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6

제 3 장

6

 

전화를 받고난 림성욱은 컴컴한 낯빛으로 책상앞에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림성욱은 평소에 설계가로 태여나 세상에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남기려면 간혹 남다른 인생의 곡절을 겪을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자주 외워왔었다. 남정기가 내놓은 인민대학습당형성안을 도와주면서 창조과정의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배다운 말도 몇번 해주었지만 이제 와서 보면 그게 다 빈소리였던것 같았다.

오늘 김정일동지의 가르치심을 받고보니 자신의 소극적인 태도가 한 설계가의 리상과 지향, 재능을 눌러버릴수도 있었다는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들며 마음을 괴롭히였다.

학습당설계에서 남정기를 떼자는 의견이 제기되였을 때 완강하게 막아나서지 못하여 이처럼 김정일동지께 큰 심려를 드릴줄이야··· 물론 림성욱은 일부 사람들이 새로운 설계는 새 기분과 의욕을 가지고 달라붙어야 근본적인 혁신을 가져올수 있다면서 하루빨리 다른 대상책임자를 선정하여 개작작업을 추진시키자고 하는 주장에는 찬동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학습당의 대상책임을 림시로 맡아하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난후 남정기에게 넘겨줄 생각을 품고 수정작업에 달라붙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얼마나 소심한 일군이였는가를 오늘에야 똑똑히 깨닫게 되였다.

어느새 창밖이 어둑어둑해지고있었다.

림성욱은 남정기로 하여 그처럼 괴로운 생각을 되씹느라니 전후복구건설시기 우리 나라 건설에 처음으로 조립식방법을 도입하던 때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림성욱은 지금도 그 어렵던 나날 자기와 생사고락을 같이 한 남정기에 대해 자주 회상하군 한다.

당시 건설부문의 일군들과 설계가들속에서는 조립식건설에 겁을 먹고 동요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도시설계사업소 1건축실 실장직무를 맡고 조립식주택건설에 동원된 림성욱은 여간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다.

시건설위원회 박부위원장이 조립식주택설계를 책임지고 들볶이는 그에게 자주 위협적인 언사를 던지면서 사업의욕을 꺾어버리였던것이다. 조립식건설은 당이 내놓은 방침이여서 누구도 감히 정면으로 반대해나설 엄두를 못냈다. 박부위원장도 요령이 있게 그시그시 제기되는 설계상의 문제들에만 시끄럽게 간참하다가 간혹 이발도 나지 않은 주제에 콩밥을 먹겠는가는 식의 욕설을 한마디씩 되게 퍼부었다. 그가 조립식건설을 하자는 사람인지 아닌지 한두번만 의심이 가지 않았지만 내버려두고 말았다. 할 일이 많은데 그따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설계과정에도 고생이 많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였다. 완성된 설계를 시공에 넘기고 도처에서 공사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자 뜻밖의 엄중한 사태가 련이어 벌어졌다. 맨 선참으로 기초공사를 마치고 골조작업에 착수한 동구역 1호동 건설장에서는 조립중에 있던 살림집의 벽체가 넘어져 소동이 일어났다. 최소한 적은 원가를 들이며 건설을 다그칠데 대한 당의 의도에 맞게 설계한 얇은 벽체, 구멍난 층막··· 일단 사고가 발생하자 그렇게 경량화된 부재로 집을 지어서야 주민들의 생명을 담보할수 있는가면서 야단을 쳤다. 공사가 중지되고 림성욱은 깊은 고민속에 빠져버리였다. 사고보다도 더 큰 아픔은 그와 함께 설계에 참가한 사람들까지도 머리를 저으며 물러서는 일이였다. 림성욱이 때식을 번지면서 한창 곤경을 치를 때 남정기가 그를 적극 도와나섰다.

