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3

 

제 3 장

3

 

대대에서 병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최광은 련대군의소에 가려고 했다. 련대군의소는 대대로부터 10여리가량 후방에 있다고 하였다. 최광은 승용차의 앞좌석에 타고 뒤좌석에는 부관과 대대위생소장이 앉았다.

《옥순동무, 동무는 련대군의소로 가는 길을 잘 알겠지?》

《알고있습니다.》

《그러면 나와 자리를 바꾸어야 하겠소.》

《그냥 앉아계십시오. 제가 어떻게 차수동지의 좌석에 앉겠습니까?》

김옥순은 가볍게 낯을 붉히며 사양했다.

《치료문제와 관련해서는 차수나 장령도 군의보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야 하오. 그것도 그렇지만 우리 운전사에게 길을 대주라는거요.》

그제서야 위생소장이 자리를 바꾸었다.

승용차가 떠났다.

련대군의소에 이른 최광은 승용차를 정문밖에 세우게 하고 김옥순만을 데리고 조용히 구내로 들어갔다. 환자들이 입원한 군의소에는 정숙이 필요했다. 구내에는 이미 땅거미가 깃을 폈다.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군의소건물안에 들어갔을 때 김옥순이 흰 위생복 두벌을 얻어왔다. 최광은 위생복을 걸치고 차수모자를 벗어들었다. 령장이 보이지 않도록 위생복깃을 여미였다. 불빛이 밝은 복도를 지났지만 오가는 군의나 환자들이 무심히 그의 곁을 스쳐지났다.

김옥순이 자기네 대대장이 입원한 곳을 찾아서 그를 안내했다. 입원실에 들어서니 대대장은 점적을 받고있었다. 방안에는 다른 환자가 없었다. 중상자이기때문에 독방에 있게 했을것이다. 김옥순이 환자를 지켜보는 녀군의에게 자기가 누구라는것을 소개했다. 반겨 인사를 나는 녀군의는 전등빛에 성긴 백발이 반짝이는 최광을 띄여보았다. 그렇게 나이가 많은 군대는 없을것이라고 여겼는지 대뜸 이렇게 물었다.

《대대장의 아버님입니까?》

《그렇소.》

최광은 건성 대답하고 환자의 침대곁으로 다가갔다. 녀군의가 쪽걸상 두개를 가져왔다. 최광과 대대위생소장은 그 걸상에 나란히 앉았다. 눈을 감고있는 환자는 잠에 든듯싶었다. 창백한 환자의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녀군의가 환자에게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환자동무, 정신차리세요. 동무의 아버님이 오셨어요.》

속삭이는듯 한 목소리였으나 환자는 잠에서 깨여났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소식은 잠결에도 예리한 자극을 주는지 모른다. 천천히 눈을 뜨고 최광을 마주보는 환자의 눈이 서서히 밝아졌다. 동시에 입술사이로 가는 목소리가 새여나왔다.

《총참모장동지!··· 대대장 강철수···》

환자는 일어나려고 가까스로 모지름을 썼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최광은 그를 만류하며 가만 누워있으라고 하였다. 곁에 서있던 녀군의는 김옥순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였다. 총참모장을 진작 알려주지 않은데 대한 원망이였다. 그는 차렷자세를 취하고 최광에게 거수경례를 하였다.

《총참모장동지, 미처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군의소장동지에게 알리겠습니다.》

최광이 녀군의에게 눈길을 돌렸다.

《알리지 마시오. 나는 지금 총참모장으로서가 아니라 환자를 면회하러 온 사람으로 여기에 나타났소.》

녀군의는 차렷자세를 한채 그냥 서있다가 최광이 손짓을 하여서야 긴장을 풀었다.

최광은 환자를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대대장 강철수는 그 눈길을 공손히 받아들이며 초들초들해진 입술을 열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동무들이 치른 전투정형을 보고받으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자신의 감사를 전달해달라고 하면서 나를 내려보내시였소. 그래서 동무네 대대에 감사를 전달하고 여기에 왔소.》

강철수의 얼굴에 갑자기 홍조가 떠올랐다. 입술이 벙긋거리는것으로 보아 격정을 터치고싶은 충동에 떠밀리우는듯 했다. 최광은 다시금 일어나려고 모지름을 쓰는 그의 어깨를 눌렀다.

《그냥 누워있소.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동무가 용감하고 령활하게 전투지휘를 잘하였다고 치하하시면서 부상당한 몸을 잘 치료해주도록 하라고 교시하시였소.》

《최고사령관동지!》

강철수는 목메여 부르더니 어깨를 떨며 흐느끼였다. 좀처럼 진정할줄 몰랐다.

최광은 미안스러운 기색으로 녀군의에게 물었다.

