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4

 

제 1 장. 이 땅, 저 하늘

4

 

어둠속에서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바람도 기승스럽게 분다. 캄캄한 밤하늘을 무시로 찢는 번개, 뒤따라 천하를 떨치며 울부짖는 천둥, 자연의 광란앞에서 세상이 공포에 떨고있는듯싶은 이 칠흑같은 밤 몇대의 야전차가 산세험한 아호비령을 넘고있었다.

어느 찬찬한 길손이 세여보았는지 한굽이가 모자라 백구비령이 못되였다는 아호비령, 하기는 점심참에 장난삼아 령우에서 굴린 바위돌이 해질녘에 사람과 같이 골바닥에 이른다는 아호비령이다.

령등을 가까이 하면서 바람은 더더욱 세차졌다. 차창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흡사 생명주를 찢는 소리처럼 앙칼스러웠다. 마침내 도경계표말이 서있는 령우에 올라선 야전차들은 안도의 숨이라도 돌리듯 잠간씩 평형을 유지하고는 다시 꽁무니를 쳐들고 비말이 뽀얗게 서린 굽이길을 따라 미끄러져내려갔다.

평양을 떠난지도 거의 세시간, 여느때같으면 원산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지만 여태껏 로상에 있는것은 역시 사나운 일기조건때문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체되는 시간이나 불순한 일기조건에는 통 개의치 않고 줄곧 문건만 보고계시였다. 그이의량옆에는 이미 보았거나 보셔야 할 두개의 문건무지가 차가 들출 때마다 조금씩 앞으로 기울면서 위태롭게 놓여있었다.

지금 그이께서 보시는 문건은 정무원에서 올라온 올해공동사설을 받들고 인민경제 각 분야에서 지난 정초부터 4월말 현재까지 진행한 사업보고였다.

올해공동사설에서 공화국창건 50돐을 맞는 올해를 우리 식 사회주의의 결정적승리를 이룩해나가는 보람찬 투쟁의 해로 규정하고 인민경제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비약을 이룩할데 대한 전투적과업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지난 4개월간의 경제사업실태는 금속공업과 전력, 석탄공업을 비롯하여 공동사설에서 선행부문으로 규정한 분야들이 일정하게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견지에서 보면 만족할만 한것이 못되였다.

당이 총진군의 돌파구를 열고 결정적승리를 이룩하자고 호소했음에도 왜 경제부문이 이렇게 끓지 않고 저조한 상태에 있는가? 현실이 당의 호소를 받아들일만 한 준비를 채 갖추지 못했는가? 아니면 호소는 받아들였으나 호응할만 한 능력이 없어서인가?··· 물론 자금과 원료, 자재와 전력은 부족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수령님께서 마련해놓으신 강력한 자립경제의 토대가 있다. 왜 자립경제의 그 위력이 발휘되지 않고있는가?···

보고의 마감에 정무원에서는 생산활성이 잘되지 않고있는 중요원인의 하나로 최근 경제부문 일군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본위주의현상을 례증분석하면서 강력한 료해그루빠를 무어 전국적판도에서 공장, 기업소들에 사장되여있는 자재를 찾아내여 생산활성에 리용할데 대해 제안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주 좋은 제안이라는 생각이 드시여 표지에 이렇게 써넣으시였다.

 

―기관본위주의는 개인주의와 일맥상통하는 사회주의사회에서 용납할수 없는 사상입니다.··· 료해그루빠를 시급히 가동시키는것과 함께 교양사업을 강하게 벌려야겠습니다.

 

끝에 날자를 적어 내려놓으신 그이께서는 다른 문건을 펼쳐드시였다. 책임서기가 의도적으로 순차를 그렇게 놓은듯 펼치신것은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가 료해장악한, 새해공동사설의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위원회, 부를 비롯한 중앙기관 책임일군들의 사업에서 나타난 우결함분석자료였다.

금속공업부 책임일군들이 성진제강련합기업소의 강철생산을 늘이기 위한 작전과 함께 고난의 행군시기에 완전히 멎었던 황해제철련합기업소에 내려가 로동자, 기술자들과 침식을 같이하면서 산소열법용광로건설을 지휘하여 성과를 올린 사실이 첫머리에 있었다.

결함의 첫자리를 차지한것은 농업위원회 책임일군들이였다. 당이 먹는 문제를 풀기 위해 종자혁명과 두벌농사방침을 제시한지 오래고 공동사설에서 농업을 주공전선의 하나로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하게 기상조건의 불순과 투자타령만 하면서 농업생산에서 혁신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보이지 않고있는것이 분석된 농업위원회 일군들의 주되는 결함이였다. 토지와 관개부문을 담당한 부위원장 조만규는 어느 회의에서 이렇게까지 말하였다고 한다.

