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이야기

 

마감이야기

 

그해 추위는 그해에 다 한다는 소리가 틀리지 않았다.

1999년 12월이 례년에 비해 퍼그나 더웠고 새해에 들어서서는 소한, 대한추위가 별로 맵지 않더니 정월도 말에 이른 이 며칠간 서북부내륙지대의 기온은 령하 23도선에서 머무르고있었다. 게다가 어제 오후에는 전반적지역에 눈이 내렸고 눈이 멎자 어둘녘부터 바람이 터졌다. 서풍인지 동풍인지 방향을 가늠할수 없는 바람은 아직 다져지지 않은 눈을 마구 휩쓸어안고 미친듯이 질주하다가는 갑자기 회오리쳐 공중에 떠오르며 눈기둥을 세우거나 눈보라의 장막을 펼친다.

정적… 시간마저 정지된듯싶다.

허나 그것은 순간이다.

바람은 인차 허공에 세웠던 눈기둥을 허물어가지고 태를 치듯 땅에 곤두박혀 이번에는 커다란 혀로 눈덮인 벌판을 핥으며 어디론가 달려간다. 갔다가는 다시 성난 맹수마냥 울부짖으며 돌아와 닥치는대로 잡아흔들고 물어뜯다가는 또 휘파람을 불며 내닫고…

김정일동지께서 평안북도의 토지정리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기 위해 태천군을 찾은 2000년 1월 24일은 이처럼 춥고 사나운 날씨였다.

지난밤 경공업부문 일군들과 나라의 경공업발전방향과 당면한 인민소비품생산문제를 협의하느라고 꼬바기 새운 그이께서 첫새벽에 평양을 떠나 녕변군 관하벌을 거쳐 은흥리에 도착하신것은 아침 8시경이였다.

해는 떠올랐으나 바람때문에 직관물들을 눕혀놓은 전망대우에서 류광선차수와 토지정리를 맡은 인민군지휘부의 장령들, 조만규부상, 평안북도당 책임비서 등 현지의 책임일군들이 그이를 맞이하였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조만규부상과 웃음속에 이런 대화를 나누시였다.

《안변군상업관리소장인가 한다던 사촌녀동생, 이름이 조옥이던가?》

《그렇습니다.》

《그 동무문제는 그후 어떻게 되였습니까?》

《장군님께서 못쓰게 만든 부침땅을 원상복구해주신 덕분에 처벌을 면하고 자기 사업을 그냥 하다가… 최근 결혼했습니다.》

《결혼? 누구와?》

《홍철령이라고 39군단…》

《누구?》

바람소리때문에 말이 잘 들리지 않아서 그이께서는 고개를 돌려 되물으시였다.

《39군단 공병련대장입니다.》

《그럴줄 알았소. 내 마장리에서 말했지, 이젠 옆에서 끓지 않아도 된다구…》

류광선차수가 한마디 끼여들었다.

《그 동무가 지금은 39군단 군인상점부문에서 사업을 하고있습니다.》

《강룡동무가 별로 왼심을 쓴다 했더니 그 일을 시키자고 그랬던거구만. 허허… 그 동무들에게 전하시오. 서로 깊이 리해하며 부디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을 허리뒤에 뫃고 웃몸을 약간 젖히신 자세로 한드레벌을 부감하시였다. 지난날 가난한 이곳 농민들이 올망졸망한 뙈기논들에 물을 한드레박씩 퍼서 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이름도 그렇게 지어진 한드레벌, 눈물겨운 과거를 간직한 그 벌이 지금은 일망무제의 대평원으로 변모되였다.

눈이 덮였지만 선명하게 드러나는 널직널직한 포전들, 평행선을 그으며 곧게 뻗어나간 간선과 지선수로뚝들, 필지를 갈라주는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한 포전길들, 논판마다에 쌓여있는 피라미드모양의 거름무지, 멀리 산기슭에 아담하게 들어앉은 문화주택마을…

보기만 해도 즐겁고 흐뭇한 정경에 어떤 류다른 의미를 부여하듯 해빛을 받아 이따금 은구슬처럼 반짝이며 신비로운 빛을 발산하는 눈보라…

그야말로 보고보고 또 보아도 싫지 않은, 인간의 아름다운 리상과 의지에 따라 재창조된 대자연의 장엄한 풍경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만규부상에게 한드레벌을 정리하고 얻은 토지가 몇정보인가를 물으시였다.

부상은 바람때문에 똑똑히 듣지 못했는지 동문서답으로 한드레벌면적이 총 2천 8백정보라고 했다. 그이께서 장갑낀 손으로 바람을 막으며 보다 큰소리로 재삼 물어서야 부상은 정리하고 얻은 토지가 56. 2정보라고 역시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평북도에서 계획대로 토지정리를 다 하면 얼마만 한 토지가 더 늘어나오?》

《4 000정보가 늘어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기쁨을 누를길이 없으시여 흥분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대단하구만! 4 000정보면 웬간한 산간지대 한개 군 부침땅이나 같소. 평북도에 확실히 알곡생산예비가 많소.》

그때 류광선차수가 바람이 세고 날씨가 차서 대화를 나누기 불편하므로 가설막안에 들어가셨으면 한다고 권하였다.

그이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가설막으로 들어가시였다. 이런 추운 날씨를 예견하여 준비한듯 가설막안에는 밖에 눕혀놓은것들보다 축소된 평북도토지정리총계획도며 한드레벌과 녕변군 관하벌, 곽산군 안의리벌 토지정리설계안들이 전시되여있었다.

