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4 장 7

 

제 2 편

제 4 장

7

 

전선동부에 위치한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을 떠나시면서 김정일동지께서는 몇통의 편지를 차에 가지고 오르시였다. 인민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고 회답을 쓰시는것은 그이께 있어서 매일처럼 반복되는 중요한 사업인 동시에 짧은 휴식이기도 했다.

인민은 무엇이나 솔직히 이야기한다. 기쁜 소식을 알리는 편지가 있는가 하면 마음속 고충을 터놓는 편지도 있다. 그런 편지들을 받을 때마다 일거리는 늘어난다, 그것도 미뤄서는 안될 일들이···

인민이 주는 일거리들을 힘에 부치도록 받아안는것은 얼마나 행복한가고 그이께서는 생각하시였다. 손에 드신것은 안흥공작기계공장 설계사업소 인민설계가 한유준이 올린 편지였다.

《어버이장군님! 저는 이렇게 장군님의 은덕으로 고목생화하여 꿈같은 새 가정을 꾸리였습니다. 안흥공업대학으로 옮겨온 우리 집사람은 소망대로 교육사업을 계속 하게 되였고 군관에게 시집간 딸은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에 당선되여 평양에 간답니다.》

펜으로 박아쓴 일곱페지짜리 장문의 편지에는 그이께서 자기 가정일로 더는 마음을 쓰시지 않기 바라는 심정이 어려있었다.

글줄에 한유준의 얼굴이 보이는것 같으시였다.

《요즘 저희 과학자, 기술자들은 구름처럼 떠받들려 삽니다. 이번에 기술대표단으로 외국출장을 갔던 우리 기사장은 자기 집사람에게는 크림 한통 못 사다주면서도 내가 낄 돋보기를 사오지 않았겠습니까. 제 자랑은 아니지만 인사차림도 기술자우대로 한다 그 뜻입니다.》

그이께서는 인민이 쓰는 푸수한 어휘에서조차 이름할수 없는 따뜻한 정을 느끼시며 흐뭇이 자리를 뒤치여앉으시였다.

다음은 어느 한 외국기자가 쓴 인상기였다.

아침에 읽어보시다가 시간이 없어 접어두시였던 《···쏘련이라는 거구의 사회주의가 넘어졌다.》라는 구절이 안겨오시였다.

《이로써 실체로서의 사회주의가, 철학으로서의 〈맑스〉가 영면을 하는것인가? 력사는 매개 나라와 민족과 정치가들에게 묻고있었다. 도태냐? 사멸이냐? 진화냐? 적응이냐?

바로 그러한 때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들중의 하나를 영원히 묻어버릴 관을 짜고있던 서방세계앞에 뜻밖의 존재가 부상하였다. 그 자그마한 나라의 이름은 조선이였다. 조선은 나에게 낯설지 않은 나라이다. 십여년전 조선을 방문한 기회에 나는 일성주석을 만나뵙고 이렇게 말씀올린적이 있다.

〈주석님, 저는 사회주의를 보러 왔습니다.〉

주석께서는 한손을 높이 들어 가리키시였다.

〈저 집에 가보시오. 거기에 사회주의가 있습니다.〉

그 집은 인민대학습당이였다.

나는 돌아와 말씀올렸다.

〈주석님, 저는 사회주의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복무하는 사회주의와 공부하는 사회주의였습니다. 몇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째서 이렇듯 극성스럽게 공부를 하는가? 놀랍게도 〈나〉로 시작되는 대답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우리 공장, 우리 인민, 우리 조국으로 시작되군 하였습니다. 노력의 리유가 자기자신이 아니라 사회와 집단과 결부되여있었습니다.〉

주석께서는 환하게 웃으시였다.

〈그러니 첫날 학습은 아주 잘한셈입니다. 당신은 오늘 우리 식 사회주의의 중요한 두가지 특질을 배웠습니다. 즉 사회주의의 본질과 그 존재방식입니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제도와 그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훌륭한 가치관으로써 우리 식 사회주의는 굳건합니다. 한가지 여담을 하겠습니다. 그전에 우리 나라에 찾아왔던 한 서방기자가 나에게 국가수반들의 개인자산발표에 참가해보지 않겠는가고 물었습니다. 아마 그가 국제친선전람관을 비롯해서 여러곳을 참관하더니 이 김일성은 일체 자산을 〈국유화〉한 프로레타리아의 모델로 알았는가봅니다. 이제 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 나는 인민대학습당을 보여주겠습니다. 책과 사람, 이게 얼마나 큰 재산인가. 이만하면 조선의 김일성이 자랑할만 한 재산이 가득하지 않은가!〉

주석께서는 다시금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한때 조선에서는 혹심한 생활난을 겪었다. 여러가지 요인중에 나름의 한가지를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그것은 너무도 도덕적이고 책임적인 이들의 제도가 우리의 눈으로 볼 때에는 하루 음료벌이도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무료로 살수 있는 모든 조건을 보장해주었다는것이다. 그 혜택속에 한개를 해놓고도 두개를 받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은 혹시 국가란 꼭지를 틀면 어느때나 물을 쏟아놓는 수도처럼 뭐나 다 흔하고 흔해야 하고 누구에게나 베풀어주어야 하는것처럼 여겼는지도 모른다. 허나 이들의 제도는 변함없이 무료교육, 무상치료를 하였고 값비싼 원료와 자재로 생산한 제품들을 눅은 값으로 상점에 놓아주었다. 나는 이에 감탄한다!