《···현대농업은 공업의 후원이 없이는 안된다. 70년대를 전후하여 우리 농업이 부흥했던것은 공업의 강력한 뒤받침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때는 정말 일할 멋이 있었다. 뜨락또르와 비료가 꽝꽝 쏟아져나오고 각종 영농자재들이 우선 공급되고, 8백만t알곡고지우에 올라서서 1천만t까지 넘겨다보는 수준이였으니 성수나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 우리 공업은 농업에 비료도 그렇고 관개용전력도 온전히 보장해주지 못하고있다. 땅이 여위고 관개시설이 로후한것도 문제다. 괴롭더라도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대책은 그다음에 나온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만규부위원장의 주장을 다시 생각해보시였다. 본인으로서는 객관적사실과 그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매우 솔직하게, 기탄없이 말하려고 한것 같았다. 사실을 말한 점에서는 리해되는바도 없지 않으시였다. 문제는 그의 솔직한 말속에서 농업부문의 고충만이 아닌 나라가 겪고있는 현실적난관에 쫓기며 위축되고 취약해진 한 일군의 정신적무기력이 느껴지는것이였다. 조직지도부에서 발언내용을 자료에 반영한것도 그때문일것이다.

(조만규동무까지 이렇게 나약한 소리를 하고있는가?···)

그이께서는 며칠전에 당중앙위원회에서 만나보셨던 조만규의 모습을 떠올리시였다. 그때에도 그의 자세에서 힘과 기백을 느끼지 못하시였고 그래서 마음이 가볍지 않으시였다.

자신께서 오래전부터 알고계시던 조만규는 그렇지 않았었다. 조만규는 수령님의 품속에서 농업부문 일군으로 성장하여 일을 많이 한 그야말로 백전로장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런 일군의 정신상태가 이처럼 불안정하고 비관적인데 대해 그이께서는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어째서 앞채를 메야 할 일군들이 눈앞의 난관에 위축되여 지난날의 추억이나 하면서 한숨을 쉬고있는가. 과연 그들에게 래일의 승리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문득 그이께서는 지난해 구월산유원지를 돌아보시다가 어느 한 병사가 구조물우에 새겨놓았던 《고난의 마지막해 1997년》이라는 글발을 보시던 일이 생각나시였다.

인민군군인들이 새로 닦아놓은 탐승길을 돌아보시다가 락엽에 가리워져있던 그 글발을 보시는 순간 그이께서는 산악같은 파도가 흉벽을 치는 느낌을 받으시였다. 래일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글발을 새겨놓을수 있으랴. 고난을 이겨내면 행복이 온다는 희망이 병사의 가슴에 굳건히 자리잡혀있지 못했다면 이런 글발을 새길수 없었으리라. 그들은 정세가 그토록 긴장하고 적들이 사회주의붕괴설을 요란스레 떠들던 그때에 어째서 유원지를 잘 꾸릴데 대한 최고사령관의 명령이 하달되였는지 그 의도를 심장으로 접수했기에 모든 고난을 웃음으로 헤쳐나가면서 룡문대굴을 지하명승으로 완성하였고 칠보산, 구월산을 비롯한 명승지들을 인민의 락원으로 더잘 꾸릴수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일부 일군들속에서는 그런 혁명적군인정신이 부족한 현상들이 표현되고있다. 더구나 식량문제가 제일 어려운 과제로 나서고 따라서 당이 농사제일주의방침을 제시하고 농업부문에 투자를 집중하고있는 이때 농업부문 일군들속에서 이런 비관주의적태도가 나타나고있는것은 결코 간과할수 없는 일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문건을 내려놓으시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시며 지그시 눈을 감으시였다. 그때를 기다리고있었던듯 피로가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좀 있으면 날이 밝을것이다. 그러니 잠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했다.

(해마다 전군중적운동으로 농촌을 돕고있는데 현조건에서 농사를 추켜세우자면 무엇이 필요한가? 농사, 농사···)

그이의 사색은 꿈속으로 이어져갔다. 그래서 꿈은 현실의 연장이라고도 하는것인지···

벼바다 설레이는 드넓은 연백벌에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과 함께 포전길을 걷고계시였다. 무연하게 펼쳐진 황금바다 한복판에서 수령님께서는 미풍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말씀하시였다.

