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8

 

제 7 장

8

 

홍콩항을 떠난 무역선《칠보산》호는 남포항을 가까이하고있었다.

로태근이 최근식의 안내를 받으며 갑판우에 나섰다. 굴곡이 심한 조선서해의 해안선과 남포항의 륜곽이 아스무레하게 보이였다. 마침내 선조들의 뼈가 묻힌 내 조국에 돌아오는구나! 로태근은 불쑥 이런 생각이 치밀면서 가슴이 설레였다. 그에게 있어서 조국이라는 개념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있었다. 쏘련의 원동에서 나서자랐고 어머니는 중국녀자였다. 조선에는 태를 묻은 고장이 없었으므로 어린시절의 추억 또한 없었다. 다만 철이 들면서 아버지로부터 조선의 력사와 지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정녕 죽어서도 고국을 잊을수 없다던 아버지의 심정을 엿보았다. 아버지는 림종의 시각에 혼혈된 피줄을 받고 이역에서 나서자란 로태근의 립장이 걱정되였던지 간곡히 말했다.

《너는 내 아들이 분명한즉 명백히 조선사람이다. 자고로 아버지의 성을 따르고 아버지의 혈통을 따라서 자기의 민족별을 정하는것은 어길수 없는 인륜이다. 그래서 네가 공민증을 낼 때 민족별을 기입하는 란에 조선사람임을 분명히 하라고 했었다. 내 살아서는 떠나온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다만 죽어서라도 두 아들을 거느리고 조국에 돌아간다면 한이 없겠다.》

최후의 기력을 모아서 가슴에 마디마디 새겨주는듯 하던 아버지의 유언을 잊을수가 없었다.

(아버지, 이 아들이 오늘 그처럼 아버지가 가고싶어하시던 조국땅을 밟게 됩니다.)

한번도 와보지 못했던 조국이여서 그 현실에 대하여 직접 보고 느낀 표상은 없었다. 다만 출판물들을 통하여 어느 정도 알고있을뿐이다.

조국의 현실에 대하여 생활적으로 체험된 표상은 형님의 운명과 관련된 사연이였다. 한달동안의 휴가를 받고 조선에 나갔다가 조국의 모든것에 대해 뗄수 없이 정이 든 형님은 아버지가 사망한 후 인차 조국으로 떠났다. 그때 로태근은 두만강가에서 형님을 바래웠다.

그 애달픈 밤에 잠을 깬 물새는 왜 그다지도 처량하게 울던지··· 작별의 서운함도 컸지만 기약할수 없는 형님의 장래가 걱정되여 속을 태웠다. 그런데 기쁜 소식이 날아올줄이야.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그들의 사랑을 지켜주시였고 가정의 행복을 마련해주시였다. 조국은 바로 형님의 행복을 지켜주신 김일성주석님의 자애로운 품이였다.

그때로부터 수십년세월이 흘렀다.

인제는 형님의 머리에도 백발이 날릴것이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형수님, 형님이 원동에 왔을 때 그리도 마음씨 곱고 성실하다고 자랑을 하던 전날의 기중기운전공처녀도 인제는 로파로 되였을것이다. 조카들도 어른이 되였을것이다. 비록 작별의 세월은 멀리 흘렀지만 이제라도 형님과 그 일가를 만날수 있게 된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붕- 붕- 배고동소리가 길게 울린다. 기중기팔들이 수풀처럼 펼쳐진 항구의 륜곽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하여 무역선은 서해갑문을 통과했다. 이미 어느 잡지에선가 서해갑문의 사진과 그를 설명한 기사를 본바가 있었지만 현지에서 직접 보니 감탄의 탄성이 저절로 터졌다. 날바다를 건너지른 갑문의 거창함과 웅장함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갑문을 통해서 조국의 위력과 발전상을 한눈에 보는듯싶었다.

또한번 고동을 울린 배는 닻을 내리고 부두에 발판을 건너질렀다.