남정기는 림성욱이네 1건축실의 설계가이고 의협심이 강한 젊은이였다. 주위에서 조립식건설에 의혹을 품고 술렁이는 기운이 농후하게 떠돌자 남정기는 누가 뭐라고 하건말건 절대로 신심을 잃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 그 말이 어찌도 반가왔던지 림성욱은 젊은이의 손을 꽉 잡아쥐고 눈물까지 머금었었다.

마침 다행히도 동구역 1호동 살림집건설장에서 발생한 사고가 건설부재의 부설로 초래되였다는것이 해명되였다. 한동안 기가 꺾여 사고의 수습에만 급급해 돌아가던 림성욱은 다시 활기를 띠고 일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앞으로 또 어떤 위태로운 사태가 생길는지 모른다는 뒤공론이 의연히 구구하게 벌어졌다. 박부위원장은 공사중에 당할수 있는 인명피해도 예상해야지만 집을 다 지어놓은 다음에도 주민들이 마음놓고 살수 있겠는지 모르겠다면서 판에 박은 위구설을 장황히 늘어놓았다.

림성욱은 박부위원장이 돌아가자 한참 조립중에 있는 주택의 아래층으로 사무실을 옮기였다. 바로 사고가 일어났던 살림집에 새로 꾸린 《현장설계실》이였다. 차라리 그렇게 하는것이 마음이 편하였다.

아직 미장도 하지 않은 터실터실한 벽체, 창문조차 없는 엉성한 방은 집안이라고 할수 없었다. 대수간 바람이나 막아야겠기에 창문자리는 비닐박막으로 가리워놓고 전등까지 끌어들였다.

밤에 마사진 지함의 마분지를 깔고 누우면 머리우에서 야간작업을 하는 건설자들의 청높은 말소리, 나무발판을 쿵당쿵당 굴러대는 소리, 기중기가 용을 쓰는 울부짖음, 용접변압기들이 붕붕거리는 그 모든 소음들이 소란스럽게 울리는 바람에 귀안이 멍멍해졌다. 현장침식을 각오하고 나선 림성욱의 곁에서는 남정기가 새우잠을 잤다. 림성욱은 그의 마음이 기특했으나 장가간지 석달도 되지 않는 젊은이를 건설장에서 재우기가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그는 밤이면 남정기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한참씩 말씨름을 벌리다간 지쳐버리군 했다. 그의 땅고집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한번은 야간작업을 하던 시공반장이 림성욱이네를 깨끗이 철수시키려고 이렇게 안타까운 소리를 했다.

《실장동무, 이거 어디 조심스러워 망치질이나 제대로 하겠소? 이젠 그만 사업소로 들어가시우다.》

그때 남정기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시공반장의 말을 밀막았다.

《괜한 걱정말구 꽝꽝 두드려대시우다. 우린 반장동무와 죽어도 같이 죽자는 사람이요.》

남정기는 시공반장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벽체에 달라붙은 모기를 때려잡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실 건설장의 소음보다도 견디기 어려운게 모기떼의 성화이다. 온밤 모기를 쫓으며 뽀얀 연기속에서 잠을 설치고나면 볼만 하였다.

매일 아침 세면도 하기전에 밥보자기를 들고 나타나는 남정기의 안해는 남편의 푸시시한 모습을 바라보며 얼마나 민망스러워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두 집에서 부지런히 날라오는 식사도 푸짐하여 그럭저럭 꽤 살아갈만 하였다.

이때부터 림성욱이와 남정기는 선후배관계를 초월하여 나날이 인간적으로 가까와져갔다.

남정기는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고 결심하면 완강히 집행해나가는 림성욱을 몹시 따르고 존경하였다.

림성욱이도 그를 무척 아껴주었다. 성욱은 젊은이와 마주 앉으면 노상 기분이 떠있군 하였다.

《박부위원장이 집을 다 지어놔도 안심할수 없다고 했는데 나 아무래도 여기서 일생을 살아야 할가봐.》

남정기는 그 말을 한절반 롱으로 들었던 모양이였다.

1년후 2만세대 살림집건설의 준공식을 마치고 림성욱이네가 중구역에서 동평양으로 이사해왔을 때였다. 그의 집들이에 늄가마를 안고온 남정기가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입을 딱 벌렸다.