《연백벌에 오면 우리 나라 논들이 다 이렇게 넓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군 하오. 우리 나라는 원래 산이 많아서 부침땅면적이 제한되여있고 아직도 산골군들에는 뙈기논들이 적지 않소. 그 뙈기논에서 허리를 굽히고 농사짓는것이 대대로 내려오는 조선농민들의 모습이였다고 할가. 그래서 농민들이 허리를 펴고 농사를 짓게 하는것이 내 평생의 소원이였소. 그 소원을 풀자면 토지정리를 해서 종합적기계화를 실현할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겠는데··· 우리 농민들의 고생이 많소.》

《그래도 이제는 농촌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달라졌지. 강원도같은 산골에는 정말 뙈기논이 많았소. 전후에 내가 창도군에 가보았는데 대백리사람들은 흰쌀구경을 거의 못하고 살았소. 해방전에 왜놈들이 거기에 저수지공사를 벌려놓았으나 종시 성사시키지 못했지. 그래서 내가 대포로 참새를 잡는 격이라도 양수장을 건설하고 북한강물을 끌어올려 벼농사를 짓게 했소. 결국은 토지정리를 해서 밭을 논으로 풀긴 했지만 역시 뙈기논이였지. 이제는 토지개혁을 한지도 반세기가 되여오는데 아직도 그때의 논두렁들이 남아있는건 안타까운 일이요.》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당에서 토지정리사업을 내밀도록 하겠습니다.》

《내대신 수고해주오. 토지를 정리한다는게 올망졸망한 뙈기논을 기계화포전으로 만든다는 소린데 그건 결국 축지법을 쓴다는 소리요. 힘이 들겠지. 하지만 사람이 하자고 결심하면 못할게 뭐겠소. 우리 농민들이 기계로 농사짓고싶어하던 소원이 풀리면 내 소원도 풀릴거요.》

장군님께서는 문득 눈을 뜨시였다.

《내 소원도 풀릴거요.》라고 하시던 수령님의 음성을 생시처럼 들으신듯싶으시였다. 그게 정말 꿈이였을가. 아니, 분명 언젠가 수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것 같았다. 그게 언제였던가···

그이께서는 차가 멎어서는 바람에 현실로 돌아오시였다.

《여기가 어디요?》

《마식령밑입니다.》

운전사의 대답이였다.

《왜 섰소?》

《앞차들이···》

앞차에서 내린 누군가 군용비옷자락을 펄럭거리며 달려와 문을 당긴것이 그때였다.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류광선대장이였다.

《여기서 눈을 좀 붙이고 밝을녘에 령을 넘어야 할것 같습니다. 골개물도 많이 불고··· 아무래도 안심되지 않습니다.》

그이께서는 류광선대장의 불안이 리해되시였다. 마식령은 이미 넘은 아호비령보다 더 높고 가파르다. 낮에 넘으며 내려다보면 갈피갈피 깊이를 가늠할수 없는 어둑컴컴한 골짜기고 올려다보면 벼랑턱에 간신히 매달려있는 집채같은 바위들이다. 그런 험령을 이 비바람 사나운 밤에 넘는다는것은 실상 모험이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지체하고싶지 않으시였다. 계획된 군부대시찰이 몇시간 늦어지는것은 별일없다 해도 나라의 경제형편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그때문에 일군들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은 그이로 하여금 일종의 조바심같은것을 느끼시게 하였다.

《갑시다. 비바람과 위험이 없다면 무슨 강행군길이겠습니까?》

류광선을 돌려보내신 그이께서는 운전사에게 속도를 더 높이라고 이르시였다. 자연의 광란에라도 엇서 가슴속의 답답함을 풀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는 심정이시였다. 앞선 차의 빨간 신호등을 보며 물이 불어나 사품치는 골개울을 건너서자 그이께서 타신 차는 짧은 경적소리와 함께 곧 선두차를 따라앞섰다. 그리고 벌써 시작된 올리막길을 더욱 빠른 속도로 치달아올랐다. 비바람은 여전하였다. 바깥에서 물씻개가 부지런히 시창을 닦고있지만 길이 잘 내다보이지 않았다. 야전차는 다른 차들을 멀리 뒤떨구며 완강하게 앞으로 돌진하였다. 그렇게 마식령을 넘고 문천벌을 지나 원산시내에 들어섰다. 날이 밝자면 아직도 이른 새벽 4시경이였다.

