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3

 

제 4 장

3

 

연구소에 최신형 현미경과 미생물배양용기들이 도착했다.

김정일동지께서 보내주신 실험설비들이였다.

장연순은 그 설비들을 쓸어보며 눈물을 머금었다. 현미경과 유리용기들이 마치 생명과 넋을 가진 귀중한 존재처럼 여겨졌다.

(위대한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우리 함께 기어이 애기젖가루를 만들어내자.)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정녕 현미경과 미생물배양용기들이 연구소조의 성원들처럼 느껴졌다.

장연순은 며칠전에 대학으로부터 연구소로 완전히 적을 옮기였다.

본격적인 연구사업을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했다. 이동수속을 끝내고 강좌의 교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눌 때였다.

강좌장이 두툼한 책보자기를 책상우에 꺼내놓았다.

《내가 애기젖가루를 연구할 때 작성한 실험일지요. 비록 완전히 성공하지 못한 연구과정이였지만 선생에게 참고가 될거요. 나도 낟알로 애기젖가루를 시도했던것만큼 착상에서는 선생과 공통점이 있다고 할수 있소. 내가 이미 실험을 한 과정을 참고하면 선생이 그만큼 시간을 앞당길수 있을거요.》

《강좌장선생님, 고맙습니다.》

장연순은 감격했다. 과학자가 자기 연구결과를 남에게 넘겨준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성공하지 못한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고심어린 탐구의 노력이 깃들어있고 자기만이 발견한 소중한 결과가 담겨져있는것이다.

《그런데 이 자료들은 발효공학의 다른 주제를 연구할 때에도 강좌장선생님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필요할 때에는 도로 찾아다가 보지. 아닌게아니라 거기에는 내가 애착을 가지는 귀중한것도 없지 않소. 그러나 선생이야 내 제자가 아니요. 선생이 연구사업에서 성공하면 나는 교육자의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될거요. 어서 가져다 참고하시오.》

장연순은 책보자기를 들고 강좌실을 나서며 되돌아보았다. 강좌장의 눈에 성공을 축원하는 간절한 빛이 어리여있었다.

선물설비를 전달받은 날 저녁 장연순은 집으로 갔다. 남편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싶었고 그에게 부탁할 일도 있었다. 탁아소에 들려서 딸애를 찾아가지고 집에 이르니 남편이 이미 와있었다.

책상에 마주앉은 최성호는 얼마나 자기 생각에 깊이 빠졌는지 방안에 안해와 딸애가 들어서는줄도 몰랐다. 어깨너머로 기웃해보니 수식이 복잡한 외국문도서를 펼쳐놓고있었다. 눈길을 벽쪽으로 겨눈것으로 보아 책의 내용에 심취된것이 아니라 자기 상념에 골뜰하고있었다.

장연순은 살그머니 등뒤로 다가가서 두손으로 남편의 눈을 감쌌다.

그제서야 최성호는 흠칫 놀랐다.

순애가 까르르 웃음을 터치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누군지 맞혀봐요?》

《누구긴 누구겠니, 너의 엄마지.》

《어떻게 알아맞혔나?》

《아빠는 뒤머리에도 네 엄말 알아보는 눈이 있단다.》

순애는 무엇이 기쁜지 손벽을 치며 또다시 웃어댔다. 그 웃음이 단란하고 애틋한 감정을 불러왔다. 어른들도 마주보며 정겹게 웃었다.

《오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에게 최신형 현미경과 미생물배양용기들을 보내주셨어요.》

《그렇소?!》

놀라움과 경탄을 터친 성호는 사뭇 격동된 어조로 뒤를 이었다.

《당신은 참 행복한 과학자요. 어떻게 하나 그 은혜에 꼭 보답해야겠소. 당신이 성공하지 못하면 우선 내가 용서하지 않겠소.》

《좋아요. 성공하지 못하면 당신의 가혹한 처분을 받기 전에 나자신이 자기를 용서하지 않을거예요. 그런데 당신한테 한가지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있어요.》

연순은 말머리를 돌리며 남편의 낯색을 살폈다. 성호는 그 어떤 부탁이나 요구도 흔연히 받아들일 표정이였다. 연순은 서슴없이 말했다.

