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5 장 6

 

제 2 편

제 5 장

6

 

이해 겨울 우리 나라에서는 평균강수량이 0. 5미리메터이하인 무강수현상이 지속되였지만 김정일동지께서 자강도를 떠나시는 날에는 함박눈이 소담스럽게 쏟아져내렸다. 이렇게 먼길, 밤길을 떠나실 때마다 이상하게도 그이를 뒤따르는 조국의 흰눈이였다.

그래서 언제인가는 천만송이 눈발이 흩날리는 하늘을 바라보시며 《저것도 다 내 수행성원인가?》라고 말씀하신적도 있으시였다.

먼 산기슭마을에서 비쳐나오는 불빛들이 아스름한 잔별들처럼 바라보였다. 멀리서부터 유난히 눈길을 끌던 길가집의 불이 마침내 꺼지는것을 보신 그이께서는 아쉬웁게 고개를 돌리시였다.

(누가 불을 껐을가? 세대주일가, 아니면 안해일가?···)

이 나라의 집집마다에서 마지막으로 전등불을 끄는것은 녀성들일것이다. 바느질을 하든지, 뉘를 고르든지 어쨌든 그들에게는 밤늦게까지 해야 할 일들이 어느때나 있게 되고 아침이면 누구보다 먼저 깨여나야 할 일들이 또 기다리는것이다. 그러나···불이 꺼졌다는것은 그들마저도 이만 잠들겠다는 뜻일것이다. 하지만 그이께서 켜들고가시는 이 눈길우의 불빛은 꺼질수가 없었다.

이 나라의 근면한 어머니들마저 깊이 잠재우시고 머나먼 밤길을 헤쳐가시는 김정일동지의 발자취를 따라 조선의 아침이 밝아오기때문이였다. 이름모를 나즈러운 령이 다가오고있었다.

《왜 뒤따르는 차들이 보이지 않소?》

운전사가 후사경을 기웃거렸다.

《눈보라때문에 지체되는것 같습니다.》

《차를 세우시오, 기다렸다가 같이 가야지.》

전조등이 꺼지자 불그스레한 방향등빛만 껌벅이며 차안에 비쳐들었다. 령을 내려지친 눈보라가 앞창에 훅 불리였다.

그이께서는 자령기계공장의 놀라운 변모를 다시금 되새겨보시였다. 그러니 이제는 모든 일이 무난히 잘되여나가는가?

이제는 한시름 놓고 쉬여가도 되는가?

아니다. 언제인가 그이께서는 공구없는 CNC는 이발없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만큼 공구문제가 중요했다. 그런데 지금 CNC, CNC 하는 사람은 많아도 공구, 공구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희망은 문산공구였다. 그러나 나라의 기계공업이 날로 현대화되여가는데 문산공구공장에서는 여전히 재래식기공구들만 계속 만들어내고있었다. 문산을 또 추켜세워야 했다.

《나는 기계공업에서 공구가 매우 중요하기때문에 공작기계공업기지를 꾸리면서 동시에 공구공장을 건설하도록 하였습니다. 문산공구공장은 내가 직접 터전을 잡아주어 건설한 공장입니다. 나는 이 공장에 늘 깊은 관심을 돌렸으며 현지에 찾아가 직접 지도하기도 하였습니다. 문산공구공장은 공구공장으로서는 우리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공장입니다.》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4차전원회의에서 수령님께서 하신 결론의 한대목이였다. 문산공구··· 희천공작기계공장···

마음속에 무겁게 매달리는 이름들이였다.

뒤에서 비쳐든 전조등이 차안을 환히 밝혀주었다.

기다리던 차들이 나타난것이였다.

숨을 톺는듯 한 발동소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이께서는 차문을 여시고 《연형묵동무! 내 차로 오시오!》 라고 부르시였다.

