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0

 

제 1 장

10

 

장연순은 도무지 진정할수가 없었다. 연구소장으로부터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신 교시를 전달받은 연구사들과 조수들은 저마끔 찾아와서 기쁨을 함께 나누며 연구성과를 축원했다. 남들의 눈에 뜨이지 않던 자기의 존재가 갑자기 돋보이게 되고보니 어리둥절했다.

이날 저녁은 퇴근시간이 되자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자신이 받아안은 영광과 기쁨을 남편과 딸애에게 터놓고싶었다. 여태까지 가정적부담을 도맡아안고 안해의 연구사업을 성의껏 도와준 고마운 남편이였다. 다른 남자들이라면 밤낮 실험실에만 붙어있는 안해에게 불만을 터뜨렸을것이다. 그러나 최성호는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동자질을 하고 아이를 탁아소에서 찾아오고 아침저녁으로 실험실에 밥을 날라오면서도 안해에게 정겨운 미소와 따뜻한 고무를 보내주군 하였다.

꿈많던 대학시절의 처녀들속에서는 과학연구를 지향한 녀자들에게는 가정이냐 과학이냐라는 두가지 선택중에서 하나만을 택할수 있다는 견해들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량자를 대치시키는 그릇된 견해이다. 그러나 직접 체험해보니 그러한 견해에 일리는 있었다. 과학자는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달리 고도의 정신적집중과 순간도 자리를 뜰수 없는 련속되는 실험을 해야 하는것이다. 남들과 같이 가정생활의 행복을 마음껏 향유하면서는 불가능하다고 할수도 있는 일이였다. 세상에 이름을 날린 녀성과학자들중에는 독신으로 산 사람들이 적지 않은것이다. 결코 까닭없는 일이 아니였다. 오늘에 와서 장연순은 이렇게 주장하고싶었다. 과학을 지향하는 녀성들이여, 과학연구와 가정생활의 행복을 대치시키지 말라. 결혼을 하지않고 독신으로 사는것은 명백히 비정상적인 생활이며 인륜에 대한 저촉이다. 녀자들도 사랑의 행복, 가정의 행복을 누리면서 얼마든지 과학연구사업을 할수 있다. 문제는 어떤 남자를 사랑하는가에 달려있다. 과학연구사업을 리해할줄 아는 남편이 손수 지어준 밥을 실험대우에 펼쳐놓고 먹을 때 그 맛은 류별한것이다. 자기가 지은 밥을 자기 집 아래목에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먹일 때와는 또 다른 감미로움을 느낀다. 실험관속에서 그 어떤 새로운것을 발견하고 그 기쁨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순간의 황홀감은 남편을 가진 녀성과학자만이 체험할수 있는 행복이다. 녀성과학자에게 있어서 남편과 가정은 연구사업에 지장을 주는것이 아니라 커다란 힘과 고무를 준다. 흔히 사랑은 모든 일에 힘과 정열을 준다고 한다. 고도로 긴장된 탐구와 사색으로 이어지는 앙양된 정신활동인 과학연구사업이야말로 힘과 정열을 부여해주는 열렬한 사랑이 필요한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한 장연순의 눈앞에는 달게 밥을 먹는 자기를 지켜보며 부드러운 눈웃음을 보내주던 남편의 모습과 실험실의 걸상에서 쪽잠에 든 자기에게 외투를 덮어주던 그의 애무어린 손길이 방불히 그려졌다.

지금에 와서 그는 자기가 과학적성공을 한다면 그 절반은 남편의 몫이라고 말하고싶었다. 안해의 연구사업을 그처럼 깊이 리해하여주고 사랑과 가정생활에 성실한 남편을 만난것은 자기 인생의 커다란 행운이였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깊은 인연과 오랜 생활을 거쳐서 이루어진 결합이였다. 장연순과 최성호는 유치원시절부터 알게 되였다. 그들은 유치원의 같은 반에서 자라났다. 두 어린이는 유치원시절에 총명하기로 소문이 났다. 셈세기와 우리 말 공부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앞섰다. 게다가 예술적인 소질도 남달리 뛰여났다. 그들은 전국유치원어린이들의 예술소조경연에서도 입선을 했다. 장연순은 노래를 잘 불렀고 최성호는 동화극의 주인공역을 훌륭히 수행했다. 뛰여난 두 어린이는 남달리 친하였다. 어깨동무시절의 그 순진한 친근감이 먼 후날 열렬한 사랑으로 이어지리라고는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소학교에서도 처음은 한학급에서 공부하면서 1, 2등을 다투었다. 3학년때였다. 장연순의 아버지가 다른 직무로 조동되면서 집도 다른 구역으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 장연순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하였다. 그는 최성호와 헤여지는것이 서운했다. 그래서 연필 한자루를 작별의 기념으로 주었다. 그랬더니 최성호는 연순의 손에 자기가 쓰던 고무지우개를 쥐여주었다.