《여하튼 실장동지의 완고성에 손을 들었수다.》

《뭐 그다지나. 내가 보기엔 동무도 물렁물렁한 사람이 아닌데.》

림성욱은 여럿이 둘러앉은 술상옆에 남정기를 눌러앉히면서 다정히 말을 건늬였다.

《남동무, 여기서 모기한테 되겐 뜯기웠지?》

《말할것 있습니까. 그래 실장동진 이 집에 정붙이고 살겠습니까?》

《대장부 일구이언할가.》

그의 말은 취중에 기분이나 돋구느라고 한 말이 아니였다.

림성욱은 그 두칸짜리 집에서 10년나마 살았다. 그동안 수도 평양에는 50년대에 지은 살림집보다 얼싸하게 지은 현대적인 고층주택들이 즐비하게 일떠서고 림성욱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어제날의 1건축실 실장이였던 그가 설계사업소 소장의 중책을 맡고 일하게 되였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건 그가 쓰고 사는 집이였다. 설계사업소에서는 동평양의 집이 구식으로 되고 소장의 직분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몇번씩이나 새 주택으로 이사해갈것을 권고했다.

림성욱은 그때마다 자기한데 차례진 주택배정장을 설계가들에게 넘겨주며 정든 집이 제일이라고 하였다. 그의 안해도 가장의 의사를 군말없이 따르는 기색이더니 언제인가 한마디 넌지시 비쳤다.

《여보, 그만 살아봤으면 이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게 확실하지 않아요?》

《그거야 알게 된지 석삼년두 넘었지.》

림성욱은 안해한테도 자기 마음을 그이상 더 헤쳐보이지 않았다. 안해인들 왜 다른 녀성들처럼 세네칸짜리 뜨르르한 주택에 옮겨가서 살고싶은 생각이 없겠는가? 하지만 제 집이 좋았다. 고요한 밤에 혼자 조용히 누웠느라면 지난날의 건설장소음들이 귀전에 다시금 쟁쟁히 울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아득히 흘러간 시절을 돌이켜 볼 때면 림성욱은 언제나 행복한 자신을 느끼군 하였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살고있는가?···

림성욱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책상앞에서 일어섰다. 남정기한테로 가야 한다. 남정기는 벌써 나흘째 휴가를 받고 사업소에 출근하지 않는다.

그가 갑자기 휴가승인을 받고 집으로 들어갈 때 림성욱은 마음이 썩 좋지 않았었다. 어쩐지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하는것 같은 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듯 한 심정이였던것이다. 오늘은 남정기와 만나서 김정일동지의 크나큰 은정과 신임이 어린 말씀내용을 이야기해주어야 마음이 편할것 같았다.

남정기네는 륜환선거리에서 철거된후 락원거리로 이사해갔다.

림성욱은 얼마후 남정기네가 살고있는 아빠트현관앞에서 승용차를 세우고 집으로 찾아올라갔다. 휴가를 받은 사람이니 집에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두번이나 문을 두드려서야 남정기의 안해가 얼굴을 내밀며 맞아주었다.

《아니, 소장동지가 어떻게? ···》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말끝을 맺지 못하고 당황히 머리를 숙이는 녀인의 얼굴은 그리 밝은 기색이 아니였다.

녀인은 잠시후에야 망연히 서있는 자신을 느꼈는지 어서 들어오라고 했다. 남정기의 고민이 집안에 이렇게도 울적한 그늘을 던졌는가 싶어 림성욱은 아픈 마음을 안고 전실에 들어섰다.

