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6

 

제 2 장

6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의깊게 문건을 보시였다. 거기에는 국상을 당한 이후에 우리 인민들의 사상정신생활에서 일어난 커다란 변화가 반영되여있었다. 슬픔과 눈물을 힘과 용기로 바꾼 인민은 산악같이 일떠서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전에서 흘린 눈물과 터뜨린 통곡은 그대로 단결이였고 분발이였다. 유훈을 받들고 도처에서 생산적앙양이 일어났다.

적들은 입을 모아서 국상을 당한 후 우리 내부에서 사상적와해가 기필코 일어날것이라고 떠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적들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번져지고있었다. 글줄을 빠른 시선으로 읽어가시는 그이께서는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격동된 부르짖음이 소리없이 터져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키우신 우리 인민은 얼마나 훌륭한가!

문건을 다 읽은 김정일동지께서는 하나의 사실을 되새기시였다.

언젠가 수령님께서는 서방신문의 기자에게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나는 어느 나라의 국가수반도 누려보지 못한 두가지 큰 복을 누리고있습니다. 그 하나는 후계자복이고 다른 하나는 인민복입니다. 이것은 정치가가 누릴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당신은 내가 10대의 소년시절에 혁명투쟁에 나서서 80고령이 되는 오늘까지 특별히 어렵고 다난스러운 조선혁명을 령도해오다보니 누구보다 한평생 고생이 많은 국가수반이라고 했는데 나자신은 누구보다 복받은 국가수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충실한 후계자를 두고 자기가 개척한 위업의 미래를 락관하면서 그리고 인민과 혼연일체를 이루고 서로 사랑하면서 겪는 정치가의 시련과 난관은 고생이 아니라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당신은 나의 정치철학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인민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별적사람들의 관계를 념두에 둔것이지만 정치가와 인민들사이에도 같은 원리로 작용합니다. 인민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인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기마련입니다.》

크게 공감을 한 기자는 자기네 신문에 쓴 접견기에 수령님의 이 교시를 그대로 옮기였다. 접견기의 제목은 《동방정치원로의 행복관과 정치철학》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서 그러한 정치철학으로 훌륭한 인민을 키워 넘겨주셨기때문에 오늘의 시련도 락관의 웃음속에 헤쳐간다는 생각이 깊어지시였다. 일순 사색에 잠겼던 그이께서는 전화로 조인규를 부르시였다.

10분도 못되여 집무실에 조인규가 나타났다. 다부진 체구에 얼굴의 피부색이 거무스름한 그는 급히 달려와서인지 다소 긴장한 낯빛이였다.

《동무가 좋은 자료를 올려보냈습니다. 이 문건을 보면서 나는 커다란 고무를 받았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그를 집무탁앞에 앉으라고 손짓하며 교시하시였다. 방금 보신 문건은 그가 종합한것이였다.

치하의 교시를 받았지만 조인규는 여전히 정중한 낯빛이였다. 그는 좀처럼 자기 감정을 드러낼줄 몰랐다. 워낙 말이 적던 사람이 국상을 당한 후부터 더욱 과묵해졌다.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해방직후 면당지도원으로부터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으로까지 체계적으로 성장한 당일군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첩을 펼쳐드는 그를 미더웁게 바라보며 다시 교시하시였다.

《조동무, 당조직들에서 일시 직장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지난날을 묻지 말고 따뜻이 대하고 그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서거후 자기 직장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과거를 묻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전반적으로 당조직들에서 각계층 군중과의 사업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버이수령님 서거를 계기로 우리 인민이 얼마나 좋은 인민인가를 더 잘 알게 되였습니다. 비록 일상생활에서 손가락질을 받던 사람이거나 일시적인 잘못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적들이 덤벼든다면 그들은 조국수호의 성전에 떨쳐나설것입니다. 사람의 진가는 운명적인 사변에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당한 대국상은 매 사람들의 근본립장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였습니다. 당조직들이 생전의 어버이수령님께서 정치철학으로 삼으신 인민에 대한 사랑의 원칙을 철저히 구현하는데서 결정적전환을 가져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수령님께서 키우신 우리 인민의 개별적성원들을 차별하거나 그들에게 관료행세를 한다면 그것은 수령님의 유훈에 대한 배신으로 될것입니다. 이런 각도에서 당중앙위원회 지시문을 작성하시오. 그러면 내가 검토하고 각급 당조직들에 내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조의식이 시작된 날부터 오늘까지 하루에도 몇번씩 우리 인민의 사상정신적풍모에 깊이 머리숙이면서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보내군 합니다. 이제 100일중앙추모희까지 끝나면 쌓이고쌓인 그 심정을 담아서 전체 인민에게 감사문을 보낼 생각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목소리가 갈리시였다. 우리 인민에 대한 신뢰와 감사의 정이 북받치면서 목이 잠기시였다.

