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3

 

제 1 장

3

 

어쩌면 향기가 이렇게도 짙을가? 노란 빛갈은 또 얼마나 고운가?

김구선은 그 향기와 빛갈에 취한듯 한동안 남방과일인 향참외를 얼없이 바라보았다. 익을대로 익어서 제풀에 꼭지가 무삭아버린 향참외가 수십개나 온실바닥에 널려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그날로부터 오늘까지 누구도 온실을 돌보지 못했다. 경황이 없었다. 전국의 모든 인민들이 다 그러하였지만 수령님을 직접 모시고 일을 하여오던 금수산의사당의 관리성원들은 국상을 당하자 누구보다 비통한 절망에 휩싸여버렸다. 청천벽력과 같은 사실앞에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간 사람도 여럿이였다. 수령님의 사업과 생활을 보좌해드리던 본분을 이제는 어찌한단 말인가. 의사당의 안팎을 알뜰히 거두고 관리하는것도, 정원의 나무들과 꽃을 가꾸고 온실의 남새와 열매를 키우는것도 어느것이나 다 수령님을 위해서였다. 금수산의사당의 울타리안에서 그야말로 어버이수령님을 가장으로 모신 하나의 가정처럼 지내던 그들이였다. 누구의 가슴속에나 수령님에 대한 가지가지의 추억이 깊이 새겨져있었다. 그런것만큼 상실의 비애는 남다른것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이 몸이 살아서 무엇하랴. 잘 보좌해드리지 못해서 수령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죄의식이 그들의 가슴을 찢었다. 죽음으로 자신을 징벌하고싶은 죄의식속에 지난 10여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수 없었다.

금수산의사당의 관리사업을 책임진 김구선은 더구나 그러했다. 그는 이 기간 내처 피눈물을 뿌리며 조의식과 영결식 보장에 드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 행사들을 보장하는데 헌신하는것이 자기 본분을 마지막으로 다하는것이라는 자각이 없었다면 그는 진작 쓰러져버리거나 극단적인 충동을 걷잡지 못하였을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온 나날이 도저히 믿을수 없는 꿈결의 한 순간인듯싶었다. 어쩌면 아득한 력사의 수천년이 함축되여 흘러간듯도 하였다. 어제 중앙추도대회가 있었다. 김구선은 비로소 향참외에 생각이 미치여서 오늘 아침에야 온실로 나왔다.

그는 꼭지가 떨어진 향참외 한개를 조심히 집어들었다. 손에 조금만 힘을 주면 껍질이 터져서 단물이 흘러버릴것 같았다. 코에 가까이 가져다대고 걸탐스레 향기를 들이마시였다. 그러자 눈시울이 화끈 달아올랐다. 향기에 자극된 가슴속에서 불뭉치같은것이 치밀었다.

《어버이수령님께 이 향참외를 끝내 맛보여드리지 못하고···》

뒤따라 목메인 흐느낌소리가 저도 모르게 터져올랐다. 향참외에 깃든 사연이 가슴을 지지며 떠올랐던것이다.

···지난 6월 하순 위대한 수령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시는 날 아침이였다. 짧지 않은 기일을 예견하고 떠나시는 길이여서 김구선은 여느때없이 작별의 서운한 감정이 컸다. 물론 그때에는 이것이 생전의 수령님과 마지막헤여짐이 되리라고 어찌 생각이나 할수 있었으랴. 하지만 오래동안 현지지도의 길에 계실 그이께 무엇인가 꼭 대접해드리고싶었다. 두루 생각던 끝에 온실에 달려가서 먼저 익은 수박 한개를 따왔다. 수령님께서는 평소에 과실을 좋아하시였다. 김구선은 그것을 잘 알고있었다.

《아니, 벌써 수박이 익었소?》

수박을 보신 수령님께서는 사뭇 놀라시였다.

《이른봄 온실에 심은것이 익기 시작했습니다. 떠나시기 전에 맛을 보십시오.》

《좋소. 햇수박을 어디 먹어봅시다.》

수령님께서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김구선은 수박에 칼을 박고 쪽을 내였다. 검은 씨가 드문드문 박힌 빨간 속살이 드러났다.

수령님께서는 한쪽을 집어들고 김구선에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도 한쪽 드시오.》

김구선은 사양하지 않았다.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어야 무엇이든 달게 잡수시였다.

《맛이 좋구만. 온실에 심은 수박을 얼마나 딸것 같소?》

맛을 보신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올해에는 작년보다 수박이 잘되였습니다. 잘하면 50톤가까이 딸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이 딸수 있단 말이지!》

수령님의 얼굴에 놀라움과 기쁨이 어리시였다.

《그렇습니다.》

《50톤이라···》

수령님께서는 그 수량의 크기를 새겨보는듯 실눈을 짓고 일순 생각에 잠기시였다.

무엇때문에 갑자기 심중한 안색을 지으실가? 김구선은 알수 없었다. 기회를 놓칠세라 진작 품고있던 자기의 심정을 터놓았다.

