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0

 

제 1 장. 이 땅, 저 하늘

10

 

저물녘이였다.

서쪽하늘에 비낀 노을을 배경으로 평원군경계를 넘어선 재빛승용차 한대가 순안읍을 그냥 통과하여 평양으로 들어오고있었다. 승용차 뒤좌석에 잠바차림으로 팔을 엇걸어 가슴우에 얹고앉아 묵묵히 시창을 내다보고있는 사람은 농업위원회 부위원장 조만규였다. 그는 영농사업지도차로 평안북도에 출장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였다. 열하루전 출장을 떠날 때의 계획이 그랬거니와 사실 그는 이번에 한주일쯤 더 머무르면서 도의 모내기총화까지 깨끗이 보고야 돌아설 작정이였었다. 그 계획을 변경하여 지금 이렇게 평양으로 들어오는것은 위원회로부터 빨리 올라오라는 련락이 왔기때문이였다. 조만규는 련락을 박천군에서 받았다. 결국 신의주에는 들어도 못 가보고 도의 책임일군들과 전화인사만 나누고 곧장 박천에서 떠나오는 길이였다.

조만규는 자기를 왜 부르는지 예고없이도 가늠하고있었다. 중앙기관 책임일군들의 회의에서 그만큼 비판을 받았으니 해임이 뒤따를것은 뻔했다. 각오는 하고있었지만 정작 사업을 인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허전했다. 그것도 나이들어 은퇴하는것이 아니라 사업상 과오로 말년을 장식한다고 생각하니 허망한 생각에 앞서 쓸쓸한 비애가 갈마들었다. 하지만 일은 이미 엎지른 물이였다.

시내에 들어선 승용차는 룡흥네거리에서 교통보안원의 신호를 기다리며 잠간 지체한 이래 다시 서지 않고 모란봉을 곧장 넘어 농업위원회청사에 도착하였다. 퇴근시간이 지난 때여서 운전사더러 집에 들어가라고 이르고 차에서 내린 조만규는 곧장 위원장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가 방에 들어섰을 때 위원장은 책상옆에 선채로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있었는데 눈인사와 함께 앉으라는 뜻으로 앞상을 가리켰다. 조만규는 앞상끝에 가방을 놓고 걸상을 꺼내 앉으며 시계를 보았다. 7시 46분이였다. 대방이 누군지 무슨 대상설계와 투자문제를 론하던 위원장의 전화는 얼마간 더 걸려서야 끝이 났다.

송수화기를 놓은 위원장은 자기앞에 놓여있던 얍슬한 타자문건을 내밀었다. 묶음이 두개였다.

《우선 이것부터 읽어보고 얘기하기요.》

조만규는 위원장이 주는 문건을 받아들었으나 표제를 훑어보고는 은연중 긴장되였다. 그것은 강원도토지정리와 관련하여 주신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말씀이였던것이다. 며칠전 류광선으로부터 강원도토지정리를 1년동안에 해제껴야겠다는 장군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조만규였지만 그것이 정작 눈앞의 현실로 닥쳐왔다고 생각하니 호흡이 다 가빠났다. 하지만 말씀내용은 더욱 놀라왔다. 온 나라의 불도젤을 다 동원하여 강원도의 토지를 명년 태양절까지 끝내야 한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고 형편이 좋지 않은 소요되는 불도젤들을 단 석달동안에 원상태로 살린다는것이나 그 석달동안에 수만정보의 대상면적을 조사측량하여 설계를 보장한다는것이나 모든것이 다 놀라왔다.

《그래 어떻소, 놀랍지 않소?》

조만규가 거듭해서 읽고 마감페지를 번지기 바쁘게 위원장이 물었다. 장군님의 말씀에 접하여 그도 같은 심정을 체험한 모양이였다.

《난 정신이 다 얼떨떨해집니다. 나로선 옹근 1년을 갑잘라도 안될것 같은 불도젤수리나 대상면적조사측량기간을 장군님께선 석달로 함축하셨군요. 솔직한 말로 위원장동무, 우리 농업부문에서도 혁명이 일어나는게 아닙니까? 태성호물길공사만 해두 아름찬데 한개 도의 토지정리까지···》

일순 환희에 가까왔던 조만규의 마지막말이 슬며시 잦아들었다. 그 혁명의 격류에 합류하지 못하고 밀려날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생각키웠기때문이였다.

