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5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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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깊이 잠들었던 대지가 깨여나기 시작하였다.

희끗희끗 널려있던 잔설들이 자취를 감추고 봄기운이 완연해진 1980년 3월 수도 평양의 건축가들과 건설자들은 뜻깊은 4월의 명절을 앞두고 많은 일을 해놓았다. 동평양의 문수벌에는 평양산원이, 보통강반의 천리마거리에는 창광원이 완공되여 아름다운 모습을 펼치였다.

수도건설자들은 창광거리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빙상관, 천석식당(청류관)을 비롯한 여러 대상건설에 착수하였다.

수도건설의 열풍이 세차게 타번지는 이 봄에 대동강반의 주체사상탑건설장에서도 마침내 여러달동안의 준비끝에 온 세상에 서곡을 알리는 뜻깊은 날을 맞이하였다.

이날 동평양 강안일대는 이른 새벽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설레였다. 착공식에는 전국 각지 당조직들에서 선발된 당원돌격대원들,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위원들, 항일혁명투사들을 비롯하여 수만명의 군중이 모였다. 행사참가자들이 공사현장의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도 넘쳐나서 한쪽으로는 옥류교까지, 다른 한쪽은 대동교까지를 메웠다. 강건너 대안에도 여기저기서 모여온 군중이 운집하였다. 수많은 기발과 대형글발들이 강바람에 펄럭이였다.

성대한 착공의식이 끝나자 공사장에서는 기초굴착작업이 벌어졌다. 알락달락한 고무풍선들이 날아오르던 하늘로 대형굴착기의 팔들이 뻗치고 륜전기재들의 요란한 동음이 대기를 울리였다. 날이 어둡자 외등불빛으로는 성차지 않은지 여기저기서 모닥불이 타올랐다.

돌격대원들은 낮에 밤을 이어 전투를 들이대여 방대한 기초파기공사를 닷새동안 끝내였다. 련이어 기초타입작업에 들어갔다. 높은 작업속도에 건축계의 로장인 김광성도 좀 얼떨떨해질 지경이였다. 그렇게도 론의가 많던 기초안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였다. 이제 와서 김광성은 전적으로 공사의 질에 대해서만 마음을 썼다.

남들이 와와 기세를 올릴 때 덩달아 같이 뛰기만 할것이 아니라 한쪽에서 자중하는 일군도 있어야 한다는것이 그의 지론이였다. 남들이 침체되였을 때 그들을 불러일으키는것이 당일군의 직분인것과 마찬가지의 리치가 아니겠는가.···

김광성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심사숙고하시오··· 심사숙고해보란 말이요.》 하는 말이 자주 튀여나왔다. 타입현장이나 시공도면을 강조하듯 곁의 일군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군 하였다. 그 눈빛에서는 《덤비지 마시오. 이신작칙한다는 의미를 똑똑히 알란말이요.》 하는 뜻이 번뜩이는것이였다. 그렇다. 그가 이즈음처럼 당적책임감을 자각해본적은 일찌기 없었다.

현장에 노상 붙박혀있다싶이 하던 그는 작업과정에 생기는 열을 제거하기 위하여 랭각관을 설치할 때도 타입공들과 함께 있었으며 때로는 랭각퇴수관을 손으로 오래동안 매만져보며 온도를 가늠해보기도 하였다. 그는 수시로 현장일군들과 함께 콩크리트구조물의 상태를 관찰하기도 했다. 김광성의 가슴은 들먹이였다. 이제 얼마 안있어 완성될 기초우에 기단이 형성되고 탑신구조물이 일떠설것이다. 대견함과 흥분과 불안··· 이런 엇바뀌는 감정속에서 김광성은 간혹 미흡한 구석이 눈에 뜨일라 하면 즉석에서 날카롭게 지적하거나 핀잔을 주었다.

《왜 시공도면을 휴계실에 둬두고 다니오? 가슴에 품고 수시로 봐야지 않소? 그래 작전도를 줴팽개치고 다니는 군사지휘관이 어디 있는가 말이요?》

《한다하는 고급기능공의 솜씨가 그게 다요? 다짐작업의 질을 훨씬 더 높여야겠소.》

시공자들은 누구나 그런 말을 잔소리이거나 필요없는 로파심으로 여기지 않고 지적받은 점들을 고치려고 애썼다.

