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3

제 5 장

3

 

이튿날 미영이 30층주택이 일떠서게 될 창광거리건설장에 나가니 거기서는 아침부터 들끓고있었다. 곳곳에 기중기와 발대목들이 치솟고 블로크무지들이 쌓이고 용접불꽃들이 날렸다. 미영은 곧장 평양시건설련대지휘부로 찾아갔다. 마침 조회전이여서 건설사업소 지배인 강두찬이 방에 혼자 앉아었었다.

《안녕하세요? 지배인동지.》

강두찬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벌써 나왔소?》

미영은 그의 말투가 거칠어도 소문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어 방싯 웃었다.

《동무방은 저켠에다 따로 만들어놨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시에 말하오. 난 뒤소리를 하는 사람은 질색이요.》

강두찬이 련대지휘부의 한편을 가로막은 합판벽을 손짓으로 가리켜보이며 헛기침을 깇었다. 미영은 밤사이에 달라진 지휘부안을 놀랍게 둘러보았다.

《아이참, 지배인동지두. 지휘부를 이렇게 만들면···》

《됐소, 나도 설계가들의 책임이 얼마만큼 큰가 하는걸 알고있는 사람이요.》

미영은 강두찬의 심드렁한 말에 입을 싸쥐고 웃었다.

《그렇다 해도 여기서 지배인동지가 어떻게 일하겠어요.》

《걱정마오. 마음 좁은 사람과는 못살지만 방 좁은거야 뭐라오.》

미영은 두말 못하고 이날부터 지휘부옆방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책상과 자그마한 원탁, 벽가에는 파란 모포를 씌운 침대까지 놓여있어 조금도 불편한 점이 없었다. 미영은 자기한테 차례진 특혜에 마음이 걸려 지배인을 보기가 미안하였다. 두번째날 아침 미영이 작업복차림으로 현장에 나갔을 때 누군가 등뒤에 와서 살며시 껴안았다.

누군가 하여 뒤돌아보니 유민호의 안해 혜영이였다.

《여기 와서 내게 잡혔군요.》

미영을 바라보며 반겨웃는 혜영의 량볼에 오목하게 보조개가 패였다. 도라지꽃문양의 얄팍한 수건을 상큼한 목에 살짝 두른 혜영은 어찌도 생기발랄하고 몸매가 탄탄한지 돌격대처녀들과 조금도 구별되지 않았다.

《아저씨한테서 미영동무의 소식을 들었어요. 여기 30층주택을 설계했다는 말도 듣구··· 왜 한번도 놀러오지 않아요?》

《언제 짬이 있어야지요.》

미영은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고나서 뜻없이 귀밑머리를 매만졌다. 아무리 혜영이가 살뜰히 대해주어도 서먹서먹한 간격을 느끼게 되는 일이 여간 거북하고 안타깝지 않았다.

《혜영동문 건설장에 지원을 나왔나보군요.》

《지원이라니요. 나는 여기서 기중기를 운전해요. 저 30층주택건설장의 기중기! 당당한 기본전투원이예요.》

《그래요?》

미영은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혜영이가 기중기운전공이라니?!

허영심이 강한데다 아주 타산적인 유민호가 평범한 로동녀성을 안해로 삼았을줄은 몰랐다. 하기야 혜영은 얼마나 곱게 생기고 또 다감한가. 유민호는 이런 로동녀성을 안해로 삼는것이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혜영은 점심때에 다시 만나자면서 인차 건설장쪽으로 종달음쳐갔다. 아닌게 아니라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벽거울과 법랑소랭이를 들고 미영의 방으로 뿌루루 찾아온 혜영은 미영이와 한건설장에서 일하게 된것이 기뻐 어쩔바를 몰라했다.

미영이의 딱해하는 심정을 눈치채지 못한 혜영은 설계가의 방이 일반 돌격대원들의 숙소보다 못해서야 되겠느냐며 제 손으로 못도 박고 벽거울이며 청소도구도 갖추어주면서 부산을 피웠다.

《미영동무, 이 기중기운전공의 솜씨가 어때요? 괜찮지요?》

제가 건 벽거울에 얼굴을 비쳐보는 혜영의 모습은 한결 더 아릿다왔다.