《며칠후에 수령님께서 가계시는 곳으로 수박을 한지함 골라 보내드리겠습니다.》

《고맙소. 그러나 나한테 보내느라고 하지 말고 평양시내 유치원과 탁아소들에 보내시오. 아이들이 한쪽씩이라도 햇수박맛을 보도록 해야 하겠소.》

똑바로 마주보는 수령님의 눈에 간절한 빛이 어리시였다.

김구선은 가슴이 뭉클했다. 수령님께서는 수박을 맛보면서 먼저 아이들을 생각하시였다. 물론 이런 일은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금수산의사당에는 울타리주변을 따라 즐비하게 심은 포도나무에서 해마다 많은 량의 포도를 땄다. 수령님께서는 그 포도를 평양시내 아이들에게 보내주군 하시였다.

《말씀하신대로 수박을 아이들에게 보내주겠습니다.》

목메여 대답을 올린 김구선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어조를 바꾸며 뒤를 이었다.

《그런데 먼저 어버이수령님께 한지함 보내드리겠으니 받아주십시오.》

《보내지 말라니까. 나는 이미 햇수박맛을 보지 않았소. 50톤이면 아이들의 수에 비해 너무 적은 량이요. 아이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맛을 보이자면 한개라도 축을 내서는 안되겠소.》

《그렇지만 한지함쯤이야··· 저희들이 수령님을 위해 가꾼것인데 끝내 사양하시면 섭섭합니다.》

김구선은 간절히 말씀드리였다.

《관리처장각하!》

이윽히 마주보던 수령님께서 《동무》가 아니라 《각하》라고 부르시였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롱담을 하신다고 여길수 있었으나 그 부르심의 의미를 알고있는 김구선은 튕겨나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는 타협할 여지를 주지 않고 무조건 집행을 요구할 때 그렇게 부르시였던것이다.

《나에게 보낼 한지함의 수박이면 수십명의 아이들에게 맛을 보일수 있소. 가뜩이나 량이 적어서 걱정인데 한지함이나 축을 내다니··· 한개도 허실없이 몽땅 아이들에게 보내고 그 정형을 보고하시오!》

《알았습니다.》

김구선은 차렷자세를 취했다.

《앉소.》

수령님께서는 근감하신 표정을 풀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아이들이 수박맛을 보았다는 보고를 받으면 먹은것보다 더 기쁘단 말이야. 동무에게 손자애들이 있던가?》

《아직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심정을 모를수밖에··· 입안의것도 꺼내서 손자들에게 먹이고싶은게 할아버지들의 심정이야.》

수령님께서는 그윽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 미소에는 손자들에게 수박맛을 보이고 기쁨에 잠기는 할아버지의 자애깊은 감정이 흘렀다.

김구선은 후더운 온기에 휩싸이며 입을 열었다.

《올해 저희들이 온실에 남방의 향참외를 열포기가량 심어보았습니다. 예상외로 열매가 잘 달렸습니다. 향참외가 익으면 보내드리겠으니 그것만은 꼭 받아주십시오.》

《그렇게 하시오. 열포기에서 딴 향참외야 아이들에게 노나줄 형편이 못되지. 그대신 향참외재배와 관련한 기술지표들을 잘 정리해두오. 온실조건에서 향참외를 재배할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앞으로 향참외를 맛보일수 있을거요. 나는 남방과일을 우리 아이들에게 먹이지 못하는게 마음에 걸렸는데 동무네가 향참외재배경험을 쌓은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요. 자, 그럼 떠나겠소. 잘있소.》

《어버이수령님,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작별의 그날부터 김구선은 매일 한번씩 향참외를 돌아보았다.

지난 7월 8일 아침에도 출근길에 온실부터 들리였다. 그사이 향참외는 어른의 주먹만 하게 컸다. 껍질이 연황색을 띠기 시작한 한개는 특이한 향기를 연하게 풍기였다. 언제면 다 익을수 있을가?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두 몇개인가를 세여보았다. 한지함은 잘될듯싶었다. 둘러볼수록 흐뭇하여서 먼저 익기 시작한것을 소중히 만져보았다.

그러나 어버이수령님께서 뜻밖에 서거하시여 향참외를 끝내 보내드리지 못하였다.···

그 아침의 기억은 어제런듯 방불했다. 그때의 절통하던 감정도 되살아났다. 김구선은 온실의 향참외에 시선을 주고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입귀로 쩝쩔한것이 흘러들었다. 비로소 눈물을 의식했다.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는데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손에 물조리를 든 온실관리원처녀가 나타났다. 김구선은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눈시울이 젖어있는 이쪽을 띄여본 처녀는 입귀를 떨었다. 울음이 터지는 모양이다.

《옥실동무.》

다정히 불렀다. 몇걸음앞에서 무엇인가 서슴어하던 처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 향참외의 씨를 잘 받아두라구. 명년에는 온실에서 더 많이 시험재배를 해야겠소. 그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전에 바라시던대로 전국의 아이들에게 향참외를 먹일수 있는 방도를 우리가 개척해야 하겠소.》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관리처장아바이.》

처녀는 갈린 목소리로 응대했다.

김구선은 눈을 슴벅이며 처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목이 메여 말로는 표현할수 없는 곡진한 당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