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7

 

제 1 장. 이 땅, 저 하늘

17

 

원산시 석우려관 2층 5호실이다.

창문옆의 책상우에는 각종 문건들과 도면말이들이 쌓여있고 삐뚤서 돌려놓은 걸상우에서는 두개의 등잔불이 그물거리며 방안의 어둠을 태우고있었다. 토지정리중앙지휘부 설계분과장인 김흥복은 걸상아래 장판바닥에 런닝그바람으로 웅크리고앉아 초저녁부터 설계진척정형을 종합하고있었다.

그러던 그는 갑자기 전화를 끌어당겨 고산군려관을 찾았다. 그곳에는 고산군담당인 평양시농업설계연구소 소장이 있었다.

《거 금오리설계를 누가 했소? 소장동무가 검토하구 올려보낸거요?》

김흥복은 수자들을 종합하다말고 좀 류다른것을 발견했다. 다른데는 다 기준을 300에 놓고 설계를 작성했는데 금오리를 비롯한 몇군데만은 500으로 엄청나게 늘어났던것이다.

《그러잖아 나도 전화하자던 참인데···》

소장은 본래의 성미 그대로 뜨직뜨직 대꾸했다.

《거 금오리에 나가있는 우리 설계원들이 그러는데 그곳 관리위원장이 통사정을 해서 어쩔수없이 그렇게 됐다구 합디다. 자기네는 벌써 60년대에 300평짜리루 토지정리를 했으니 이번에는 좀더 넓게 해달라는거지요.》

《여보 소장동무, 그렇게 하면 좋은줄 누가 모른다오? 하지만 규모문제는 조부위원장동지가 전번 강습때 선을 그어준게 아니요. 그전에 나온 정무원지도서에는 기준이 보다 높지만 우리는 시간타산을 해야 한다, 기준을 무턱 높이 놓고 일판을 벌려놓았다가 다음해 영농시기까지 끝마치지 못하는 날에는 강원도 한해농사를 망치게 된다 하고 말이요.》

《거야 들은 소리지요. 하지만 말이웨다, 강습때 그런 소리도 있었지요. 현지주인들과 합심을 해야 한다, 주인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설계를 완성해야 한다··· 뭐 이러루한 말도 있었던것 같은데···》

여드레 팔십리격으로 뜨적뜨적 대꾸하는 소장의 어조에 김흥복은 화가 났다.

《소장동무, 종이우에 자를 긋고 하는 설계는 오백이다, 천이다 하고 그리기 쉬운데 실천이 따라가겠는지 생각해야 할게 아니요. 막상 불도젤들이 들이닥쳐보오. 전투를 사회주의경쟁식으로 할건 뻔한데 운전수들이 유독 자기네만 커진 설계의 요구를 따르느라 뒤꼬리를 차지하겠다고 하겠소?》

《나두 뭐 그러루한 소릴 하지 않은건 아니우다. 그런데 금오리쪽에서 한다는 대답이 그건 또 그때 가서 불도젤운전수들과 사업을 한다는겁니다. 형편이 궁하다고 모처럼 생긴 가죽으로 굳이 짚신총을 박을 까닭이 없다는거지요. 거기 관리위원장이라는 령감이 간단한 령감이 아닙디다. 정 할수 없다면 몰라도 할수 있는 토지정리를 제대로 안하면 죄악으로 된다, 나라의 어려운 사정이 포전을 작게 할 리유로는 될수 없다 하면서 제편에서 막 걸고듭니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금오리관리위원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김흥복은 한참이나 궁리를 짜내다가 이렇게 결론을 주었다.

《소장동무, 정 그러면 금오리담당 설계원들에게 만약을 생각해서 300짜리 설계도 작성해두라고 하오. 그때 가서 볼일이지만 설계선행을 못해서 토지정리가 늦어지는 일이 없도록 말이요.》

《이것 참, 당장 손포가 딸려 쩔쩔매는 판에 예비안까지 언제···》

《여보, 한가한 소리 하지 마오. 밤을 좀 패라고 하오.》

《밤이나 패는 정도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일하고있는줄 아슈? 지금도 현지측량을 나가 하루 150리걸음을 한 몸들로 코구멍이 새까매가지고 도면우에들 엎드려있는데 더 다그어대다가 밑천 놓칠것 같수다. 사흘갈 길 하루 가서 열흘 눕는단 소리도 있지만···》

또 말이 길어지려는것을 김흥복이 짤랐다.

《됐소, 됐소. 그만하기요.》

그것으로 통화를 끝내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흥복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느덧 12시가 다되였다.

중복골이라 밤이 어지간히 깊었는데도 방안은 여전히 무더웠다. 몸이나 식히고 들어와 일을 더할셈으로 그는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밤하늘은 구름 한점 없는 별천지고 송도원쪽에서는 미역내를 품은 바람이 가볍게 불어왔다.

주먹으로 량허리를 꾹 눌러짚은채 김흥복은 천천히 마당을 거닐면서 무심중 려관창문들을 올려다보았다. 원산시안의 협동농장들과 문천군을 담당한 설계원들이 든 3층창문들에서는 죄다 불빛이 흘러나왔다. 모두 등잔밑에서 공사량을 계산하거나 도면과 씨름하기에 여념이 없으리라.

국방위원회명령을 접수하고 설계원들은 요새 모두가 성수나서 일한다. 성수날수밖에 없었다.