《알았습니다!》

조인규는 힘주어 대답을 올리려고 했으나 실상 목소리는 입밖으로 터져나오지 못했다. 목이 메였던것이다. 격렬한 감정이 가슴을 들부셨다. 뿌잇하게 흐려드는 시야에 그이의 모습이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으로 보이였다. 어쩌면 두분은 인민에 대한 헌신과 사랑의 열도와 깊이가 그리도 꼭같으신가. 수령님이시자 곧 장군님이시라는 우리 인민의 신념의 의미를 새삼스레 깨닫는듯싶었다. 수령님은 돌아가셨으나 인민에 대한 사랑의 정치철학은 장군님에 의해 그대로 구현되고있다.

집무실을 나선 조인규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푸르게 열린 하늘을 바라보며 그이의 앞에서는 터치지 못했던 격정을 홀로 터치였다.

(이 나라 인민들이여, 누구보다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안고있는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매일같이 당신들에게 마음속의 감사를 보내주고계시는줄을 알고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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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실에서 간소하게 점심을 치르시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이께서는 록음기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음악감상으로 점심시간에 짧은 휴식을 하군 하시였다. 언젠가 자신의 첫사랑은 음악이라고 말씀한바가 있지만 그만큼 음악을 사랑하시였고 음악에 뛰여난 천품을 지니고계시였다. 하지만 지금 들으시려는 가요는 휴식의 즐거움이나 정서적욕구만을 위해서가 아니였다. 어제 선전선동부에서 새로 창작된 세편의 수령영생가요를 록음으로 형상하여 올려보내였다. 수령영생구호가 우리 당이 높이 추켜든 정치적기치라면 수령영생가요는 그 기치를 따라 전진하는 진군가로 될것이다. 커다란 기대를 안고 록음기의 스위치를 넣으시였다. 비장한 선률이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 어떤 곡은 두세번 반복하여 들으시였다.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 기대와는 달리 실망에 잠기시였다. 처음 두곡은 인민의 슬픔을 담으려는 의도를 앞세우다나니 노래의 양상이 지나치게 어두웠다. 나머지 한곡은 그와 반대로 용기와 신심만을 강조하면서 양상이 정도이상으로 밝은 행진곡으로 되였다.

한순간 생각에 잠겼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전화로 당중앙위원회 비서를 찾으시였다.

《내 방금 제기된 가요들을 들었습니다. 창작가들이 짧은 기간에 노래를 짓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수령영생가요들은 어느것이나 기념비적대작으로 되여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부족점들이 있습니다.》

계속하여 매 가요들의 부족점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였다.

다 듣고난 비서가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말씀드렸다.

《기대에 어긋난 작품을 올리여서 미안합니다. 제가 음악을 잘 모르다나니 그렇게 되였습니다.》

《뭐 비서동무의탓이겠습니까. 창작가들의 생각에 편향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나무람하지는 마시오. 첫술에 배부를수야 없지 않습니까. 나는 창작가들이 짧은 기간에 창작전투를 벌려서 그만한 가요들을 지어낸것만도 대견스레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수령영생가요들에는 어버이수령님을 흠모하는 열렬한 감정이 있어야 하고 장중한 감정도 있어야 하며 수령님의 뜻을 끝까지 꽃피워가려는 신념과 맹세의 감정이 노래마다 특색있게 담겨져야 한다는것을 깨우쳐주시오.》

《알겠습니다.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중한 자세로 전화를 받고있는 비서의 모습을 선명히 그려보시였다. 그는 아무리 긴급한 무거운 과업을 주어도 성근히 접수하고 침착하게 수행할줄 알았다.

《비서동무.》

믿음이 흐르는 친근한 어조로 부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전화를 거는김에 반드시 알아볼 문제가 있다는것을 상기하시였다.

《말씀하십시오. 듣고있습니다.》

어음이 부드럽고 발음이 뚜렷한 비서의 목소리가 수화구의 진동판을 울리였다.

