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6

 

제 1 장. 이 땅, 저 하늘

16

 

국방위원회명령을 관철하기 위한 군단당위원회 확대집행위원회가 끝난것은 오전 11시경이였다.

회의끝에 몇몇 사단, 려단정치일군들을 남으라고 하는 정치위원의 목소리를 등뒤로 들으며 회의실을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온 강룡은 선채로 송수화기를 들어 인민무력부 해당 부서에 회의정형부터 보고하였다. 그제야 다소 마음의 안정을 느끼며 쏘파에 앉아 담배를 피워문채 방금 끝난 집행위원회확대회의에서 토의된 내용을 상기해보았다.

토의가 다소 길어진것은 지난 5월 중순경부터 군단이 한개 공병련대를 투입하여 추진중에 있는 세포등판개간을 계속하는가 마는가 하는 문제가 상정되였기때문이였다.

정치위원은 국방위원회명령이 나온 조건에서 개간작업을 계속하면 력량이 분산되여 명령집행에 제동을 걸수 있으므로 중지해야 한다고 했다.

강룡은 모처럼 계획했던 일이 뒤로 밀리게 되자 서운한감이 없지 않았지만 결국 정치위원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보아 그만두는것으로 락착을 보았다.

문기척과 함께 후방부군단장이 들어왔다. 체중이 백키로에 가까운 부군단장은 매사에 무슨 의견이 많은 사람인데 지금 역시 앞상밑에서 걸상을 꺼내앉기 바쁘게 불만부터 쏟아놓았다.

《거 정치위원동무 생각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토지정리야 아무래도 10월부터 하겠는데 개간작업은 왜 벌써 중지한다는겁니까?》

《그야 아까 정치위원동무가 말하지 않았소. 래달에는 파종이 제기되구 9월엔 사회사람들보다 한발 먼저 토지정리현장에 진출해야 하기때문이라구···》

《내 말은 바루 그게 우습다는겁니다. 무우파종이야 넉넉히 잡아 보름정도면 할수 있는거구 토지정리장엔 한 열흘쯤 앞두고 나간다구 뭐이 잘못될게 없지 않습니까? 한뉘 살것두 아니고 천막을 치구 식당과 세목장이나 대충 꾸리면 될텐데··· 》

세포등판개간과 관련하여 그에게는 내놓고 말하는 하나의 야심이 있었다. 이제까지 전적으로 협동농장에서 받던 겨울김장용무우를 군단이 완전자체해결함으로써 전군의 후방부문 일군들이 머리를 숙이고 배우러 오게 하자는것이 바로 그의 꿈이고 야심이라면 야심이였다.

《생각이 그랬으면 회의땐 왜 말 못하구 이제 와서 뒤소리요? 뒤소리가···》

《회의때 나한테야 어디 언권을 주었습니까? 사, 려단사람들 의견만 들었지.》

듣고보니 강룡은 회의에서 정치위원도 그렇지만 자신도 후방부군단장의 존재를 좀 무시한감이 있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됐소. 그건 정치위원동무를 탓하기 전에 나를 탓하오. 그리고 이젠 결정된 문제요. 정치위원동무의 말대로 국방위원회명령을 잘 집행하기 위해서라면 50정보 무우밭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거라도 뒤로 미루어야 하오.》

납득이 가는지 후방부군단장은 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간 침묵이 흐른 뒤에 후방부군단장이 다시 문득 물었다.

《세포군과 평강군에서 빌려온 불도젤은 당장 돌려보내야겠습니다?》

《돌려보내되 새차처럼 만들어 보내야겠소.》

《거야 그러는게 옳지요.》

말이 났던김에 강룡은 제창 송수화기를 들어 땅크려단 참모장에게 지시했다.

세포등판개간을 위해 세포군과 평강군에서 빌려다쓴 불도젤 2대를 열흘동안에 원상복구해서 보낼 준비를 하라고··· 그리고 송수화기를 놓으며 후방부군단장에게 세포등판개간전투장에 언제 가보았는가고 물었다. 부군단장은 그새 식량을 끌어들이느라고 가본지 한달이 넘노라고 하였다.

《그럼 점심이나 먹구 같이 가기요. 나도 가본지 열흘이 넘었소.》

그로부터 한시간반이 지난 오후 2시경에 그들 두 장령이 탄 야전용승용차는 벌써 평강군지경을 넘고있었다. 군경계표식말뚝을 지나 차가 세포땅에 들어서자 뒤좌석에 군모를 벗어놓고 앉은 강룡은 후방부군단장이 매사에 두덜거리기도 잘하지만 력사에 매우 밝다고 하던 말을 들은 생각이 나서 물었다.