《그런데 남동문 어디 갔소?》

림성욱은 별스레 어수선한 감을 주는 방안을 기웃이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저께 묘향산에 갔다오겠다면서 떠났는데 아직···》

《묘향산엔 왜 갑자기?》

림성욱은 뜻밖의 말을 듣고 녀인을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글쎄 그건 저두 딱히··· 오늘 저녁차로 돌아온다면서 떠났으니 이제 좀 있으면 들어설거예요.》

림성욱은 담배나 한대 태우느라면 남정기가 나타날것 같아서 녀인이 내놓은 방석우에 올방자를 틀고앉았다. 그는 이 구역병원의 외과의사와 다시 만나니 아들생각이 나며 남정기네 내외간과 맺어진 옛정이 가슴을 후덥게 덥혀주는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언젠가 녀인은 외과의사들이 자기가 구원해준 환자의 얼굴을 잊어도 수술자리만은 알아맞힌다고 하였다. 그 말이 사실인지 딱히 알수 없지만 사람의 몸에 칼을 대는 외과의사의 일이 그만큼 책임적이고 중하다는 뜻일것이다. 광훈의 몸에도 그런 수술자리가 남아있어 이 녀인을 생명의 은인으로 잊지 못하게 하는데 늘 그러하듯이 이날도 남정기의 안해가 먼저 광훈의 안부를 물었다.

《광훈이한테선 편지랑 오는가요?》

《요즘은 통 무소식이요. 뭐 입당하기전엔 편지를 안한다나. 녀석이 남 다하는 일인데 별로 요란스레 논단 말이요.》

《소장동지두, 그게 얼마나 기특해요?》

그가 녀인의 말에 저으기 마음이 수그러져 담배를 붙여무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남정기네 둘째녀석이 아버지가 온다며 떠들썩 소리를 치다가 림성욱을 보고 굽석 인사를 했다. 뒤따라 남정기가 한쪽어깨에 려행용멜가방을 걸치고 들어오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소장동지가 오신걸··· 밖에 낯익은 승용차가 서있길래 이상하다 했지요. 오신지 오랍니까?》

《나도 금방 들어섰소.》

《그래요?》

묘향산에 가서 뭘하다 왔는지 남정기는 림성욱이와 마주 앉아서 수염이 꺼멓게 자란 턱만 쓸어만지였다. 말없이 담배를 피우며 남정기를 지켜보는 림성욱이 궁금증을 누르지 못하고 물었다.

《묘향산엘 갔댔다면서?》

《예.》

《갑자기 거기론 왜 갔댔소?》

《국제친선전람관구경을 하구 옵니다.》

림성욱은 눈이 둥그래서 그를 바라보았다.

《동무가 거길 한두번만 갔다왔게?》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전 이번에 학습당건설과 관련한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연구하다가 중요한걸 발견하였습니다. 수령님께서 국제친선전람관을 보시고 우리의 건축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대단히 만족해하시면서 이젠 평양의 남산재우에 인민대학습당을 지을 때가 되였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전 이번에 국제친선전람관이 인민대학습당의 전신이라고 말할수 있는 건축물이며 학습당을 바로 그렇게 설계하여야겠다는것을 똑똑이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학습당을 세상에다 소리치며 자랑할 건축물로 만든답시고 옛날것만 살릴 생각을 했으니 눈뜬 소경이였지요. 그래서 휴가를 받고 부랴부랴 묘향산엘 갔던겁니다.》

남정기는 묘향산의 명주도 한병 구해가지고 왔다면서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묘향산에 다시 가보길 얼마나 잘했는지··· 이젠 수정방도를 찾을것 같습니다.》

《남동무, 그게 사실이요?》

《예, 소장동지, 학습당설계를 누가 맡게 됩니까?》

《···》

《누가 설계를 맡겠는지 제가 다소나마 도움이 될 일을 할수 있을것 같단말입니다.》

림성욱은 말을 못하였다. 일신의 모진 고통과 절망을 이겨내고 힘있게 일떠서는 남정기의 정열적이고 희생적인 마음에 눈굽이 뜨겁게 달아올랐을뿐이였다,

《사람두··· 사람두···》 하고 혼자소리로 중얼거린 림성욱은 뿌옇게 흐려드는 눈길로 다시금 남정기를 쓸어만지듯이 바라보았다.