이무렵에 건설장에 새로 투입된 군인들이 수직거리 150m 높이까지 콩크리트혼합물을 쏴올릴수 있는 대형압송기를 끌어다놓고 벌써부터 탑신공사를 준비하고있었다.

어느날 저녁 김광성은 시당합숙에서 간단히 저녁요기를 하고 오래간만에 자기 사무실에 들렸다. 요즈음 비는날이 많은 방이였다. 그것을 말해주듯 석대씩이나 되는 책상우의 전화기도 침묵속에 잠겨있었다.

그는 불을 켜고 모자와 반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방안은 훈훈하였다.

얼마후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그는 괜히 량수책상의 빼람들을 열었다 닫았다 하였다. 꼭 무엇을 찾아내려는것도 아니였다.

오른쪽 아래빼람에는 그가 바쁜속에서 간단간단히 요기를 하군 하는 빵봉지들이 있었다.

며칠전 외국공연에 나간 안해와 (그 녀자는 오랜 피아노수이다.) 음악무용대학에 다니는 딸애가 때식을 번질세라 김광성이 좋아하는 빵을 가져오군 하였다.

김광성은 왼쪽빼람을 열고 두툼한 스케치철을 꺼내서 몇장 번지다가 도로 넣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평양종로보통학교에 다니던 소년시기에 벌써 미술전람회에 풍경화를 출품하여 전문화가들과 어깨를 겨룬적이 있는 미술애호가였다. 설계가가 된 다음에도 김광성은 손에서 그림을 놓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싹튼 미술에 대한 애착과 미련때문에 달리는 승용차나 렬차나 려객기에서도 즐겨 화필을 들군 하였다.

그런데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던 미술에서, 조형예술 그 창조의 세계에서 자꾸만 멀어지고있는것 같았다.

평설계가도 아니고 한때는 수많은 설계가들을 책임진 기사장, 지금은 시당비서라는 직책이 그로 하여금 예술의 세계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는것이다.

이튿날 아침에 그는 곧바로 탑건설현장에 나갔다. 기초와 기단타입이 끝나고 탑신도 상당히 올라갔다.

한데 어느 한 시공참모가 찾아와서 이미 타입을 끝낸 기단의 맨 아래부분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김광성은 모래와 자갈더미우에서 미끄럼을 타듯 달려내려가 집채같은 기둥의 한쪽 모서리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같이 따라내려온 시공참모한테 물었다.

《그래 동무생각엔 이게 뭐라고 생각되오?》

《글쎄··· 균렬이라고까진 말할수 없으나 어쨌든 저도 좀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타입속도와 양생시간이 맞지 않은탓인지··· 여하튼 이 기단의 맨 아래부분이 받는 하중이 대단하니까요.···》

《그걸 빨리 계산해보고 지휘부성원들의 의견도 들어봅시다.》

물론 그게 균렬은 아닐것이다. 김광성은 균렬일수 없다고 믿고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한가닥 불안이 밀려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것이 통판기초안에 대한 불안의 마지막 한쪼각인지도 모른다.···

그 이튿날이였다. 김광성이 안경을 벗어들고 혼합물이 튕겨 깨알처럼 말라붙은것을 손수건으로 대충 닦고나서 타입현장으로 가려는데 유민호가 갑자기 그의 앞을 막아섰다.

《시당비서동지, 들었습니까?》

《알구있소.》

키꼴이 쭉 빠진 유민호의 얼굴을 쳐다보며 김광성은 무뚝뚝하게 물었다.

《동문 어떻게 생각하오?》

탑기초론의때 유민호의 의견에 일정하게 공감했던것은 사실이나 어째선지 그의 사람됨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된것은 바로 그때부터인듯이 생각되였다. 사람은 자기와 견해가 같았던 사람이 싫어지는 경우가 있다. 지금의 김광성이 바로 그러했다. 하지만 이때문에 김광성은 상대방을 지나치게 푸접없이 대하는것 같아 애써 부드럽게 물었다.