《듣자니 옛날 궁예가 도망하면서 맥이 진하여 여기 리목리 어느 배나무밑에서 쉬고 갔다던데··· 맞소?》

《틀리지 않습니다.》심심하던차에 말거리가 생긴것이 기쁜듯 후방부군단장은 군모를 벗으며 한절반 돌아앉기까지 하더니 자신의 력사지식을 털어놓았다.

궁예는 원래 몰락한 신라왕족출신으로 중이 되여 선종이란 이름을 가지고 절간에서 숨어지내던 인물이다. 그가 농민봉기군에 가담하는것으로 자기 계급을 배반했다가 다시 농민봉기군을 배반하여 태봉국을 세우고 왕이 된것은 901년이고 부하였던 왕건에 의해 망한것은 918년이다.

《그러니 궁예로 말하면 왕노릇을 17년동안 해잡순셈인데 그의 도망경로를 알자면 평강군 남양리에서부터 이쪽으로 올리훑어야 합니다. 남양리에는 국가보존유적인 고성산성이 있는데 궁예는 한동안 거기를 피난지로 리용했습니다. 복계리에는 전중이라는 고장이 있지요. 그건 당시 백성들이 진을 치고 궁예와 싸운 곳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고 상갑리는 도망하던 궁예가 갑옷을 벗어던진 웃마을이라는 뜻에서 부르는 지명입니다. 하갑리도 그렇고···

그런가 하면 하주리에는 옹주포라는 개울이 있습니다. 3천이나 되였다는 궁예의 어느 후궁이 낳은 옹주가 어째선지 빠져죽었다 해서 그렇게 부르는가봅디다. 거기 하주리에는 또 궁예가 송포리 범북산에 대고 활을 쏘았다는 사청산이 있고 하주리에서 신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웬고개라고 하는건 궁예왕이 허둥지둥 쫓기면서 이건 웬 고개가 또 있느냐 하면서 넘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였습니다.

평강군에서의 행적은 그렇고 다음이 여기 세포군 리목인데···》

부군단장이 예까지 이야기했을 때 강룡의 차는 길가에 기관실뚜껑을 들어올린채 서있는 반짐차곁을 지나쳤다.

《아니, 저 녀자가?》

반짐차곁에 서있는 깨끗한 양복차림의 젊은 녀자를 가리키며 후방부군단장의 눈이 덩둘해졌다.

서른대여섯쯤 될가? 보통을 넘는 후리후리한 키, 부하지만 균형잡힌 보기 좋은 몸매, 흰 얼굴과 뚜렷이 대조되는 검고 큰 눈··· 한마디로 잘생기고 풍채가 도도한 간부풍의 녀성이였다. 시창으로 점점 멀어져가고있는 그의 모습을 일별하며 강룡이 물었다.

《아는 녀자요?》

《안변군상업관리소 소장입니다. 좀 별난 일이 있어 알게 되였지요. 군단장동지 보기엔 어떻습니까? 이자 그 녀자 인물이···》

《나긴 잘났구만. 싯뿌연게···》

부군단장이 아래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런데 생긴 값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녀자가 영···》

《왜 무슨 욕이라도 봤소?》

《이건 좀 망신스러운 이야긴데 실은 제가 녀자의 인물만 보고 맘에 끌려 안변군당책임비서동무와 짜구서 홍철령이에게 붙여줄려다가 코를 떼웠습니다.》

《홍철령이면 공병련대장 말이요?》

《예.》

《뭐이? 차를 세우오.》

차가 급제동을 하는 바람에 부군단장의 군모가 한길이나 올리뛰였다. 부군단장은 군모를 주어들며 비상한 반응을 보이는 강룡을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홍철령이는 41사에서 대대장을 하다가 강룡이 군단장으로 온 이후에 공병련대장으로 제발되였다.

강룡은 그를 대대장시절부터 알고있었다. 군단장으로 부임되여 그의 대대를 처음 돌아볼 때 벌써 대단한 호감을 가지였던것이다. 생긴것도 씨원씨원할뿐아니라 손탁이 세고 절도가 있는데다 부대관리를 얼마나 알뜰하게 하는지 강룡은 그의 대대를 구석구석 돌아보면서 대단히 흡족했다.

식당을 돌아볼 때였다.