《그러니 이젠 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일에 달라붙어야겠소. 나는 조부위원장동무만 믿소. 부위원장동무의 경험과 제낄손이면 힘은 좀 들더라도 막히진 않으리라 보오.》

위원장의 말에 조만규는 저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내 경험과 제낄손이라는건··· 하니 강원도토지정리를 나한테 맡기기로 토론이 있었습니까?》

《토론이 있었다기보다 장군님의 뜻이 그렇소.》

《예―에?!》

웬 소린가싶어 조만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금전까지만도 해임을 각오하며 이 방에 들어선 자기였다.

《래일 아침 중앙당에 들어가면 리한철부부장이 구체적인걸 말해주겠지만 장군님께서는 강원도토지정리〈사령관〉으로선 누구누구해도 조부위원장동무만 한 적임자는 없다고 말씀하셨소.》

조만규는 숨이 꺽 막히였다. 그는 왜 자기를 평북도에서 갑자기 불러들였는가 하는것이 비로소 리해되면서 장군님의 커다란 신임에 금시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릴것 같아 입술을 꽉 앙다물었다. 장군님께서 인생말년의 총화를 두고 고민하는 자기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회개의 기회를 마련해주신것만 같았다.

그런즉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기는 어찌할것도 없다.

위원장의 말대로 장군님께서 일단 결심하고 손수 시간표까지 작성해주신 이상 배수진을 치고 결사전을 해서 장군님의 의도를 무조건 관철해야 한다. 그러자고 우리 일군들이 있는것이 아닌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업니까?》

《당면한 과제는 불도젤수리와 조사측량선행인데··· 장군님의 말씀대로 불도젤수리는 중앙당에서 맡아가지고 오늘 벌써 도당책임비서들을 불러다 포치한것 같소. 우리로선 설계력량을 편성해가지고 강원도에 나가 조사측량에 달라붙는것이 급선무라고 보오.》

《지휘부도 조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밑에걸 마저 보오. 그게 바로 상설지휘부기구초안이요.》

위원장이 준 두개의 문건중에 하나가 그것이였다.

《장군님의 말씀을 받들고 리한철부부장이 정무원과 토론해서 기안한건데 말자체 초안이니 불합리한것이 있으면 의견을 제기하라두만.》

조만규는 문건을 훑어보았다. 리한철부부장은 워낙 깐깐한 사람이라 상설지휘체계나 현장지휘부구성에서 별로 문제삼을것이 없어 사람문제만 론의에 올렸다.

《설계분과는 위원회설계심사실장인 김흥복이가 맡아야 하고 종합에는 참모장격으로 토지과장이 나가야 합니다.》

《토지과장은 별일없겠지만 설계심사실장의 경우는 다른 일에 지장이 있지 않을가?》

조만규는 토지정리도 중요하지만 전반사업을 걱정하지 않을수 없는 위원장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그러나 강원도토지정리를 맡아안은 이상 이제는 제 욕심도 채워야 했다.

《요새 심사할 설계가 별로 없기도 하지만 설사 있더라도 그 사람은 데리고 나가야겠습니다. 장군님의 말씀대로 석달동안에 조사측량을 하고 설계를 선행시키자면 설계원을 적어도 한 오륙백명가량 동원시켜야 할텐데 김흥복이 아니면 틀어쥐지 못합니다. 실력으로도 그래, 통솔력으로도 그래···》

《부위원장동무가 꼭 써야겠다면 그렇게 하기요만 어쨌든 설계력량편성을 서둘러서 다음주부턴 강원도에 나가 조사측량에 달라붙어야겠소.》

위원장의 마지막말에서는 마치 판가리싸움을 앞둔 사람의 비장한 각오와 결패가 느껴졌다. 조만규 역시 두어깨와 온몸에 벌써 힘이 뻗쳐오는것 같았다.

《조직사업을 그런 방향에서 내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