《나는 이제부터 새로운 단계에서 실험을 하겠어요. 그러자면 실험실구조를 좀 변경시켜야 하겠어요. 균배양장소도 새로 꾸리고 실험기구 세척장도 만들어야 하겠어요. 당신이 직접 설계를 하고 축조를 해주었으면 해요. 우리 연구소에는 그런 일을 할만 한 사람이 없어요.》

《벽돌과 세멘트는 있소?》

《그것도 없어요. 당신네 건설사업소에야 벽돌과 세멘트가 흔하지 않나요. 많은 량도 아닌데 당신이 노력해서 자재도 보장해주세요.》

《알겠소. 애기젖가루연구에 필요하다면 우리 일군들도 도와줄거요, 젖먹이손자들이 있는 할아버지들이니까.》

연순은 새삼스레 정겨운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처럼 언제나 안해의 일을 도와주는 그런 살뜰한 남편이 또 어데 있을가?

《그런데 당신 어떻게 일찌기 집에 돌아왔어요?》

때늦게 그것이 생각나서 물었다.

《과학원 건설건재분원에 들렸다가 직장에 전화를 걸고 직방 집으로 왔소.》

《분원에는 왜 들렸댔나요?》

성호는 헌헌한 낯빛으로 대답했다.

《인제는 대학을 졸업한지 2년이 넘지 않소. 여태껏 현장기사로만 성실히 일을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오. 그래서 나도 나라에 유익한것을 한가지 연구하려고 결심했소.》

《언제부터 그런 결심을 했나요?》

연순은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지금까지 남편이 연구사업에 몰두한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당신이 애기젖가루연구에 착수한 후부터였소. 학교시절에 당신과 1, 2등을 다투던 경쟁심이 되살아나더란 말이요. 장연순이가 그처럼 중요한 연구사업을 하는데 이 최성호가 뒤져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소. 참, 생활의 타성이란 검질긴거요. 당신은 나의 안해이지만 어린시절처럼 여전히 나의 학술적경쟁자요.》

《그랬댔군요.》

연순은 조용히 뇌이였다. 부지중에 공부에서 성호를 따라앞서려고 애를 쓰던 학교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성호는 모든 학과목에서 한걸음 앞선 대상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쪽이 앞섰다고 할수 있다. 앞으로 자기네 부부의 남모르는 경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것인가? 두사람이 다 과학연구에 몰두한다면 가정생활에 어떤 영향이 미칠것인가? 남편의 과학연구사업이 나의 연구사업에 저애로 될지, 아니면 힘으로 될지 알수 없었다. 뜻밖의 남편의 고백이 반갑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다.

《그래, 어떤 연구주제를 잡았나요?》

《지진을 고려한 고층건물의 기초와 골격구조에 대한 연구요. 지진은 우리 나라에서도 이따금 나타나는 자연현상이요. 우리는 강한 지진피해에도 끄떡없는 초고층건물을 세워야 하오. 최근년간에 새롭게 해명된 충격론의 원리와 정보기술의 도움으로 그 어떤 구조물도 수학적모형화와 력학적계산이 가능하게 되였소. 나는 이에 토대해서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초고층건축물설계리론을 창조하려고 하오.》

성호는 열기띤 음성으로 말했다. 남달리 우아한 얼굴에는 창조적열정이 번지였다. 연순은 내심 공감했다. 학술분야가 다르다보니 구체적인 내용은 알수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지향하는 연구과제의 륜곽은 짐작되였다. 참으로 의의가 큰 연구사업이다. 지진이 인류에게 끼치는 혹심한 피해의 대부분은 건물의 파괴로부터 빚어지는것이다. 심한 지각의 흔들림에도 굳건히 서있는 건축물설계리론이 밝혀진다면 무서운 재난을 막을수 있을것이다.