어느 눈판에서 한참 신고를 하다가 온듯 눈더버기가 된 연형묵이 달려왔다. 차안에 들어온 그의 옷섶에서 차거우면서도 신선한 공기가 풍겨왔다. 차들은 다시 출발했다. 차행군간거리가 고르롭게 벌어졌을 때 그이께서 연형묵에게 물으시였다.

《리정이 지금 8월기계종합공장에 가있다지?》

《그렇습니다. 8월기계종합공장을 현대화하는것은 자령기계에 비할바없이 큰 사업입니다. 사실 거기까지 현대화를 해놓고 장군님을 우리 도에 모시자고 계획했던건데 일정이 좀 드티였습니다.》

그이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내가 그한테 더 해줄게 없던가. ···》

어버이의 다심한 사랑은 끝이 없었다.

《장군님, 이번에 그는 훈장도 타고 박사칭호도 받게 됩니다.》

《CNC화의 중간총화라고 할가, 내 스스로 돌이켜볼 때 무엇보다 기쁜것은 조국의 래일을 위하여 있는 지식과 열정, 사랑과 행복을 아낌없이 다 바치는 열렬한 애국자들이 자라난것이요. 이것이 제일 기쁘오. 그들 한사람, 한사람은 우리 조선의 재산이고 혁명하는 나의 재산이요. 훈장과 박사메달··· 그것만으로는 주는것이 너무 적은것 같소. 리정이 바라는것도 그게 아닐거요. 일을 줘야지, 더 큰 일거리를 말이요. 애국자들에게는 그게 제일 큰 표창이요.》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연형묵은 생각했다.

참으로 복받은 사람들이다. 리정만이 아닌, 이렇듯 위대하신분의 슬하에서 혁명을 배우고 인생을 깨우치며 삶의 보람과 영광을 누리는 이 나라의 수천만 아들딸들모두가 누리는 행복이다. 김정일동지의 음성이 뜨겁게 젖어들었다.

《수령님께서 지금처럼 성장한 련하기계를 보시였다면 얼마나 기뻐하시였겠소. 우리 련하기계에 김일성훈장을 수여합시다. 이것은 나라의 기계공업발전을 위해 그처럼 마음써오신 수령님께서 주시는 표창이라고 생각합시다.》

《장군님, 제 평양에 올라가 검진을 받고는 인차 돌아와서 8월기계종합공장을 추켜세우겠습니다.》

《누가 동무를 놔주겠다오?》

《예?!》

연형묵은 뜻밖의 말씀에 긴장해졌다.

《내가 서둘러온건 동무때문이기도 하오. 전번에 전화를 했을 때 뭐라고 했소. 나한테 자령기계를 보여준 다음에야 평양에 올라와 치료를 받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이렇게 다우쳐온거요.》

연형묵은 지금 그이께 이끌려 평양으로 가고있었다.

그렇듯 분주하게 들볶이던 직무와 전화와 회의와 문건들을 모두 뒤에 남기고 그저 보통의 공민이 되여 치료를 받으러 떠나고있었다.

《동무가 평양을 떠난지 몇해던가?》

《예, 열세해째입니다.》

《열세해라···》

생활형편이 가장 어려웠던 자강도에서 군민들과 함께 고난의 행군의 가혹한 시련을 이겨냈으며 나라의 강력한 공업토대가 숨쉬는 땅을 우리 당의 믿음직한 병기창으로 꾸려놓은 불굴의 혁명전사를 개선영웅처럼 떠받들어 평양에 데려오리라고 언제부터 별러오셨건만 병원으로 데려가시는 마음이 너무 아프시였다.