강룡은 《병사들을 위한 날》담당표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첫자리에 대대장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대대장동무, 물론 병사들이 동무가 담당한 날을 제일 기다리겠지?》

이것은 대대장의 깐진 살림살이에 감심된 강룡이 기분좋은김에 던진 질문이였다. 홍철령이는 그저 시무시 웃기만 하는데 대대정치지도원이 대신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대대장동무의 음식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뭘 그렇겠소. 아주머니솜씨겠지.》

그 순간에 식당칸안이 조용해졌다. 강룡이 이상해서 돌아보니 홍철령이는 슬그머니 눈길을 돌리고있었고 대대정치지도원이 바빠서 그사이에 끼여들었다.

《저, 대대장동문··· 홀몸··· 입니다.》

강룡은 아차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후에 정치지도원으로부터 그에 대한 자상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원래 홍철령의 안해는 전군단적으로 소문난 모범군인가족이였다. 황해도쪽에서 살다가 시집온 녀자였는데 수의축산전문가였다고 한다. 군단에서 돼지방목을 처음 발기해나선것도 그 녀성이였다. 홍철령의 대대가 군단적으로 살림살이 잘하는 구분대로 소문나게 된것도 홍철령이와 함께 그의 안해덕이 적지 않았다. 그러던 안해가 세해전 방목지에서 돼지를 구원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원래 독신군관들은 《병사들을 위한 날》대상이 아니였지만 홍철령은 그날만은 만사를 제쳐놓고 부득부득 앞치마를 두른다는것이였다.

강룡은 그날 너무도 충격이 커 홍철령의 집까지 찾아가보았고 그의 네살잡이아들의 손목을 잡고 오래동안 놓지 못했었다.

그만한 사람이 어데 있겠다구 마다한단 말인가.

《그런데 코는 왜 떼웠소?》

군단장의 격분을 리해 못한 후방부군단장은 《녀자가 코대 높은것도 높은거지만 홍철령이가 좀 괴벽하게 놀았지요.》하고 강룡의 호기심을 더욱 들쑤셔놓았다.

《대체 어떻게 놀았게?》

후방부군단장은 허허 웃기부터 하였다.

《내 안변군당책임비서동무와 짜고서 그날 책임비서방에서 저 녀자와 홍철령이를 맞대면시켰는데, 에에···》

《그 말 좀 빨리 하면 안되겠소?》

부군단장의 굼벵이 천장하듯 하는 말에 강룡은 짜증을 냈다.

《글쎄 그 홍철령이가 자기 소개도 미처 하기 전에 녀자에게 한다는 소리가 돼지를 길러봤느냐 이러질 않겠습니까, 글쎄···》

스스로도 어이없는지 부군단장은 쓴골을 지으며 차창밖으로 담배꽁초를 휙― 던져버렸다.

《하니 저쪽에서 뭐랍데?》

《뭐라겠습니까? 대번 새파래지더니 사람을 우습게 알지 말라며 방을 나가버렸지요. 결국 그 사람네 둘이 주고받은 말이란 고작 그게 단데 일이 아주 맹랑하게 끝났지요.》

일이 맹랑하게 되였다는 말은 옳았다. 그러나 강룡은 어째선지 그 혼사가 완전히 파탄되였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건 언제 있은 일이고 그 문제와 관련해서 홍철령이는 어떻게 생각하오?》

《일은 지난 정초에 있었고 홍철령의 립장이야 봉사 개천나무라는 격이지요. 〈돼지기르는것을 우습게 아는 녀자라면 그런 귀공녀를 데려다 어따 쓰겠는가? 그만두길 잘했다.〉 하는 립장인데 그래두 아쉬운감은 있는지 〈상대를 좀 파악하구 맞서야 하는건데···〉 하고 후회는 합디다.》

그렇겠지. 돼지를 길러본 경험이나 직위 같은건 다른 문제로치고 그런 인물잘난 녀자와 인연을 맺지 못한걸 아쉬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우선 사내가 아닐것이다. 홍철령이 왜 선보러 가서 녀자에게 그런걸 물었는가 하는건 리해되였다. 후방부군단장이 말했듯이 후처도 돼지를 잘 길러 군인들의 식생활에 이바지하는데서 열성이던 전처같은 헌신적인 녀자이기를 바라서 그랬을것이다. 하지만 군관의 안해라고 무조건 돼지 기를줄 알아야 한다는 법이 없다. 군관의 안해는 군관한테 시집왔다는자체가 벌써 일종의 헌신이지 돼지기르기가 훌륭한 군인가족의 첫째 징표일수는 없다. 그도 그렇거니와 자식 낳아기르는 방법 배워가지고 시집가는 처녀 없다고 세상에 군관한테 시집갈줄 미리 내다보고있는 녀자가 몇이나 될것이며 또 군관한테 가자면 돼지기르기를 미리 배워둬야 한다고 맘을 먹을 녀자 또한 어디 있겠는가.

