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2

 

제 5 장

2

 

황해남도에서 도내 농업일군협의회가 열리였다. 협동농장관리위원장과 기사장이상의 일군들이 참가했다. 농기계작업소, 농기계수리공장, 관개관리소를 비롯한 농업생산과 관련된 공장, 기업소일군들도 참가했다. 도내 농촌들에 파견되여온 중앙기관일군들이 뒤좌석에 앉았다.

집행석에는 도당책임비서와 도인민위원장, 허덕복이 나왔다.

도농촌경리위원회 농산국장이 허덕복에게 참가인원을 보고했다.

참가해야 할 사람은 한사람도 빠지지 않았다.

허덕복이 연단에 나섰다. 술렁이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지난 2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도농촌경리위원회에 전화를 걸어오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나라의 긴장한 식량사정을 풀기 위해 우리 도에서 올해에 이모작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의 이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올해에 만정보의 이모작을 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토론하려고 오늘 이렇게 모이였습니다.》

회의의 취지를 설명한 허덕복은 장내를 둘러보았다. 누구의 얼굴에나 긴장이 어리였다. 만정보의 이모작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고있는 그들이였다. 예로부터 부지깽이도 펄펄 뛴다고 하리만치 씨붙임계절의 농촌로력은 긴장했다. 여차하면 전작의 수확때문에 후작파종의 적기를 놓칠수 있었다. 전작의 수확기가 모내기계절과 겹치기때문에 그 시기의 로력사정은 더욱 어려웠다. 잘못 타산을 하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전작이나 후작 어느 하나도 변변히 하지 못해서 게도 구럭도 놓치는 격이 될수 있었다. 농기계가동과 비료도 문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황해남도에서는 기후조건으로 보아 이모작을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신것은 일찌기 1960년대였다. 그러니 그때로부터 지난해 수천정보의 이모작면적을 확보하는데 30여년 세월이 흐른셈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 면적을 대바람에 배로 높여야 한다. 논판에 전작으로 보리를 심었다가 모내기철을 놓칠 지경이 되자 이삭이 한창 패는 보리밭을 갈아엎은 가슴아픈 일도 있었고 전작으로 심은 감자가 여물기를 기다리다가 파종이 늦어져 강냉이농사를 망친 일도 있었다. 점차 두벌농사에 신심을 잃은 어떤 협동농장에서는 종자보리를 맥주와 바꾸어 먹기도 하였다.

《만정보의 이모작?!···》

조용히 입속으로 외워보는 일부 일군들은 그 엄청난 수자에 위압되는듯 고개를 떨구기도 하였다. 무조건 만정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은 앞서지만 실지로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우려가 뒤따르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장내에 사무치듯이 절절한 허덕복의 목소리가 다시 울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식량고생을 하는 인민들을 생각하면 밥을 잡수셔도 모래를 씹는것 같고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고난의 행군시기에 한홉의 미시가루를 대원들과 나누신것처럼 자신께서는 전선길의 한덩이 줴기밥을 인민들과 함께 나누고싶다고 하시였습니다.

우리 도는 곡창지대이다보니 식량사정의 어려움을 잘 모르고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방의 식량사정은 어렵습니다. 그 어려움을 겪고있는 인민들을 두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면 그런 교시를 하시였겠습니까!》

허덕복은 목이 메여 뒤를 이을수가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으로부터 사무치듯 절절한 교시를 전화로 받을 때의 격정이 되살아났다.

장내에서도 녀자들의 흐느낌소리가 울리였다. 도내 농업부문일군들중에 녀성관리위원장들도 많았다. 이악하게 농사도 지을줄 알았지만 예민한 감수와 다감한 감정도 남다른 그들이였다. 남자들도 눈시울을 적시였다.

순간 장내를 둘러보던 허덕복은 자신의 의지와 감정이 그들과 하나로 일치하는것을 후덥게 느끼며 보다 열띤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동지들! 우리모두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 제자들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난해 연백벌을 현지지도하실 때 우리 도내 농업전사들은 한결같이 그이께 말씀올리였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농사를 잘 지을테니 년로하신 몸으로 험하고 뜨거운 포전길을 더는 걷지 마시라고 말입니다. 그날에 터친 우리의 심정이 과연 어떤것인지 우리는 올해의 농사에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 제자의 맹세가 어떤것인지를 올해의 이모작농사작황이 말해주도록 하여야 합니다. 자기의 심정들을 오늘회의에서 기탄없이 토론해주기 바랍니다.》

여러명이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누구에게 첫 순서를 뺏길세라 사회자의 부름도 없이 연단으로 나오는 녀성이 있었다. 연안군 천태협동농장 관리위원장 배옥실이였다. 연단에 나선 그는 목메인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오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긴장한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두고 얼마나 깊이 고심하시는가를 새롭게 알았습니다. 우리 수령님께서 고난의 행군시기 한홉의 미시가루를 대원들과 함께 나누신것처럼 자신께서는 전선길에서 드는 한덩이 줴기밥도 인민들과 나누고싶다고 하신 교시를 들으니 눈물이 납니다.

