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8

 

제 1 장

8

 

김정일동지께서 의사당밖을 나서신 잠시후였다. 그이께서 관리처장을 다시 부르신다는 전달이 왔다. 방금전에 준 과업과 관련하여 더 하실 말씀이 있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관리처장은 황황히 밖으로 나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의사당의 울타리곁에 서계시였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선 김구선은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 부르심대로 왔습니다.》

울타리를 따라 길게 뻗어간 포도덕을 바라보던 김정일동지께서 돌아서시였다.

《그동안 경황이 없다보니 동무들이 포도수확을 못했구만. 며칠만 더 있으면 포도가 지내 익어서 물크러질수 있겠소.》

김구선은 새삼스레 포도덕에 눈길을 주었다. 무덕지게 달린 포도송이들이 무겁게 드리워져있었다. 보미가 뽀얗게 오른 까만 포도알들은 다치기만 하여도 터질듯이 지나치게 익었다. 말씀하신대로 그동안 경황이 없다보니 누구도 포도가 익어가는줄도 몰랐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에는 제철에 이 포도를 수확해서 탁아소와 유치원들에 보내주군 하셨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감개어린 어조로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김구선은 나직이 대답을 올리며 잊지 못할 추억에 잠기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울타리에 포도를 심고 가꾸어서 아이들에게 보내주시기 시작한것은 벌써 여러해전부터이다.

수령님께서는 의사당직원들과 함께 가지도 잘라주고 거름도 주면서 손수 포도나무들을 가꾸어오시였다. 그 나날중에서도 지난 6월초에 있었던 일은 영원히 잊을수가 없었다.

초여름의 불볕이 쨍쨍 내려쪼이는 날이였다.

김구선은 땀을 철철 흘리며 포도밭 김을 매고있었다. 부지런히 호미질을 하는데 머리우에서 친근하신 목소리가 울렸다.

《동무들, 그동안 잘있었소?》

너무도 귀에 익은 음성이였다. 가슴에 마쳐오는 세찬 충격을 느끼며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어느새 오셨는지 어버이수령님께서 곁에 서계시였다. 여러날동안 협동농장들의 농사를 현지에서 지도하고 돌아오신 수령님이시였다. 김구선은 헤여져 그립던 심정이 북받쳐서 한걸음 다가서며 인사를 올렸다.

《어버이수령님, 건강하십니까?》

《며칠간 포전길을 걸었더니 건강이 좋아졌소.》

김구선은 경건한 표정으로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러보았다. 전이 넓은 흰 모자를 쓰신 그이의 얼굴은 거무스름하니 불볕에 그을렸다.

팔순을 넘긴 그이께서 쉼없이 포전길을 걸으시였다는 생각이 가슴을 쳤다. 떠날 때 일군들은 더는 포전길을 걷지 마시라고 간절히 만류했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농사일이 걱정되여 잠을 이룰수 없다며 그예 떠나시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논두렁길과 들길을 걸으시였겠는가. 불볕에 그을린 얼굴모습이 그것을 말해주는듯싶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농촌에서 돌아온 걸음으로 함께 포도밭 김을 매자고 하시였다. 김구선은 편히 쉬시라고 절절히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저으기 노여운 기색으로 말씀하시였다.

《땀을 흘리며 내 손으로 포도밭을 가꾸어야 그 포도를 먹는 아이들을 볼 때 기쁨이 크단 말이요. 손자애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을 하든 할아버지들은 힘든줄 모르는 법이요. 관리처장동무야 내 심정을 알아줘야 할것 아니요. 어서 호미를 한가락 가져오시오.》

말씀의 뜻을 가려볼 겨를도 없이 김구선은 가슴뭉클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더는 만류하지 못하고 호미를 한가락 가져다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커다란 소원이 풀린듯 흡족해하며 김을 매기 시작하시였다. 김구선과 로동자들도 다시 일손을 잡았다. 되도록이면 수령님앞에 솟아있는 풀포기들을 자기가 뽑으려고 했다.

《내앞의 풀은 내가 뽑아버리게 둬두라구. 내 이번걸음에 나이가 나와 비슷한 로인과 함께 강냉이밭 김도 매여봤소. 그 로인의 말이 농사일처럼 보람있고 재미나는 일은 없다는거요. 웬고하니 땅은 주인이 땀을 흘리고 가꾸어준것만큼 주인에게 에누리없이 보답할줄 알기때문이라오. 땅처럼 정직하게 주인의 노력에 보답할줄 아는 대상은 드물거요. 우리가 땀을 흘려 정성을 기울인것만큼 포도도 주렁질거요.》

김구선은 후더운 감정에 휩싸이며 말씀올리였다.

《올해는 포도가 특별히 많이 달렸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목에 걸친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고 다시 교시하시였다.