《남동무, 동무를 설계에서 떼지 말아야 하는건데··· 정말 미안하오.》

《뭘요, 제가 잘못했지요. 전 응당한 책벌을 받았습니다. 제발 그 일은 잊어버리십시오. 그러지 않아도 걱정할 일이 많으신 소장동진데···》

남정기는 도리여 성욱을 위로하고 멜가방안의 술병을 꺼내들며 일어섰다.

《소장동지, 잠간만 앉아계십시오.》

《아니, 아니요. 그냥 앉아서 내 말을 마저 듣소.》

림성욱은 남정기를 눌러앉히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남동무, 오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동무를 인민대학습당설계에서 뗀 사실을 헤아리시고 나를 크게 책망하셨소.》

《예?!》

남정기는 꿈쩍 놀라며 림성욱의 얼굴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뒤이어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씀인지··· 그러니 인민대학습당을 불당처럼 만든 저의 과오가 용서될수 있다는겁니까?》

《용서? 거기에 무슨 용서하구 말구 할게 있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사랑과 믿음이면 다지.··· 그런데도 난 동무를 별로 도와주지 못했구만.》

림성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남정기의 어깨에 한손을 얹었다.

《동무가 날 원망해두 할 말이 없네··· 오늘밤은 일찍 자고 래일 아침에 출근하게.》

《안됩니다. 그냥은 못갑니다.》

남정기가 눈물이 글썽해서 림성욱의 팔소매를 놓지 않았다. 부엌에서 달려나온 남정기의 안해도 흐느끼면서 성욱의 앞을 막아나섰다. 그러지 않아도 오래간만에 남정기의 집으로 찾아와 이전과 다른 썰렁한 기분을 느끼고 가슴아팠던 림성욱은 녀인의 젖은 얼굴을 보자 눈물을 쏟을것만 같아 인차 복도로 나섰다. 이 밤은 남정기네 량주가 조용히 마주 앉아서 나누게 될 말인들 얼마나 많으랴. 서둘러 떠나는 림성욱의 가슴속에서는 그런 마음도 뜨겁게 굽이치고있었다.

림성욱은 아빠트의 현관밖에까지 따라나온 남정기의 손을 잡아쥐며 래일 학습당설계현장에 함께 건너가서 수정방안을 구체적으로 토의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림성욱은 이튿날 뜻밖에도 김정일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당중앙위원회로 찾아가게 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 얼마후 림성욱은 그이의 집무실안으로 들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 반쯤 열려진 창가에 서계시다가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아, 소장동무가 왔구만. 》

김정일동지께서는 땀발이 선 림성욱의 얼굴을 바라보며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왜 이렇게 급히 왔습니까. 어서 여기 와 앉아서 땀을 들이시오.》

《예.···》

림성욱은 손수건으로 귀밑의 땀을 훔치면서 송구스럽게 대답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없이 그의 얼굴을 묵묵히 지켜보시였다. 이 며칠사이에 남모르는 고충과 피로로 하여 림성욱은 겉늙어보이였다. 정기없는 두눈에는 연한 피발까지 서리여있었다.

《소장동무가 요즘 지나치게 무리를 하는게 아닙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와 나란히 앉아 근심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림성욱은 괴롭게 뒤말을 이었다.

《어째선지 요즘엔 마음이 안착되지 않습니다. 여태껏 이런적이 없었는데 불안스럽기만 합니다. 제가 제대로 일을 해내겠는지 걱정이 되여···》

림성욱은 워낙 성정이 바르고 고지식한 사람인지라 자기의 진속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그렇게 될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시적인 난관앞에 신심을 잃고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큰 과제를 안고있는데 정신적으로 위축되면 얼마든지 손쉽게 제낄수 있는 일도 못하게 됩니다. 지금 소장동무가 학습당형성안수정작업도 맡아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마음의 여유가 있겠습니까. 소장이 이것도 저것도 다한다는식으로 일해서는 건설이 제대로 될수 없습니다.》

림성욱은 그이의 옳은 지적의 말씀에 눈굽이 뜨거워졌다.