방금 위원장동지도 이야기했지만 저 역시 어버이수령님께서 뙤약볕속에서 우리 협동농장의 포전들을 돌아보실 때 인제는 우리가 장군님을 모시고 농사를 잘 지을테니 년로하신 수령님께서는 더는 포전길을 걷지 마시라고 말씀올렸습니다. 그것이 생전의 수령님께 올린 마지막맹세였습니다.》

배옥실은 북받치는 흐느낌을 참느라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더니 보다 절절한 음성으로 뒤를 이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올해 우리 도에서 이모작면적을 만정보 보장해서 알곡생산을 결정적으로 높일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는데 저는 이 과업을 실현하는 길에서 수령님께 다진 마지막맹세가 어떤것이였는가를 실증해보이겠습니다. 우리 협동농장에서는 이미 일정하게 이모작의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모작은 알곡 정보당수확을 높일뿐아니라 전작으로 심은 작물의 짚을 거름으로 리용할수 있기때문에 땅의 지력도 높일수 있습니다. 봄에 땅이 녹자마자 전작파종을 다그치면 긴장한 로력문제도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습니다.

우리 협동농장에서는 올해에 지난해보다 배이상의 이모작면적을 보장하겠습니다.

이제 협동농장에 돌아가면 광범한 농민들과 협의하여 이모작적지를 정하고 거름을 내는 등 그 준비를 빈틈없이 하겠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도가 알곡생산에서 전국의 앞장에 서야 한다고 여러번 교시하시였습니다.

저는 우리 도에서 올해에 수령님의 이 유훈을 기어이 관철하자는것을 여러 동지들에게 호소하면서 우리 협동농장에 하달된 알곡생산계획을 반드시 수행할 결의를 굳게 다집니다.》

주석단에 앉아있던 허덕복이 그에게 말하였다.

《관리위원장동무, 내 생각에는 이모작면적 만정보를 보장하는데서 제일 걸린것이 전작으로 심을 종자라고 보는데 동무네는 그 종자가 확보되여있습니까?》

《농장창고에는 필요한 량의 절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에게 호소하면 해결할수 있다고 봅니다. 농가들에서 길금용보리를 누구나 얼마간씩 보관하고있습니다.》

허덕복은 귀가 번쩍 열리였다. 급격히 높아진 이모작면적을 두고 제일 마음을 쓴것이 종자문제였다. 전반적으로 나라의 식량사정이 어려운 조건에서 어데서 종자를 가져올데가 없었다. 전작으로 적중한 보리는 아직 다른 지방에서 심지도 않았다. 그런데 농가들에 그 보리종자예비가 있다고하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정치사업을 잘하면 우리 농민들은 길금으로 엿이나 술을 고아먹으려던 보리를 종자용으로 선뜻 내놓을것이다.

《좋습니다. 다른 협동농장들에서도 보리종자가 부족할수 있는데 농가들에 호소해서 자체로 해결하여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절대로 종자를 얼마씩 보장해야 한다는 식으로 내려먹이지 말고 정치사업을 앞세우며 전작수확을 하면 제 수량을 반환하는 원칙을 견지하는것입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친히 이름을 지어주신 그 보리는 우리 도의 농업과학원분원에서 오래동안 재배시험을 한 우수한 품종입니다. 생육기일이 짧고 수확고가 높습니다. 그러나 이 종자가 부족한 경우에는 전작으로 감자도 심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감자가 한창 크기 시작할 때 강냉이를 간작으로 심는것입니다. 감자를 캔 다음에 강냉이를 심으면 그 생육기일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간작법을 도입하면 뒤그루강냉이 수확에 조금도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감자섶이 밑거름이 되여 강냉이성장에 좋습니다. 이미 여러 협동농장들에서 보여준 경험입니다. 계속해서 다른 동무들도 토론해주십시오.》

여러 사람들이 련이어 토론에 참가했다. 협동농장의 관리위원장이나 기사장들이였다. 불같은 결의들을 다지였고 합리적인 대책들을 제기했다.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위원장들도 토론에 참가했다.