《우리 어머님께서는 병석에 누워계실 때에도 내 동무들이 찾아오면 꼭 자신의 손으로 끼니를 지어주시였소. 그냥 누워계시라고 만류해도 듣지 않으시였소. 자신의 손이 간 음식을 먹이고싶어 그러니 그 심정을 알아달라고 하시였소. 나이들고보니 어머님의 그 심정이 보다 깊이 리해되는듯싶소. 나도 내 손이 간 포도를 유치원과 탁아소아이들에게 먹이고싶단 말이요.》

이때 김정일동지께서 찾아오시였다.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신 수령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오셨던것이다. 그이께서도 흥건히 땀을 흘리며 김을 매시는 수령님을 뵈옵고 처음은 저으기 놀라시였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호미를 놓으시라는 그이의 말씀에 수령님께서는 싱긋이 웃으면서 방금 김구선에게 하던 말씀을 반복하시였다. 그러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감격한 표정으로 호미를 들고 포도밭 김을 매시였다. 두분께서는 나란히 자리를 잡고 호미질을 하시였다. 로동자들도 여느때없이 걸싸게 일을 했다. 빨리 김매기를 끝내야 두분께서 일어서실수 있다고 생각했다. 잡초가 가셔진 포도나무밑둥은 새롭게 단장을 한것처럼 말끔해졌다. 한창 쌀알같은 열매가 달린 가지들은 눈부신 해빛에 반짝이는 잎새들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어느새 울타리를 따라 길게 뻗은 포도밭 김을 말끔히 맸다.

손을 털고 일어선 수령님께서 김구선에게 교시하시였다.

《포도를 딸 때 잊지 말고 나에게 알리시오. 지난해 포도를 받고 유치원아이들이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오. 올해도 내 손으로 딴 포도를 그 아이들에게 먹이고싶소.》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포도가 탐스럽게 익는것을 보지 못하고 서거하셨다.

김구선은 추억의 여운이 불러내는 짜릿한 아픔이 가슴을 허비며 온몸에 퍼지다가 눈굽을 쿡 쑤시는것을 느끼였다. 눈앞이 흐려졌다.

김정일동지께서도 그날의 추억에 잠긴듯 추연한 낯색으로 한동안 포도덕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돌아보시였다.

《구선동무, 다른 일은 좀 미루더라도 총동원해서 오늘중으로 포도를 모두 따서 탁아소와 유치원들에 보내주어야 하겠습니다. 지내 익어서 맨손으로 따다가는 포도알들이 상할수 있습니다. 가위나 손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알았습니다.》

김구선은 급히 사무실로 돌아가서 부서책임자들을 불러놓고 작업을 포치했다.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창고에서 지함들도 꺼내왔다. 해마다 벌어지는 일이여서 포도를 담을 지함들은 미리 준비되여있었다.

사무용가위를 찾아들고 김구선은 직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나갔다.

그때까지 김정일동지께서는 포도밭기슭에 서계시였다. 뜻밖이였다. 김구선은 그이의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고있었다.

(저희들이 책임적으로 포도를 오늘중에 공급하겠습니다. 념려마시고 돌아가십시오.)

이런 말이 금시 입밖으로 튀여나오려는 순간이였다. 그이께서 먼저 말씀하시였다.

《관리처장동무, 손에 든 가위를 나에게 주고 돌아가보시오. 포도를 수송할 자동차들도 동원시키고 각 구역 탁아소, 유치원공급소들에 포도를 접수할 준비도 하라고 련락을 하시오.》

《알았습니다. 그런데 포도를 따는것은 우리 동무들만으로도 넉근합니다.》

《로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손으로 가꾸어서 자신의 손으로 딴 포도를 아이들에게 먹이고싶다고 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이 생각나서 그럽니다. 어서 가위를 주시오.》

김구선은 그이의 얼굴에 절절한 심정이 비끼는것을 보았다. 더는 말없이 손에 들었던 가위를 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다시 교시하시였다.

《아이들에게는 포도에 깃든 사연을 알리지 말라고 하시오.

어버이수령님께서 가꾸신 포도라는것을 알면 아이들이 먹지 못하고 울수 있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금수산의사당에 생전의 모습으로 계신다는것을 알게 될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아이들이 포도를 받아안고 통곡을 터칠수 있습니다. 이 점을 명심하시오. 물론 탁아소보모들이나 유치원선생들에게는 사연을 알려주어야 하겠지요. 그들에게 래일쯤 포도의 사연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라고 하시오.》

《알았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온 김구선은 그이의 교시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나니 3시간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포도밭으로 다시 나왔다. 그사이 포도를 다 따서 지함에 포장을 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방금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작업을 지휘하는 일군에게 장군님께서 손수 따신 포도는 따로 포장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 포도를 지난해 어버이수령님께서 다녀가신 유치원에 보내줄 생각이였다.

