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

 

제 2 장

1

 

계속되던 장마가 걷히였다. 립추가 지났으니 계절은 가을에 접어들었다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태양은 여전히 대지에 뜨거운 볕발을 쏟아붓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달리는 승용차의 차창밖을 바라보시였다. 가열된 대기가 아지랑이같이 새물거리는 들판에 논밭이 아득히 펼쳐졌다. 시야에 안겨오는 논밭의 작황은 좋은편이였다.

(수해만 없었다면 전국의 농사형편이 좋았을텐데.)

부지중 마음속으로 조용히 뇌이시였다.

서해안의 수해지역을 돌아보고 오시는 길이였다. 가셨던 곳은 무더기비로 홍수와 사태의 피해를 적지 않게 입었다. 여러날 물에 잠겼던 논벼들은 낫을 걸어볼 형편이 못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슬픔에 잠긴 우리 인민이 식량난마저 겪어야 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저리시였다. 이번 걸음에 몇개의 공장들도 돌아보셨는데 어느곳이나 생산이 정상화되지 못하였다. 다가오는 경제적난관이 자신의 어깨우에 무거운 중하로 실리는것을 의식하시였다. 서방세계는 우리가 이 난국을 타개하자면 《개혁》과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떠들고있다. 《개혁》과 《개편》은 붉은기를 내리우고 그 색갈이 선명치 않은 다른 기발을 든다는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수령님의 한생이 어려있는 붉은기를 절대로 내리울수 없다. 조성되는 경제적난관은 우리 당이 경제관리에서 견지하여온 사회주의원칙에 그 무슨 잘못이 있기때문이 아니다. 원인은 미제의 고립압살책동과 자연재해에 있었다. 사회주의는 과학이고 진리이다. 우리는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적들의 고립압살책동을 분쇄해야 하며 자력갱생의 위력으로 경제적난국을 타개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이미 세계를 향해 엄숙히 선언하시였다.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

생각할수록 그 결심이 정당하다는것을 확신하시였다. 지난 시기도 우리 혁명의 앞길에는 생사를 판가름하는 엄혹한 위기가 많았다.

그때마다 수령님께서는 오직 우리 인민을 믿고 그의 사상정신적잠재력을 동원하여 위기를 타개하군 하시였다. 자랑스러운 이 불패의 전통은 끊임없이 계승되여야 한다. 수령님께서 계시는 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락관은 간고한 투쟁을 통해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확고부동한것으로 굳어졌다. 위대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념을 가질 때 우리 인민은 최후의 승리를 확신하며 오늘의 난국도 뚫고나갈것이다!

깊은 사색을 거듭하시는 사이에 승용차는 평양에 이르렀다.

집무실로 돌아온 김정일동지께서는 전화로 총참모장을 부르시였다. 송수화기를 제자리에 놓고 머리를 드는데 며칠전에 새로 집무실에 걸어놓은 풍경화가 시야에 안겨오시였다.

산비탈을 끼고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 그것을 감돌아흐르는 맑은 시내물, 방금이라도 설레임소리가 유정하게 들려올상싶은 잡관목숲을 그린 그림이였다. 얼핏 보면 산간지대 어데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산골풍경이였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 의미가 심장한 풍경화였다. 요영구골안을 그린 그림이였던것이다. 요영구는 준엄했던 1930년대 전반기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던 곳이다. 당시 일제는 갓 창건된 항일무장대오를 압살하려고 발악적으로 날뛰였다. 놈들은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유격근거지를 겹겹이 포위하고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공격해왔다. 쌀 한줌, 소금 한줌도 근거지에 들어가지 못하게 봉쇄망을 조이면서 근거지곡식밭들을 불태워버렸다. 그리하여 최악의 기아와 결핍이 근거지를 휩쓸었다. 게다가 내부를 와해시키기 위한 일제의 모략에 넘어간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혁명대오안에 살벌한 분위기까지 조성되였다.우리 혁명이 질식되여 붕괴되느냐, 아니면 다시 일어나 싸우느냐? 하는 선택이 가로놓인 시기였다. 바로 이러한 판가름의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요영구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열고 방어전략으로부터 전략적공세로 넘어가 일제의 《토벌》과 봉쇄를 단호히 짓부실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고 조선혁명을 새로운 앙양에로 이끄시였다. 참으로 요영구는 최악의 역경앞에서도 주저와 좌절을 모르고 맞받아나아가 적들을 쳐부신 조선혁명의 불굴의 신념과 의지가 어떤것인지를 말해주는 유서깊은 곳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요영구에서 보여준 그 신념과 의지, 그 배짱과 담력으로 싸워야 할 때이라고 생각하며 그 풍경화를 집무실에 걸어놓으신것이였다.

이윽하여 최광이 집무실에 들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인사를 올리는 그의 손을 다정히 잡고 벽밑에 놓인 쏘파로 이끄시였다.

《최광동지, 건강은 어떻습니까?》

어쩐지 최광은 전보다 더 수척해진듯싶으시였다. 년로한 몸으로 이즈막에는 적들의 준동이 심한 때이고보면 그로서는 한순간도 마음의 긴장을 늦출수 없을것이다.