로태근은 최근식일행의 뒤를 따라 배에서 내렸다. 부두에는 적지않은 사람들이 나와있었다. 선원의 가족들이였다. 녀인들과 아이들은 대양을 건느는 머나먼 항로를 거치며 무사히 돌아온 남편과 아버지들을 만난 기쁨에 휩싸여있었다. 그들과 조금 거리를 둔 왼켠에서 느닷없는 부름소리가 울리였다.

《태근아!》

참으로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귀익은 형님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가슴에 마쳐오며 심장을 두드렸다. 박동이 빨라지는 심장이 전신으로 뜨거운 피를 날라갔다. 현기증을 느끼듯 머리가 아찔해오고 숨이 막혔다. 서너명의 남자가 서있는데 오른쪽에 서있는 로인이 눈뿌리를 앗아갔다. 체소한 몸이였으나 청춘시절의 담찬 기개와 정기가 우묵한 눈확속에서 뿜겨지는 그 로인은 그렇게도 보고싶던 형님이 분명했다.

《형님!》

허둥거리며 불렀으나 안타깝게도 목소리는 입밖으로 터져나가지 못했다. 반가움과 기쁨에 목이 메였던것이다.

달려가고 달려오던 형제는 부둥켜안았다. 누구의 입에서나 《아!》, 《아!》하는 부르짖음이 연신 터져나왔다. 언어로써는 그 표현이 불가능한 감정의 폭발이였다.

로태근은 잔등을 쓰다듬는 형님의 장알진 손바닥의 촉감을 저릿저릿하게 느꼈다.

형님과 함께 아무르강에서 미역을 감고 고기잡이를 하던 일이며 숲속에서 함께 버섯을 따다가 곰을 만나 혼쭐이 나던 일이며 흘러간 옛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들이 떠올랐다. 어느해 겨울이였던가? 태근이가 스케트를 타다가 물에 빠졌을 때 형님은 희생적으로 구원해 주었다. 그날 형님이 곁에 있지 않았다면 필경 태근은 죽었을것이다. 배 다른 형제였지만 한 어머니에게서 태여난 형제이상으로 우애가 깊던 그들이였다.

《형님, 어떻게 오늘 남포항에 도착하는줄 알고 여기까지 나오셨소?》

한참만에야 부둥켜안았던 팔을 풀고 물었다.

형님은 대답대신 곁에 선 중년사나이를 쳐다보았다. 차림새와 몸가짐이 무척 세련되여보이는 그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로태근선생이 조국에 온다는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친절히 맞이해주라고 하면서 형님을 꼭 데리고 항으로 나가라고 하시였습니다.》

로태근은 두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러니 김정일장군님께서 이름없는 해외동포의 한사람에 불과한 나의 조국방문에 그처럼 관심을 돌려주신단 말인가! 뜻밖의 일에 놀라움이 컸다. 어리둥절하여 어쩔줄을 모르는데 형님이 그 사나이를 가리키며 깨우쳤다.

《태근아, 인사를 올려라. 해외교포영접국의 최길호동지이시다. 조국방문기간 이 동지가 너를 안내하게 되였단다.》

《이렇게 만나서 기쁩니다.》

최길호가 먼저 그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그의 얼굴에 동포애의 정이 진실하게 떠올랐다. 초면이였지만 로태근도 그가 오랜 지기처럼 느껴졌다. 겨레의 정이란 이런것인가? 지금까지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혈연의 감정을 느끼였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목소리가 떨리였다. 처음 만나도 기쁨과 반가움이 북받치는것이 겨레들사이에만 있을수 있는 일이 아닐가.

《장군님께서는 선생님이 금수산기념궁전건설에 기여하려고 돌톱을 두틀이나 기증한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하고 최길호는 최근식에게 돌아섰다.

《해외에서 아득바득 어렵게 상업활동을 하겠는데 값은 물어주라고 하시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버이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영원히 모시려는 그 마음이 중요한것이지 돈이 중요한것은 아니라고 하시였습니다.》

《값을 물어주겠습니다.》

최근식이 선선히 응대했다.

