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7

 

제 4 장

7

 

이해의 마지막밤이 깊어가고있었다. 집무실에는 고요가 깃들었다. 탁상시계의 초침소리만이 가볍게 울리였다.

책상에 마주앉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방안의 공간을 응시하고계시였다. 묵은해와 새해의 계선은 력사의 흐름에서 하나의 리정표이다. 그 리정표에서 지난해를 돌이켜보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지난해는 민족사에 일찌기 없었던 불행한 해였고 그 무엇으로써도 만회할수 없는 상실의 해였다.

《차라리 1994년이 없었더라면···》

자신도 모르게 입속으로 뇌이시였다. 참말이지 그 불행의 해, 상실의 해가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7월 8일의 새벽으로부터 흘러간 피눈물의 나날들이 되새겨지셨다. 조의식과 영결식, 추도대회, 가슴찢기던 비애의 기억이 어제인듯싶으셨다. 불시로 눈시울이 젖어드는것을 의식하시였다. 뿌잇하니 흐려드는 시야에 땅을 치며 통곡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어리여왔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남기고가신 우리 인민이 얼마나 훌륭하고 충실한가! 눈물의 바다를 건너온 그들은 지금 산악같이 일떠서고있다. 자신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가 어떤것인지를 세상사람들에게 과시하고있다. 우리는 새해에 무엇을 실현해야 하는가?

래일 아침 세상에 공포될 당보, 군보, 청년보의 공동사설에 그것이 밝혀져있다. 우리 인민은 새해의 첫아침이면 크나큰 희망속에 수령님의 신년사를 받아안군 했었다. 하지만 새해는 그럴수가 없다. 어느 나라에서나 새해를 맞으며 의례히 있기마련인 신년사나 년두교서는 국가수반이 하는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에는 국가수반직이 공백으로 남아있다. 12월초에 양석의장은 신년사문제를 위해서도 국가주석추대를 년내로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왔다. 수뇌외교문제를 중요한 론거로 삼던 그에게 또 하나의 좋은 론거가 생긴셈이다. 그때 나는 그에게 다시금 명백히 말해주었다. 김일성동지는 우리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이시라고!

며칠전에 어떤 일군들은 나더러 신년사를 하여달라고 간청해왔다.

그들은 국가수반직은 없어도 우리 인민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령도자로 모시고있기때문이라고 하였다. 나는 물론 우리 인민의 신임과 기대가 얼마나 순결하고 절대적인가를 잘 알고있다. 하지만 나는 어데까지나 수령님의 전사이고 제자이다. 우리 인민의 관념에는 여태 신년사를 수령님께서만 하신다는 생각이 굳어져있다. 결코 수령님을 대신하여 신년사를 할수 없다는것은 어쩔수 없는 도덕의리적감정이다. 사연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공동사설을 받아안고 깜짝 놀랄수도 있을것이다. 세계정치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공동사설에서 새해에 당중앙이 무엇을 구상하고 무엇을 의도하는지를 알게 될것이다.

깊은 추억과 사색속에 이해의 마지막밤이 깊어가고있었다. 집무실에서 나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금수산의사당으로 가시였다.

피눈물의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새해의 첫날 정각 0시.

김정일동지께서는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전에 숭고한 경의를 드리시였다. 깊이 머리를 숙이신 자세로 한동안 그 자리에 서계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 언제나 함께 계셨던 두분께서는 새해를 맞이하는 이 무렵에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시였던가. 새해에 당과 인민이 나아갈 앞길을 두고 의논을 거듭하시면서 가장 정당한 합의를 보시군 하시였다. 이 시각에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생전의 수령님과 자리를 함께 하신듯 한 생각에 잠기시며 심장의 대화를 나누시였다.

(어버이수령님, 저는 새해에 군사중시를 국사중의 국사로 더 강하게 내세울 결심을 하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총대로 주체혁명위업을 개척하고 전진시켜오신 그 로선을 더욱 발전시켜나가겠습니다. 지금 나라가 처한 안팎의 정세와 력사적경험을 깊이 고려한 끝에 그러한 결심에 도달하였습니다.)

(적극 찬동하오. 시대와 력사가 요구하는 가장 정당한 결심이요. 총대가 굳세면 이 세상에 두려울것이 없소. 나는 김정일동지가 우리 당과 인민을 옳게 이끌고있기때문에 언제나 마음을 놓소.)

잠시후에 수령님의 음성이 다시 귀가에 울리여왔다.

(새해에 부디 건강하기를 바라오. 김정일동지가 건강해야 사회주의조국을 꿋꿋이 지켜내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수 있소.)

(어버이수령님, 고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령전에 다시금 인사를 올리고 그 자리를 물러나시였다.

얼마후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탁에 마주앉으시였다. 밤은 깊어가고있으나 잠드실수 없었다. 어버이수령님을 뵈옵고 돌아오시니 국상을 당한 슬픔을 함께 나누며 시련의 지난해를 함께 보낸 인민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리여왔다. 그들도 이밤따라 사무쳐오는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에 잠들지 못하고있을것이다. 공동사설에는 새해의 과업과 방도가 뚜렷이 밝혀져있다. 하지만 새해를 맞으면서 인민들에게 보내고싶은 자신의 고무적인사는 담겨져있지 않았다. 인민들에게로 달리는 절절한 심정을 누를길 없으시여서 종이우에 펜을 달리시였다.

《피눈물속에 1994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 위대한 수령님의 제자답게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모두 한마음한뜻으로 힘차게 일해나아갑시다.

1995. 1. 1

김정일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렇게 쓰시였다. 이 순간 가슴에 넘치는 심정을 전하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도 요약된듯싶으시였다. 하기야 피눈물의 바다를 건너 산악같이 일떠서서 새해를 맞는 우리 인민에 대한 신뢰와 축원의 감정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하지만 우리 인민은 리해할것이다. 인민과 나는 언제나 한마음한뜻이다. 사상과 의지만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까지도 하나임을 의식하시였다.

깊은 사색속에 새날이 밝아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