회의의 분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허덕복은 전에없이 힘이 솟았다. 올해농사를 락관했다. 여러해 함께 일을 하여온 사람들이지만 딴 사람을 보는듯 한 느낌조차 들었다. 전에는 생산과제를 놓고 모여앉으면 무엇을 해결해주어야 하겠소, 무엇이 없어서 곤난하오, 우리 농장형편에서는 불가능하오 하는따위의 타발이 더러 있어 집행석을 따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의 협의회는 어느 한사람도 우에다 손을 내밀지 않고 집행석을 감동시키고있다.

마지막으로 농기계수리공장 지배인이 토론에 참가했다.

《우리 공장에서는 3월말까지 수리해야 할 뜨락또르와 련결농기계들을 전부 수리하겠습니다. 이것은 상반년도계획을 석달안에 완수하는것으로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만정보 이모작면적확보에 적극 기여하겠습니다.

우리 공장에서는 뜨락또르동력에 의거하는 우리 식의 밀보리파종기창안을 추진시켜왔습니다. 책임기사 김용환동무가 구상한것인데 그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집단은 신심드높이 새기계개발을 다그치고있습니다. 농업과학원 농기계연구소와도 여러번 토론이 있었는데 그곳 연구사들도 기계동작원리에 대한 착상이 기발하다고 찬탄을 보내고있습니다. 참으로 김용환기사는 창조적지혜가 뛰여난 동무입니다. 기어이 성공할것입니다.》

허덕복은 토론을 듣기가 거북했다. 지배인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김용환기사가 바로 그의 남편이였다. 그것을 번연히 알고있는 지배인이 무엇때문에 남편의 이름을 찍어가며 저런 토론을 하는가? 농기계수리공장은 도농촌경리위원회산하 기업소이다. 허덕복은 그 공장지배인의 직속상급이다. 혹시 지배인은 상급의 비위를 맞추려고 저런 토론을 하는것이 아닌지··· 불쾌하고 면구스러워서 고개를 깊이 숙이였다. 어서 빨리 지배인이 연단에서 내려서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그런데 도당책임비서가 그의 토론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였다.

《농기계수리공장에서 우리 식의 밀보리파종기를 창안하고있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그 기계가 도입되면 전작파종에서 긴장한 로력문제를 해결할것입니다. 그래 언제쯤이면 완성할수 있습니까?》

지배인은 더욱 활기를 띠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김용환기사동무는 이달말이면 시운전을 하겠다고 결의해나섰습니다. 그렇게 되면 파종기전으로 한개 군에 한대이상씩의 파종기를 생산보장할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뭐 애로되는것은 없습니까?》

책임비서가 다시 물었다.

《있습니다. 도농촌경리위원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일련의 자재들을 보장해주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자재상사에 필요한 명세를 제출했는데 잘 해결되지 않습니다.》

책임비서가 허덕복에게 머리를 돌렸다.

《위원장동무, 산하 자재상사에 지시를 해서 저 동무들이 요구하는 자재를 해결해주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허덕복은 머리를 숙인채로 대답했다.

책임비서는 뜨아해하는 그 대답이 불만스러운듯 저으기 높아진 음성으로 말했다.

《도농촌경리위원회는 농사일만 일이라고 하지 말고 산하 공장, 기업소들에도 관심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공장, 기업소들의 능력있는 기술자들이 자기의 창조적지혜를 원만히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전문농기계공장도 아닌 수리공장에서 능률높고 구조가 간편한 새로운 농기계를 창안하고 생산한다는것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놀라운 일입니다. 나도 인차 공장에 나가서 책임기사동무를 만나보고 고무해주겠지만 위원장동무도 그 동무의 연구사업을 잘 도와주시오.》

《알았습니다.》

이번에도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그 목소리는 활기롭게 울리였다. 남편에 대한 긍지가 은연중에 북받쳤던것이다.

협의회는 실무적인 대책과 분공을 구체적으로 의논하고 끝났다.

허덕복은 회의를 결속하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나라의 어려운 식량사정을 두고 얼마나 애를 태우시는가를 농민들에게 잘 알려주라고 강조했다. 그이의 심정을 몇백분의 일이라도 헤아린다면 누구나 새로운 결의를 안고 분발하리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