《땅크를 만들자고 그래, 땅크를···》

《허허허···》

조만규는 저도 모르게 허구픈 웃음을 터쳤다.

《웃긴 왜 웃소? 불도젤에 장갑을 씌우고 포탑을 올려놓으면 땅크가 된다는걸 모르오? 이제 두고보오. 그 불도젤땅크가 패배주의요, 본위주의요 하는 온갖 허접쓰레기들을 무한궤도로 깔아뭉개며 다 정리해버리지 않나···》

《난 무슨 소린지···》

조만규는 대장의 말을 진담으로 들어야 할지 롱담으로 들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여보, 문서를 꺼내라는데 얼음판에 들어선 소처럼 뭘 그냥 멀뚱멀뚱 쳐다만 보오. 혼맹이를 뽑힌것처럼···》

류광선이 그렇게 독촉해서야 조만규는 전화로 토지건설과장을 찾아 해당한 문서를 가지고오라고 지시했다.

《불도젤이 무엇에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문서는 보나마나합니다. 농업부문에 종사하는 불도젤들이란게 변변치 못합니다.》

류광선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였다. 그는 정색해서 말했다.

《이자 위원장동무한테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이제부터 내 말을 명심해듣소. 강원도의 토지를 정리하자는것이 장군님의 결심이요. 그것도 단 한해동안에.··· 불도젤은 그래서 필요하고 죽었더라도 다 살려내야 하오. 알겠소?》

조만규의 귀에서 천둥이 울었다. 강원도의 토지를 정리하다니, 이 무슨 소린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는 지금처럼 어려운 때에 어떻게 수만정보나 되는 토지를, 그것도 제일 상태가 렬악한 강원도의 토지를 단 한해동안에 다 정리한단 말인가?

생각이 민첩한 조만규는 제꺽 되물었다.

《그럼 래년도엔 강원도에서 농사를 안 짓는단 말입니까?》

《안 짓긴? 농번기전에 끝내야지.》

그럼 말이 한해지 봄, 가을을 합쳐 도무지 반년밖에 안되는 기간에? 더구나 농업부문에선 개천―태성호물길공사라는 거창한 대자연개조도 시작되겠는데··· 조만규로서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너무도 엄청난 소식이여서 잘못 듣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기척과 함께 토지건설과장이 여러개 되는 두툼한 문서철들을 겨드랑이에 끼고 방에 들어선것이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