《전 어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가르치심을 받고서야 남정기를 위해주느라고는 했지만 얼마나 소극적이였는가를 알게 되였습니다.》

그때 손기척소리가 나더니 조심스럽게 출입문이 열리면서 부관이 들어왔다. 그는 왜 그런지 한참 바재이다가 김정일동지께 좀 실례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나서 새삼스럽게 넓다란 방안의 이구석 저구석을 두릿두릿 살펴보았다.

《무슨 일이요? 부관동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저··· 밖에서 보니 작은새 한마리가 방안에 날아든것 같애서···》

부관의 생뚱같은 말에 방안의 분위기가 급변하였다.

《새라니?》》

《분명 새가 한마리 날아들어왔습니다.》

부관은 여전히 두서없이 말을 번지다가 급기야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저것 보십시오. 저기에 앉아있습니다.》

정말 저쪽 창문곁의 종려죽우에 노란새가 앉아서 눈알을 또릿또릿 굴리고있었다. 밤알같이 조그마한 놈이 제법 짹짹 짖어대기까지 하였다.

《허참, 저렇게도 버르장머리없다구야··· 근처에 새가 많다 하더니 어느틈에 날아들었는가.》

부관이 쬐꼬만 날짐승을 사람취급하듯 하면서 눈을 흘겨보는 모양 또한 여간 우습지 않았다. 부관은 당장 눈앞의 《무단출입자》를 붙잡을것처럼 종려죽가까이로 다가갔으나 공포에 질린 새는 벌써 어디론가 포르릉 날아오를듯이 꼬리를 초싹대였다. 그래서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놀란 새가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면서 부산을 피울수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부관에게 조용히 이르시였다.

《부관동무, 그만 놔두고 동문 가서 자기 일을 보오.》

《제 곧 쫓아버리겠습니다. 》

《동무의 서툰 솜씨를 가지군 안되겠소. 나한테 맡기시오.》

그이께서는 어리둥절해하는 부관을 내보낸후 날짐승을 흥미있게 바라보시였다. 부리가 작고 뺨이 흰 새는 첫눈에 박새라는것이 알리였다. 재롱스럽게 연신 두발을 옮겨짚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양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반드르르 윤기가 감도는 푸른 날개에 유별나게 금줄까지 두른 놈인데 여간 멋쟁이가 아니였다.

《제법 장령같군. 그래 무슨 일로 왔지?》

김정일동지께서 앞탁우에 두팔굽을 짚고 새한테 이야기를 거시였다. 박새는 자기의 무엄한 행위에 대하여 깨달은듯이 눈을 또릿거리면서 짹짹 우짖었다.

《당황해서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모르는구만. 좀 침착하면 되겠는데··· 저렇게 창문이 열려있지 않나?》

박새는 그이의 다심한 마음을 알아챈것처럼 작은 두발을 깜찍스럽게 옮겨짚으며 또다시 애처롭게 소리내여 울었다. 가슴털이 보르르 일어선 새는 열려진 창문을 바라보면서도 거기가 바깥과 통해있음을 전혀 가려보지 못하고있었다.

순간 그이께서는 림성욱을 돌아다보며 쏘파에 지그시 몸을 기대시였다. 이 며칠동안 숱한 일감을 걷어안고 모대기느라 마음의 여유를 가시지 못하고있는 성욱의 심정이 가슴에 마쳐오시였다. 소장이 아직도 창광거리형성안의 출로를 찾아내지 못하는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집무실의 문이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새··· 소장도 지금 출로를 못찾고있다.··· 그이께서는 사색에 잠긴 나직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저 새가 보통 놀라지 않았구만.》

《예, 당황해서 동서남북을 가리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옳습니다. 저렇게 창문이 열려있는데도 보지 못합니다. 부관동무가 너무 놀래워놓은것 같습니다. 저 새가 밖으로 쉬이 빠져나갈수 있도록 도와줄 방도가 없겠습니까?》

《글쎄 사람의 말을 통 알아듣지 못하는 날짐승이다보니···》

김정일동지께서는 온 방안이 들썩하게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시였다.