《잘 모르긴 하지만 제 생각에는 뜻깊은 연구주제를 잡은것 같군요. 그래, 건설건재분원에서는 어떤 립장인가요?》

《적극 지지했소. 내 연구과제가 실현되면 지진피해를 방지하는데서만이 아니라 온 나라의 요새화를 위해서도 의의가 크다고 했소. 말하자면 나라의 방위력을 다지는데서도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는거요.》

《앞으로 그 연구과업을 위해서 어떻게 할 작정이예요?》

《과학원 건설건재분원에서는 자기네한테 와서 본격적으로 연구사업을 하라는거요. 그러나 나야 당장 그렇게 할수가 없지 않소.》

《어째서요?》

성호는 안해의 그 물음이 어처구니가 없는지 이마를 찌프리며 침묵했다.

《건설사업소에서 당신을 내놓지 않으려고 하나요?》

연순은 다시 따져물었다. 그러자 성호는 다소 역증스럽게 응대했다.

《사업소일군들은 설득시킬 자신이 있소. 그러나 우리 집 가정형편이 내 발목을 잡고있지 않소. 당신이 늘 실험실에 붙어있는데 나까지 집을 떠나 과학원분원에 나가있으면 순애는 어떻게 하겠소.》

듣고보니 사정은 참으로 딱했다.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는것이 안해의 본분이라는 세태를 따라야 한다면 연순이가 연구사업을 포기하여야 했다. 그러나 그럴수는 없었다. 응당 자기가 맡아야 할 가정사를 남편에게 떠맡기는 자기의 처사가 한없이 괴롭고 죄스러웠다. 가정사정으로 연구사업을 본격적으로 할수 없는 남편의 심정은 얼마나 괴로울가? 과학자는 불타오르는 창조적사색과 탐구의 열정이 억제당할 때 형언못할 괴로움을 느낀다. 그것은 다른 그 어떤 욕망이 거부될 때와는 대비가 안된다. 과학자의 그 류다른 체험세계를 연순은 잘 알고있었다.

《순애 아버지, 미안해요. 나같은 녀자와 가정을 이루다보니···》

연순은 목이 메여 뒤말을 번질수 없었다.

남편의 성난 음성이 울리였다.

《도대체 무슨 당치않은 말을 하자는거요. 나는 당신과 같은 과학자를 안해로 맞은것을 언제나 자랑으로 여기고있소. 당신이 연구사업에서 성과를 거둘 때까지 나는 집일과 순애를 돌보면서 착실히 문헌조사를 하겠소. 당신이 성공을 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연구사업을 하겠소.》

《고마워요, 순애 아버지.》

연순은 북받치는 애정의 충동을 느끼였다. 만일 순애가 없다면 남편의 목을 담쑥 껴안고 애무의 열정을 퍼붓고싶었다. 이렇게 안해의 연구사업을 리해하여주고 뒤받침해주는 남편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상싶었다.

복도에서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녀자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이 집이 장연순선생 집인가요?》

《그렇습니다.》

장연순은 큰소리로 대답하며 급히 전실로 나가서 문을 열었다.

이게 누군가? 열려진 문으로 들어서는 녀인은 어린이식료품공장 당비서 리선복이였다.

공장과 연구소는 울타리를 접하고있지만 소속이 다른 기관이였다. 리선복이 공장초급당소속 당원도 아닌 장연순의 집에 나타난것은 뜻밖이였다.

《비서동지가 어떻게 이 저녁에 우리 집에 왔습니까?》

연순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나는 연구사선생의 연구사업과 가정생활에 관심을 가지면 안됩니까?》

《아니, 우리 집을 방문한것이 뜻밖이고 반가워서 하는 말입니다.》

장연순은 리선복을 방안으로 안내했다.

성호가 의자에서 일어나서 리선복에게 인사를 했다.

《마침 순애 아버지도 계셨군요.》

리선복은 처음 인사를 나누지만 성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다.

《앉으십시오.》

장연순이 리선복에게 초물방석을 권했다.

세사람은 방안에 마주앉았다.

리선복은 손에 들고온 과자봉지를 순애한테 쥐여주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

순애는 리선복을 《할머니.》 라고 불렀다.