조만규부상이 그새 진행한 평안북도토지정리진행정형에 대해 보고드렸다. 일이 놀라울 정도로 빨리 진척되고있었다. 정리작업을 시작한지 석달이 채 못되는 기간에 총계획면적의 70%이상을 정리한 폭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상이 보고를 끝낸 뒤 총계획도와 설계안들을 일일이 료해하신 다음 일군들을 향해 돌아서며 말씀하시였다.

《…지난해에 안변군 풍화리에서도 말한바 있지만 평안북도의 토지를 정리한 다음에는 황해남도에 달라붙어야 합니다.

평안남도의 토지는 개천―태성호물길공사를 끝낸 다음 정리해야 합니다. 최근에 보고받은데 의하면 내각에서는 개천―태성호물길공사를 3년동안에 완공할 계획입니다. 때문에 평남도에서는 먼저 물길공사부터 해제끼고 농사를 안전하게 지을수 있을 때 토지정리를 하는것이 좋습니다.》

그이께서는 개천―태성호물길공사와 관련하여 필요한 가르치심을 주신데 이어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여기 토지정리사업이 괜찮게 진행되는것 같습니다. 오면서 돌아본 녕변군 관하벌도 잘했지만 이 한드레벌토지정리는 더 잘했습니다. 정말 멋있습니다. 대단히 만족합니다. 한드레벌이 천지개벽되고 구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에 이 한드레벌을 스물다섯명의 지주가 소유하고있었다는데 이제는 그 지주들이 토지문서를 가지고 와서 제땅을 찾자고 해도 찾지 못할것입니다. 한드레벌이 그야말로 사회주의국가의 토지답게 되였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류광선차수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미소를 머금었다.

《이 고장 농민들이 제기합니다. 장군님께서 천지조화를 일으켜 뙈기논투성이던 한드레벌을 옥토벌로 전변시켜주시였는데 이왕이면 벌이름도 새롭게 고쳤으면 좋겠다고… 농민들의 소망이 그러니 오셨던김에 저리 뜻깊은 이름을 하나 지어주셨으면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벌이름을 고친단 말이지…》라고 하며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시였다.

농민들로서는 충분히 할수 있는 생각이고 제기였지만 그이의 견해는 다르시였다.

《아닙니다. 한드레벌이 옛모습을 찾아볼수 없게 정리되였다고 하여 벌이름을 다르게 지을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이 이름을 그냥 둬두어야 오래전부터 한드레벌이라고 부르던 땅이 로동당시대에 천지개벽되였다는것을 후세에 길이 전할수 있습니다. 한드레벌이라는 이름을 다르게 지어부르면 자라나는 새 세대들은 이 벌이 원래부터 이렇게 잘 정리되여있은줄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때문에 한드레벌이라는 이름은 고치지 말고 그냥 둬두어 후대들이 우리 농민들의 피눈물을 짜내던 지난날의 한드레벌과 기계농사를 지으며 행복의 낟알을 거두어들이는 오늘의 한드레벌을 대비해보면서 고마운 우리 제도를 튼튼히 지켜가게 해야 합니다. 한드레벌이라는 이름은 우리 농촌의 과거와 현재가 비껴있는 력사의 대명사입니다.》

밖에서는 또다시 눈보라가 터졌는지 우― 우― 소리가 가설막을 뒤흔든다.

그이의 말씀에 공감하여 일군들이 모두 숙연한 생각에 잠기는 속에 조만규가 말씀드렸다.

《저희들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말은 간단히 했지만 조만규의 심중에서도 세찬 격랑이 일고있었다.

옳다, 천년이 간들, 만년이 간들 우리 어찌 한드레벌이라는 이름을 잊을수 있으랴. 천지개벽의 새 력사를 맞이한 이 나라의 대지와 함께 한드레벌도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우리 장군님께서 지니신 위대한 애국충정을 노래할것이다.

세월과 함께 강토는 변한다 해도 그 강토우에 새겨진 위인의 업적은 력사와 더불어 영원히 남아있으리니 한드레벌이여, 너 눈보라 사나운 이 겨울날 네 품에 찍혀진 우리 장군님의 발자취를 고이 간직해 후손만대 전해가라!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행한 총정치국 부국장이 솜옷소매를 들추고 시계를 보는것을 띠여보시고 시간을 물으시였다.

10시 3분이라는 부국장의 대답에 그이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예정한 시간보다 거의 한시간을 초과한것이였다.

《안되겠구만, 이젠 가야지.》

기다리고있는 다른 중요한 사업들때문에 더 지체할수 없어서 그이께서는 벗어쥐고있던 장갑을 손에 끼며 문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밖에서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있었다. 그러나 아까보다 바람세가 많이 꺾이여 간헐적으로 휙, 휙 불어치기는 하지만 가시가 빠지고 눈보라도 일으키지 못하였다.

일군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야전차에 오르시기에 앞서 장갑낀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으신채 다시한번 한드레벌을 전망하시였다.

눈뿌리가 시도록 아득히 펼쳐진 대평원, 비록 눈에 덮였어도 약동하는 기운을 조용히 묻어두고 봄을 기다리는 벌…

이제 아지랑이 피여나는 봄이 오면 저 대지는 달아오른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고 청춘의 심호흡을 할것이다.

그렇다, 젊음은 아름답다. 그리고 젊음은 많은것을 약속해준다.

대지도 같을것이다.

김정일동지의 눈앞으로 백화가 만발하고 오곡백과 주렁진 이 나라의 토지들이 우줄우줄 줄을 지어 품안으로 다가드는것만 같았다.

선군8경중의 하나로 꼽힌 한드레벌이 이날 김정일동지의 기억에 깊이 새겨진 모습은 그러한 청춘의 아름다운 모습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