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5

 

제 1 장. 이 땅, 저 하늘

15

 

해가 벌써 중천에 떠오른 아침 8시경.

락랑구역 정오동에서 오던 넓은 길이 토성동쪽으로 꺾이면서 약간 가늘어지는 길목에 열두어명 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남자고 녀자고 할것없이 모두 배가 땡땡 부른 큼직한 배낭 아니면 가방을 가진 이들은 거개 원암이나 강남쪽으로 가는 자동차를 얻어타려는 사람들이였다. 개중에는 제대병사차림의 단정하고 름름한 젊은이도 있는데 땅크병출신 제대군인 최인국이였다. 제대되여 고향에 돌아온지 달포가 넘지만 최인국이 아직도 군복차림인것은 군복에 습관된것도 있지만 사복차림을 하면 도무지 위신이 없어보이기때문이다.

지난 달포간 체험한데 의하더라도 군복을 입었을 때와 사복차림을 했을 때 대해주는 사람들의 태도가 현저히 달랐다. 특히 처녀들의 경우 군복차림이면 훔쳐보는 눈길에 선망이 어려있고 《멋있는 사람이구나! 저런 남자가 청혼한다면 기꺼이 응할수도 있어.》하는 내심조차 느껴질 때가 있는데 양복차림일 때는 애써 점잔을 빼봐야 그런 내심을 읽을수 없어 섭섭하였다. 그도 이제는 먹은 나이가 적잖아 올해는 아니더라도 명년이나 늦어 후년쯤엔 장가를 들어야 할것이니 처녀들이 어떤 눈길로 자기를 보는가 하는것이 상당한 관심이고 이왕이면 늘 선망의 눈길속에 있고싶은것이 솔직한 그의 심정이였다.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최인국이도 강남으로 가는 차를 얻어타려고 나왔다. 강남군에는 이모와 4촌형네가 살고있다. 이모는 관리위원회 회계과장이고 4촌형님은 남새작업반 분조장이다. 그 두 집에서 며칠 묵으며 회포나 풀고 돌아와서부터 정식 군복을 벗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생각이였다.

제대될 때 결심한대로 그는 구역토지건설사업소 불도젤운전수로 입직하였다. 그때문에 어머니와 싱갱이를 좀 했다. 구역인민위원회 계획부원인 아버지는 《네가 그런 결심을 가지고 왔다면 좋도록 해라. 땅크병이 불도젤운전수로 되는건 틀리는 직업선택이라고 볼수 없다.》고 하는데 구역관내의 한 식료상점에서 책임자로 있는 어머니의 경우에는 생각이 좀 달랐다.

《무슨 소리냐. 군대에서 땅크를 운전했으면 됐지 사회에 나와서 또 그 쇠두꺼비와 씨름하겠니? 토지건설사업소라는건 힘이 없는 단위여서 그런 직장에 다니다간 총각이 값이 떨어져 장가도 온전히 못 간다. 어디 적당한데 들어가있다가 래년쯤 대학추천을 받도록 하자. 사람이란 목표를 높게, 멀리 두어야 한다. 너의 목표는 불도젤이 아니라 대학이야, 대학!》

그러한 어머니를 리해시키고 끝내 구역토지건설사업소에 입직할수 있었던것은 제대될 때 세포군토지건설사업소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군단장의 말을 잊지 않고 새겨둔 덕분이였다. 그때 군단장은 그들 형제들이 모두 군대복무를 한다고 하자 부모님들에게 자기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 모두 조국보위초소에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불도젤운전수가 되려는 동무의 생각을 지지하오. 땅크병출신 제대군인에게 있어 불도젤운전수처럼 리상적인 직업이 어디 있겠소. 유사시에 다시 땅크를 타자해도 그래 동무한테는 불도젤운전수가 되는것이 이모저모로 좋소.》

아들이 불도젤운전수가 되는것을 반대하여 그토록 강경하던 어머니도 군단장의 말에는 경우가 몰리는지 더 고집 못하고 승낙하는것이였다. 그렇다고 대학공부까지 단념해선 안된다는 조건을 물론 붙여서···

자동차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차를 얻어타려는 사람들만 몇명 더 늘어났다. 어머니가 이모와 사촌형님네 집에 보내는 그릇가지며 신발따위들이 가뜩 들어있는 배낭옆을 거닐며 이제나저제나 차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있던 인국은 가까이에서 새로 온 사람이 먼저 와있던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를 무심히 듣게 되였다.

《어딜 가자구?》

《송림엘···》

《송림엔 왜?》

《불도젤부속 구하러··· 강원도토지정리와 관련한 국방위원회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나.》

《그런데 자네야 피복공장 재봉기수리공이 아닌가?》

《전국이 총동원되라는 명령인데 왜 상관이 없어. 우리한테도 불도젤을 수리할 과제가 구역당으로부터 떨어졌네.》

《우리만 그런줄 알았더니 어디나 그것때문에 부글부글 끓누만.》

《그렇지 않구. 농장원들까지 호미나 도끼를 벼리자고 건사했던 리대판 한장이라도 있으면 다 내오라고 한다누만.》

인국은 어마지두 놀랐다. 이게 무슨 소린가, 강원도토지정리와 관련한 국방위원회명령이 떨어지다니··· 그는 렴치불구하고 두사람에게 다가가 우선 거수경례부터 붙였다.