《대단해요. 혜영동문 정말 미인이군요.》

《내가? 말두 말아요. 건설장에선 날 보구 뭐라는지 알아요? 아들 하나 낳구 폭싹했다고들 해요.》

혜영은 예쁘장한 얼굴을 찡그려보이며 깔깔 웃었다. 미영이도 어쩔수 없이 웃고말았다. 그리고는 혜영이한테 끌리여 돌격대식당에 가서 같이 점심밥까지 먹었다. 미영은 불과 하루사이 이상할 정도로 혜영이와 친숙해져가는 자신을 느끼면서 바로 이게 건설장의 생활인가부다 하고 생각하였다.

건설장은 매일 수천명 사람들과 각종 륜전기재들이 뒤덮여 와와 기세를 올리는데다보니 사업소 지배인의 무뚝뚝한 표정도 현장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울리였다. 그의 거치른 말투도 오랜 시공일군한테서만 찾아볼수 있는 특이한 친근감을 주었다.

아침조회때면 합판으로 된 간벽이 북치듯 꽝꽝 울리였다. 당면한 생산문제와 관련한 토론, 그 누구에 대한 호된 추궁, 지배인의 쇠판을 두드려대는것 같은 말속에는 건설장에서 벌어지는 모든것들이 죄다 포함되여있었다. 그래서 미영은 한순간도 조용할 사이없이 복잡하게 제기되는 문제들을 능숙하게 처리해나가는 지배인의 완강성과 일군다운 수완, 간혹 우락부락하는 성미의 밑바닥으로 뜨겁게 흐르는 인정미를 가슴 뭉클하게 느낄수 있었다. 매일 건설장에 나가 몰탈다짐작업을 하고나면 어깨박죽이 뚝 떨어지는듯 했으나 옆방에서 소란스럽게 여닫기는 문소리, 전화소리, 지배인의 투박한 말소리만 들으면 저절로 정신이 버쩍 들군 하였다. 그러던중 어느날 아침 미영은 강두찬지배인이 노발대발하여 혜영이를 닦아세우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동무, 갑자기 30층건설장의 기중기는 왜 못타겠다는거요?》

《사정이 있어서 그런다질 않아요. 다른 작업장으로 보내주세요.》

혜영은 어린애처럼 생떼질하다싶이 애원했다. 이삼일전만 해도 명랑하게 일하던 혜영이가 무슨 일이 생겨 30층주택건설장에서 떠나려고 하는지 도무지 알수 없었다. 혜영은 현장에서 누구와 다툰적도 없으며 또 그런 일이면 지배인한테 말 못할것도 없지 않는가? 혹시 나때문에? 미영은 언제인가는 혜영이도 남편과 자기와의 지난 관계를 알고 얼굴을 돌려버리게 될 때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런 일이 닥쳐온것만 같아 가슴속이 싸늘해졌다.

《지배인동지, 제가 18층주택건설장으로 가고 거기 기중기운전공 처녀를 데려오면 되잖아요. 그렇게 해주세요. 전 여기서 그냥 일하다간 무슨 사고라도 칠것 같아요.》

《이 동무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구만. 여보, 동무처럼 개인사정을 코에 걸고 여기 보내달라 저기 보내달라 하구 울며불며 해서야 일을 어떻게 해먹겠소.》

강두찬이 깔고앉았던 걸상을 삐거덕소리가 나게 밀치면서 버럭 화를 냈다.

《됐소. 돌아가오.》

미영은 강두찬의 성난 말이 끝나자 혜영이가 방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지만 여전히 못박힌듯 서있었다. 출입문의 창유리를 통해 머리수건을 깊숙이 내려쓰고 건설장으로 달음쳐가는 혜영의 뒤모습만 근심스럽게 지켜보았다. 여느때같으면 별찮은 일이 생겨도 허물없이 터놓군 하던 혜영이가 벌써 이틀째 발길을 뚝 끊어버린것이 어쩐지 심상치 않게 여겨졌다.

미영은 그런대로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이날도 철준이네 소대에 나가서 제대군인들과 한데 어울려 돌아가며 기초다짐작업을 하다 잠시 일손을 멈추었다. 여러대의 자동차들이 분주스럽게 엇갈리는 도로를 가로질러 남정기가 씨엉씨엉 걸어오고있었다.

