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1

 

제 1 장. 이 땅, 저 하늘

11

 

어느 고장에나 다 그 고장나름의 특색과 자랑이 있기마련이지만 추가령지구대의 중심등마루를 타고앉은 세포군에는 특히 그것이 많다. 세포군의 자랑이라면 우선 명승으로 이름난 삼방협곡과 위병치료에 특효가 있는 삼방약수를 꼽아야 한다. 천연기념물인 삼방왕제비꽃과 세포조선소도 유명하고 고구려시기에 쌓은 현리산성과 후평산성은 국가보존유적이다. 세포군에 대해 말하면서 세포등판을 외면해선 안된다. 세포등판은 백두고원이나 부전고원처럼 드넓지는 못하지만 역시 덕지대인 까닭에 비와 눈이 많이 내리고 바람이 세차기로 또한 유명하다. 3월말이나 4월초에 눈이 강산처럼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오죽하면 눈포, 비포, 바람포라는 말이 생겨났으랴. 하여 항간에는 그 세가지《포》때문에 군이름도 세포라고 한줄로 아는이들이 간혹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리해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 태봉국의 왕 궁예가 부하였던 왕건의 추격을 피해 도읍인 철원을 버리고 도망하던중 원남리에 이르러 많은 사람을 죽이고 개울가에서 피묻은 칼을 씻었다 하여 그 개울이름을 싯개(씻개)라고 하였다 한다. 세포라는 말은 그 《싯개》를 한자로 옮긴것인데 삼방리에 지금도 궁예의 묘가 있고 그 일대의 지명을 《궁예왕께》라고 한걸 보면 전해오는 이야기가 과히 랑설은 아닌것 같다.

오후 3시경.

궁예가 쫓기면서 강을 건늘 때 칼부림한 검을 던졌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는 검불랑등판에서 수천명의 군인들이 개간작업을 하고있었다. 측지수들이 각 구분대에 면적을 그어준데 따라 구분대는 중대단위로, 중대는 다시 소대별로 면적을 나누었기때문에 작업은 주로 소대단위로 진행되였다. 개중에는 전체 력량을 집중하여 하나의 대상면적을 포위공격하는 구분대들도 없지 않았다. 무성하게 자란 해묵은 잡관목숲을 불태우며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연기, 삽과 괭이로 시꺼멓게 끄슬은 땅을 파뒤집으며 잡관목뿌리를 들춰내는 내복바람의 병사들, 쇠바줄로 걸어서 나무등걸을 뽑고있는 두대의 땅크견인차··· 지금 등성이우에 있는 련대지휘부천막앞에서 쌍안경으로 그 모든것을 살펴보는 군단장 강룡의 기분상태는 좋지 않았다. 개간작업이 계획한대로 진척되지 않고있었던것이다.

한개 공병부대를 투입하여 황무지개간을 시작한지 이미 한주일째 된다. 일이 계획대로 되자면 어제현재로 10정보를 개간하여야 했다. 장마철전으로 개간을 끝내고 8월 초순경에 가을무우를 심자면 적어도 한주일에 10정보씩 제껴야 타산이 맞아떨어진다.

타산은 그렇게 세웠지만 련대장의 말이 오늘까지 해야 5정보 될지말지 하다니 그런 속도로 나가서는 50정보는 고사하고 30정보계선에도 이를것 같지 못하였다.

이윽고 눈에서 쌍안경을 뗀 강룡은 련대장에게 물었다. 련대장 홍철령은 구리빛얼굴의 듬직하면서도 결패가 있어보이는 상좌였다.