로태근은 다시금 충격을 받았다. 그는 서둘러 두사람을 번갈아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절대로 값을 받을수 없습니다. 다른 용도에 쓰일 돌톱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 김일성주석님의 영생을 도모하는 일에 쓰일 돌톱을 두고 값을 받는다면 제 어찌 우리 겨레의 한 성원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표정과 어조가 너무도 절절했다. 만일 자기의 심정을 리해하여주지 않는다면 참을수 없는 모욕감이라도 느낄상싶었다.

최길호와 최근식은 얼굴을 마주볼뿐 말을 못했다.

잠시후 일행은 두대의 승용차에 나누어타고 평양으로 향했다.

앞차에는 운전사옆에 최길호가 앉고 뒤좌석에 두형제가 어깨를 붙이고 앉았다.

로태심과 로태근은 가슴속에서 불같은 말마디들이 튀여나고있었으나 침묵했다. 수십년 쌓인 회포를 나누기에는 장소가 적당치 않았다. 발동기의 소음과 차체의 진동이 오손도손 오가야 할 대화를 방해했다. 헤여져 그립던 형제가 회포를 나눌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얼마든지 있었다. 로태근은 조국에 여러날 체류하게 되여있었다. 그나날 형님네 집에서 숙식을 할것이다.

승용차가 남포시내에 들어서자 로태근은 형님의 한손을 꼭 잡은채 차창밖에 시선을 주었다. 그는 조국의 현실에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있었다. 동서방의 문물이 교역되는 홍콩은 세계의 경제형편뿐아니라 정치현실에도 밝은 도시였다.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주석님께서 서거하신 후 세계 보도수단들의 이목은 더구나 조선으로 쏠리였다. 서방세계는 입을 모아 조선붕괴설을 떠들었다. 어떤 보도매체들은 유명짜하다는 정치론평원들의 손을 빌어서 조선붕괴의 시간표까지 발표했다.

조선에 대하여 무심할수 없었던 로태근은 깊은 우려를 가지고 정세를 주시했다.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세력은 힘을 합쳐서 조선을 고립압살하려고 전례없이 기승을 부렸다. 그들의 봉쇄가 조선의 경제발전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칠것인가를 로태근은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와 상업적거래를 가지는 실무가였기때문이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조선은 자연재해까지 혹심하게 입었다. 로태근자신의 판단으로도 조선은 불과 몇달을 지탱할것 같지 못했다. 쏘련과 같은 대국도 물먹은 담벽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현실을 체험한 그였다. 하물며 분렬된 작은 나라인 조선의 경우에야. 안타까이 가슴을 조이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리해관계에 비추어 사태발전을 주시하게 된다. 그는 조선의 붕괴를 원하지 않았다. 그 어떤 리념으로부터가 아니였다. 이러나저러나간에 그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여태껏 조선을 자기의 조국으로 여겨왔다. 거기에는 선조들의 뼈가 묻혀있고 형님이 살고있다. 그러한 사정으로 조선이 부딪치는 온갖 도전을 이겨내고 승승장구하기를 마음속으로 념원하였다. 그러던차에 김일성주석님 서거 한돐을 맞으며 세계를 경탄시킨 사변이 있었다. 조선에서 주석님을 영원한 주체의 태양으로 길이 모실데 대한 공동결정서를 채택하고 주석님을 생전의 모습으로 모신 금수산기념궁전개관을 선포했던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늘을 진감시키고 땅을 흔들리게 하는 력사적사변이였다. 김일성주석님은 인민의 마음속에 영생하시며 따라서 주석님의 위업도 영원불멸하다는것을 과시하였다. 이 력사적사변앞에 깜짝 놀랐다. 그 사변을 계기로 조선붕괴설은 자취를 감추었다. 제국주의자들도 조선수뇌의 정치리념이 무엇이며 그 령도를 따르는 인민의 의지와 신념이 어떠한가를 깨달았던 모양이다. 위대한 사상과 령도를 따라 하나로 뭉친 인민을 타승할 힘은 이 세상에 없는것이다. 이것은 적아의 벽을 넘어 누구나 공인하는 력사의 진리이고 정치학의 공리이다. 이즈막에 와서는 세계 그 어느 출판보도물도 조선붕괴설을 운운하는 일이 없었다. 로태근의 가슴속에서도 느껴지던 불안과 우려가 가셔졌다. 바로 그무렵에 최근식일행이 찾아왔다. 그래서 기꺼이 돌톱 두틀을 금수산기념궁전건설에 기증했던것이다.

