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4

 

제 5 장

4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문건에서 시선을 드시였다. 년초이고보니 여느때없이 문건이 많았다. 방금 보신것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에서 올린 문건이였다. 거기에는 올해 9월에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선거를 예견하고있었다. 올해로 9기의 임기가 끝나는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올해안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해야 할것인가? 대의원선거를 하게 되면 어차피 1차회의에서 국가수반추대를 하여야 할것이다.

한동안 심중한 사색에 잠겼던 그이께서는 전화로 양석의장을 찾으시였다.

《방금 문건을 보았습니다. 좀 의논할것이 있는데 내 방으로 와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양석은 저으기 흥분된 어조였다. 그 어떤 기대로 가슴이 설레이는 모양이다. 그는 국가수반추대문제를 놓고 상면이 있은 후 두차례나 편지를 보내여왔다. 처음에 주장하던 자기의 견해에 새로운 론거들을 안받침한 편지들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거기에 아무런 응답도 보내지 않고 침묵하시였다. 그랬던것만큼 대의원선거와 관련하여 의논을 하자고 하시니 양석은 마침내 뜻을 이룰 때가 되였다고 여기는게 분명했다.

그는 예견보다 일찌기 집무실에 나타났다.

《그래 올해안으로 대의원선거를 꼭 해야 하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9기 대의원 임기가 끝난것도 그렇지만 올해 우리는 당창건 50돐을 맞이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국가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고 당창건 50돐을 대정치축전으로 맞이하려는것은 우리 당과 인민의 한결같은 념원입니다.

새해에 접어들면서 온 나라 인민들과 대의원들속에서는 이러한 념원을 저희들한테 수없이 제기해오고있습니다.

저는 이런 의견들이 제기될 때마다 추대행사를 아직도 하지 못하고있는 자신을 두고 자책을 금할수 없습니다.》

양석은 간절히 말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쌓이고쌓인 소망을 다시는 터놓을수 없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심정을 알겠습니다. 앉으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서 앉으라고 손짓하시였다. 그러나 양석은 선채로 계속했다.

《얼마전에 어느 한 대의원은 저를 빗대고 김혁이나 차광수와 같은 충신이 없기때문에 추대행사가 아직까지 미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선거를 진행하도록 하여주십시오.》

《수령님서거 3년상이 끝나기 전에는 대의원선거도 할수 없고 추대행사도 할수 없습니다!》

단호하신 음성에 놀라듯 양석은 어리둥절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표정을 바꾸며 그의 손을 잡아 옆자리에 앉히시였다.

《의장동무는 왜 내 마음을 리해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제기를 거듭해올 때마다 나는 괴롭습니다.》

사무치는듯 한 절절한 목소리로 계속하시였다.

《내 마음속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여전히 계십니다. 어떻게 하면 수령님을 주체의 태양으로 영원히 높이 우러러모실것인가? 어떻게 하면 수령님의 유훈을 성과적으로 실현할것인가? 오직 그 생각뿐입니다. 그 심정을 담아서 설날을 맞으며 우리 인민에게 새해인사를 보냈던것입니다. 우리모두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 제자답게 내 나라, 내 조국을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한마음한뜻으로 일하자고 말입니다. 지금 보니 양의장동무는 새해인사에 담겨진 나의 뜻과 감정을 리해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더는 추대문제를 들고다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불렀습니다.》

양석은 얼굴을 붉히며 침묵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몽상기간에 대의원선거를 벌려놓고 춤추며 노래할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곁을 떠나신 수령님앞에서 차마 하여서는 안될 일입니다. 의장동무는 세계정치사의 전례를 먼저 생각하면서 국가의 최고수위를 언제까지나 공백으로 남겨둘수 없다고 여기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버이수령님과 우리 인민은 세계정치사가 알지 못하는 혈연의 뉴대로 이어져있습니다.

우리는 정치사의 전례보다 이 혈연적뉴대가 야기하는 경모심과 도덕적감정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자신의 결심이 몽상을 입고있는 우리 인민의 사상감정에도 부합된다고 확신합니다.》

양석은 무슨 말인가를 할듯 했으나 입을 열지 못했다.

《의장동무, 내 한가지 과업을 주어도 좋겠습니까?》

《어서 말씀하십시오.》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농사일을 걱정하면서 생전의 마지막무렵까지 포전길을 걸으시였습니다. 지난해에도 평양시주변협동농장부터 돌아보시였습니다. 우리는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따라서 어떻게 하나 농사를 잘 지어야 하겠습니다.

쌀이 있어야 사회주의도 지킬수 있습니다. 우리앞에 나선 가장 절박한 문제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푸는것입니다. 나는 중앙기관의 책임일군들을 농촌에 파견해서 올해농사를 잘 지을 결심입니다. 양의장동무도 황해남도에 나가 허덕복동무를 도와서 수령님의 유훈대로 농사를 잘 짓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장군님, 알겠습니다.》

양석은 일어서며 힘있게 대답했다.

김정일동지도 따라 일어서시였다.

《년세도 많은데 외지에 나가 생활하자면 불편한 점이 많을것입니다. 건강에 각별히 류의하십시오.》

양석이 집무실을 나섰다.

그를 바래운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천히 방안을 거니시였다. 어떻게 하나 식량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내처 떠나지 않으시였다. 지난해에 있은 수해로 나라의 식량사정은 어렵게 되였다.

부족한 식량때문에 처처에서 가슴아픈 일들이 벌어지고있었다. 그 정상을 생각하면 도무지 잠을 이룰수 없으시였다. 어떻게 하면 알곡생산을 높일수 있을가? 최근에 이르러 거듭해오던 그 생각을 이어가시였다. 세계적으로도 식량위기가 닥쳐오고있었다. 식량을 팔겠다는 나라도 거의 없고 주겠다는 나라는 더욱 없다. 자체로 해결하는 길밖에 다른 출로는 없다. 경지면적이 제한되여있는 우리 나라는 단위당수확고를 결정적으로 높여야 한다. 그러자면 좋은 종자를 심고 두벌농사를 해야 할것이다. 수확이 높은 감자농사를 장려해야 한다. 감자라면 대홍단군이 먼저 떠오른다. 감자를 주작으로 심는 고장이다. 그곳에서부터 감자농사혁명의 봉화를 추켜들게 하고 그 경험을 전국에 일반화하여야 하지 않을가.··· 부침땅면적도 최대한으로 늘여야 한다. 그러자면?··· 전국의 토지를 정리해야 한다. 토지정리사업은 어렵고 방대한 대자연개조사업이다. 그러나 농업생산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사업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받들고 우리 인민의 식량문제를 풀기 위한 구상을 펼쳐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