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5 장 4

 

제 2 편

제 5 장

4

 

들창식으로 길게 뽑은 환기창들로 노르끼레한 락조가 비껴들고있었다. 생산현장은 비여있었다. 체육경기와 궐기모임이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식사를 하고 한겻 휴식을 보내고있었다.

기계공장에 쉽게 찾아들지 않는 고요였다.

리정은 유연생산체계가 자리잡게 될 넓은 공간에 들어섰다.

그리고 언젠가처럼 매 점과 선에 이르기까지 머리속에 똑똑히 기억된 설계와 현장을 대비하면서 걸어갔다. 마침내 키를 넘게 솟구친 콩크리트구조물앞에 이르렀다. 그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손에 메자루를 틀어잡았다. 두발을 넓게 디디고 메를 휘둘렀다.

쾅! 쾅! 쿵!··· 거대한 구조물이 몸부림쳤다.

가녁에 보일듯말듯 한 실금이 생기더니 점차 공간을 넓히며 버그러졌다. 리정이 메를 휘두를 때마다 생겨나는 둔한 올림이 고요하던 생산현장을 흔들었다. 로동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는 사람은 많았지만 되돌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권하세와 최수광이 나타나자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권하세가 리정을 찾기 시작한것은 시상식이 끝난 후부터였다.

리정은 궐기모임장소에도 보이지 않았다. 알만 한 사람들에게는 다 물어보았으나 그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공장구내를 사방 훑다가 최수광을 만났다.

그는 2가공직장 뒤마당에 홀로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발밑에도 숱한 꽁초들이 널려있는것으로 보아 거기에 오래 앉아있은것 같았다. 최수광은 궐기모임이 끝난 후 연형묵을 만났노라고 하였다. 씨름경기때 심판을 선 연형묵은 최수광과 리정의 사이에 오고가는 미묘한 감정마찰을 직감하고 그 사유를 따져물었다.

연형묵의 표정이 돌변하는것을 보고 최수광은 일이 뜻하지 않게 번져진다는 위구심이 들었다. 자기의 행동에서 무엇이 잘못되였는지 돌이켜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머리만 복잡해졌다.

권하세도 심각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게 잘못됐다면 함께 책임을 져야지요.》

권하세의 말에 최수광은 씁쓸히 웃어보였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지배인동무한테야 잘못이 없지요. 그걸 발기한 사람도 나고 자리를 잡은 사람도 내가 아닙니까.》

그러다가 현장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권하세는 리정을 향해 곧바로 걸어오다가 그의 몸을 손으로 다칠만한 거리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지만 리정을 멈춰세우지는 못하였다. 이때부터는 연형묵이 메를 넘겨받아 리정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권하세가 참지 못하고 연형묵의 팔을 붙잡았다.

《책임비서동지, 차라리 저를 비판이라도 하십시오.》

《그 말은 내가 아니라 여기 로동계급에게 해야 하오.》

연형묵은 잠시 주위를 일별하고나서 《자령기계공장 로동자, 기술자동무들!》 하고 저력있게 웨쳤다.

《우리 털어놓고 말해봅시다. 동무들도 알다싶이 장군님께서는 자령기계공장 2단계현대화과업으로서 바로 여기에 유연생산체계를 꾸릴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공장의 얼굴을 뚜렷이 하고 장군님께 더 큰 기쁨을 드린다고 하면서 립체창고를 지어야 할 자리에 전경도를 세우자고 합니다. 물론 전경도는 훌륭합니다. 동무들의 마음에도 들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동무들에게 다시 묻고싶습니다. 이 전경도를 세워야 합니까?》

웅성거리던 소리는 인차 멎었다.

최수광의 앞에 서있던 청년이 《예!》 하고 손을 들었다.

《물어보실게 있습니까. 그게 장군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하는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못하는거지요.》

《그렇습니다!》

《옳습니다!》

연형묵은 정숙을 기다렸다가 재차 물었다.

《옳습니다. 장군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중에 누가 장군님의 뜻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합니까?》

한순간 굳어졌던 사람들이 누군가를 찾았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듯이 리정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기대어린 눈길을 받아안는 순간 리정은 놀랐다.

장군님을 여러차례나 일터에 모시였던 그들이 아직 한번도 그런 영광의 자리에 서보지 못한 자기를 바라보고있었던것이다.

리정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게··· 저란 말입니까?》

《그러문요!》

《사장동무야 련하사람이 아닌가요!》

(련하사람! 그렇다, 나는 련하사람이다.)