승용차는 어느새 평양시내에 들어섰다.

로태근은 차창에서 줄곧 시선을 떼지 않았다.

눈앞을 스치는 행인들의 표정과 거리의 풍경에 주의를 집중했다.

도로에는 각종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달리였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비록 소박한 차림이였으나 얼굴들에는 기개와 활기가 흘렀다.

네거리교차점에 승용차가 멈춰섰다. 앞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도로복판에 제복을 입은 교통보안원처녀가 지휘봉을 쳐들고있었다. 그의 곁으로 렬을 지은 유치원아이들이 길을 건느고있었다.

아이들의 얼굴은 티없이 맑고 명랑하다. 얼굴마다가 웃음꽃이다. 차에서 내려서 저 귀여운 아이들을 입맞춰주고싶은 생각이 치밀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이길래 수십대의 차량을 멈춰세우며 길을 건너가는가? 불쑥 치미는 의혹에 형님을 쳐다보았다. 형님의 얼굴에 대견스러운 웃음이 느슨하게 흘렀다. 손길로 아이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맨앞에서 대장노릇을 하는 저녀석이 바로 내 손자일세.》

로태근은 형님의 손길을 따라 대오를 인솔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깡뚱한 검은 바지에 흰 샤쯔를 입은 아이는 그럴사하게 보아서 그런지 먼 눈에도 제 할아버지를 신통히 닮은것 같았다.

《형님, 내 차에서 내려 그 애를 안아보고 오겠습니다.》

《무슨 소릴 하나. 아이들이야 나라의 왕이니까 저렇게 특별한 취급을 받지만 어른들이야 교통규정을 어기면 안되지.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만나보게.》

아이들이 길을 건너가자 승용차가 다시 떠났다. 로태근은 눈앞에 펼쳐지는 시내의 풍경이 홍콩에서 듣던바와는 전혀 다르다는것을 느꼈다. 홍콩에 나도는 보도수단들은 심히 날조되고 외곡된 보도들을 했었다. 그 보도들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보게 된 평양은 번쩍거리는 겉멋이 없는 대신 생기와 활력이 넘쳐있다.

로태근은 만수대언덕우에 높이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에 꽃다발을 드리고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몇번이고 뒤돌아보며 만수대언덕을 내려선 로태근은 형님네 집으로 향했다.

형님네 집은 화력발전소가 선명히 바라보이는 곳에 있었다. 아빠트에 이른 로태근은 화력발전소를 잠시 바라보았다. 청춘시절의 형님과 형수가 저 발전소건설장에서 정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무심히 볼수가 없었다.

최길호는 승용차를 타고 자기 직장으로 갔다. 로태심이 함께 집에 들어가자고 하였으나 굳이 사양했다. 가정적인 상봉의 기쁨이 무르녹아야 할 장소에 자기의 존재는 방해로 된다고 여기는것 같았다.

로태심이 동생의 팔굽을 잡았다.

《우리 집은 4층 5호이다. 어서 들어가자.》

형제는 현관으로 들어가서 계단을 올랐다. 집앞에 이른 로태심이 초인종을 누르며 흥분된 어조로 문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왔소. 동생이 왔단 말이요.》

방안에서 다급한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출입문열쇠가 절컥거렸다.

그러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이놈의 쇠가 오늘따라 왜 이 모양이야?》

안에서 로파의 푸념소리가 들리였다. 창황중에 쇠가 잘 열리지 않는 모양이다.