《그러니 동무의 견해는 뭐요? 개간실적이 왜 오르지 않는것 같소? 혹시 전투조직이 잘못되였거나 군인들의 열의에 문제있는건 아니요?》

《저는 전투조직이나 군인들의 열의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같은 면적을 가지고 경쟁적으로 하는 전툰데 어느 구분대가 전투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싶겠습니까? 지휘관들과 군인들의 열의는 상당히 높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실적이 계획보다 많이 처지고있지 않소?》

《계획과 실적을 일치시키려면 적어도 한개 구분대에 불도젤이나 뜨락또르가 최소한 한대정도는 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 》

홍철령의 엉뚱한 제안에 강룡은 눈이 휑해졌다.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가? 불도젤이나 뜨락또르가 어디에 있다고 그걸 내라는것인가?

《지금 품이 제일 들고···》련대장의 설명이였다.《시간도 많이 잡아먹는 일이 잡관목뿌리를 들추어내는겁니다. 수십년을 묵은 잡관목들이여서 뿌리가 얼마나 억센지 쇠바줄처럼 질깁니다. 불도젤이나 뜨락또르에 칼써레같은걸 만들어달고 땅을 긁으면서 뿌리를 잘라주면 개간작업이 훨씬 빨리 진척될것 같습니다.》

강룡은 련대장의 의견에 긍정도 부정도 할수 없었다. 부정하자니 리치가 명백하고 긍정하자니 뜨락또르나 불도젤을 해결한다는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개간작업을 빨리 추진시키자면 어차피 무슨 대책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이 얻어진 결론이였다.

《사회에 불도젤을 가지고있는데가 어딘것 같소?》

《군토지건설사업소에 있답니다.》

《군에 있다면 해결해보겠지만 불도젤이나 뜨락또르가 만사를 다 해결하는건 아니요. 모든것이 그렇지만 이 개간작업에서도 결정적인건 동무네 련대군인들의 열의와 의지요. 전투조직도 더 짜고들고 군인들의 열의와 창발성을 최대한 발양시키는 방향에서 노력하시오.》

《알겠습니다.》

한시간후에 강룡은 세포군토지건설사업소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경비원이 가리켜준 지배인사무실에서 그를 맞아준것은 상사령장을 단 군인이였다. 벽을 따라 빙 둘러놓여있는 걸상 한귀에 앉아 빈방을 지키고있던 상사는 강룡이 문간에 들어서는것을 뒤늦게야 알아보고 황황히 일어서며 거수경례를 붙였다.

《상사 최인국.》

알고보니 그는 자기네 군단의 땅크운전병이였다.

《동무는 뭣하러 여기 와있소?》

강룡은 엄한 어조로 물었다. 일개 사관이 사회기관에 들어와있는것은 어느 모로 보나 군률에 위반되였다. 상사도 군단장의 어조에서 추궁을 느꼈는지 차렷자세를 허물지 않고 급급히 사유를 설명했다.

《중장동지, 저는 오늘 제대명령을 받았습니다. 》

《그래서?》

어째선지 상사는 얼굴을 붉혔다.

《전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불도젤운전수가 되여볼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래서···》

《사전료해를 왔구만? 》

상사는 씩 웃었다.

《그런데 주인은?》

《금방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강룡은 고개를 끄덕여 리해를 보이며 앞상끝에 나와있는 걸상에 가서 앉았다.

《앉으라구. 고향이 어디요?》

《평양시 락랑구역입니다.》

《락랑··· 집엔 누가 있나?》

《집엔 부모님들밖에 없습니다. 남동생과 누이동생이 다 군대에 입대해서···》

《형제들이 다 군대에 복무하는구만. 아주 좋은 일이요. 집에 가면 부모님들에게 내 인사를 전하오. 귀한 자식들을 모두 조국보위초소에 보내주어 고맙단다고···》

《꼭 전하겠습니다. 아마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도 몹시 기뻐하실겁니다.》

강룡은 그때까지도 서있던 상사더러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상사가 앉기를 기다려 말했다.