장연순은 저으기 당황한 낯빛이였다. 리선복은 영채로운 눈매며 주름 한점 없는 얼굴이며가 할머니로 불리운다면 섭섭해할 모습이였다.

《할머니가 아니라 큰어머니시다. 다시 인사를 올려라.》

장연순이 순애에게 깨우쳤다.

《둬두세요. 한달전에 맏딸을 시집보냈으니까 나도 명년쯤에는 할머니가 된답니다.》

리선복이 웃음진 얼굴로 말했다. 보기에는 중년녀인 같지만 실은 50대의 장년기에 살고있었다. 용모가 보기좋은 녀성들은 흔히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법이다.

《진작 연순선생네 집엘 한번 와보려고 했는데 걸음이 늦어졌습니다.》

장연순은 당비서의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들은바에 의하면 리선복은 공장의 기술자, 기능공들의 생활에 관심이 크고 그들을 내세울줄 아는 당일군이였다. 인재를 귀중히 여기는것을 당일군의 의무로, 공민적자각으로 알고있다고 한다. 언젠가는 시당에서 기술자, 기능공들과의 사업에서 얻은 당사업경험을 가지고 토론도 하였다고 한다. 공장사람들은 리선복을 두고 과학기술의 시대, 정보시대의 당일군이라고 자랑을 한다.

《저는 공장종업원도 아닌데 이렇게 관심을 돌려주어 고맙습니다.》

장연순은 진정을 말했다.

《전혀 련관이 없다 하더라도 과학자, 기술자들을 사회적으로 존중하고 도와주어야 해요. 더구나 어린이영양연구소의 연구사업이야 우리 공장의 래일을 위한 사업이 아니나요. 그래서 머지않아 공장에 전기, 증기단독선이 들어오면 연구소에서도 그 혜택을 받도록 하자고 해요.

연순선생, 우리 공장에서 선생의 연구사업을 위해 뭘 도와줄게 없겠어요?》

장연순은 머리를 소곳이 숙이며 침묵했다. 그 심정은 고맙지만 다른 기관의 당비서에게 그 무슨 도움을 청한다는것이 어울리지 않는 일처럼 생각되였다.

머리우에서 리선복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 울리였다.

《나는 앞으로 연순선생에게서 식료공학과 관련된 학습을 방조받으려고 해요. 내가 통신수업을 받을 때 등교를 하면 대학선생님들은 연순학생이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를 자랑삼아 들려주군 했어요. 물론 주간생과 통신생사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학습태도와 방법에서는 공통점이 있지요. 우리 통신생들은 녀대학생 장연순을 본보기로 알고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되여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대학시절을 놓고보면 우리는 선후배관계예요. 선배인 선생은 후배인 나의 학습을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렇지요?》

《비서동지의 과학기술학습을 적극 도와드리겠습니다.》

《좋아요. 품앗이를 하는셈치고 내가 무엇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는지 어서 말하세요.》

리선복은 상대가 자기의 속심을 헤쳐보이도록 대화를 이끌어갈줄 알았다. 다년간 사람과의 사업을 하면서 터득한 능력일것이다.

마침내 장연순은 기탄없이 말했다.

《연구실구조를 좀 변경시키려고 하는데 가능하면 공장에서 좀 도와주십시오. 벽돌축조로력이 한두명 필요합니다.》

《여보, 그거야 내가 해주겠다고 하지 않았소.》

성호가 화제에 끼여들었다.

연순은 당비서에게 사연을 설명했다.

《사실 처음은 나도 순애 아버지가 그 일을 해주었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순애 아버지는 건축공학분야의 중요한 학술적과제를 내세웠더군요.》

리선복은 알만 하다는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말했다.

《중요한 연구과제를 내세운 사람에게 누구나 할수 있는 벽돌축조를 맡겨서야 안되지요.