비발속으로 불빛 한점 없는 거리를 내다보시는 그이의 심정은 괴로왔다. 우리 인민들이 식량난과 함께 벌써 몇해째 이런 불 없는 고생을 겪고있는것인가. 하면서도 아무런 불평없이 당을 믿고 웃으면서 살아가는 강의한 우리 인민···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작년 늦은 봄날 전선시찰의 길에서 만났던 한 농민의 말을 생각하시였다.

《장군님, 우리 농민들이 제구실을 못해서 나라의 식량사정이 어렵게 되구··· 장군님께서도 이런 줴기밥으로 끼니를 에우시며 험한 길을 가시니 정말 죄송합니다.》

헤여질 때 그 농민은 눈을 슴벅이며 말을 채 잇지 못했었다.

그 농민을 만나던 일이 어제일이런듯 생생히 떠오르시였다.

이른아침 굽이굽이 이어진 험한 길을 따라 달리던 차가 어느 협곡에 들어섰을 때였다. 웃쪽에서 흘러내리는 물가를 따라 다닥다닥 뙈기논이 올리붙어있었는데 그때 장군님께서는 저 멀리 웃논배미에서 삽으로 논을 뚜지는 한 농민을 눈여겨보게 되시였다. 농민의 가까이에서는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른아침부터 땀흘리는 그의 수고가 헤아려져 그냥 지나칠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골안에서 잠간 땀이나 들이고 가자고 하시며 차에서 내리시였다. 부관에게서 담배와 라이타를 받아드신 그이께서는 오불꼬불 이어진 논두렁을 따라 그 농민에게 다가가시였다. 아침이슬에 바지가랭이를 적시시며 논두렁을 걸어가시는 사이 그이께서는 왜서 농민이 소를 세워두고 삽으로 논을 일쿠고있는지 묻지 않고도 알게 되시였다. 경사지에 일쿠어놓은 논인지라 최뚝이 논면적보다 큰가 하면 보습날을 들이댈 여지조차 없는 작은 논들도 있었던것이다. 농민은 소가 풀을 뜯는 사이를 기다릴것없이 손바닥만 한 논을 삽으로 갈아번지자고 마음먹은것 같았다.

그이께서 다가가서 보시니 그 농민은 이젠 환갑을 썩 넘겼음직한 로인이였다. 등은 약간 굽었지만 어깨가 넓고 목이 굵은게 젊어 한때는 힘꼴이나 썼을것 같아보였다. 뜻밖에 논머리에서 장군님을 만나뵙게 된 그는 당황해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허둥지둥 달려나와 인사를 올리는 그의 흙묻은 손을 잡아 넙적한 바위우에 나란히 앉으신 장군님께서는 친절하게 담배를 권하시였다.

《제게도 있습니다.》

그 로인이 선뜻 받기를 주저하며 황급히 주머니를 뒤져 담배쌈지를 꺼냈다.

《그래도 이 담배를 피워보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굳이 그의 손에 담배를 쥐여주시였다.

《모내기철이라 참 수고가 많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집에서 쉴 나이가 넘은것 같은데 어떻게 혼자 여기서 일을 합니까?》

《뭐 일이라 할것두 없습니다. 아침에 소를 먹이러 나왔던김에 몇삽 떠보느라구··· 제 부대로력으로 돌아앉은지는 몇해 되지만 아직은 얼마든지 농사일을 할수 있습니다.》

걷어올린 바지가랭이를 내리우느라 애쓰는 그를 만류하시며 장군님께서는 라이타를 꺼내드시였다.

장군님으로부터 받은 담배를 보물인듯 두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던 농민이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했다.

《장군님, 사실 전··· 이 담배를 건사하고싶어서···》

《일없습니다. 여기 또 있지 않습니까. 어서 불을 붙이십시오.》

그이께서는 웃으시며 담배를 곽채로 로인에게 안겨주시고는 불을 붙여주시였다. 논 웃쪽의 잡관목숲속에서 새들의 지저귐소리가 들려왔다.

장군님께서는 그가 삽으로 갈아번지던 논을 가리키시였다.

《벼그루터기를 보니 작년도농사가 썩 씨원치 않았겠습니다.》

로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예, 종자값이나 건졌다고 할런지··· 논갈이도 그래, 모내기도 그래 순 손으로만 할래니 품은 품대로 들고 영 소출이 올라가지 못합니다. 우리 분조원들은 품값도 안 나오는 땅이라고 모두 여기 오길 싫어합니다. 그렇다고 묵일순 없고···》

《그래서 혼자 올라오셨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소도 풀을 먹이는겸 먼저 올라왔던 참입니다. 이제 모들을 한판씩 뜨고나면 분조원들이 올라옵니다.》

《이자 올라오면서 보니 뙈기수는 꽤 많던데 이 골안의 논면적이 모두 얼마나 됩니까?》

그 로인은 말씀올리기 쑥스러운듯 고개를 숙이며 《면적이랄것두 없습니다. 뙈기수는 퍽 많아두 한정보 좀 남짓합니다, 것두 최뚝까지 다 잡아서···》 하고 대답올렸다.