사람들의 입에서 불쑥불쑥 튀여나오는 말이 신성하고 숭엄한 그 무엇처럼 리정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장군님의 뜻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련하사람이라는 믿음앞에 대답을 주어야 했다.

연형묵이 그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어서 말하오. 하고싶었던 말을 저들에게 다 하시오.》

젊은 로동자들이 휘틀목을 날라다가 발밑에 깔아주었다.

《동무들, 나는 동무들이 나를 이 자리에 내세운것은 나 개인이 아니라 련하의 심장으로 느낀 장군님에 대하여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으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나섰습니다.

동무들, 우리 장군님은 위대한 지식인이십니다.

련하기계가 성장해온 걸음걸음은 장군님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태여나자 이름을 지어주시고 병들세라 약을 먹여주시고 때로는 아픈 매도 들어주시였습니다.

우리가 만든 기계라고 왜 결함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을 다 아시면서도 장군님께서는 우리 련하를 살려야겠기에, 련하를 키워 내세워야 하겠기에 온 나라 공장, 기업소들을 찾고찾으시며 련하기계가 제일이라고, 자신께서는 련하기계만을 인정한다고 하시면서 련하바람을 일구어주시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들었다.

리정은 장군님께서 련하기계의 첫걸음마는 어떻게 떼여주시였으며 고난의 행군으로 공장과 마을들이 숨죽어갈 때에도 어떻게 련하를 살리고 지켜주시였는가를 이야기했다. CNC화의 길, 그것은 정녕 장군님께서 개척하시고 장군님께서 이끌어오신 장군님의 길이였다. 그리고 리정은 말했다. CNC화의 길에 바쳐진 값높은 삶들에 대하여, 그 넋을 흐리게 할번 한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무엇으로 어떻게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다는겁니까? 현대화공정은 략하더라도 전경도를 크게 세워놓고 만세를 부르면 장군님께서 만족하시리라고 생각한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것은 공장의 영예도, 얼굴도 아니며 장군님의 뜻은 더욱 아닙니다. CNC화에 바치신 장군님의 뜻은 더 크며 더 멀리에 있을것입니다. 우리 함께 그 뜻에 가닿기 위해 일합시다.》

《모두 들었습니까?》 연형묵이 물었다.

군중은 침묵으로 무거운 심중을 대변했다.

《생각해보시오.》 연형묵이 말했다. 《지금까지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공장과 만나주신 일군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런 공장, 그런 일군들이 모두 제구실을 했더라면 장군님께서 그리도 많은 고생을 하시지는 않았을것입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장군님을 모신 그 한번의 기회로 당장에 아시는 사람, 일을 다한 공장이 된것처럼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저 장군님을몸가까이 뵈온 사람이 된다는것과 영원히 기억하시는 일군이 된다는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비록 자신의 가까이에 섰던적은 없어도 얼굴보다 해놓은 일이 자주 보이는 일군, 그런 공장을 장군님께서는 기억하십니다.》

《책임비서동지! 우리도 그렇게 일하겠습니다.》

《강계정신의 창조자들답게 살겠습니다!》

로동자들속에서 거세찬 호응이 터져나왔다.

권하세가 자기비판을 했다. 솔직하고 통절한 비판이였다.

도중에 최수광이 사람들을 헤치고나왔다. 그리고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고개를 떨구고 비척거리며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날 밤 연형묵은 미루어오던 기술협의회까지 지도하고나서 최수광이 문을 닫아매고있다는 현대화지휘부로 찾아갔다.

연형묵이 나타났는데도 최수광은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담배 한대를 다 태웠다.

연형묵이 빈 담배갑을 재털이에 구겨넣었다.

《오늘 저녁은 권하세지배인이 자기 집에서 식사를 하자누만. 어떻게 하겠소? 주인의 성의인데 거절하지야 않겠지?》

으쓸한 밤이였다. 게슴츠레한 초생달이 희벗한 신작로를 량켠으로 갈라져서 걷고있는 그들을 호기심이 나서 지켜보았다.

《내 한마디 하라오?》

《말씀하십시오.》 최수광이 침울히 대꾸했다.

《그럼 여기라도 잠간 앉기요.》

이삭만 딴 강냉이짚이 길옆 밭고랑에 뉘여있는것을 보고 연형묵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체통 큰 사람들의 무게가 실리자 마른잎들이 부서지며 소리를 냈다.

《아까 리정동무의 말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소?》

최수광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연형묵은 한사코 대답을 받아내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는 괴로워하고있었다. 자기딴에 지켜왔던 원칙이며 지주가 잘못된것이였음을 인정한다는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였다. 연형묵은 그 심정을 충분히 헤아렸다.