《실장동무, 무슨 일때문에 그러오?》

《시공참모동무한테도 말했는데··· 아무래도 미타한 생각이 듭니다. 시공자들이 덮어놓고 냅다 밀다보니 타입속도와 양생시간이 맞지 않은탓인지 아니면 또···》

유민호가 근심이 된다는듯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김광성은 의아쩍게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면 또 뭐란말인가?···)

김광성은 민호가 무엇을 념두에 두고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만했다. 그는 유민호가 우거지상이 되여 한숨을 내쉬는게 여간 불쾌하지 않았다. 설계가가 기초안선택에서부터 심각한 론쟁을 불러일으킨 탑의 기초에 대해서 관심하는것은 응당하다고 할수 있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유민호가 그 기초안을 론의하던 때로 다시 돌아가는듯 한 생각이 들면서 그때의 불안이 되살아오르는것 같은 느낌이 비껴드는것이였다.

그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곁에서 씨근거리는 유민호가 어쩐지 방정맞게 느껴졌다. 그런 느낌때문에 김광성은 외면한채 푸접없이 말했다.

《가서 시공참모동무와 만나 하중계산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가지고 오오.》

그는 안경이 떨어질가봐 저어하듯 한손으로 안경다리를 잡았다.

이날 김광성은 현장에서 일하는 몇몇 사람을 만나 의견을 나누어보았다. 어떤 사람은 타입속도가 지내 빠르다고 푸념을 늘어놓았고 어떤 사람은 양생시간을 충분히 보장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오랜 경험을 얘기하면서 경험주의적인 말들도 했다. 김광성은 잠자코 듣기만 하였다. 하긴 이들중에는 그를 시당비서로 알았지 건축전문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중계산결과를 알아오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곽운필이며 현장의 한다하는 시공일군들이 다 모여왔다. 림성욱소장한테도 련락을 띄웠다는것이다.

유민호의 말을 듣고 놀라서 달려온것과는 달리 현장에 도착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각이한 표정이 떠올랐다. 어떤 시공일군들은 한창 기세가 오른 자기들의 열의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시당비서의 얼굴에 비낀 심중한 빛을 띠여본 그들은 서뿔리 입을 열지 못했다. 말없이 돌아선 김광성은 혼합기에 가서 혼합물상태를 가늠해보았다. 유민호가 나타났다. 그의 낯빛은 밝지 못했다. 혹시 하중계산이 잘못되지 않았는가싶어 물으니 별다른것이 없다는것이였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소동을 피우는가? 김광성은 못마땅한 눈길로 유민호를 바라보다가 기단을 향해 발걸음을 떼였다. 유민호가 김광성이한테 바싹 따라서면서 입을 열었다.

《비서동지, 일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것 같습니다.》

김광성은 유민호를 힐끗 쳐다보며 《뭐가 어떻다는거요?》 하면서도 기단아래부분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유민호가 말했다.

《균렬이 생길수 있는 그 어떤 요소라도 있어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김광성은 안경을 벗어들고 콩크리트구조물에서 물러서며 허리를 폈다.

《무슨 소릴 하오? 걱정마오. 의심이 병이라질 않소?》

《그렇긴 한데··· 통판기초가 전혀 새로운것이다보니 (그는 여기서 독창적이라는 말은 입으로 삼켜버리고말았다.) 아무래두 어쨌든 최대한 안전을 보장하며 탑신을 올려야 한다구 봅니다.》

김광성은 안경다리를 쥔채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문 지금도 통판기초안을 모험이라구 생각하는건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자꾸 불안해하는거요?》

김광성은 자기도 모르게 무뚝뚝하게 내뱉고 얼굴을 찌프렸다. 그는 문혁의 기초안을 선택하고 공사에 착수하기로 결론을 내린 사람이였다. 그런데 왜선지 모르게 불안을 느끼는 자신이 화가 나서 유민호에게 다시금 이렇게 오금을 박았다.

《책임성은 소심성과는 인연이 없소. 내가 말하는건 양생시간에 비해 타입속도가 지내 빠르지 않는가 하는거요. 지금 당장은 공사속도를 조절하여 좀 늦춰야 할것 같소. 하루이틀 관찰하면서 말이요.》

유민호가 재빨리 그 말을 받아들였다.

《옳습니다. 자그마한 실수도 없게 대책을 세워야지···》

유민호는 말을 채 맺지 못하였다. 김광성이 어이없이 그를 쳐다보며 《여보, 큰일이나 난것처럼 너무 떠들지 마오!》 하였기때문이다. 김광성은 고개를 저으며 급히 현장사무실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