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9

 

제 1 장. 이 땅, 저 하늘

19

 

날이 밝았다. 8월 31일 아침이였다.

또 한밤을 집무실에서 보내고 새날을 맞이한 김정일동지께서는 보시던 문건에 수표를 주어 밀어놓고 일어나 창문을 열어제끼시였다. 누기를 품은 신선한 기운이 물결마냥 페부에 흘러들며 심신의 피로를 가셔주었다.

해돋이를 하려는 모양인지 창가에 잠시 서계시는 사이에도 동평양쪽의 먼 하늘변두리가 급속히 검붉어졌다. 미구에 해가 떠올랐다.

그때쯤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원에 나가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정원수들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걸으며 하루의 사업을 계획하시였다. 간밤에 다 보지 못한 문건들,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부부장협의회지도, 9월 5일에 진행될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준비정형료해, 공화국창건 50돐경축 행사준비(열병식, 군중시위, 집단체조, 새로 건설한 9. 9절거리 준공식, 수도의 궤도전차화 3단계로선 개통식)추진정형청취···

오전 10시경까지는 계획한대로 사업하실수 있었다. 이후의 사업들은 일부 오후로 미루지 않으면 안되였다. 인공지구위성발사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도무지 사업에 집념하실수 없었기때문이였다.

그이께서는 인공지구위성제작과 발사에 참가한 과학자, 기술자들의 재능과 책임성을 전적으로 믿으신다. 하지만 우주과학의 문은 바란다고 아무나 쉽게 열수 있는 문이 아니였다. 인공위성개발의 초기력사가 그것을 실증해주고있었다.

이전 쏘련이 수명 3개월인 첫 인공지구위성 《스뿌뜨니크 1》호를 쏘아올린 1957년 당시 미국은 그들대로 위성을 발사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결국 이듬해인 1958년 1월에야 성공하였다. 앞서 미국은 여러번의 실패를 맛보았으니 미해군이 개발한 위성 《뱅가드》는 11번의 발사에 겨우 세번을 성공하였다. 하여 《뱅가드》(선구자라는 뜻.)라는 말은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국제적으로 실패의 대명사로까지 되였다. 그뿐이 아니다. 경제기술대국이라고 자처하는 일본도 미국산 운반로케트에 의해 《오오스미》를 쏘아올리기까지 5번의 실패를 겪었다. 미국의 강력한 지원밑에 위성운반로케트분야를 개척해온 영국도 1969년부터 시작하여 네번만인 1971년 10월에야 발사에 성공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 네번째 발사도 위성이 분리된지 20초 지나 3계단이 위성을 따라가 충돌함으로써 위성안테나가 파손되여 결국 실패하였다.

다른 기록도 있다. 유럽에서는 1962년에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공동개발을 합의하고 《유럽1》호 운반로케트개발에 착수하였다. 1계단발동기는 영국이, 2계단은 프랑스가, 3계단은 당시의 서부도이췰란드, 위성은 이딸리아, 유도장치는 벨지끄, 원격송신장치는 네데를란드가 맡아서 제작하여 1967년 8월에 오스트랄리아의 우메라발사장에서 발사하였다. 첫 발사로부터 이후 몇년동안 10번이나 시험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1973년부터는 위성만을 만들어 운반로케트개발국에 의뢰하여 발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남들이 체험한 실패가 왜 우리에게라고 없겠는가. 사실 우리는 지금 너무도 불리한 조건에서 너무도 큰일을 단행하고있다. 10월로 예견했던 발사를 앞당긴것이 우선 그렇고 예견되는 고공풍으로 발사에 적합한 시간을 선택하지 못한것도 다 실패의 전제조건이다. 분리된 2계단이 일본령해 가까운 곳에 떨어질수 있는것을 고려하여 위성의 발사높이를 낮추고 발사방향을 수정한것은 또 얼마나 큰 양보이며 불안여건인가?···)

그이께서는 무심결에 몸을 앞으로 당기며 송수화기를 잡으시였다. 무수단에 나가있는 류광선대장을 찾아 좀 늦어지더라도 가장 리상적인 조건에서 위성을 발사하도록 대책하시려는것이였다. 그러나 송수화기가 천근이기라도 한듯 그이께서는 끝내 들지 못하신채 일어서며 시계를 보시였다. 11시 13분, 위성발사시간까지 47분이 남아있었다.