《나는 불도젤운전수가 되려는 동무의 생각을 지지하오. 땅크운전병출신 제대군인에게 있어서 불도젤운전수처럼 리상적인 직업이 어디 있겠소. 포탑과 포신이 없어서 땅크대접을 못 받는 불도젤인데···그러니 불도젤운전수가 되라구. 동무도 그쯤한 각오는 가지고있겠지만 유사시 다시 땅크를 타자고 해도 그래 동무한테는 불도젤운전수가 되는것이 이모저모로 맞을것 같소. 내 말이 틀리오?》

최인국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발밑을 내려다보다 말고 벌떡 일어나 차렷자세를 취했다.

마침 그때 문이 열리며 사무실주인이 들어왔다. 보통키에 이마와 눈이 공허할 정도로 큰데 비해 턱이 덜 발달한 40대중반기의 사나이였다. 초면이라 서로 인사소개를 하고 앞상에 마주앉는데 최인국상사가 거수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군단장동지, 전 돌아가겠습니다.》

《왜, 지배인동무한테 사전료해를 마저 해야지?》

《이젠 료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군단장동지 말씀대로 불도젤운전수가 되겠습니다.》

《허허, 그래? 그렇다면 가도 되지. 사회에 나가서 제대군인답게 일을 잘해야 돼.》

《알았습니다.》

최인국상사가 문간에서 다시 거수경례를 하고 나가자 지배인이 말꼭지를 뗐다.

《우리 토지건설사업소라는덴 힘이 없는 기업소라 석삼년이 가도 찾아오는 손님이 없었는데 군단장동지가 이렇게 와주어 어쨌든 반갑습니다.》

《서둘러 반가워하진 마시오. 혹시 알겠습니까? 불편한 손님일지···》

웃으며 그렇게 말한 강룡은 담배갑을 꺼내 지배인에게 권하고 자신도 불을 붙여 피우며 찾아온 사유를 내놓았다. 듣고난 지배인의 얼굴에 대뜸 딱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불도젤이 없는건 아닌데 현장에 진출한 불도젤을 내놓고는 거반 병신이거나 환갑을 넘긴 늙은이가 돼놔서 제발로 걷지부터 못하는것들입니다.》

처음 강룡은 지배인이 롱담을 하거나 아니면 주기 싫으니 무슨 구실을 꾸미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같이 방을 나와 차고에 들어가보고는 인상을 찌프렸다. 움직이지 못한지 퍼그나 된것 같은, 페차에 가까운 10여대의 불도젤들이 온통 먼지를 들쓰고 주런이 서있는것이였다. 강룡은 어이없었다기보다도 분노를 느꼈다.

그는 참을수 없었다.

《여보, 동무가 한개 기업소의 지배인이 옳긴 옳소? 지배인이기보다 조선로동당원이 맞는가 말이요? 어쩌면 국가재산을 이렇게 관리하오? 틀려먹었소. 만약 군인이 땅크를 이렇게 관리했더라면 당장 군사재판에 넘겼을거요.》

무던해보이는 지배인에게도 할말이 있었다.

《아니, 군단장동지. 그 말씀 너무 과합니다그려. 우리도 국가재산을 관리할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뭘루 관리합니까? 고난의 행군에 들어오면서부터 기름은 고사하고 쬐꼬만 볼트, 나트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여보, 그 말같지 않은 소린 하지도 마오. 어려운 사정은 이곳뿐이 아니요. 동무말대로 한다면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지 못하고 망했다는게 아니요. 그러나 우리는 망하지 않았소. 동무넨 이게 뭐요? 동무네한테선 어려운 현실앞에 무릎을 꿇은 패배자의 행색밖엔 보이지 않소.》

《군단장동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할말이 없습니다. 변명하는건 아닌데 사회라는건 군대같질 않아서 정말 힘듭니다. 글쎄 기름과 부속을 받아본지가 퍼그나 된다니까요.》

(이런 무맥한 사람을 지배인자리에 앉혀놓았으니 불도젤들이 온통 저 꼴이 될수밖에··· )

강룡은 마주서있기조차 역스러워서 몸을 돌려 승용차로 다가갔다.

차에 오르기 바쁘게 운전사에게 지시했다.

《평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