여러해가 흘렀다. 서로 다른 구역의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다. 서로 소식도 몰랐다.

그들이 서로 다시 만나게 된것은 중학교졸업반때였다. 전국적으로 중학교 졸업반학생들의 수학경연대회가 열리였다. 여러 단계의 시험을 거쳐서 평양시대표로 선발된 학생들중에는 최성호와 장연순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여러해만에 만났다. 첫 순간에 서로 얼굴을 알아보았으나 몰라보게 성장한 상대의 모습에 어느쪽이나 어리둥절했다. 머리속에는 소년단넥타이를 날리는 어린 학생으로 표상되여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눈앞에 나타난 상대는 청년기의 첫시기에 이른 총각이였고 처녀였다. 바야흐로 사춘기를 맞이한 다감하고 꿈많은 시절에 살고있었다. 다만 서로를 알아보았다는 뜻으로 눈을 깜박이며 약간 고개를 숙여보이였다. 그마저 다른 학생들이 눈치를 차릴가봐 겁나했다. 경연기간에는 내처 초조와 불안, 성공의 기대에 시달리며 공부에만 전심하다보니 다른 그 무엇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경연이 끝나고 결과가 발표되였다. 최성호는 1등을 하였고 장연순은 3등을 하였다. 표창장을 수여받은 그날에야 그들은 상대의 성과를 축하하여 서로 손을 잡았다. 학교의 선생들과 학생들이 달려와서 축하의 인사를 보내주는것이여서 입선자들인 최성호와 장연순이 손을 잡는것은 남들의 눈에 자연스럽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장연순과 최성호는 이날 저녁 대동강반을 거닐었다. 푸른 잎새를 무수히 달고 실실이 드리운 버드나무가지들이 머리와 어깨를 스치였다. 기슭을 때리며 철썩이는 물결소리는 귀전에 정다웠고 화단을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은 피부에 부드럽고 코끝에 향기로왔다. 다만 유난히 밝은 달이 나무가지사이로 자기들의 모습을 엿보는것이 야속스러웠다.

그들은 수학경연에 제출되였던 문제들을 각기 어떻게 풀었는가를 이야기했다. 장연순은 최성호가 자기의 문제풀이방법을 말할 때마다 놀란 눈길로 바라보았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이 예리하고 문제풀이의 착상이 기발했다. 장연순은 그의 뛰여난 지능에 매혹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무는 앞으로 이름있는 과학자가 될거예요. 이제 중학교를 졸업하면 어느 대학 무슨 학과에서 공부하겠어요?》

성호는 침묵했다. 망연히 허공중의 둥근달을 바라보고있었다. 졸업을 한달 앞둔 이때까지 자기의 장래를 결정하지 못했단 말인가? 전국수학경연에서 1등을 한 그는 지망하는 어느 대학 어느 학과이든 입학할수 있을것이다. 남들은 대학입학시험을 앞두고 속을 태우지만 그에게는 대학입학시험쯤은 땅짚고 헤염치기일것이다.

《왜 대답이 없어요?》

두눈을 올롱하니 뜨고 따지고들었다.

그제서야 성호는 머리를 돌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연순동무, 난 이미 졸업을 하면 대학이 아니라 군대에 나가기로 결심을 했소.》

《이번에 심사원선생님들모두가 동무는 앞으로 훌륭한 과학자가 되라고 하지 않았나요.》

《과학자로 되려는 나의 포부에는 변함이 없소. 군대복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대학도 다니고 과학연구사업도 하겠소.》

성호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가 군대로 나가는 날이 왔다.

장연순은 그전날 밤 부모와 동생의 눈을 속여가며 꽃목걸이를 만들었다. 이튿날 평양역으로 달려온 그는 새 군복을 입고 최전연초소로 떠나는 성호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편지도 군복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렬차의 승강대에 오르던 성호는 슬며시 돌아서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동무는 이제 어느 대학으로 가겠소?》

《경공업대학에 입학원서를 냈어요.》

《그럼 내 몫까지 공부를 잘해주오. 우리는 오늘 헤여지지만 과학의 한길에서 수학경연때처럼 다시 만나게 될는지도 모르지.》

장연순은 서둘러 그의 말을 시정했다.