《좋습니다. 그럼 내가 도와주지요. 우리 잠간 옆방으로 건너갑시다.》

그이께서 쏘파에서 움쭉 일어서시자 림성욱도 영문을 몰라하다가 뒤따라 일어섰다.

《이제 저 어리석은 새도 옆에 사람만 없으면 불안을 잊고 저절로 밖으로 날아갈겁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옆방으로 나가며 조용히 출입문을 닫으시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이께서 림성욱이와 함께 대기실걸상에 잠시 앉아계시다가 다시 집무실로 들어와보니 새는 온데간데 없었다.

《소장동무 보시오. 새가 밖으로 날아갔습니다.》

《용케 날아갔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사뭇 즐거운 기분에 잠겨 박새가 날아나간 창문을 바라보시다가 림성욱에게 다정한 시선을 던지시였다.

《내가 오늘 소장동무에게 하고싶었던 말을 새가 다한것 같습니다.》

《예?!》

림성욱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그이를 쳐다보았다.

《소장동무, 벌려놓은 일이 잘 안된다고 하여 초조해하면 출로를 찾지 못합니다. 일이 안될 때일수록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침착해야 합니다. 앉으십시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성욱을 쏘파에 다시 앉히시였다.

《듣자니까 소장동무는 어머님이 돌아가신후에 한번도 고향에 찾아가지 않았다면서요?》

림성욱은 그이의 갑작스런 질문에 어리둥절해서 얼른 대답을 못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뭐라고 말씀드렸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님께 죄송스럽긴 하지만 그저 무사분주하다보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정말 리해가 안됩니다. 난 어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였습니다. 이삼일이면 충분히 갔다올수있는 일인데 잘된 처사같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고향에 갔다와야겠습니다.》

《예?!》

림성욱은 대뜸 눈이 둥그래졌다. 지금이야말로 창광거리설계때문에 단 1분의 시간이 귀중한 때인데 먼 북변땅에 갔다오다니 놀랄만도 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제 앞으로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일을 고치겠습니다. 하지만 고향에는 후에도 얼마든지 갈수 있지 않습니까? 이왕 늦어진김에 창광거리형성시안이나 끝내고 떠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한참이나 고뇌에 잠겨있는 림성욱의 옆모습을 지켜보시다가 천천히 쏘파에서 일어나시였다.

《아니, 이제 가야 합니다. 난 단순히 인정을 베풀자는게 아닙니다. 소장동무가 자식된 도리도 지키고 학습당형성안도 잘 추진시키고 창광거리설계도 잘해야겠기에 권고하는겁니다. 이제도 늦지 않았으니 고향에 갔다오시오. 오늘 밤차로 떠나는게 좋겠습니다. 고향에 가면 심신도 맑아질겁니다. 어서 돌아가서 떠날 차비를 하시오.》

림성욱은 그이의 말씀속에 담겨있는 깊은 뜻을 깨닫고 차마 고집을 세우지 못했다. 금시 오열이라도 터뜨릴듯 그의 거무틱틱한 관자노리에서 굵은 피줄이 꿈틀거리였다. 벌겋게 충혈이 진 두눈에는 어느새 뜨거운 물기가 한가득 어리여 번들거리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성욱이가 얼굴을 쳐들지 못하며 자리에서 어름어름 일어났다.

《됐습니다. 마음을 푹 놓고 갔다오시오. 여기 일은 걱정말구··· 건설장엔 내가 나가보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다심한 어조로 타이르시고 복도에까지 따라나가서 그를 바래워주시였다. 그리고는 집무실로 돌아와 전화로 책임부관을 찾으시였다. 아까 부탁한 제물로 차릴수 있는 식료품지함이 준비되였으면 곧 림성욱소장에게 보내라고 이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