그러니 최뚝을 빼놓는다면 실지 모를 꽂는 면적은 그보다도 훨씬 더 작을것이다.

《원래 이곳에 논이 있었습니까?》

《이 골안에 논이 생긴건 퍽 오래전같습니다. 여긴 제 고향인데 제가 어렸을 때에도 벌써 여기에 논이 있었습니다. 쌀구경을 하고싶어하는 옛날사람들이 한뙈기한뙈기 일쿠었겠는데 보시는것처럼 터밭보다 작은것은 말할것도 없고 구들장만 한것들까지 있으니 소도 못 들어갈 형편입니다.》

《그래서 소를 쉬우고 삽으로 논을 갈아엎댔구만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정말 이 논을 갈자다가는 소가 어지럼증이 나겠습니다.》하고 웃으시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어려움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 농민이 허물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여기 사는 농군들한테 한가지 웃지 못할 옛말이 있는데 글쎄 옛날 논을 갈던 한 농군이 삿갓을 벗어놓고 땀을 들인 다음 일어나 논뙈기를 세여보니 한뙈기가 모자라더랍니다. 자기 눈이 잘못되였나 하여 세여보구 세여보구··· 한식경이나 세여보았는데도 종시 한뙈기가 비였다질 않습니까. 거 조화로다 하면서 하는수없이 삿갓을 집어드는데 여직껏 찾던 논배미가 바로 그 삿갓밑에 숨어있을줄이야···》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세까지 써가며 하는 농민의 말을 들으시고 다시한번 웃으시였다.

《그런 말이 생길만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곳 농장원들이 얼마나 벌방을 부러워하겠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그런 넓은 들판에서 농사다운 농사를 지어보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로인의 음성에는 절절한 감정이 어려있었다.

《제가 젊었을 때 전국농업대회에 참가한적도 있었는데 그때 벌방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댔지요. 그들과 농사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전 창피한걸 겨우 참군 했습니다. 우리 강원도라구 뜨락또르가 없겠습니까, 모내는기계가 없겠습니까? 다른건 하나도 부럽지 않은데 다만 부러운것은 그 넓은 땅이였습니다. 숙천에서 온 한 작업반장이 하는 말이 자기넨 글쎄 논갈이를 할 때 뜨락또르운전수에게 삽 한자루 쥐여보내면 그만이라는겁니다. 논배미 하나가 몇백평씩 잘되니 운전수가 저 혼자 논두렁을 까고 다음배미로 넘어간다는거지요. 하루밤에 네댓개 논두렁만 까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작업반에선··· 뜨락또르가 논갈이를 한다 하면 장정 너덧이 전적으로 붙어서 논두렁을 까고 다시 만드는 역사를 해야 합니다. 여기 논두렁이라는게 또 벌방의 논두렁처럼 낮지두 않구 모두 허릴 넘어 지어 키를 넘는것들까지 있으니··· 힘은 힘대로 빼면서 하루 뜨락또르논갈이면적도 벌방에 비해 어방도 없습니다. 그러니··· 수확량도 작구··· 여기 강원도에서두 한 500평, 1 000평 되는 논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로인의 말에는 벌방에 대한 부러움이 한껏 어려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의 심중이 충분히 리해되시였다. 이것을 어찌 한 로인의 소망이라고만 하겠는가.

그날 그 로인과 헤여지시면서 김정일동지께서는 성실하고 근면한 우리 농민들의 애국의 마음과 함께 그들의 세기적숙망을 다시금 절감하시였다. 그 로인은 나라의 식량사정이 어려워진것이 모두 농민들이 제구실을 못하기때문이라면서 올해에는 어떻게 하나 농사를 잘 짓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정말 훌륭한 로인이였다.

이런 인민들과 함께라면 무엇이 두려우랴.

생각에서 깨여나신 그이께서 시창밖에 눈길을 주시니 안변벌은 려명전야의 어둠속에 잠겨있었다. 미구에 날이 밝고 이미 가늘어진 비발은 고산군지경에서 끝을 보이더니 삼방협곡 추가령마루에 올라설 무렵에는 터진 구름장사이로 해빛이 부채살처럼 퍼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