《다시 만나게 될는지도 모르는게 아니라 꼭 다시 만나게 될거예요. 그때에도 동무는 1등을 하고 나는 3등밖에 못할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거요. 그때에는 동무가 1등을 하게 되고 내가 3등쯤 하게 될거요.》

징연순은 이번에도 그의 말을 반박했다.

《그때 우리들의 점수는 두사람의 점수를 합해서 2등분한 공통점수를 가지게 될거예요.》

처녀의 말을 새겨본 성호의 얼굴이 행복감으로 붉게 물들었다.

《나도 동무의 말을 믿겠소.》

최성호와 장연순사이에 편지가 오고가는 사이에 여러해가 흘렀다.

대학을 졸업한 장연순은 그 대학 교원으로 배치되였다.

군사복무를 마치고 제대된 최성호는 건설건재대학(당시)에 입학을 하였다.

인생의 출발계선은 같았으나 생활의 흐름속에 오늘에 이른 그들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생긴듯 했다. 녀자쪽은 어엿한 대학교원이 되였는데 남자쪽은 대학생이였던것이다. 하지만 장연순은 그 차이를 무시하고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그랬을 때 어머니와 일부 친척들은 펄쩍 뛰였다.

《처녀로 대학교원을 한다는게 어디 쉬운 일이냐. 이왕이면 좀더 나은 대상을 고를수 없단 말이냐.》

《그 동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얼마든지 대학에 갈수 있었어요. 조국보위를 먼저 생각했기에 대학이 아니라 군대로 갔던거예요. 지금도 그 동무는 1등생이고 나는 여전히 3등생이예요.》

장연순의 립장은 확고했다. 전국중학교학생수학경연때를 두고 성호는 1등생이고 자기는 3등생이라고 하였지만 오늘도 지적능력을 두고는 그러한 등차가 존재한다고 여기였다. 성호는 건축공학부적으로 뛰여난 학생이였다.

결혼식때 장연순은 대학시절의 녀동무들을 몇명 초청하였다. 거의나 그들은 이미 결혼을 한 녀자들이였다. 남편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였다. 가정생활을 하는 녀자들의 지체는 남편들의 명성에 크게 좌우되는 법이다. 초청을 받은 동창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그래 남자는 뭘하는 사람이냐?》

《건설건재대학 학생이야.》

장연순은 주저없이 대답했다. 동창생들의 얼굴에 의혹과 실망의 빛이 떠오르는것을 보았을 때 서운한 감정이 없지 않았다. 기왕 늦어진바치고는 이삼년 더 기다려서 성호동무가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결혼하는것이 아니였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연순은 초례청에 오를 때 일부러 수수한 옷차림을 했다. 자기보다 남자를 돋보이게 하려는 속심이였다. 실은 그렇게 왼심을 쓰지 않아도 좋았을것이다. 성호는 훤칠한 키에 름름한 체격을 가진 미남자였다.

결혼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신랑신부가 나타나자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남자와 녀자의 모습이 너무도 대조적이였던것이다. 남자로서는 지나치다고 하리만치 우아한 용모의 신랑에 비해 신부는 차림도 용모도 수수했다.

장내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리였다.

《연순이가 미남자한테 시집을 가누나. 신랑은 영화배우를 해도 손색이 없겠다.》

《신랑은 외양뿐만아니라 머리도 뛰여나대. 일찌기 중학시절에 전국수학경연에서 1등을 하였다지 않니.》

《역시 수재가 수재를 알아보았구나. 연순이도 우리 학급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지 않았니.》

장연순은 흥분된 가운데서도 그러한 속삭임들을 가려듣고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가슴속에서는 좌중을 향해 긍지높이 웨치고싶은 말이 울리고있었다.

(나의 남편이 오늘은 비록 대학생에 불과하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여러분모두가 알게 될 과학자로 될것입니다.)

결혼식은 하였지만 장연순은 시집살이를 할 형편이 못되였다. 시집은 두칸짜리 아빠트였는데 시동생들이 여렷이였다. 신혼생활을 할만 한 방이 없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친정살이를 하였다. 생활은 한사코 결혼을 반대하던 친정어머니조차 자기의 사위가 얼마나 례절있고 교양높은 사람인가를 깨닫게 하였다. 어머니는 한아빠트의 아낙네들을 만나면 사위자랑이였다.