《난 그때 새 세기 과학기술의 시대에 우리 일군들이 서야 할 위치에 대해 생각해보았소. 장군님께서는 우리 당을 과학기술에 의거하여 혁명하는 당이라고 말씀하시였소. 그토록 과학기술이 중시되고 말이 아니라 실력으로 일할것을 요구하는 시대가 오자 우리 일군들속에서 대조되는 모습이 나타났소. 한쪽은 피나게 공부를 하여 박사가 되고, 그래서 언제든지 장군님앞에 실력가형의 일군으로 떳떳이 나설수 있게 자신을 준비한 사람들이고 다른쪽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요. 그럼 이들은 무엇을 할것인가?》

연형묵의 목소리는 격렬하게 울리고있었다.

《직무는 가졌고 살아서 숨을 쉬는만큼 뭐든 해야 할게 아니겠소. 그러니 동무처럼 여기 내 몫도 있소 하고 존재감을 시위하기 위해 소위 중요한 일들을 벌려놓는거요. 이런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그건 무엄하게도 장군님앞에서 아첨을 하겠다는것과 같소.》

《예?!···》 최수광이 숨을 흑 톺았다.

《동문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련하기계출신이라고 긍지스럽게 말했댔지. 그러나 보시오. 출신이 같다고 해서 뜻과 리상도 같아지는건 아니요. 그뿐만아니라 동무와 리정은 한고향에서 나서자랐다지? 나라의 기계제작기술을 발전시켜 당에 기쁨을 드리려는 지향도 크게 다를바 없었소. 그런데 무엇이 두사람사이에 이런 큰 차이를 가져다주었는가. 동무는 당에 기쁨을 드리겠다고 말은 많이 했지만 당의 의도는 몰랐소. 우리 당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귀중히 여기고 무엇을 경계하는지 동문 알지 못했소. 그것은 불피코 인생관의 차이를 가져왔고 최수광이라는 인간을 당에 드릴 기쁨을 인위적으로 고안해내려는 사람으로 만들었소.》

밤이슬이 내리는것 같았다.

최수광은 두볼이 축축히 젖어오는것을 느꼈다.

《내 말이 아플수 있는데··· 참작해주시오.》

연형묵이 할말을 다 한듯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자, 그럼 이만 헤여지기요.》

《아니, 그럼?!》

최수광은 헤여지자는 말에 굳어졌다.

《아, 지배인네 집엔 후에 가지. 도당에 들어가야 하오.》

연형묵이 도당위원회에 도착한것은 새벽 1시였다.

서기가 정문에서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장군님께서 방금전에 전화로 연형묵을 찾으시였다고 하면서 돌아오는 즉시 전화를 걸라는 말씀을 전달했다.

연형묵은 방으로 달려올라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장군님께 인사를 드렸으나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연형묵은 자기 잘못을 깨달았다. 평양 병원에 올라와 입원치료를 받으라는 말씀을 두차례나 받고서도 떠나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장군님, 죄송합니다.》 하고 그는 아뢰였다.

《건강이 좀 어떻소?》

《저는 일없습니다. 오늘 자령기계공장에서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저도 땀을 흠뻑 흘렸습니다. 궐기모임때는 연설도 했습니다.》

《그만하시오. 그런다고 내 마음이 가벼워질것 같소?》

연형묵은 갑자르다가 용기를 내여 말씀올렸다.

《장군님, 석달만 시간을 주십시오. 지금 도에 벌려놓은 일들을 마무리하고는 꼭 평양에 올라가서 치료를 받겠습니다.》

《의사들은 동무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오!》

《아닙니다, 장군님. 그런게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엄포를 놓느라고 그런겁니다.》 하고 연형묵은 황황히 부정했다. 《우리 도병원에도 유능한 의사들이 많습니다. 매주 검진을 받겠습니다. 자령기계현대화만 끝나면 정말 올라가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연형묵은 그 몇초가 숨막히게 길어보였다.

《내가 빨리 자령에 내려가야겠소. 그래야 동무가 올라오지 그렇지 않다가는 무슨 일이 날지 모르겠소. 송봉동무를 잃고 이제 동무까지 잃으면 내가 견디지 못하오. 이것 보오, 연동무. 제발 부탁인데 건강을 돌보시오. 나를 위해서 동무의 건강을 돌보시오. 알겠소? 한달··· 아니, 이십일후에는 꼭 올라오시오.》

《알겠습니다, 장군님.》

연형묵은 지킬수 없는 대답을 드리고있었다. 그날 저녁부터 기온이 푹 떨어지더니 명문고개아래 끝서리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