얼마후에는 포도지함을 실은 화물차들이 의사당구내를 떠났다. 맨 뒤차의 운전실에는 김구선이 앉아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나가셨던 유치원에 가보고싶었다. 구역을 거쳐서 그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유치원선생들이 운동장에 나와있었다. 이미 련락을 받았던것이다.

《이 포도는 어데서 보내오는겁니까?》

나이지숙한 원장이 김구선에게 물었다.

《구역공급소에서 선생님들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내가 물으니까 공급소장동무는 목이 메여 말을 할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수화기에서 흐느낌소리가 들리는것으로 보아 그는 분명 울고있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조르는 품이 사연을 말해주지 않고서는 못 배길상싶었다. 김구선은 건기침을 앞세우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포도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아이들을 위해 손수 가꾸신것입니다.》

녀선생들모두가 놀랐다.

김구선은 그득해지는 목을 열려고 마른 침을 삼키며 뒤를 이었다. 지난 6월 농촌현지지도에서 돌아온 그날 수령님께서 손수 포도밭 김을 매며 하신 말씀과 오늘 포도수확을 하며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했다.

그러자 녀선생들은 일제히 얼굴을 싸쥐고 흐느꼈다. 비록 수령님께서는 서거하셨지만 아이들에 대한 그이의 사랑은 우리 장군님에 의하여 그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걷잡을수없이 격동되였던것이다.

김구선은 당황했다. 만일 아이들이 안다면 어찌되겠는가. 다행 아이들은 운동장에 없었다.

《선생님들, 진정하십시오. 방금전에도 말했지만 장군님께서는 아이들이 포도에 깃든 사연을 알면 먹지 못하고 수령님을 그리며 통곡을 터칠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어서 포도를 부리웁시다.》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랬으나 제 귀에도 걷잡을수없이 갈린 음성이였다. 잠시후에야 녀선생들은 어느 정도 진정을 하고 포도를 부리우기 시작했다.

김구선은 그들과 함께 일손을 잡으며 당부했다.

《포도가 지내 익어서 조심히 다루어야 합니다.》

지함들을 다 부리웠을 때 원장이 김구선에게 말했다.

《지함들을 교실로 날라가자면 포도가 상할수 있기때문에 여기 운동장에서 나눠주겠습니다.》

《좋도록 하십시오.》

녀선생들이 자기 교실로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나왔다.

김구선은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포도를 나누어주는것은 선생들이 할 일이였다.

운동장밖으로 나와 돌아보았다. 마당에 정렬한 아이들이 포도를 나누어준다는 원장선생의 말에 환성을 질렀다. 철부지들은 어찌된 포도냐고 누구도 묻지 않았다. 매일같이 거듭되는 새참시간에 흔히 있는 일로 여기는 모양이다.

담임선생들이 지함을 터치고 포도를 나누어주기 시작하였다. 탐스럽게 잘 익은 포도송이들을 하나씩 받아안은 아이들의 얼굴들은 떨기떨기 웃음꽃들이였다. 먼저 포도를 받은 아이들은 참지를 못하고 걸탐스레 먹어대기 시작했다. 지내 익은 포도알들이 터지면서 아이들의 입언저리에 문양을 그리였다. 미처 삼키지 못한 단물이 턱밑으로 흐르기도 했다.

《야, 맛있다!》

사내애의 쟁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치원을 떠나려고 옆으로 돌아선 김구선은 두눈을 커다랗게 떴다. 저켠 울타리밖 백양나무곁에 김정일동지께서 서계시였다. 포도를 먹으며 기뻐하는 아이들이 보고싶어 오셨을것이다. 아까부터 아이들을 지켜보고계신것이 분명했다. 급히 그이를 향해 다가갔으나 김구선은 몇걸음밖에서 우뚝 서버린채 입을 열지 못했다. 그이의 눈에 눈물이 어린것을 보았다. 이 순간에 흘리시는 눈물의 의미를 무슨 말로 형언할수 있을가? 어버이수령님께서 지금 저 아이들의 모습을 보셨더라면··· 여기에 생각이 미치시자 형언 못할 애절한 감정이 북받쳤을것이다. 아니, 그것만이 아닐것이다. 어버이수령님을 대신하여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을 꽃피워주려고 육친의 애정을 기울인 그이께서만이 체험하실수 있는 그러한 감정이 눈물에 담겨져있을것이다. 아무튼 이 순간에 보게 된 그이의 눈물과 철없이 웃고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심각한 대조를 이루며 김구선의 뇌리에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기였다.

아이들이 운동장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으며 저켠에 서있는 승용차를 향해 가시였다.

아마도 아이들은 포도를 먹는 자기들의 모습을 보려고 그이께서 오셨던 사실을 언제까지나 모를것이다. 그이께서 남모르게 흘리신 눈물의 의미는 더구나 모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