《마누라, 덤비지 말고 왼쪽으로 천천히 돌리라구.》

로태심이 친절히 깨우쳤다.

마침내 문이 열리였다. 문고리를 잡은 형수의 모습이 드러났다.

체소한 형님에 비해서는 체구가 풍만한편이였다. 머리칼이 반나마 희여지고 눈귀에 잔주름이 잡혔으나 얼굴의 륜곽과 영채로운 눈매는 형님이 반했던 처녀시절의 아름다운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고있었다.

《형수님, 안녕하십니까.》

로태근은 허리굽혀 인사를 했다. 처음의 상봉이였으나 형님의 입을 통하여 그에 대하여 들었던 옛 기억이 되살아나며 반가움이 넘쳤다.

《적은이,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수.》

서분옥은 적은이의 손에 들린 트렁크를 받아들었다.

그들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세 방중에서 그중 넓은 가운데방에 자리를 잡았다.

형수가 권하는 쏘파에 앉은 로태근은 방안을 둘러보고 놀랐다. 초상화밑에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을 모시고 형님이 찍은 기념사진이 여러상 모셔져있었다.

형수가 언제 어디서 형님이 두분을 모시고 찍은 사진이라고 설명을 했다. 듣고보니 형님은 시인민회의 대의원이고 로력영웅으로 국가적인 회의와 행사들에 여러번 참가했다. 형님이 이렇게 조선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되였다는것을 아버지가 알았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것인가. 그러나 그런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하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형수는 계속했다. 형님이 어느 공사장에서 어떤 공을 세웠는가를 꼽아내리기 시작했다. 실상 서분옥은 령감자랑을 잘하는것으로 소문난 녀자였다. 사실 자랑을 할만 한 남편이기도 했지만 늙어서 특별히 금슬이 좋다보니 남편에 대한 이야기라면 커다란 흥분을 안고 펼치군 하였다. 하물며 외국에서 처음 온 시동생앞이고보니 여느때없이 신바람이 났다.

세면장에서 손을 씻고나온 로태심은 세월없이 한담을 펼치는 로친을 보고 퉁을 놓았다.

《여보, 제 녀편네나 제 남편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배안의 병신이라고 그만큼 일렀는데도 버릇을 못 고치거던. 그만하고 어서 냉큼 일어나서 점심이나 차려오우.》

그제서야 서분옥은 손으로 무릎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내려갔다. 인차 크지 않은 두리반에 점심상을 차리였다. 상우에는 오이채꾸미에 노란 닭알고명을 올린 강냉이국수가 오르고 가두배추김치와 낙지회, 닭알부침들이 올랐다. 술은 상표도 없는 병에 담긴것이였다.

로태근은 가져온 트렁크를 열고 값진 프랑스포도술과 통졸임을 꺼내놓았다.

서분옥이 먼저 상우에 오른 술병을 기울여서 령감과 시동생앞에 놓인 유리잔에 따랐다.

《형님과 형수님은 제가 가져온 술부터 맛보십시오. 홍콩에서도 보통 마시기 힘든 술입니다.》

《포장을 뜯지 말아라. 나는 마누라가 조제한것밖에 입에 대지 않는다.》

로태심이 동생을 만류했다. 그리고는 제먼저 로친이 부어주는 잔을 들었다.

《네 안내를 맡은 동무는 너를 위해 고려호텔이나 옥류관에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했었다. 그런걸 네 형수가 반대했다. 타국만리에서 처음 온 동생에게 자기 손이 간 음식을 꼭 대접해야 한다고 했다.

네 눈에는 식탁이 허술할테지만 그리 알고 많이 들어라.》

《형수님의 성의로 알고 달게 먹겠습니다.》

로태근은 형수가 부어준 술을 마시였다. 짜릿한 자극이나 감미로운 맛이 없는 술이였다. 그랬으나 술잔을 입술에서 떼기가 바쁘게 전신에 취기가 퍼지는듯 했다.