《연동무, 이제부터는 병치료를 받으면서 내곁에서 일하는게 어떻소? 동무한테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길가 하는데···》

연형묵은 인차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

《벌써 군복도 지어놨소. 이건 내 개인의 요구가 아니라 혁명의 요구요. 동무는 지난 13년간 도당책임비서로서 할수 있는 일을 다 하였소. 아니, 그이상 했소. 이제는 평양에 돌아와 나와 함께 온 나라의 CNC화를 설계해보기요. 지금 내곁에는 동무가 필요하오.》

《장군님, 저 같은 병객이 이제야···》

그이앞에서 처음으로 자기의 병을 인정해놓고 연형묵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인생이란 어느때든지 한번은 꺼지기마련이다. 연형묵은 그 한번 인생에 제명을 다 살지 못하고 가는것보다 겁나는것이 장군님을 받들어 일을 더 하지 못하고 가는것이였다.

한개 도안에도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숱한 일거리를 남겨두고 떠나는 전사에게 나라의 큰일을 함께 의논하자고 믿음을 베풀어주시니 생을 더 살고싶은 욕망은 그래서 생기는것이였다.

《장군님, 저때문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연형묵이답지 않게 무슨 나약한 소리요. 우린 해놓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사람들이요. 여기까지를 내다보고 고심참담해온 길이 아니요. 앞으로는 모든 부문에서 최첨단을 돌파하라는 구호를 들어야 하오. 이것은 CNC를 시대화한다는것을 의미하오.》

그이께서는 《시대화》라는 표현에 힘을 주시였다.

더 높은 목표우에 더 휘황한 아침이 밝아오고있었다.

《나는 그 주타격방향을 희천으로 정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이요. 전에 희천을 CNC화의 본보기단위로 정하는 문제가 상정됐을 때 동무가 그 계획을 보류한것은 그때로서 일리가 있었소. 그러기에는 련하가 너무 작았지. 지금은 다르오. 련하는 이미 많은 경험을 쌓았고 담력도 생기고 신망도 얻었소. 그래서 내 결심은 련하기계회사를 련하기계관리국으로 승격시키는 동시에 희천공작기계를 완전히 련하화하자는거요.》

《희천을 련하화한단 말입니까?》

연형묵의 목소리는 떨리기까지 했다.

《그 큰 공장을?!···》

《그렇소. 그 크고도 오랜 공장을 련하가 맡아안는거요! 이것은 우리 경제발전에서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로 될것이요. 우리가 지식주도형의 경제발전단계로 들어서는 신호라 할가.》

《지식주도형의 경제, 그 탄생을 희천에서 알린다!》

연형묵은 흥분한듯 좌석모서리를 틀어잡았다.

참으로 벅찬 현실이였다. 봉화기계공장 합숙뒤공지에 자리잡은 버섯갓만 한 림시건물에서 첫 CNC줄방전가공반을 만들어내던 련하기계가 력사도 자못 유구하여 어머니공장이라고 부르는 희천을 통합하게 되는것이였다.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사변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다.

《희천공작기계는 우리 나라 기계공업의 어머니공장이요. 이런 공장을 통채로 련하화하는것은 경제적으로뿐만아니라 시대적으로도 큰 의의를 가질것이요. 해볼만 한 일이며 해야 할 일이요. 우리는 희천공작기계를 련하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경제강국건설이며 바야흐로 새 세기 산업혁명의 아침이 밝아오고있다는것을 인민들앞에 보여주어야 하오.》

《장군님!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다.》

연형묵은 격동된 표정으로 그이의 말씀을 새겨안았다.

《그러자면 온 나라가 CNC를 알게 해야 하오. 기계공업만이 아니라 인민경제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학교와 상점, 집집들에서까지 CNC라는 말이 흘러나오게 해야 하오. 난 아까 리정이 쓴 〈백가지문답집〉을 보면서 감동을 금할수 없었소. 그렇게라도 사람들을 깨우치고 이끌어가려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하오. 난 그 마음을 온 나라가 다 읽어볼수 있게 해주자는거요.》

《그 소책자를 출판하시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다.

