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

 

제 1 장. 이 땅, 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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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ㅁ형의 농업위원회청사.

남향으로 김일성광장이 내려다보이는 3층 어느 방에서 키가 크고 몸이 부한 잠바차림의 사나이가 왼손으로 허리를 짚고 서서 앞상우에 펼쳐진 설계도를 내려다보고있다. 체격에 걸맞게 널직널직 박힌 이목구비, 바투 깎은 희슥희슥한 상고머리, 굵은 목과 넓은 가슴, 아량이 있어보이면서도 어딘가 날카로운 눈길··· 외관에서만도 벌써 지도일군다운 틀과 위엄이 풍기는 이 사람은 농업위원회에서 관개와 토지부문을 담당한 부위원장 조만규이다.

지금 그가 검토하고있는 설계로 말하면 중앙관개설계연구소에서 제기해온 《개천―태성호자연흐름식물길》설계이다. 설계자는 양수동력에 의한 종전의 관개체계를 전면부정하고 평안남도 서부일대에 완전자연흐름식의 새로운 관개망을 형성할것을 주장하고있다. 만일 설계가 실현되면 전력을 거의 쓰지 않고 내륙지대인 개천으로부터 서해변 온천, 증산까지 10여개 군의 관개용수가 풀리는것은 물론 이미 있던 수백개소의 양수장과 양수기를 철수하게 된다. 한마디로 구상이 매우 대담하고 경제적의의가 대단히 큰 설계안이다. 설계대로 물이 수백리구간을 수나롭게 흘러주겠는가 하는 의문은 있지만 리론적으로 모순되지 않고 납득이 되였다.

문제는 실현이다. 일반적으로 자연흐름식관개체계는 관리운영비가 적은 대신 건설비가 많이 들고 건설기간이 길어서 효과를 빨리 볼수 없다. 반대로 양수동력에 의한 관개체계는 운영비는 높지만 건설비가 적게 들고 효과를 빨리 볼수 있다. 평남관개와 어지돈관개를 비롯하여 전후 우리 나라에서 건설한 관개망이 양수동력체계로 된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이상기후현상이 지속되고있는 오늘의 현실은 양수동력에 의한 관개체계만으로는 나라의 알곡생산에 필요한 관개용수를 보장할수 없다는것이 최근 몇해동안에 얻어진 결론이다.

양수동력체계의 이러한 약점과 그것이 나라의 농업발전에 끼칠 후과를 누구보다 일찌기 간파하신분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이시였다. 세계가 아직은 지구온난화라는 말자체를 모르던 70년대 중반기에 벌써 천리혜안으로 30년후의 오늘을 내다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몸소 어뢰정을 타고 평안북도해안과 청천강하구수역을 시찰하신 후 10만정보의 간석지개간문제와 함께 서해지구에 장래를 예견한 새로운 높은 수준의 관개망을 형성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전문가들로 조직된 그루빠가 서해지구의 관개망을 검토한데 기초하여 몇개 단위들에 전망설계안을 만드는것으로 락착되였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전력이 넉넉하고 관개수의 부족을 별로 느끼지 않았기때문에 전망설계안작성은 보다 긴급한 설계과제들에 앞자리를 내주면서 완만하게 진행되였다. 지금 검토하고있는 《개천―태성호자연흐름식물길》설계가 바로 그런 완행렬차에 실려온 설계였다. 그러나 설계는 전력사정이 긴장해지고 관개용수가 모자라 나라의 알곡생산이 엄중히 위협당하는 오늘의 실정에 너무도 꼭맞는 해결책을 제안하고있는 점에서 국보적가치를 가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훌륭하였다.

(···초기투자가 너무 아름찬것이 문제이다!)

가슴우에 팔을 엇걸어얹고 천천히 앞상변두리를 따라돌며 조만규는 생각을 이어갔다. 어떻게 하는것이 옳은 선택인가? 이 설계를 그대로 정무원에 올려보내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것인가?···

총리와 부총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계를 보고 모두 욕심은 내면서도 건설비때문에 고개를 젓는 모습들이 눈앞에 방불히 보이는것 같았다.

(그래, 그러기 쉽다. 립장을 바꾸어 내가 총리라도 지금같은 형편에 물길건설을 하자고 자금을 내라면 화부터 날것이다. 하물며 빨라 5~6년후에나 덕을 보게 될 공사대상임에랴.···)

솔직히 말해서 조만규에게는 눈앞의 현실이 너무도 준엄하였다. 사회주의시장의 붕괴와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 해마다 덮쳐드는 자연재해로 하여 농업부문에 조성되는 난관은 조만규로 하여금 어느 하루도 발편잠을 잘수 없게 하였다.

특히 지난해에 서해안일대를 휩쓴 수십년래의 해일과 무더기비로 숱한 농경지가 류실되였을 때 그는 자연의 횡포함에 전률하지 않을수 없었다.