서분옥이 령감의 잔에 다시 술을 약간 따랐다. 마치도 화학실험을 하는 사람이 유리관에 제정된 량의 시약을 넣으며 눈금을 가늠 할 때처럼 조심하는 동작이였다. 그러나 시동생의 잔에는 넘치도록 마음놓고 따랐다. 량이 적어서 형수가 형님의 잔에 적게 부었다고 생각한 로태근은 잔을 바꾸려고 했다. 그러자 형님은 펄쩍 놀라서 술잔을 잡았다.

《로친은 내 주량을 알기때문에 그렇게 부은것이다. 나는 술을 평소에는 입에 대질 못한다. 네가 왔으니 로친이 가늠해준걸로 흉내내는거다. 그리 알고 형은 상관말고 네 주량껏 마시렴. 내게는 조금만 지나쳐도 신경이 나고 몸에 해롭다.》

형제는 두번째 잔을 들었다.

얼굴에 약간의 취기가 번지는듯 한 형님이 헌헌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로친이 너한테 내가 언제 어느때 어떤 공을 세웠다고 자랑을 했다만 실은 그때마다 로친의 도움이 컸다. 나를 따라다니며 남몰래 돌봐주었고 내 뜻을 따라서 기중기를 능숙히 운전해주었지. 세상에 네 형수같은 녀자는 흔치 않을게다.》

로태근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형님네 량주를 번갈아보았다. 좀전에 형님은 남편이나 안해자랑을 하는 녀자나 남자는 배안의 병신이라고 하였지만 지금 그는 자신이 안해자랑을 하는것이다.

세상에 그들처럼 상대를 존중하며 서로 돕고 이끌어주며 한평생을 사는 부부는 흔치 않을것이다. 아무튼 형님은 조국에 와서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남다른 보람과 행복을 누리고있다.

점심상을 물린 형제는 헤여진 긴 세월에 쌓였던 회포를 나누었다.

형님의 지나온 인생행로가 수령님과 장군님의 품속에서 행복과 영광으로 수놓아진 이야기라면 동생의 이야기는 쏘련의 붕괴를 계기로 고민과 곡절로 얽혀진 이야기였다.

쏘련의 붕괴는 로태근의 생활에도 심각한 충격을 주었다. 그가 다니던 채석장은 기업활동이 혼란되였다. 그곳에서 석재를 사가던 건설기업소들이 문을 닫았다. 생산된 석재를 팔수가 없었다.

로동자들은 로임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생계를 위한 길이 막혀버렸다.

사회주의제도하에서 성실한 로동으로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이 범죄의 길을 걷게 되였다. 로태근도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족들을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여럿이 작당을 해서 착암기와 돌톱, 도화선과 폭약 등을 기업소에서 내다가 팔았다. 채석장에서 설비지도원을 하던 그로서는 그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후날 그것이 제기되여 2년간의 징역살이를 하였다. 로태근은 가슴을 두드리며 자기를 범죄의 길로 이끈 사회현실에 저주를 보냈다. 사회주의를 무너뜨린자들이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생활을 파괴하고 범죄구렁텅이로 떠밀었던것이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출옥을 하고보니 그사이 어머니는 로환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홍콩에 살던 외삼촌이 집에 와있을 때여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어주었다고 했다. 외삼촌은 오래전부터 홍콩에서 중계무역을 하고있었다. 그의 주선으로 로태근일가는 원동을 떠나 홍콩으로 갔다. 로태근은 외삼촌이 대여준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장사를 시작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전반생을 보낸 그는 생소한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가기가 어려웠다.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세파에 다스러질대로 다스러진 거간군들에게 협잡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밑천을 떼우고 맨손으로 나앉게 되였을 때마다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바다에 몸을 던지려고 했었다. 제때에 안해가 달려와서 손을 잡지 않았다면 로태근은 이미 저세상사람이 되였을것이다. 나나이족출신의 안해는 북극여우처럼 야생적인 영악한 생활력을 가진 녀자였다. 그는 어리숙한 남편을 제쳐놓고 자신이 중계무역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지금만큼이라도 토대가 잡힌 회사로 될수 있었다.