《이거참, 때아닌 때에 환자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게 아닐가? 안정이 필요한 환자를 흥분시켰으니 말이요.》

《아닙니다. 기쁠 때의 흥분은 환자의 치료에 리로울 때도 있습니다.》

녀군의의 응대였다. 그의 말을 확증하듯 얼마후에 다시 입을 여는 강철수의 목소리는 방금전과 달리 힘이 있었다. 얼굴에도 전에없이 혈색이 돌았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위하여 한목숨바쳐 싸우겠습니다. 우리 대대장병들의 이 심정을 그이께 꼭 말씀드려주십시오.》

《알겠소. 나는 동무들이 그이께 다진 결의대로 앞으로도 더 잘 싸우리라고 믿소.

최근에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나라의 정세가 긴장하고 첨예한것만큼 인민군대는 언제나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견지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였소.》

방안에 일순 침묵이 흘렀다. 그 틈을 타서 대대위생소장이 녀군의에게 환자의 상태를 알아보았다. 체온, 맥박, 혈압을 알아보고나서 총상자리들이 어떤가를 물었다. 녀군의는 근심스레 대답했다.

《복부의 총상자리들은 화농되기 시작했습니다. 허벅다리총상이 더 위험합니다. 총탄에 뼈가 상했습니다. 빨리 수술을 해야겠는데 련대군의소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지체없이 상급병원으로 후송해야 하지 않을가요?》

위생소장이 초조하고 불안한 낯빛으로 물었다.

《우리는 래일 사단군의소로 후송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부상이 심한것만큼 사단군의소나 군단병원에서도 치료하기가 헐치 않을것입니다. 좋기는 중앙병원에 빨리 후송하는것인데···》

최광이 그들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사단군의소나 군단병원을 거치지 않고 중앙병원에 입원시키는것은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겠소.》

《고맙습니다, 총참모장동지.》

그렇게 말한것은 위생소장이였다. 최광은 처녀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어리는것을 보았다. 그는 녀군의와 위생소장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대대위생소장동무는 오늘 밤 여기 남아서 군의동무와 함께 환자를 돌보는게 좋겠소.》

위생소장은 응대가 없었으나 은근히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강철수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련대군의소에서 저를 잘 돌봐줍니다. 우리 위생소장동무는 돌아가서 대대병사들의 건강을 돌보아야 합니다. 힘겨운 전투를 겪었기때문에 병사들의 몸에서 이상현상이 일어날수 있습니다.》

최광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위생소장을 데리고 입원실을 나섰다. 녀군의가 현관까지 바래워주었다.

정문밖에 서있는 승용차에 오른 최광은 위생소장을 그의 대대에 데려다주었다.

이날 밤 최광은 강철수대대장의 사무실에서 잤다. 이튿날 아침 그는 병사들과 한식탁에서 식사를 했다. 후방부대대장이 총참모장을 위해 따로 마련한 식사를 위생소에 감기로 누워있는 병사에게 보냈다. 식사를 끝내고 대대장실로 돌아온 최광은 전화로 중앙병원 원장을 찾았다. 환자의 상태가 중하기때문에 미처 군단병원의 파송증을 갖추지 못했지만 대대장을 입원시켜서 잘 치료해주라는 지시를 주었다.

이날 오후에 보병대대와 민경중대가 합동하여 희생된 병사들의 장례식을 하였다. 병사의 부모들도 참가했다. 그들은 아들의 령구를 부여안고 울지를 않았다. 다만 복수자의 결연한 빛이 얼굴에 흐를뿐이였다. 장례식은 적진이 바라보이는 대대장감시소가 있는 고지의 남쪽경사면에서 진행되였다.

민경중대장은 애도사에서 이렇게 피력했다.

《···살아서 적들의 준동을 예리하게 감시하던 동무들은 죽어서도 적진을 노려보고있습니다. 몸은 비록 땅속에 묻히지만 동무들은 우리와 함께 조국의 최전방초소를 지키고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동무들이 흘린 피를 헛되이 하지 않을것입니다.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모진 마음의 상처를 안고있는 우리에게 놈들이 또다시 접어든다면 지난번보다 몇배로 더 무서운 징벌을 안길것입니다. 우리 민경병사들은 수령님께서 남기신 사회주의조국의 전초선에 서있습니다. 적들이 새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어버이수령님의 영생을 위하여,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안녕을 위하여 남먼저 한목숨바쳐 싸우겠습니다!

우리곁을 떠나는 사랑하는 전우들이여, 우리모두 희생된 동무들의 몫까지 합쳐서 복수자의 총검을 벼리고있으니 조국방선은 념려말고 고이 잠드시라.》

사단군악대의 추도곡이 장중하게 울리고 뒤이어 총성이 뒤따랐다.

한동안 계속되는 조총소리는 전우들을 잃은 상실의 비애와 복수자들의 비장한 감정이 터치는 폭발음이였다. 그 총성에 질겁하여 적진에서 어슬렁거리던 놈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숨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