《100일중앙추모회준비를 시작했습니까?》

김일성광장에서 열고 10만명정도 참가시킬것을 예견하고있습니다.》

김일성광장이 아니라 금수산의사당구내에서 하면 어떻겠습니까?》

응답이 없었다. 놀라움에 휩싸인 높아진 숨결소리만이 미세하게 들려왔다. 비서로서는 전혀 뜻밖인 모양이다. 지금까지 중요한 정치행사들을 김일성광장에서 하여온것만큼 그로서는 그럴수밖에 없을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생각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모든 국가적인 행사들을 진행하여왔습니다. 지금 수령님께서는 금수산의사당에 계십니다. 그런것만큼 거기서 이번 행사도 진행하는것이 응당할것 같습니다. 참가자들도 수령님 가까이에 오면 수령님에 대한 추억도 깊어지고 흠모의 정도 더욱 깊어질게 아닙니까.》

《장군님, 저희들의 생각이 미처 거기에 닿지 못했습니다.》

비서의 목소리는 감격에 떨리였다.

《그런데 의사당앞에 10만군중이 들어설수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참가인원은 내가 현지에 나가보고 결론을 주겠습니다.···》

이튿날 아침 김정일동지께서는 금수산의사당으로 나가시였다. 그곳 책임일군들이 그이를 영접했다. 그이께서는 나올 때마다 그러하였지만 이날도 사업에 앞서 어버이수령님부터 찾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단정한 양복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조용히 누워계시였다. 수령님은 생전의 모습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머리카락 몇오리가 더 희여지신듯 한 느낌이 다를뿐이였다.

김정일동지가 왔구만.》

금시라도 잠에서 깨여나 반겨맞을것만 같은 환영이 눈앞을 스치시였다.

《제가 왔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음속으로 뇌이시며 인사를 드리시였다. 깊이 머리숙인 귀가에 수령님의 추억깊은 음성이 흘러드는것 같으시였다.

《마침 잘 왔소. 저 당기를 보니 김정일동지와 이야기를 나누고싶은 심정이 새삼스레 갈마드누만.

우리가 조선혁명의 붉은기를 추켜든것은 1926년 휘발하강기슭에서였지. 그때 우리는 우리 나라에 사회주의사회를 세울것을 <ㅌ.ㄷ>의 강령으로 내세우면서 그 실현을 위해 싸울것을 붉은기앞에 맹세다졌소. 그리고는 그 붉은기를 들고 인민들속으로 들어갔소. 우리는 인민에게서 배워 조선혁명의 앞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던거요. 인민들과 생사운명을 함께 하는 과정에 나는 조선혁명을 우리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우리 인민의 힘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고귀한 진리를 깨닫고 조선혁명의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들었소. 나는 이 붉은기를 나붓기면서 우리의 앞길을 밝혔고 늘 이 붉은기를 바라보며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처럼 마음의 안정을 느끼군 했소. 해방후에 어떤 사람들은 우리 혁명의 성격이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인데 사회주의혁명의 표대인 붉은기를 현단계에서는 내리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소. 그때 나는 우리 혁명의 종국적목적이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는것이고 혁명을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다른 나라사람들과 달리 저 붉은기를 우리 인민의 지향과 념원의 상징으로 여겨왔기때문에 절대로 내리울수 없다고 했소.

붉은기와 함께 우리 혁명은 멀리 전진해왔소. 그러나 휘발하강기슭에 휘날렸던 <ㅌ.ㄷ>의 붉은기앞에서 인민에게 다진 맹세를 나는 아직 다 실현하지 못했소. 아직은 민족지상의 과제인 조국통일도 앞에 놓여있고 인민들의 최고리상사회건설도 앞에 놓여있소.

나는 김정일동지가 당중앙청사에 나붓기는 저 당기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 휘발하강기슭에서 우리가 다졌던 맹세를 대를 이어 훌륭히 실현하리라고 믿소!》

깊은 회억에 잠겨 지나온 생애를 총화하시는듯 한 수령님의 모습이 눈앞에 방불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방금 떠오른 그 환영이 잊지 못할 사실의 재현이였다는것을 깨달으시였다. 그것이 언제였던가? 돌이켜보시니 재작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현지지도에서 돌아오신 어버이수령님을 당중앙청사앞의 정원에서 만나뵈옵게 되였을 때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청사의 지붕에 나붓기는 당기를 바라보며 바로 그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수령님앞에 서고보니 그날의 기억이 현실처럼 되살아났던것이다. 마음속에 여전히 수령님께서 계시기때문에 환영과 추억이 현실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때가 여러번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서서히 일군들에게로 돌아서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평생 붉은기와 함께 계셨습니다. 수령님께 붉은기를 덮어드려야 하겠습니다. 그 기폭을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김구선이 숙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일군들을 데리고 맨 웃층 로대에 오르시였다.

《내가 오늘 여기에 나온것은 의사당앞에서 100일중앙추모회를 가질수 있겠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그이께서는 허리에 손을 얹고 앞정원을 바라보시였다. 일군들은 놀란 얼굴로 서로 마주보았다. 그들로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다. 앞정원에 사람들이 들어설 자리는 주차장과 구내길이 있을뿐이다. 나머지 공지에는 잔디밭과 꽃밭이 펼쳐져있었다.