로태근은 형님과 상반되는 자기의 인생행로에 결론을 짓듯이 말했다.

《사회주의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지요. 쏘련에서 사회주의를 무너뜨린 놈들때문에 나는 별의별 경난을 다 겪었습니다.》

《레닌이나 쓰딸린의 사상을 신념으로 새겼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테지.》

로태심은 생각깊은 어조로 응대했다. 그리고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수령님을 영생의 모습으로 모시기 위해 취하신 조치들을 그밤이 지새도록 이야기해주었다.

이튿날 로태근은 최길호의 안내를 받으며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했다.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김일성주석님을 만나뵈옵고 인사를 올린 그는 커다란 감격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기념궁전은 모든것이 최상의 수준에서 정성다해 꾸려졌다. 주석님께서는 서거하신것이 아니라 인민의 마음속에 여전히 생존해계신다는 느낌이 강렬했다. 광장에 나서서 문득 고개를 들었다. 광장변두리에 세워진 구호가 한눈에 안겨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조국땅에 발을 들여놓은 때부터 여러곳에서 보아온 구호였다. 하지만 방금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주석님을 뵈옵고난 지금은 그 구호의 의미가 현실감을 가지고 새롭게 안겨왔다. 입속으로 조용히 외워보았다. 그러자 머리속에서 섬광이 번쩍이는듯 했다.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사회주의조선이 어찌하여 무너지지 않고 승승장구하는가! 이것은 오늘의 세계가 품고있는 수수께끼이다. 력사의 전례를 보면 조선은 열번도 더 무너질수 있었기때문이다. 로태근자신에게도 사회주의조선의 승리적전진은 커다란 의혹이였다. 그런데 이 순간에 그 수수께끼의 해답을 분명히 찾은듯 한 격동이 가슴에 차올랐다.

그렇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영생은 사회주의조선의 영생이다!

쏘련의 붕괴과정을 체험하고 조선의 현실을 목격한 그의 심장이 터치는 웨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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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산기념궁전방문을 마친 로태근은 최길호의 안내를 받으며 모란봉으로 발길을 옮겼다. 울창한 수림속으로 뻗은 폭이 좁은 길로 나란히 걸었다. 싱그러운 솔바람, 서느러운 그늘, 고운 새들의 우짖음, 이따금 나타나는 아름다운 꽃밭, 거기서 풍겨오는 꽃향기··· 시선을 들면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너머로 끝간데없이 펼쳐진 고층건물의 숲, 대동강강폭을 걷어차고 창공으로 떠오르는 물오리떼··· 눈길이 닿는 곳마다 절승이다. 그랬으나 지금 로태근은 수려한 산천경개에 끌릴만 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금수산기념궁전에서 받아안은 심중한 생각과 숭엄한 감정에서 아직 풀려나지 못했다.

《최선생, 여기 좀 앉지 않겠습니까?》

로태근은 느티나무그늘밑의 장의자를 가리켰다. 최길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들은 의자에 앉았다.

로태근이 허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이번에 조국을 보면서 홍콩에 있을 때 품었던 두가지 의문을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 서거하셨을 때 서방세계는 조선에서 정치적혼란이 일어나고 조만간 봉괴되리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해가 바뀐 오늘에도 조선의 사회주의체제는 끄떡없이 존재하고 또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되여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이것을 담보하고있는가? 이것은 오늘에 이른 세계 많은 사람들의 의문입니다. 나에게도 이것은 하나의 커다란 수수께끼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미 그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찾았습니다.》

《로선생은 그래 어떤 해답을 찾았습니까?》

최길호는 커다란 관심을 드러내며 빙그레 웃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금수산기념궁전에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고 인민의 마음속에 영생하십니다. 주석님께서 영생하시기에 그이께서 세우신 사회주의조선도 영생할것입니다. 이것은 력사의 진리입니다.》

《옳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길호는 신뢰어린 눈길로 로태근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이 해외동포는 조국땅을 밟은지 하루만에 조국의 정치현실을 정확히 가늠해보았다. 거기에는 형님의 영향이 컸을것이다.