지난 두달동안 그들은 너무도 어려운 환경에서 대상면적을 조사측량하고 설계를 선행시켜나가는 과정에 은연중 자신들의 이 수고가 과연 결실을 보겠는지, 혹시 불도젤수리나 연유사정으로 올가을에 시작 못할걸 가지고 우리만 들볶는건 아닌지, 또 이러다가 갑자기 정세라도 긴장해지면서 토지정리를 아예 단념하지는 않겠는지, 왜 중앙지휘부가 구성되지 않고 총책임자인 조만규부위원장서껀 여태 현지로 나오지 않는가 등 회의심에 사로잡혔었다. 그러던차에 명령이 떨어짐으로 해서 잡생각들이 저절로 사라지고 희망과 락관에 넘쳐 일할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하기야 얼마나 고생스러웠고 고생속에 일도 많이 한 지난 두달이였던가.

사흘동안 도당회의실에서 강습을 받고 둘 혹은 셋씩 조별로 도내 각지에 흩어진 5백여명의 설계원들은 어느 누구도 고생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았다. 했다면 어떻게 해야 불도젤작업에 지장없게 맡은 대상의 설계를 빨리 선행시키겠는가 하는 생각이 전부였다.

설계대상논판들을 톺느라고 주먹밥 한덩이를 허리춤에 차고 하루 백리를 걸어보지 않은 설계원이 누구이며 어느 측량수인들 삼복의 무더위속에서 논판물로 갈증을 덜어보지 않았으랴. 낮동안에 그렇게 조사측량한 자료들을 가지고 밤이면 등잔불밑에서 공사예산을 세우거나 설계를 그린다. 돋보기를 두개 끼고도 점과 선이 보이지 않아 확대경의 도움까지 받는 설계원들이 있다. 도면두리에 등잔을 두세개씩 둘러놓고 일하기도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번은 김흥복이 종합통계를 내려고 어느 도농업설계사업소 전망설계실장을 아침일찍 부른적이 있었다. 그 전망설계실장과는 이미전부터 잘 아는 사이여서 올 때 잎초가 있으면 한묶음 가져오라는 부탁도 해두었다. 그러나 정작 부른 사람은 오지 않고 초면의 얼굴이 새까만 사람이 와서 잎초를 내밀었다. 그때 김흥복은 부지런히 전자수산기를 누르다말고 주렸던김에 우선 담배부터 말며 물었다.

《실장은 어디 가고 동무가 왔소?》

《실장이요? 간밤에 죽었수다.》

상대방이 뻔한걸 다 묻는다는 식으로 심상하게 대꾸하는 바람에 김흥복은 깜짝 놀라 손에 쥐였던 담배를 떨구었다.

《뭣?! 아니 어쩌다가?》

그제야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았는데 죽었다는 전망설계실장이 앞에 앉아 웃고있지 않는가.

《엣끼, 롱담두 분수있어야지···》

《과장동무레 두눈 뻔히 뜨구서두 누구냐 하는데야 저승객이지 이승객입니까? 》

《이승이구 저승이구 거울부터 좀 보우. 꼭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 같소.》

전망실장은 그제야 짐작이 가는지 《아차, 내레 장밤 등잔불을 세개나 켜놓고 일한터에 비누세면하는걸 잊었구나!》하고 무릎을 치는것이였다.···

몸이 얼마간 식어서 흥복은 방에 올라가 다시 설계를 펼쳤다. 겨우 두건째 검토하고있는중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종합분과 과장이였다.

《조부위원장동지가 오셨소.》

《조부위원장이라니? 조만규부위원장 말이요?》

도면에 심취되여있은 까닭에 김흥복은 일순 얼떠름했다.

《원, 양덕 맹산을 돌아내리는 물이면 양산도겠지 륙자배길가?》

조만규부위원장이 옳다는 소리였다. 조만규는 그새 불도젤수리와 부속품생산을 지휘하느라고 평양에 올라가있었다.

흥복은 일어나 걸상등받이에 걸쳐놓았던 샤쯔를 주어입고 몇방건너 있는 종합분과사무실로 들어갔다.

《불들이 붙었구만, 이 밤중까지 일하는걸 보니···》

인사를 나누고 김흥복이 앉기를 기다려 하는 부위원장의 말이였다.

《예. 국방위원회명령이 떨어지자 모두 얼마나 세괃게들 해대는지 미처 검토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한데 부위원장동진 어떻게··· 일을 보고 또 들어가실 작정으로 나오셨습니까?》

《아니, 아주 나왔소.》

《불도젤수리전투는 대체루 결속된 모양입니다?》

《결속이라고 하기엔 이르지만 전망이 보이는건 확실하오. 이번에 국방위원회명령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완전히 달라졌소. 강원도토지정리다 하니까 남의 일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이 장군님의 의도를 알아차렸단 말이요. 지난 보름동안에 형세가 완전히 뒤바뀄소. 어디라 할것없이 이전에 열흘, 보름씩 걸리던 수리대수를 지금은 이삼일동안이면 돌파하는 수준이니까··· 》

《히야, 형세가 그 정도로 역전됐습니까? 장군님께서 정말 명철한 대책을 취해주셨구만요. 10월초부터 정리작업을 할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없지 않았는데 이젠 정말 신심이 생깁니다.》

김흥복은 조만규가 자리를 뜬 사이에 있은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보고하고나서 고산군에 나가있는 평양시농업설계연구소를 비롯하여 일부 설계원들이 기준면적을 예견보다 크게 잡고 현지주인들의 주견을 따르고있는 편향을 말할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밤이 너무 깊고 먼길을 온 부위원장이 피곤해하는것 같아보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