《아니요. 그러자면 보다 전투적이고 위력한 수단을 동원해야 하오. 우리 당보가 있지 않소. 당보의 지면을 련하에 줍시다. 그러면 온 나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단 하루의 아침독보시간에 련하를 알게 될거요. CNC화의 불길이 삽시에 타오르게 될거요.》

CNC화의 시대화, 참으로 위대한 구상이시였다.

눈내리는 이 한밤에도 조국의 걸음은 빨라지고있었다.

새 세기 산업혁명의 아침이 이밤너머에서 다가오고있었다.

어느덧 눈보라가 잦았다. 자강도의 마지막군지경을 벗어나고있는데 그이께서 차를 멈추도록 하시였다. 눈길이여서 차는 어지간히 지치다가 멎어섰다. 그이께서 전조등앞으로 걸어가시였다. 뿌득뿌득 눈밟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바지가랭이밑이 써늘해오시였다. 발목까지 눈에 푹 잠긴것이였다. 그이께서 손채양을 얹으시자 운전사가 제꺽 전조등을 껐다. 모든것이 어둠속에 잠겼다. 그이께서는 끼고계시던 장갑을 벗어 기관실뚜껑을 툭툭 두드리시였다.

《불을 켜시오.》

전조등이 다시 켜지자 눈부신 그 빛에 반사되여 주위가 온통 새파랗게 불타오르는것 같았다. 길 한복판에 작고 깜찍한 발자국으로 새겨놓은 《설눈》, 《복눈》이라는 네글자가 불장식을 한듯 아름답게 살아올랐다. 그이의 눈가에 자애깊은 미소가 피였다.

《연동무! 이리 오시오, 여길 좀 보오.》

연형묵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오자 그이께서는 《발자국을 보니 오누이가 쓴것 같소. 오, 그렇지. 사내녀석의 신이 썩 큰걸 보니 그 애가 오빠인 모양이요.》라고 말씀하시였다.

눈판우에는 바닥이 반질반질하게 닳아진 사내애의 신발자국과 부채살같은 무늬가 또렷한 처녀애의 솜신자국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무릎우에 두손을 짚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치 황홀한 동화의 세계를 들여다보시는듯 했다. 일군들이 주위를 에워쌌다.

《오누이가 두자씩 나누어 쓴것 같습니다.》

《허허, 설명절이 지난지도 오랜데···》

《그땐 눈이 오지 않았으니 이제야 쓴게지.》

《설눈, 복눈이라···》

김정일동지께서는 정깊이 외워보시였다.

《애들이 아마 나를 보라고 쓴것 같소. 새해에는 복이 더 많이 차례지게 해달라고 나한테 써보낸 〈눈편지〉같단 말이요. 하하!》

아득한 허공에 눈길을 두시였던 그이께서는 《그래, 복을 줘야지. 주구말구!》라고 하시며 몇걸음 앞으로 걸어나가시였다.

즘즛했던 눈발이 다시 날리며 그이의 어깨에, 옷자락에 무덕무덕 내려쌓였다. 그이의 모습을 우러르며 연형묵은 생각했다.

김정일동지!

눈덮인 2월에 탄생하신분이여서 눈과의 인연은 이다지도 깊은것인가. 이 나라의 길들에는 어디나 그이의 발자국이 찍혀져있지 않는 곳이 없다. 두겹, 세겹··· 열겹으로도 찍혀있다.

그 자욱들은 그이께서 온 생애를 바쳐 쓰고쓰신 글줄처럼 사랑하는 조국땅우에 깊이깊이 새겨져있다. 땅우에서는 알수 없다.

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읽게 될것이다.

이 불멸의 년대기들에 그이께서는 무엇을 바라고 생각하시였으며 무엇을 위하여 그리도 깡그리 자신을 불태우시였던가를··· 그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존함으로 불리우는 이 조선의 영원한 미래를 위한, 부강번영을 위한 애국의 념원이였다. 만약 그이의 생애가 한편의 곡이라면 그 가사는 《애국가》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