로태근은 다시 입을 열었다.

《두번째 의혹은 아직 풀지 못했습니다. 그게 뭔고하니 국가의 최고공직계승문제입니다. 력사를 돌이켜보면 어느 나라에서나 계승문제는 시간을 다투는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여러해가 넘는 오늘까지 국가의 최고공직을 공백으로 남겨두고있습니다. 이것은 나뿐만아니라 많은 세상사람들의 의혹을 불러내고있습니다. 최선생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최길호는 긴장했다. 제기하여온 질문이 심중한 문제였다. 잠시 생각을 굴리던 끝에 응대했다.

《우리 인민은 한결같이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하루빨리 국가주석으로 모시기를 바라고있습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일을 보시던 그 공직에 자신께서 오르실수 없다고 하시는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몇해전 1월 1일에 전체 인민에게 서한을 보내셨는데 거기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 위대한 수령님의 제자답게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모두 한마음한뜻으로 힘차게 일해나아갑시다.>라고 씌여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전사, 제자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데만 전심하고계십니다.》

《그이께서 그러하실수록 일군들이야 백성들의 의사를 따라서 위대한 장군님을 국가주석으로 추대하는 사업을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조선민족의 한 성원으로 평양에서 계승행사를 늦잡는것이 안타깝습니다. 나뿐만아니라 해외에 사는 우리 겨레모두가 그러합니다. 얼마전에 나는 로스안젤스에서 홍콩에 온 동포를 만난 일이 있습니다. 그의 말이 재미교포들도 같은 심정이였습니다.》

《알고있습니다.》

최길호는 서둘러 수긍했다. 참으로 그렇다. 그는 자기 직분의 덕으로 해외동포들도 조국에서 국가공직계승행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있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조국을 방문하는 동포들마다가 그런 심정을 토로하군 했었다. 겨레의 한 성원임을 자각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념원은 수령님과 꼭같으신 장군님을 공화국의 주석으로 하루빨리 모시려는것이였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국가적인 공직만이 국가와 민족을 대표한다고 여기는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남녘인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일본에서 조국을 방문한 동포가 있었는데 그는 박용길녀사의 조카였다. 그는 서울에 사는 박용길고모의 심정까지를 겸하여 전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고모님은 김일성주석님 서거 한돐 행사에 참가하고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남측에서는 고모를 체포해서 철창속에 가두었습니다. 고모는 남측의 사법당국자들에게 부르짖었습니다. <이놈들, 최고성지에 김일성주석님을 영생으로 모시고 주석님의 유훈을 따르고있으니 김정일장군님은 반드시 이긴다! 이제 두고봐라.> 죽음같은것은 초탈하고 호령하는 로인을 괜히 가두었다고 생각한 당국은 인차 고모를 석방시켰습니다. 고모는 석방후 김정일장군님을 최고수위에 모시였다는 소식이 평양에서 날아오기를 학수고대하면서 그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속한 시민단체의 성원들에게 말합니다. 주석님 돌아가셨을 때에는 경찰들이 분향소들에 달려들어서 추모제를 제대로 못 지냈는데 그때의 죄스러움과 아픔을 가시기 위해서라도 주석님의 후계자이신 장군님께서 추대되시면 경축연을 반드시 베풀자고말입니다.》

최길호는 이 순간 로태근의 심정과 박용길녀사의 심정이 합쳐지면서 조국에 사는 공민의 한사람으로 죄스러움을 느꼈다.

《추대행사가 하루빨리 벌어지기를 바라는 해외동포들의 심정을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에 반영하겠습니다!》

그날 밤 그는 양석의장에게 남녘겨레와 해외동포들의 심정을 종합한 장문의 편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