최성호는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사업소에 현장기사로 배치되였다. 대학에서는 건축연구원으로 가라고 하였으나 현장체험을 쌓아야겠다면서 건설사업소로 갔다. 사업소에서는 새로 지은 아빠트를 배정해주었다. 드디여 부모들의 슬하에서 벗어난 독자적살림이 시작되였다. 화목한 젊은부부의 생활은 행복하게 흘러갔다. 딸애도 탈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집으로 향하는 장연순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돌이켜볼수록 자기가 결심한 사랑의 선택은 잘한 일이였다고 생각되였다. 남편의 뒤받침이 없다면 이미전에 애기젖가루에 대한 연구를 포기했을는지 모른다.

집이 가까와올수록 사랑하는 남편과 귀여운 딸애의 모습이 번갈아 눈앞에 떠올랐다. 오늘 저녁은 오래간만에 가정적온기에 취해볼수 있다. 그는 탁아소에 들리였다. 딸애의 손목을 잡고 퇴근길을 걷는 즐거움을 누리고싶었다. 탁아소의 현관에 들어서 계단을 오르는 사이에 여러명의 낯익은 보모들을 만났다.

《순애 어머니, 오래간만이군요. 애기젖가루를 연구한다는데 기어이 성공해주세요.》

보모들마다 이런 인사말을 보내여왔다. 그들이야말로 애기젖가루의 절박성을 매일 매 시각 페부로 체험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기대어린 눈빛을 가슴후덥게 새겨안으며 순애를 맡겨두는 교양반으로 갔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안은 텅 비여있었다. 벌써 부모들이 아이들을 다 찾아갔을가? 창너머에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리였다. 방안을 꿰질러 창가로 다가갔다. 아이들은 베란다의 란간에 조롱조롱 붙어서서 목이 빠지게 운동장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저기 우리 엄마가 온다!》

기쁨에 넘친 사내애의 목소리에 울먹한 녀자애의 목소리가 엇갈렸다.

《우리 엄만 왜 아직 안 올가?》

그 목소리가 예리하게 가슴을 찔렀다. 매일 저녁 베란다의 란간에 붙어서서 이 엄마가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눈물지었을 순애의 모습이 련상되였다. 아릿해오는 가슴을 부여안고 아이들의 뒤모습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순애야.》

놀란 아이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중에 순애는 없었다.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던 사내애가 말했다.

《순애는 얼마전에 아버지가 데려갔어요.》

장연순은 집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출입문에 자물쇠가 잠긴채로 있었다. 남편과 딸애는 어데로 갔을가? 알수 없었다. 상심한 기색으로 공동으로 열쇠를 보관하는 비밀장소에 손을 넣어보았다. 열쇠가 손에 잡히였다. 자물쇠를 열고 전실에 들어섰다.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이 흐르던 정든 집이였다. 하지만 전등을 켜고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을 때 어수선한 느낌을 받았다. 방안에도 옷가지들이 널려있었고 부엌에는 설겆이를 하지 않은 식기들이 가시대에 쌓여있었다. 남편이 혼자서 끼식을 끓이고 실험실에 식사를 날라오다보니 집을 거둘 겨를이 없었을것이다. 서둘러 방안을 정돈하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자기의 손으로 저녁밥을 지어서 남편과 딸애를 먹이고싶었다. 부지런히 일손을 놀리며 밥을 짓고 식기들을 가셔놓았다. 그래도 남편과 딸애는 나타나지 않았다. 실험실에서는 너무도 빨리 흐르는 시간이 안타까왔지만 사랑하는 남편과 딸애를 기다리는 지금은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이를데없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세사람의 밥그릇을 정성담아 상우에 챙겨놓고 잠시 휴식을 할 때에야 출입문밖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분명 출입문자물쇠가 없어진것을 보고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장연순은 튕겨나듯 일어나서 전실로 달려나갔다. 와락 출입문을 열어제끼며 《여보!》하고 소리쳤다. 아침에 실험실로 밥을 날라온 남편을 만났댔지만 반가움이 북받쳤다. 가방을 들지 않은 남편의 다른 손에는 비닐구럭이 들려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남편의 손에서 가방과 비닐구럭을 넘겨받았다.

《탁아소에서 순애를 찾아간지는 오랬다는데 왜 이제야 나타났어요?》

《오늘이 순애생일이 아니요. 그래서 상점들에 들려서 뭘 좀 사오느라고 늦어졌소.》

아참, 오늘이 딸애의 생일이지! 나는 그것도 감감 잊고있었다. 그 애의 얼굴을 두번다시 바라볼 면목이 없었다. 고개를 떨구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뒤를 따르던 남편은 밥상을 띄여보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미 저녁을 차려놓았구만. 순애가 좋아하는 닭알과 물고기를 사왔는데···》

장연순은 비닐구럭을 열어보았다. 가재미와 닭알이 들어있었다.