우선 녀자쪽을 인정하는 립장에서 자신부터 그렇게 납득시킨 강룡은 화제를 이었다.

《본인은 그렇다치고 부군단장동무는 그쯤하고 물러났겠소?》

《물러날게 뭡니까? 다음날로 상업관리소에 육박해들어갔지요.》

《돌파구를 열었소?》

《좌절당했습니다.》

강룡은 쓰거운지 피쓱 코웃음을 쳤다.

《코웃음칠 일이 아닙니다. 내 그때 일을 생각하면··· 으―음···》

부군단장은 다시 말하기도 멋적은지 두툼한 입술을 씰룩대며 얼굴에 울기를 올렸다.

후방부군단장이 상업관리소장방에 다시 나타나자 조옥은 대뜸 경계심을 나타내였다.

벌써 상서롭지 못한 이 출현의 의미를 가늠하고 낯색이 랭담해졌다.

구태여 숨박곡질할 필요가 없다고 보아 후방부군단장은 제창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왜 왔는가 하는건 소장동무도 대체로 짐작이 가리라 보는데··· 그렇습니다. 나는 어제 있은 소장동무와 우리 홍철령련대장동무의 문제를 결착짓자고 해서 왔습니다.》

조옥은 응당 그러한 말이 나오리라는걸 알고있었다는듯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고 랭담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그 문젠··· 어제 이미 끝난것으로 전 알고있는데요.》

역시 예상하고있던 반응이여서 부군단장은 인정하는 의미에서 고개까지 끄덕여보였다.

《물론 소장동무는 그렇게 생각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서는 오해가 많을수 있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소장동무가 홍철령동무와 결혼한다면 후회될것이 없을것이라고 장담할수 있습니다. 홍철령동무가 돼지에 대해 말한건 동무의 정신상태를 타진해보려는 의도에서 그런것이라고 리해해넘기면 후날 오히려 즐거운 추억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조옥은 어제일이 생각키우는지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저같이 보잘것없는 녀자를 이토록 관심해주시는데 대해서는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절대 재혼하고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 련대장되시는분한테는 정말 미안합니다. 좋은 녀성을 만나 부디 행복하면 저도 기쁘겠습니다.》

점잖으면서도 단호한 거절이였다. 부군단장은 일순 대답이 궁했으나 그 녀자의 말속에서 모순점을 발견하고는 역습으로 넘어갔다. 어째선지 갑자기 말투가 거칠어지는것을 감출수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 묻겠소. 그렇게 절대적으로 재혼을 바라지 않는 동무라면 군당책임비서동무의 방에는 왜 나타났었소? 놀음삼아 왔던건 아니였을거고, 설사 모르고 우연히 왔었다쳐도 소장동무는 그때 거기 온것만으로도 책임이 없지 않고 따라서 우리는 문제를 같이 푸는 립장에 서야 한다고 보오.》

《···》

조옥은 여전히 귀머리를 쓸며 고개를 약간 꼬고 한동안이 지나도록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부군단장은 그 녀자의 침묵을 리치에 몰려 할말이 없어서가 아니면 마음속에서 어떤 동요가 이는것이라고 판단하고 한번 더 적절한 《압력》을 가할 필요를 느꼈다.

《혼사가 어느 일방의 감정이나 욕심으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군인들이요. 군인은 일단 목표를 정했으면 좀 거칠기는 해도 진심을 무기삼아 대방의 심장을 점령할 때까지 완강하게 돌진하오. 나는 소장동무가 이 점을 중시하기 바라오. 다시 상기시키지만 동무의 존재는 이미 한 인민군련대장의 마음속에 자리잡았소. 동무가 끝내 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좀 극단적인 방법을 쓸수도 있으니 알아서 조처하기 바라오!》

위협을 주느라고 반롱담삼아 던진 부군단장의 이 말은 결정적인 실패였다.

