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6

 

제 5 장

6

 

날로 엄혹해지는 정세를 꿰뚫어본 김정일동지께서는 무거운 사색에 잠기시였다.

대국상을 당한 후 우리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과 침략책동은 더욱 우심해지고있다. 놈들은 사회주의보루인 우리 공화국을 압살해보려고 《사회주의의 종말》을 요란스레 떠들면서 악랄하게 접어들었다.

새해에 들어서면서 미제는 우리를 반대하는 군사적위협과 도발책동을 매일과 같이 감행하였다. 놈들의 전략정찰기들이 군사분계선상공을 비행하면서 공화국북반부 전반적지역에 대한 정탐행위를 끊임없이 벌리였다.

미제는 남조선괴뢰들과의 북침합동군사연습에 그 어느때보다 열을 올리였다. 《을지》와 《포커스렌즈》라는 명목으로 갈라서 벌려오던 전쟁연습을 통합하여 《을지, 포커스렌즈》북침전쟁연습으로 확대시켰다. 여기에는 한차례의 전면전쟁을 치르고도 남을만 한 군대와 최신무장장비들이 동원되였다. 남조선주둔 미군과 괴뢰군뿐만아니라 미태평양함대 소속 7함대와 비행대들이 참가하였다.

《독수리》합동군사연습은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이 우리에 대한 핵선제공격을 벌리기 위한 또 다른 전쟁연습이였다. 이 전쟁연습 역시 해외로부터 수많은 침략군무력이 투입되였으며 새해에는 지난 시기와 달리 그 기간이 30일로 대폭 늘어났다. 외국의 어느 한 군사잡지는 《독수리》전쟁연습의 내용과 위험성을 론평하면서 그것은 《북조선을 기습하여 상대방의 기지를 파괴하기 위한것》이며 《특수부대의 북조선침투연습을 배합한 종합전쟁연습》이라고 하였다.

미제는 군사적공세를 강화하는 한편 우리의 핵시설에 대한 국제적압력을 시도하면서 또다시 《특별사찰》소동을 일으켰다. 미제의 사촉을 받은 국제반동들은 우리더러 《전면사찰》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요란스레 떠들었다. 지어 미제강경보수세력들은 항공모함전단을 조선동해에 끌어다놓고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 북조선에 대한 군사력을 행사할것이라고 우리를 위협해나섰다.

남조선괴뢰도당의 반공화국행위도 극도에 이르렀다.

김영삼역도는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에 대한 비보가 전해지자 군대에는 《특별경계령》을, 경찰에는 《갑호비상령》을, 공무원들에게는 《비상대비령》을 내리는것으로 동족상쟁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역도는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에 비법적으로 군대를 들이미는 한편 수많은 최신군사장비들을 다른 나라로부터 사들이였다.

미제를 괴수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과 남조선괴뢰도당의 군사정치적도발과 압력, 전쟁책동으로 말미암아 조선반도에는 핵전쟁의 위험이 짙게 떠돌게 되였으며 그것이 언제 터질지 예측할수 없는 첨예한 국면이 펼쳐졌다.

정세의 엄혹성은 거기에만 있지 않았다.

세계사회주의시장의 붕괴는 우리 나라의 경제발전에 엄중한 난관을 조성했다. 우리는 필요한것을 자본주의시장에서 사들이지 않을수 없었다.

제국주의련합세력은 이것을 기화로 경제제재와 봉쇄로 목조르기를 하려고 덤벼들었다. 이렇게 하면 우리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킬수 있다고 타산했다. 놈들은 어리석게도 언제쯤 가면 우리의 사회주의제도가 무너질것이라고 그 시기까지 나름대로 찍었다. 실상 남들같으면 열번도 더 무너질수 있는 엄혹한 정세에 놓여있었다. 세계는 우리가 겪고있는 전례없는 난관과 시련을 두고 관심을 모았다. 과연 좌절되는가, 아니면 이 난국을 뚫고 나가는가?

사회주의조국의 운명을 한몸에 지닌 김정일동지께서는 험난한 역풍을 과감히 뚫고나가야 하였고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고수하셔야 했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어깨에 실리는 력사의 중하를 무겁게 실감하며 심중한 사색을 거듭하시였다. 그럴수록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오시였다. 전에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 하더라도 수령님과 의논하고 동의를 받으면 눈앞이 확 열리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용히 눈을 감고 수령님께서 헤쳐오신 시련많은 력사를 더듬어보시였다. 거기에는 비범한 정치적혜안과 무비의 담력을 지닌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극복할수 있었던 생사운명의 판가름이 벌어지는 준엄한 력사의 계기들이 많았다.