그이께서는 엊그제 김병린원사가 무수단에서 가져온 위성발사준비과정을 수록한 록화테프를 찾아 록화기에 넣고 스위치를 누르시였다.

···화면으로 동해기슭 무수단의 아름다운 풍경이 흘러간다. 모래불을 핥으며 장난군아이들마냥 기슭에서 뒹구는 멀기, 억센 팔뚝처럼 바다를 향해 힘차게 뻗어나간 벼랑과 벼랑끝에 솟은 등대탑, 생을 즐기듯 유유히 날아예는 갈매기, 해풍에 다슬려 밋밋해진 불그레한 빛을 띤 언덕들···

《무수단이라는 지명은 원래 물흐름이 춤추듯 하는 산줄기끝이라는 뜻인데 무쇠골이 무쇠끝으로 불리우다가 무수단이 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김병린원사의 설명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리해를 표시하며 여전히 화면에 주의를 집중하시였다.

화면에 실험복을 입은 여러 과학자, 기술자들이 사방 벽면에 꽉 들어찬 시험설비들에 달라붙어 긴장하게 작업하는 광경이 나타났다.

《저것은 우리 과학자들이 8월 7일 현지에 도착해서 한주일동안 기재를 전개한 후 처음 진행한 운반로케트 1계단조종장치시험장면입니다. 저기 구석에서 계기를 들여다보는 동무가 위성제작을 책임진 권종호후보원사이고 옆에 있는 동무는 로케트조종기사로서 체계공학박사인데 이번에 단단히 한몫 했습니다.》

김병린원사의 설명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권종호동무는 만나봐서 나도 아는데 이쪽동무는 몇살인지 아주 젊구만.》

《스물아홉살밖에 안되였습니다.》

《스물아홉살에 박사고 우주과학분야에서 한몫 하는 정도면 대단하오. 두뇌가 비상해도 이만저만 비상하지 않은것 같구만.》

《예. 머리가 아주 좋은 동무입니다. 유치원시절부터 수재로 소문났고 소학교 2학년때엔 벌써 리과대학에 가서 공부했는데 키가 식당 밥내주는 곳보다 작아서 상급생들이 밥을 타주어야 먹군 했답니다.》

3계단련동시험장면이 지나가고 김병린원사도 포함한 10여명의 과학자들이 공간을 넓게 차지하고 시험대차우에 누워있는 운반로케트본체앞에서 의견을 나누는 장면이 비쳐졌다. 김병린원사가 설명하였다.

《종합련동시험장입니다. 지금 손바닥에 곡선을 그리며 뭘 설명하는 동무는 운반로케트 1, 2계단의 추진제와 산화제를 우리 실정에 맞게 해결했고 그옆에서 인상이 찌붓해 듣고있는 동무는 금속전문가로서 티탄재료의 초소성가공법을 착안했습니다. 둘 다 평양과 지방의 1중학교를 거쳐 리과대학을 나온 동무들인데 나이들이 40전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원사의 설명을 들으시며 언젠가 국가과학원 원장이 재능있는 젊은 인재들이 많이 자라난다고 하던 말을 상기하시였다.

《듣자니 위성자리길을 우리 식으로 계산해낸 동무도 아주 젊었다던데?···》

《예, 그 동무도 30댑니다. 이제 마감에 발사시험략도를 설명하는 동무가 바로 그 동뭅니다.》

《나라의 1류급 젊은 재사들이 우주과학분야에 많구만. 좋은 일이요. 우리가 수재교육을 중시한것이 옳았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첫 인공지구위성발사를 앞둔 기쁨도 컸고 우주과학분야의 미래를 책임질 새 세대 과학자들이 많이 자라고있는것이 또한 기쁘시였다.

드디여 화면에 큼직큼직한 흑백의 다각형들로 정교하게 무이된 번쩍거리는 둥근 다면체가 나타났다. 허리부분에 안테나들이 빙 둘러꽂힌, 설명없이도 인공지구위성이라는것이 알리는 그 다면체를 보시는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눈굽이 후끈해오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오랜 세월 얼마나 바라마지않던 인공지구위성인가!