《잠간 기다려주세요. 제가 제꺽 가재미를 튀기고 닭알을 삶아오겠어요.》

《오래간만에 집에 왔는데 앉아있소. 그 일은 내가 하지. 나도 무슨 음식이든지 제 손으로 만들줄 아오. 순애가 뭐라고 하는지 아오? 인제는 엄마가 지은 밥보다 아빠가 지은 밥이 더 맛이 있다고 하오.》

장연순은 웃음진 남편의 얼굴에서 자기의 손이 간 반찬을 딸애의 생일상에 올려주고싶어하는 간절한 심정을 읽었다. 그래서 순애를 품에 안고 방안에 눌러앉았다. 이윽하여 부엌에서 물고기를 씻어서 기름에 튀기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 냄새를 달게 들이키며 딸애의 야드드한 머리카락을 턱으로 쓰다듬었다.

《순애야, 이 엄마가 보고싶었니?》

고개를 까딱이던 아이는 고개를 젖히고 물었다.

《엄만 내 생일이여서 집에 왔나?》

대답을 기다리는 까만 눈동자가 광채를 뿌리며 겨누어왔다. 그처럼 맑고 순진한 눈동자앞에 거짓말을 할수는 없었다.

《아니다, 엄마는 오늘이 네 생일이란것마저 잊고있었다. 순애야, 이 엄마를 용서해라.》

말을 번지고보니 눈물이 솟구쳤다. 엄마의 눈물을 보는 딸애의 눈동자는 더욱 올롱해졌다.

부엌에서 남편의 성난듯 한 목소리가 울리였다.

《여보, 지속적으로 정신적집중을 요구하는것이 과학연구사업이 아니요. 순애도 앞으로 과학자로 키우겠다면서 그런 일을 가지고 너무 마음쓰지 마오.》

장연순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얼른 눈물을 씻었다. 딸애앞에 죄스럽던 생각이 순간에 사라졌다. 순애야, 아버지말대로 먼 후날에 네가 과학자가 된다면 오늘의 이 엄마를 리해할거다.

어느새 남편이 가재미튀기와 삶은 닭알을 커다란 두개의 접시에 담아들고 방안으로 올라왔다.

세식구는 두리반에 오붓이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났을 때 성호는 의혹이 실린 시선을 안해에게 보냈다.

《내 아까부터 묻자고 했는데 오늘 저녁 어떻게 집에 나타났소? 당신 혹시 연구사업을 포기한게 아니요?》

이틀전 실험실에 온 남편에게 여러가지로 애로와 난관이 있어서 연구사업을 그만들 생각도 없지 않다고 얼핏 비쳤더니 그렇게 묻는것이다.

《아니예요, 오늘 나에게는 일생을 두고도 잊을수 없는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 있었어요. 그 기쁨을 당신과 나누고싶어서 서둘러 집으로 왔어요.》

남편의 얼굴에서 그늘이 가셔지고 호기심어린 밝은빛이 떠올랐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소?》

장연순은 흥분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오늘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저의 연구사업정형을 료해하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어요.》

계속하여 부총리가 전달한 그이의 교시내용을 설명했다. 돌이켜볼수록 뜨거운 감격이 치밀어서 도간도간 말끝을 삼켰다.

주의깊게 듣고난 최성호는 덥석 안해의 손목을 더듬어잡았다.

《오늘 그런 일이 있었구만! 애기젖가루연구사업이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는 일이기에 어버이장군님께서 그토록 깊은 관심을 돌리시는구려. 기어이 성공을 해서 장군님께 기쁨을 드려야 하겠소.》

그는 흥분으로 들레며 순애를 그러당겨 몇번 흔들어주고나서 다시 안해의 품에 안겨주었다.

《순애야, 네 생일에 엄마는 커다란 기쁨을 가져왔구나. 엄마는 아버지장군님의 직접적인 관심속에 애기젖가루를 만드는 과학자다. 너의 엄마처럼 중요한 사업을 하는 엄마는 드물게다.》

순애는 말귀를 다 알아듣지 못했으련만 제법 이런 말을 했다.

《엄마, 꼭 애기젖가루를 만들어내야 해요.》

《알겠다, 꼭 성공을 하겠다.》

장연순은 딸애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면서 그 애의 볼을 부비였다. 불쑥 뜨거운 눈물이 흐르면서 딸애의 볼을 적시였다. 그것을 깨닫자 팔을 풀고 딸애의 볼에서 눈물의 흔적을 씻어주었다.

최성호는 뜨거운 눈물속에 행복한 미소를 그리는 안해를 신뢰어린 눈길로 지켜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