말이 없는 대신 귀머리를 쓸던 녀인의 왼손이 관자노리어방에서 일순 굳어지는가싶더니 볼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턱에 이르러 멈춰섰다. 너무 옥물어 피가 날것 같은 입술, 그때문에 긴장되여 파들거리는 볼편, 발부리에 박힌 쪼프린 눈길··· 미동도 없이 잠시 그런 자세로 서있던 녀인은 갑자기 숨을 흑― 그으며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떨기 시작하였다.

(으―응?!···)

모든 경우를 다 예견하면서 왔지만 상대방이 울수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못한 부군단장이여서 당황할수밖에 없었다. 그는 녀인이 우는 까닭을 알 재간이 없었다. 극단적인 방법을 쓰겠다는 소리가 억울해서 그러는가? 아니면 빠져나갈 길이 더는 없다는것을 알고 화김에 울어보는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아까 그자신이 말했듯이 《보잘것없는 녀자를 이토록 관심》해주는데 대한 감사의 울음일가?··· 우는 리유라면 어쨌든 그 세가지중의 어느것일텐데 어느 조항에 해당되든 그것은 이미 녀인의 마음속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것을 의미하므로 성공에 아주 가깝게 접근했다고 단정하며 부군단장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소장동무, 우리야 피차 인생을 알만큼 아는 사람들이 아니요. 내 말이 좀 지나쳤으면 용서하고 눈물을 거두시오. 무엇때문에 울겠습니까. 기쁜 일을 론의하면서··· 우리 웃으면서 리성적으로 문제를 풀어봅시다.》

이쪽에서 그러거나말거나 한동안 소리없이 울고난 녀인은 손수건을 꺼내 눈굽이며 입언저리를 꼼꼼히 닦았다. 그러더니 언제 울었던가싶게 푹 가라앉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부군단장동지 눈엔 저라는 사람이 뭐로 보입니까? 호강하며 자란 귀공녀같습니까, 봄바람에 들뜬 한창때의 경박한 처녀로 보입니까?》

무슨 설분이라도 한바탕 토할것 같던 녀자의 입에서 뜻밖에 담담한 소리가 흘러나오자 부군단장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그 어조에 무엇인가 무서운 폭발이 실려있다는것을 예감하며 그는 우선우선하게 웃었다.

《허허, 동무를 노엽혔다면 용서를 빕니다. 그러나 절대로 소장동무를 우습게 알아서 한 소리는 아닙니다. 내 말을 믿을수 없다면 나는 소장동무에게 다시한번 용서를 빌수도 있습니다.》

이 아름답고 홀홀치 않은 녀인을 설복하여 홍철령련대장과 결합시킬수만 있다면 그는 실지 그렇게 할 각오가 되여있었다.

녀인의 눈가에서 차거운 빛이 번뜩하더니 비수같은 말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용서같은건 필요치 않아요. 사람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동지들은 뭡니까? 날더러 돼지를 길러봤는가구요? 그래, 난 돼지도 못 길러본 녀자같습니까? 동지들 눈에는 우리 상업일군들이 돼지도 안기르고 농사도 안 짓구 누에도 치지 않으면서 모두 국가에서 나오는 상품이나 팔아주는 사람들로 보이십니까? 어쩌면 그런 질문을 한단 말입니까? 그게 사람을 우습게 아는게 아니고 뭡니까? 게다가 부군단장동지는 또 극단적인 방법으로 어쩐다구요? 그래, 날 홀쳐라도 가겠다는겁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는 저만이 고생을 하고있고 저만이 나라를 위할줄 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과 다시 상종하기 싫습니다!》

부군단장은 좀전의 그 엄엄하던 기상은 어디에 날려보내고 녀인의 맵짠 공격에 당황해했다.

(훌륭한 녀성이다. 내가 너무 서둘렀구나. 상대를 좀더 파악하고 맞서야 하는건데··· 홍철령이도 어제 나에게 이렇게 말했지.)

《듣고보니 동무의 격분이 충분히 리해가 됩니다. 그럼 전 그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하고싶은 말은···》

부군단장은 마지막말에 힘을 주었다.

《일이 이걸로 끝났다고는 생각지 말아달라는겁니다.》

···

《그러니 끝은 달아놓았다는 소리군.》

심드렁한 어조로 한마디 내뱉은 강룡은 갑자기 어조를 바꾸어 그루를 박았다.

《새겨둘것은 동무가 군단의 후방을 책임졌다면 응당 그 문제까지 끝까지 맡아안아야 한다는거요.》

《알았습니다.》

짤막한 대답이였지만 생각은 깊은지 부군단장은 달리는 군용차의 시창을 오래도록 응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