미영은 손에 쥐였던 다짐봉을 휘틀곁에 세우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러지 않아도 한번 남정기에게 30층주택설계를 봐달라고 하려던 참이였는데 마침 그가 나타난것이였다. 철준이네 제대군인소대원들을 비롯한 시공자들속에서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의도대로 대담하게 설계되였다는 여론이 돌고있으나 그들의 말만 듣고는 안심할수 없었다.

《남선생님!》

건설지휘부쪽으로 급히 걸어가던 남정기가 미영의 소리를 듣고 발길을 멈추었다.

《아, 미영이가?》

남정기는 몰탈투성이가 된 미영의 작업복과 사출장화를 놀랍게 바라보았다.

《난 웬 돌격대처녀가 뛰여오는가 했군.》

《호호···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여기엘 다 오셨어요?》

《잠간 볼 일이 있어서··· 마침 어제 밤까지 형성안수정작업을 끝냈길래 짬이 났지.》

《그래요? 정말 수고하셨군요. 축하해요.》

《아직은 축하를 받기엔 일러. 지금은 그저 속이 한줌만 해.》

《잘되였겠지요.》

《글쎄, 어떨는지··· 소장동지랑 괜찮아졌다고들 하지만 그건 믿을게 못돼. 전에는 뭐 그러지 않았나? 모두들 대걸작이라고 환성을 올렸는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본질적인 결함을 찾아주셨지. 그건 그렇구. 듣자니 미영인 30층설계를 벌써 시공에 넘겼다면서? 설계를 털어버렸으니 마음이 거뜬하겠구만.》

《아이참 선생님두··· 사실은 그 설계때문에 남선생님을 찾아가려고 했어요.》

《그건 왜?》

《한번 봐달라구요.》

《소장동지가 통과시켰겠는데 그거면 됐지 뭘 그래. 미영이가 정 요구하면 후날 시간을 내서 한번 보기는 하자구. 오늘은 짬이 없어. 언제 우리 학습당개작안을 지도받게 될지 모르니까 가서 자리를 지켜야 해. 차라리 나한테 한번 가지고 오지 않겠어?···》

미영은 그렇게 하마고 약속하였다. 그와 헤여지려던 남정기는 머밋머밋하다가 생뚱같은 말을 꺼냈다.

《내 미영이한테 이런 말을 해도 일없겠나?》

《무슨 말이게요? 어서 할 말이 있으면 하세요.》

《아무래도 미영이가 알아두는게 좋을것 같아 말을 하는거야. 다른게 아니구 난 어제밤에야 미영이와 민호의 지난일을 알았구만.》

《녜?!》

그것은 미영이자신도 남정기앞에서 비밀로 지켜온 일이였다.

《어디서 들었어요?》

《처제한테서 》

《혜영동무한테서요?》》

미영은 비로소 자기의 불안한 예측이 맞아떨어졌다는것을 알았다.

《오늘 아침 혜영동무가 지배인동지한테 여기 30층주택건설장에서 일하지 못하겠다고 제기하더군요. 저도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어요.》

《내 그래서 지배인동무와 만나려구 찾아온 길이야. 그건 혜영이 잘못이 아니구 민호가 강박해서 그렇게 됐다는데··· 아무리 남편의 말이래도 혜영이가 리유를 알지 못하고서야 그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일게 뭐야. 그러자 민호는 동무와의 지난 일을 토설했다는거야. 한심한 사람이지. 미영이가 설계한 주택건설장에서 기중기나 모는게 부끄럽지 않는가며 소리까지 질렀다누만. 혜영이가 어제밤 내앞에 와서 울며 그 말을 하였소. 가슴이 터질것 같더구만. 그래서 처제네 집으로 가서 민호하구 마주앉아 이야기를 좀 했지.》

남정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제 손바닥을 몇번 내리쳤다.

미영이도 숨이 콱 막히는듯 했다.···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 괜히 자기 안해까지 괴롭히면서··· 그런 사람을 남편으로 믿고사는 혜영이가 가엾이 여겨졌다.

《미영이, 내가 이런 하기 힘든 말을 하는건 다른게 아니야. 그런줄 알고 미영이가 혜영이를 리해해주라는거야.》

남정기는 구태여 미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해놓고 나서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듯 지휘부를 향해 재빠르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