해일피해가 심한 평북도의 바다가농장들을 돌아보던 그는 부두에 닻을 내리웠던 어선이 파도의 장난으로 허궁 들리웠다 떨어지며 산산쪼각난것을 제 눈으로 목격하면서 자기의 머리속에서도 무서운 정신적해일이 일어나는듯싶었다. 이제까지는 한해만 참자, 다음해에는 형편이 나아지겠지 하면서 자기 마음도 다잡고 아래일군들에게도 맥을 놓지 말라고 강조해왔었다. 물론 지금도 말은 그렇게 하고있다. 하지만 그 말에는 이전과 같은 힘과 확신이 없다는것을 그는 스스로도 인정하는바였다.

과연 이 난관이 언제까지 지속될것인가. 우리 농민들은 언제 가야 나라앞에 떳떳할수 있겠는가. 농사군의 집안에서 태여났고 한생을 농업부문에서 일해온 조만규는 진정으로 농사를 천하지대본으로 믿어오고있다. 때문에 그는 나라의 식량사정이 해마다 어려워지는 문제로 늘 걱정속에 살며 한해사업을 총화지을 때마다 명년에는 무슨 수를 써서든 꼭 농사를 잘해보리라 번번이 결심을 다졌지만 정작 그 명년에도 형편은 달라지지 않아서 노상 죄의식을 덜지 못하는 그였다. 올해도 그렇다. 당장 모내기철이 박두했는데 아직 모내는기계용연유를 얼마 장만하지 못했고 모내기가 끝나는 차례로 주어야 할 모살이비료도 많이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형편에 5~6년후에나 덕을 보게 될 물길공사를 당장 하자고 주장한다는건 아무래도 현실을 떠난 공허한 주장으로밖에 달리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좋은 설계를 묵인다는것도 안될 말이였다. 사업상권한으로 봐도 이 문제는 자기가 결론할것이 아니여서 정무원에 올려보내 부총리들이나 총리의 의견을 들어보는것이 옳았다. 하여 그는 설계에는 별다른 의견이 없지만 나라의 어려운 형편을 고려해볼 때 당장은 실현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달아 위원회 설계심사과장 김흥복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래일 오전중으로 정무원에 들여보내오.》

김흥복이 문을 닫고 나가는것과 동시에 전화종이 울렸다. 전화상대는 뜻밖에도 안해였다.

《뭣때문이요? 》

가족들이 직장에 전화하는것을 질색하는 조만규여서 퉁명스럽게 물었다.

《퇴근이 늦어지겠수?》

《늦어지면?》

《안변누이가 왔길래···》

《안변누이라니, 조옥이가?》

조만규의 마음은 금시 너누룩해졌다. 조옥은 줄줄이 다섯이나 되는 작은아버지네 딸들중에서 그가 어릴적부터 남달리 귀애하는 막내사촌녀동생이다. 하지만 녀동생은 개인생활이 불행하였다. 몇년전에 남편을 차사고로 잃었던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에 대한 조만규의 련민의 정은 남달리 강렬한것이였다.

《알겠소. 인차 들어가겠소.》

그러나 그는 안해와의 약속을 지킬수 없었다. 퇴근시간을 앞두고 뜻밖의 손님이, 황해남도당 책임비서 로영태가 찾아온것이였다.

《어떻게 책임비서동무가 거름내나는 우리 농군들한테 다 왕림하셨소.》

《하―아, 그 말씀 귀에 선데요. 우리야 피차 동업자가 아닙니까?》

《하기사 곡창지대 도당책임비서니까···》

그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로영태를 쏘파에 이끌어다 앉힌 조만규는 책상우에서 담배와 재털이를 가져다 가운데 놓고 마주앉으며 물었다.

《무슨 일로 이리 갑자기 오셨소?》

로영태는 워낙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지만 손님의 례절이 그렇지 않아서 주인이 권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서툴게 한모금 빨았다.

《우리 벽성군 취야벌에 있는 배수양수장을 알지요? 》

조만규는 알아도 잘 안다. 그것은 해방전 《동척》이 공사를 시작했다가 일제가 패망하는 바람에 못한걸 전후 우리가 평남관개공사를 할 때 같이 완성한 관개시설로서 대형양수기만 해도 여러대나 설치되여있었다.

《거기 1단설비들이 로후해서 애를 먹을겁니다.》

《애나 먹이는 정도면 귀엽겠습니다. 이젠 아주 로망을 부립니다. 작년에는 한창 장마철인데 단번에 두대가 멎어서 숱한 논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수확감소를 많이 봤습니다.》

그럴것이다. 고난의 행군전에는 보수정비를 정상적으로 하였으나 그후에는 거의 손을 못 대다싶이 한 양수기들이였다.

로영태가 벽성군 취야벌의 배수양수장문제를 꺼낼 때부터 조만규는 짐작하고도 남았지만 결국은 양수기를 교체해달라는 소리였다.