순애 아버지는 자기 연구사업에 전심하세요. 실험실구조변경은 우리 공장 건물보수반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쯤되자 장연순은 리선복을 친언니처럼 여기면서 가정의 리면사를 숨김없이 헤쳐보이였다. 가정사정에 발목이 잡혀서 남편이 과학원 건설건재분원에 나가서 연구사업을 하지 못하는 사정도 이야기했다. 그 무슨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연구사업에 대한 리해가 깊은 당일군과 마주앉고보니 속에 품었던 심정을 기탄없이 터놓고싶었다.

조용히 들으며 일순 생각에 잠겼던 리선복이 머리를 들었다.

《듣고보니 과학연구에 몰두하는 부부의 생활에는 남모르는 고충이 있군요. 이렇게 하면 어떨가요?》

그는 량주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계속했다.

《순애는 동탁아소에서 우리 공장탁아소로 옮겨오세요. 공장탁아소는 밤에도 근무를 서는 보모들이 있기때문에 순애를 봐줄수 있어요. 탁아소가 연구소의 곁에 있기때문에 연순선생이 보고싶을 때면 언제든지 순애를 볼수 있을거예요. 순애 아버지가 연구사업에 동원되면 연순선생 식사문제가 걸리겠는데 내가 공장식당에서 세끼식사를 보장하도록 하겠어요. 그렇게 하면 문제가 풀리지 않을가요?》

《그렇게만 해주면 문제될것이 없습니다!》

최성호가 벙글거리며 환성을 질렀다. 자기도 연구사업에 전심을 할수 있게 된것이 더없이 기뻤던것이다.

연순은 남편에게 눈을 흘기였다.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이 기뻐하기만 하는 그가 무례한것 같이 생각되였다.

《어째, 연순선생생각엔 그렇게 하면 불편할것 같애요?》

리선복이 물었다.

《아닙니다. 비서동지에게 너무 많은 수고를 끼치는것 같아서···》

《수고야 연구사업을 하는 선생들이 많지요. 앞으로 연순선생은 나의 식료공학학습이나 잘 도와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생은 딱딱한 실험대우에서 밤마다 눈을 붙이군 한다더군요. 이번에 실험실구조변경을 하면서 긴쏘파도 내 방에 있는걸 가져다 놓도록 하겠어요.》

《비서동지,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 방에 자주 출입하는 공장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저를 자기네 당비서 쏘파까지 뺏아가는 렴치없는 녀자로 비난할겁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들도 나처럼 선생의 연구사업을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거예요. 나같이 과학자, 기술자가 못된 사람들이 우리 당의 과학중시정책을 받들자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깨우쳐줄거란 말이예요.》

《비서동지, 고맙습니다.》

감동된 최성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리선복도 따라일어서며 그의 손을 잡았다.

《연순선생뿐만아니라 순애 아버지도 연구사업에서 꼭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성공하는 날이면 내가 도수높은걸 한병 들고와서 축배를 들겠어요.》

《기어이 성공하겠습니다.》

최성호는 목메여 응대했다.

장연순이 저녁식사를 하고가라고 하였으나 리선복은 그예 사양하고 집을 나섰다.

주인내외는 순애의 손목을 잡고 아빠트현관앞까지 따라나왔다. 밖에는 달빛이 휘황했다. 둥근달이 동녘하늘에 높이 솟았다.

《어서 집으로 들어가세요. 시간이 귀중한 선생들인데···》

리선복이 돌아섰다.

장연순이 순애에게 깨우쳤다.

《큰어머님, 안녕히 가십시오. 어서 인사를 올려라.》

순애는 두팔을 치마혼솔에 얌전히 드리우고 리선복에게 허리를 굽혔다.

《할머니, 안녕히 가십시오.》

《큰어머님이라고 부르라는데 또 할머니니?···》

장연순이 순애를 꾸짖었다.

《우리 반 애들이 모두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좋다고 했어.》

순애는 뾰로통해서 항변했다.

리선복이 어린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할머니가 더 좋지. 순애야, 이제 할머니네 공장 탁아소로 오너라. 그러면 이 할머니도 너를 종종 보러 가겠다.》

순애는 방글거리며 손벽을 쳤다. 어린것의 박수소리가 어른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흔들며 달빛푸른 공간으로 울리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