《장군님.》

김구선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에게 머리를 돌리시였다.

《앞정원에서 행사를 하면 잔디밭과 꽃나무들이 상할수 있습니다.》

정원을 애지중지 가꾸어온 그로서는 그럴수 있었다. 그이께서는 타이르듯 말씀하시였다.

《잔디나 꽃이 중요한게 아니라 어버이수령님을 그리워하는 인민들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수령님께서 지금 의사당에 계시는것만큼 여기서 추모회를 가져야 합니다. 방금 둘러보니 정원부지가 김일성광장보다 못지 않습니다. 10만여명이 넉근히 들어설수 있습니다.

관리처장동무, 정원이 손상될 걱정은 하지 마시오. 나는 이미 여기에 대광장을 꾸릴 결심을 했습니다. 언제나 수령님을 모시고 국가적인 행사를 벌려온 전례를 우리는 그대로 이어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금수산의사당앞에 광장을 꾸려야 합니다.》

김구선의 얼굴에 경탄의 빛이 떠올랐다.

정원쪽으로 다시 돌아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로대의 턱에 시선을 멈추시였다. 거기에 설치된 포대경을 띄여보셨던것이다. 포대경은 대성산혁명렬사릉쪽을 향하고있었다. 그이의 시선을 따르던 김구선이 말씀드렸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전에 그 포대경으로 혁명렬사들의 모습을 바라보군 하시였습니다.》

굳이 설명이 없이도 그이께서는 포대경의 사연을 잘 알고계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항일의 옛전사들의 모습을 일일이 보고싶어 이로대에 포대경을 설치하시였다. 배률이 높은 렌즈를 통하여 그들의 모습을 선명히 바라보시면서 잊을수 없는 감회속에 마음속의 추억담을 나누군 하시였다. 과연 마지막으로 회포를 나누신 렬사는 누구였을가?

《수령님께서 맞추신 포대경의 초점을 흔들지 않았겠지요?》

《그렇습니다. 그사이 누구도 이 로대에 올라와본 일이 없었습니다.》

김구선이 대답을 올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리를 약간 굽히고 포대경의 렌즈에 눈을 가져가시였다. 지척인듯 시야에 안겨드는 렬사의 모습에 부지중 마음속 탄성을 터치시였다.

(아, 어머님이시였구나!)

물론 수령님께서는 렬사릉의 맨 앞줄에 안치된 김혁, 차광수로부터 맨 웃단의 렬사들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빠짐없이 바라보군 하시였을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추억의 대화를 나누신 상대는 김정숙어머님이시였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수 있을가? 두분이 마지막으로 나누신 마음속의 대화는 무엇이였을가? 깊어지는 생각이 여러 갈래로 뻗으며 가슴이 후더워오는것을 어찌할수 없으시였다. 대리석 붉은 기폭속에 계시는 어머님앞에는 생신한 꽃송이들이 놓여있었다. 붉은넥타이를 맨 소년단원들이 동상주변을 깨끗이 거두고있었다. 머리에 성긴 백발을 얹은 로파가 어머님앞에 꿇어앉아 움직일줄 몰랐다. 이윽하여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쪽으로 돌아섰다.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는 로파의 모습이 선명하게 포대경렌즈에 비끼였다. 김옥순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신 후에 어머님생각이 더욱 사무쳐오는것이여서 자주 동상을 찾아오군 하였을것이다.

어린시절부터 어머님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김옥순이였다.

어머님께서 일찌기 아동단사업을 지도하실 때 김옥순은 아동단 연예대원이였다. 처음으로 김옥순에게 혁명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주신분도 어머님이였고 후날 원동훈련기지에서 간소한 결혼식을 차려주신분도 어머님이였다.

김옥순은 어머님동상앞을 물러나면서 몇번이고 되돌아보군 하였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그 걸음은 몹시도 무거웠다. 얼마후에 그가 포대경렌즈에서 사라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포대경에서 시선을 떼고 일군들에게 돌아서시였다.

《우리가 금수산의사당앞에서 100일중앙추모회를 가지면 어머님을 비롯한 렬사들도 함께 참가하는것으로 됩니다. 우리의 결심이 옳았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집니다.》

힘주어 이렇게 말씀하는 그이의 눈앞에는 하나의 화폭이 그려지시였다.

혁명렬사들이 일제히 릉에서 떨쳐일어나 금수산의사당에 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을 향해 달려온다.

수령님께서는 반가움에 넘쳐 두팔 벌려 그들을 맞이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