《저는 땅크병으로 복무하다가 제대되여 얼마전에 구역토지건설사업소에 입직한 사람이지만 아직 출근하지는 않고있습니다. 동지들의 말을 들으니 강원도토지정리와 관련한 국방위원회명령이 하달된것 같은데··· 좀 자세히 말해줄수 없겠습니까? 》

두사람은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지만 인차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꾸더니 송림으로 부속품구하러 간다던 사람이 국방위원회명령호수며 하달된 날자, 명령의 기본내용과 당면한 불도젤수리를 위해 구역당집행위원회에서 어떤 문제가 토의결정되였는가 등 필요한 설명을 해주면서 이런 조언까지 덧붙이는것이였다.

《···여 제대군인, 이제부터 동무는 세가지 문제에 주로 신경을 써야 돼. 첫째는 어떤 처녀한테 장가를 들겠는가, 둘째는 어떻게 하면 남보다 부속품예비를 하나라도 더 조성하겠는가, 셋째로는 어떻게 토지정리기술을 빨리 높이겠는가.··· 전국의 불도젤이 강원도에 다 모여 경쟁을 하는 판에 땅크병이 뒤꽁무니를 차지해서야 안되지. 알겠나?》

최인국은 상대방의 조언에 그리 큰 의의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것은 강원도토지정리를 위해 전당적이며 전국가적인 조치가 취해졌다는 사실이며 국방위원회명령은 직접적으로 자기에게도 해당된다는 자각이였다. 국방위원회명령이라면 어제날의 전연병사 자기에게 내려진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이다. 배낭있는데로 돌아온 그는 담배에 불을 달아문채 천천히 배낭주위를 돌며 골똘히 생각하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모른다면 몰라도 알면서 이모와 사촌형네 집에 그냥 간다는것은 비량심적인 처사였다. 그는 더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끙! 배낭을 둘러메자 성큼성큼 집을 향해 걸었다. 어머니가 무얼 기껏 쑤셔넣어서 배낭이 돌덩이처럼 무거웠지만 지금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구역인민병원옆인 집에 들어서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제야 출근차비를 하고있었다.

《어째 들어왔니? 차들은 이제부터 움직이는데···》

전실 경대앞에서 화장을 하던 어머니의 의아한 물음이였다. 늘 조용하고 어머니의 일손을 잘 돕는 아버지는 지금도 부엌에서 구멍탄을 갈아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인국은 배낭을 벗어놓고 이마의 땀부터 씻었다.

《이모한테 가는걸 그만두기로 했어요.》

어머니가 분통을 닫아 빼람에 넣고 돌아섰다.

《왜?》

《강원도에 가야 하니까요.》

《으―응?》

무슨 소린지 몰라 어머니는 눈이 둥그래졌다. 인국은 전실바닥에 주저앉아 군화끈을 풀며 말했다.

《어머니, 난 오늘부터 출근해야겠어요. 이제 강원도에서 토지정리를 굉장하게 하는데 우리 사업소도 가게 됐대요.》

어머니는 어이없는지 잠시 말을 못하고있더니 지청구를 했다.

《나는 정말 네 일을 모르겠구나. 그럼 너도 그 시꺼먼 쇠두꺼비와 같이 강원도로 간다는거냐? 금방 제대되여와가지군··· 》

《금방 제대되였으니 더구나 가야지요. 그런데 어머니, 어머닌 그 말씀 좀 문화적으로 해야겠어요. 시꺼먼 쇠두꺼비가 뭐예요, 땅크의 사촌동생을 보구···》

《쇠두꺼비처럼 생겼으니 쇠두꺼비라는거지. 어쨌든 너는 그 토지건설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하는걸 그랬다. 봐라, 입직하자마자 벌써 이동작업인걸. 게다가 일년씩이나··· 얘, 인제라두 딴데 옮겨앉는게 어떻니? 낯을 익힌 다음에 얼굴 맞대고있던 사람들 보기 따분하지 않게 출근을 안한 지금상태에서 저리 말이다. 너만 좋다면 옮기는건 힘들지 않다.》

인국은 어머니의 심정이 리해는 되면서도 받아들일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건 안됩니다. 제가 전번에두 말하지 않았어요. 군단장동지와 한 약속을 어길수 없다고··· 더구나 지금은 전국이 달라붙어 강원도의 토지정리를 할데 대한 국방위원회명령이 하달되였어요.》

인국은 국방위원회명령이 언제 떨어졌고 명령관철을 위해 구역당집행위원회에서는 또 어떤 문제가 토의결정되였는가를 말하면서 이렇게 뒤를 이었다.

《···국방위원회명령은 곧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이예요. 그걸 뻔히 알면서 다른데 옮긴다는건 도피행위나 같고 군대에서라면 당장 총살감이예요. 그래 어머닌 이 아들이 그런 너절한 도피분자가 되기를 바랍니까?》

《얘가 말하는걸 보지? 암말이나 탕탕··· 에미를 뭘루 아는지···》

어머니는 눈에 노여움을 담았다. 그때 부엌일을 끝낸 아버지가 수건에 손을 문지르며 중재해나섰다.

《됐소, 여보. 내 보기엔 갸 말이 전적으로 옳은것 같으니 상관말고 어서 출근이나 하기요. 10분전이요.》

어머니는 그제야 시계를 보고 와뜰 놀라더니 가방을 찾아들고 바삐 복도에 나섰다. 아버지도 따라나가고 혼자 남자 인국은 허리를 짚고 전실천정을 올려다보며 허허 웃었다.

《이모한테 강남에서 제일 멋있는 처녀를 골라달라고 부탁하려 댔는데 좀 싱겁게 됐는걸··· 그러나 괜찮아. 중요한건 국방위원회명령을 받아안고 첫 출근을 한다는데 있으니까.》

어제날의 땅크병은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치며 다시한번 유쾌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