《그런들 글쎄 양수기가 있어야 교체해도 할게 아닙니까. 그렇게 큰건 국가계획위원회에서 애당초 계획분으로 받아물지부터 않습니다.》

승벽도 워낙 센 사람이지만 한번 늘어붙으면 일을 내기 전에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로영태의 성미를 잘 아는 조만규여서 미련조차 못 가지게 결론을 명백히 해두었다. 그러나 역시 검질긴 로영태였다.

《그럼 두대만이라도 풀어주시오.》

《두대가 어디 있어서, 싹 쓸어 한대도 없는 판에···》

《부위원장동무, 날 얼려넘길 생각은 아예 하지부터 않는게 좋습니다. 농업위원회상사 창고에 대형양수기가 넉대나 있는걸 내가 모르는줄 압니까?》

조만규가 놀라자 로영태는 시물시물 웃었다. 사전정찰을 다 해가지고와서 들이대는 판이였다. 사람이 의뭉스럽기란··· 조만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넘겨다볼걸 넘겨다봐야지 그건 강원도에 줄겁니다. 이미 위원장동무가 결론도 했구 행표처리까지 돼서 실어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다고 쉽사리 포기하고 물러설 로영태가 아니였다.

《아니 부위원장동무, 강원도농사가 무슨 농사라구 황해남도를 제껴놓구 거기 준단 말입니까? 우리 연안이나 청단, 배천을 합친것만두 못한데다가··· 농업위원회는 경제사업에서 실리를 따져가며 일해야 한다는 초보적인 원칙도 없습니까?··· 이러구저러구 할것없이 그 양수기를 우리 도에 주시오. 농업위원회로선 그것이 실리에 맞게 잘하는 일입니다.》

《허허허···》

로영태가 마구다지로 나오는 바람에 조만규는 웃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천정을 쳐다보면서 한바탕 웃은 뒤 배에 힘을 주며 부정하는 론거를 폈다.

《물론 강원도농사가 황해도에 비기면 보잘것없는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책임비서동무도 알지만 강원도야 부침땅이 변변치 못해서 다른데보다 식량고생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적들과 총부리를 맞대고있는 군인들도 있구요. 우리가 상사에 비상용으로 건사하고있던 대형양수기를 강원도에 배정한건 바로 그때문입니다.》

《부위원장동무, 그런 말로는 나를 납득시키지 못합니다. 털어놓고 말해서 우리 도엔 뭐 군대가 없습니까?》

《그거야 누가 모를라구요. 그러나 배고플적엔 먼데 있는 떡그릇보다 가까운 죽그릇에 숟가락이 먼저 간다는 말이 있지요.》

《하니 끝내 한대도 못 주겠다 그 말씀이시오?》

로영태는 사뭇 성난 표정으로 최후통첩이나 하듯이 따지고들었다. 조만규는 물러설 길이 없었다.

《량해하시오다. 장차 생산만 시작되면 내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취야벌양수설비들부터 갱신하겠다는걸 약속합니다. 내야 책임비서동무도 그렇고 황해남도를 모른다고 할수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입이 쓴지 로영태는 삐뚤서하니 앉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조만규의 경우도 속이 좋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벌써 30여년전 일이지만 수령님께서 천거해주시여 조만규가 서해안의 어느 한 종합농장 지배인으로 부임되여갔을 때 그를 처음 맞아주고 평양에서 이사짐까지 실어다준것은 당시 총각으로 농장 당위원회 부원이던 이 로영태였다. 그후 로영태가 다른 곳으로 소환되여갈 때까지 3년반동안 같이 있는 사이에 조만규는 많은 면에서 그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 깊은 인연에 도당책임비서의 체면도 있건만 이도저도 다 무시할수밖에없는 조만규의 심정이 결코 편할리 없었다.

《회의에 왔다가 행여나 해서 들어와 한번 미련을 부려보았는데··· 안됐습니다. 요새 형편에 농업위원회라구 무슨 용빼는 수가 있겠습니까. 부탁은 아까 말한대루 생산이 시작되면 꼭 우리 벽성 취야벌배수양수장부터 생각해달라는겁니다.》

언제 강짜를 부렸던가싶게 로영태는 우선우선한 어조로 말하며 갈셈인지 가방을 쥐였다.

《책임비서동무의 부탁을 잊지 않겠습니다. 부탁이라야 실은 우리 일이지만··· 한데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싱겁게 헤여지겠습니까?》

마침 퇴근시간도 되였겠다 조만규는 집에 가서 하루밤 류하면서 묵은 회포라도 좀 풀자고 하였다. 그러나 로영태는 고개를 저으면서 일어났다.

《나도 그러고싶기는 한데 안될것 같습니다. 빨리 포치해야 할 문제도 있고 더구나 래일 첫시간에 도당전원회의를 해야 합니다.》

사정이 그렇다면 더 붙잡을수도 없어 조만규는 현관까지 따라나가 로영태를 바래워주었다. 바래우는 마음이 어쩐지 가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