초기혁명활동시기 5. 30폭동이후 더욱 강화된 일제의 폭압과 백색테로에 의해 품들여 꾸려놓았던 혁명조직들이 파괴되고 김혁, 최창걸을 비롯한 열혈투사들이 무수히 희생되였다. 혁명은 완전한 좌절을 당하는듯싶었다. 그러나 무비의 헌신성과 강철의 의지를 지니신 수령님께서는 머슴살이도 마다하지 않고 인민들속으로 들어가 혁명조직들을 복구하고 혁명의 씨앗을 뿌리시였다. 그리하여 혁명의 새싹을 무성하게 키우시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는 또 얼마나 시련의 고비들이 많았던가.

1차북만원정에서 돌아올 때 얼마 남지 않은 대원들을 거느리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험준한 산발을 넘은 수령님께서는 촉한으로 생명의 위험을 당하시였다. 백설의 광야에 묻히고마느냐, 아니면 다시 일어나 싸우느냐 준엄한 판가름이 앞에 놓이였다. 이러한 때 수령님께서는 가물거리는 의식을 초인간적인 의지로 가다듬으며 《반일전가》를 지어 대원들과 함께 부르며 사선의 고비를 헤치시였다.

력사에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우는 시기는 말그대로 한치한치 엄혹한 시련을 헤쳐가는 피의 로정이였다. 며칠씩 끼니를 번지며 걸어가는 대오에 일제 《토벌》대들이 사면팔방으로 달려들었다. 수령님께서는 령활한 전술로 적들을 쳐부시고 북대정자에 이르렀고 그후 혁명의 새로운 앙양기를 안아오시였다.

해방후에도 엄혹한 시련의 고비는 여러번이였다.

조국해방전쟁은 그 대표적실례라고 할수 있다. 미제는 제국주의련합세력과 남조선괴뢰도당을 거느리고 청소한 우리 공화국을 괴멸시키려고 접어들었다. 적아의 력량은 대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군대와 인민을 원쑤격멸의 성전에로 호소하고 몸소 그 진두에서 침략자들을 멸망시키시였다. 이것은 세계를 경탄시킨 력사의 기적이였다.

전후에도 시련의 고비가 있었다. 순탄한 환경이라 하더라도 재더미우에서 경제를 복구하고 인민생활을 안정시키는것은 어려운 과제였다. 그런데 미제의 사촉을 받은 리승만괴뢰도당은 《북진》소동으로 열을 올리며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이끌어갔다. 그런가위에 이웃나라들에서는 수정주의가 대두하여 저들의 그릇된 로선을 내려먹이려고 우리를 압박해왔다. 여기에 장단을 맞추며 당내의 반당종파분자들은 내부로부터 우리 당을 전복하려고 꾀하였다. 엄혹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수령님께서는 강선의 로동계급을 찾고 지금 자신께서 믿을것은 우리 로동계급밖에 없다고 하면서 천리마대고조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수령님께서 무수히 헤쳐온 준엄한 난국들은 심오한 력사의 진리를 밝혀주고있다.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늘 교시하시였다. 아무리 형세가 준엄하다하여도 자기 인민의 힘을 믿고 일떠서면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인민을 하늘로 여기며 한평생 투쟁하여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서 비록 곁을 떠났지만 혁명의 진리와 풍부한 력사적경험으로 자신을 고무해주신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솟구치는것을 의식하시였다. 그렇다. 일심단결의 의지로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은 사회주의조국을 굳건히 수호하고 수령님께서 넘겨주신 혁명의 붉은기를 끝까지 들고 나갈것이다!

이튿날 김정일동지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을 만나고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싸움준비를 잘하며 혁명적군풍을 세울데 대한 강령적인 가르침을 주시였다. 그리고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우리는 지금 세계제국주의강적과 치렬한 대결전을 벌리고있습니다. 이미 말했지만 나는 인민군대를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위업완성의 주력군으로 내세워 오늘의 준엄한 난관을 뚫고나가려고 합니다.

인민군대는 사회주의조국수호의 전초선에 서있습니다. 일단 유사시에는 놈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안기여야 하겠습니다. 나는 인민군대가 주력군으로서의 자기 사명을 다하리라는것을 굳게 확신합니다.》

며칠후 김정일동지께서는 청년사업을 담당한 책임일군들에게 청소년들을 사회주의조국수호의 결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도록 교양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에 따라 우리 군대와 인민은 원쑤격멸의 단호한 의지와 결심으로 가슴을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