바라고 기다린것으로 말하면 이전 쏘련에서 첫 인공지구위성을 발사함으로써 세계를 경탄시킨 1957년 10월부터라고 해야 할것이다. 당시 그이께서는 중학생이였지만 쏘련에서의 위성발사가 얼마나 큰 의의를 가지는 세계적인 중대사변인가를 잘 알고계시였다. 하여 어느날 저녁 어버이수령님께서 그에 대한 감상을 물으실 때 이렇게 대답하실수 있었다.

《쏘련이 미국보다 먼저 인공지구위성을 발사한것은 자본주의제도에 대한 사회주의제도의 승리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령님께서는 그이의 대답이 만족하신듯 환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부럽지는 않느냐?》

《부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도 언젠가는 꼭 인공위성을 만들게 될것입니다.》

《암, 만들게 되구말구. 꼭 만들게 될것이다. 나는 그것이 적어도 금세기말쯤은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령님의 예견이 참으로 옳았었다. 잊을수 없는 그 저녁으로부터 꼭 41년이 지난 오늘 조국은 드디여 현대과학의 정수라고 하는 인공지구위성을 만들어냈으며 지금 발사를 준비하고있는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발사시간을 기다리고있다. 이제 저 아름다운 시험위성은 운반로케트에 실려 힘차게 우주공간을 향해 성공적으로 날아오를것이다. 인디아의 시인 타고르가 일찌기 말했듯이 동방의 등불로 다시 켜진 조선의 위용을 세계만방에 떨치면서 지구주위를 돌고돌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성공을 믿어의심치 않으신다. 허나 어이 알랴, 믿음이 곧 성공을 가져오는것이 아니고 과학기술의 발전력사에는 성공보다도 실패가 훨씬 많이 기록되여있다.

불안과 초조를 체험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12시가 거의 되였으리라는 생각에 록화기의 스위치를 끄고 시계를 보시였다. 4분전··· 그 4분간도 지나가고 마침내 12시가 되였다. 지금쯤 김병린원사는 지휘소에서 발사구령을 쳤으리라. 그리고 빠르면 6분경, 늦어 8분후에는 보고가 올라오리라. 그이의 눈에는 금방 화면으로 보신 운반로케트가 폭음을 울리며 발사대를 떠나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광경이 방불히 보이는것 같으시였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예상한 6분과 8분이 지나 10분이 되도록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 운반로케트는 발사된 때로부터 5분이내에 지구중력권을 벗어나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킨다. 책임서기가 집무실에 급히 들어온것이 바로 그 순간이였다.

《무수단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빨리 돌리오.》

말씀과 함께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전류 흐르는 소리가 몇초간 이어지다가 류광선대장의 목소리로 바뀌였다.

《장군님,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흥분한김에··· 이제야 보고드립니다.》

《성공입니까?》

《그렇습니다. 금방 11분 53초에 위성이 자기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지금 위성에서 〈김일성장군의 노래〉, 〈김정일장군의 노래〉선률과 〈주체조선〉이라는 모르스전신부호를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가슴조이며 안타깝게 기다리던 성공의 소식이여선가, 기쁨보다도 그이께서는 의혹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그런데 위성이 왜 이제야 궤도에 진입했습니까? 혹시 뭐가 잘못된건 아닙니까?》

《장군님, 아닙니다. 발사가 약간 늦어졌습니다. 12시 07분에 발사해서 정확히 4분 53초만에 진입했습니다. 모든것이 예견한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성공했음에 틀림없다. 그것도 어떤 성공인가. 그렇다, 우리는 첫 발사로 드디여 우주강국의 대렬에 들어섰다!

인민들이 얼마나 기뻐하랴! 고생많은 우리 인민들이···

그이의 눈에는 위성발사보도에 접하여 감격에 울고 웃으며 하늘을 향해 환호성을 터치는 온 나라 인민들의 모습이 방불히 보이는것 같으시였다.

 

조선에서 인공지구위성을 성과적으로 발사한 소식을 놓고 온 세계가 떠들고있던 그날 9월 5일 평양의 만수대의사당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가 진행되였다.

회의에서는 첫 의정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을 수정보충하고 둘째 의정에서는 우리 인민의 절절한 념원과 철석같은 의지를 담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하였다. 또한 회의에서는 국가지도기관을 선거하였다. 종전과 달라진것은 정무원을 내각으로 개편하고 국가계획위원회를 제외한 모든 위원회, 부들을 성으로 바꾼것이였다.

민족사에 또 하나의 환희로운 장을 기록한 공화국창건 50돐기념 행사들을 나흘 앞둔 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