《저는 일없습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부디 건강에 류의하시기 바랍니다.》

최광은 간절히 말씀드리였다.

《고맙습니다. 나야 젊은 몸이니까 몇밤을 패도 일없지만 년로한 최광동지는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됩니다. 나에게는 항일투사들이 곁에 생존해있는것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최광은 뜨거운 눈길로 그이를 우러르며 뒤를 잇지 못했다. 그이의 사랑과 믿음에 목이 메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다시 교시를 이으시였다.

《나는 서해안 수해지역을 돌아보고 오는 길입니다. 현지에 가보니 인민군장병들이 수해지역 인민들의 생명, 재산을 헌신적으로 구원했습니다. 어데를 가나 군인들의 희생적인 투쟁이야기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인민들은 한결같이 나를 붙잡고 최고사령관의 전사들이 아니고서는 그런 영웅성과 희생성을 발휘할수 없다고 하면서 나에게 감사를 보냈습니다. 그 감사는 곧 우리 군대에 보내는 인민들의 감사입니다.

그런데 최광동지, 피해복구사업은 지금 시작에 불과합니다. 수해구제사업에 동원되였던 군인들이 수해복구사업까지 끝내고 철수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알았습니다!》

최광은 명령을 받은 전사의 자세로 힘있게 대답을 올렸다. 그리고는 자책어린 어조로 덧붙였다.

《최고사령관동지의 의도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총참모부에서는 수해지역에 나갔던 일부 부대들에 이미 철수명령을 내렸습니다. 다시 현지로 보내겠습니다. 수해복구준비를 잘하여가지고 말입니다.》

《좋습니다. 군민일치에서 주도적역할을 군대가 하여야 합니다. 정세가 긴장하니까 총참모부에서 그런 명령을 내렸을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일순 생각에 잠기였다가 물으시였다.

《요즘 적들의 준동은 어떻습니까?》

최광은 미국본토와 태평양, 일본과 남조선에 배비된 미군부대들과 괴뢰군부대들의 심상치 않은 기동상태를 낱낱이 보고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최광이 보지 않고도 적들의 륙해공군부대명과 주요전투기술기재의 수량, 기동하는 작전적기도를 구체적으로 꿰들고있는데 놀라시였다. 나이에 비해서는 남다른 기억력과 판단력이였다. 참말로 최광은 충실할뿐더러 능력있는 군사지휘관이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를 미더웁게 바라보며 교시하시였다.

《현단계에서 가장 첨예한 전선은 반제전선입니다. 인민군대의 총대에 우리 혁명의 운명이 있습니다. 인민군대는 적들의 준동을 예리하게 살피면서 감히 놈들이 접어든다면 섬멸적타격을 가할수 있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총참모부에서 전군에 해당한 명령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알았습니다!》

최광은 또다시 엄숙한 낯빛으로 대답을 올리였다. 잠시후에 집무실을 나서려던 그는 벽에 걸린 새로운 풍경화가 눈에 뜨이자 걸음을 멈추었다. 너무도 낯익은 고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김정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풍경화에 그려진 고장이 어덴지 알아보겠습니까?》

《혹시 요영구가 아닙니까?》

《최광동지는 요영구와 인연이 깊었댔으니까 첫눈에 알아보는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긋이 웃으시였다. 최광의 지나온 경력을 잘 알고계시였다. 최광은 16살 어린 나이에 청년의용군 소대장이 되였다. 1933년 일제의 《토벌》에 온 가족을 잃은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일제를 증오하였고 혁명을 열렬히 사랑했다. 10대의 나이에 비해서는 조숙한편이였고 용감하고 지혜롭기도 하였다. 일찌기 아동단생활을 거치면서 일정하게 투쟁경험도 쌓았고 군사도 배웠다. 그의 원래이름은 최명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대로 나라와 민족을 빛내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최광으로 고쳐주시였다. 이리하여 총대와 함께 한생을 살게 될 최광의 운명이 이날에 결정된셈이였다. 그는 그후 로혹산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들에서 용감히 싸웠다. 조묘태전투때에는 사령부를 보위하기 위해 소대를 이끌고 요영구 서쪽산으로 달려가 밤새껏 원쑤들과 격전을 벌리였다.

1935년 요영구를 떠난 후에는 북만에서 김책, 허형식과 함께 싸웠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떠나는것이 못 견디게 아쉬웠던 그는 작별의 그날에 걸음걸음 요영구를 되돌아보았다.

그러한 고장을 잊을리 없었다. 이윽토록 풍경화를 바라보던 최광은 생각깊은 낯빛으로 말씀드렸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어찌하여 집무실에 요영구풍경화를 새로 걸어놓으셨는지 짐작이 갑니다.》

《로투사인 최광동지는 누구보다 내 심정을 깊이 리해할것입니다. 그 풍경화에는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적들의 침략과 봉쇄를 짓부셔버리고 우리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려는 나의 의지와 결심이 어려있습니다. 나는 최광동지도 사령부를 보위하여 요영구에서 원쑤들과 결전을 벌리던 그때처럼 싸우리라고 믿습니다.》

《그 기대와 믿음에 기어이 보답하겠습니다.》

이날 사무실로 돌아온 최광은 적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출데 대한 명령을 전군에 하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