그들은 일시적난관을 겪으면서야 비로소 자기들이 고수해가고있는 사회주의가 얼마나 고맙고 그리고 힘들었겠는가를 깨닫게 되였다. 하여 그들이 겪은 고난은 그것을 강요한 사람들의 의도와는 달리 사회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영원히 잊을수 없는 체험의 과정으로 화하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시련속에서 〈사회주의연구원〉을 졸업한셈이다. 깨달은 그들이 분발하여 일떠선 오늘 그리고 래일에 세계는 더욱 놀라운 현실을 보게 될것이다.

그들은 웨치고있다.

일을 하자! 공부를 하자! 더 많이, 더 잘하자!···

극악한 환경으로부터 이들의 정신은 도태되거나 사멸된것이 아니라 진화하였다. 필요한것은 남기고 불필요한것은 없애면서 그들은 완전무결에로 나아가고있다. 그 종착점이 사회주의완전승리가 아니겠는가. 어혈진 거리들에서는 아직도 문이 걸려있는 상점들을 볼수 있다. 허나 그들은 문닫은 상점들에 대하여 일시 감기를 앓고있는 친혈육처럼 생각하고있다. 지금은 걸려있지만 흥성이게 될것이고 더 자주 가게 될것이며 크게 부흥하리라는것을 그들은 믿어의심치 않고있다. 솔직히 말하여 일시 닫겼으나 미래를 간직하고있는 이 나라의 상점들이 얼마나 돋보이는가. ···》

여기까지 읽으시고나서 김정일동지께서는 인상기를 접어 뒤좌석에 앉아있는 안시학에게 넘겨주시였다.

《동무도 한번 읽어보시오.》

차창밖 코스모스의 대행렬은 어느덧 끝나고 길 좌우에는 가을의 들판이 누렇게 드러누워있었다.

정리한 논배미들을 운동장처럼 달리며 뜨락또르들이 벼단을 꺼들이고있었다.

《장군님, 이건 좀··· 파격적인 글입니다.》

안시학이 자기의 감상을 피력했다.

《이 사람의 가치관은 모름지기 사회다윈주의와 실용주의의 중간쯤에 있는 모양입니다. 딱히 찍어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뭔가 여지는 있는 글이라고 보아집니다.》

《표현이 예리하고 나름의 투시도 하느라고 했지만 우리 제도의 인민적시책을 마치 불로소득의 온상인듯 몰리해한것과 력사발전을 사회생물학적인 견지에서 본것이 약점이요. 그렇지만 일한것만큼, 번것만큼이라는 사회주의분배원칙의 요구를 3자의 눈으로 그만큼이라도 해석했다는게 용이하오. 상점들의 문이 다시 열린다는 말이 괜찮소. 국방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토대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한 인민생활을 추켜세우는것은 시간문제요.》

다음 드신것은 안시학이 올렸던 편지였다.

십여년전 대학추천을 받아가는 한 제대병사를 자기 차에 태웠던 이야기로부터 편지는 시작된다. 아득한 세월의 흐름속에 망각해버렸던 그를 뜻밖에 다시 만나게 되였을 때 안시학이 받아안았던 솔직한 심정이 편지에 그대로 담겨져있었다.

《그런데 우연이라고 할지, 그 제대병사가 다름아닌 김일성종합대학시절에 저희들이 장군님을 모시고 생산실습을 진행한 평양방직기계공장 지배인이 되였다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유연창대직기개발에 실패하였습니다. 공장의 기술적토대가 미약한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또다시 떠오르는 추억···

타래쳐오르던 절삭밥, 흥겨운 배구경기와 대학모표···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시절 하루일을 끝마치고 돌아갈 때마다 옷섶 어데선가 분명히 풍겨오던 기계기름냄새를 다시 맡아보시는듯 깊은 감회에 젖어드시였다. 생산실습이 시작되던 날 천정이 높고 밤색쪽무이널을 깐 지배인방에서 공장의 연혁을 들으시던 일도 생각나시였다. 안시학이 편지에 쓴 제대병사가 지금은 그 방의 주인이 됐을것이다.

회색양복에 같은 색의 넥타이를 받쳐맨 안시학은 전보다 두터운 돋보기를 끼고있었는데 안경다리가 슬며시 가무려진 귀바퀴에 흰머리칼이 덮인것이 새삼스럽게 그이의 눈길을 끌었다.

《한때는 비싼것을 눅게 사오는것이 재주인듯도 생각했고 못 주겠다는것을 받아오는것이 공적인듯 여겨온 저였습니다. 결국 머리를 숙이는데 습관되여야 했고 나중에는 목숨보다 귀중한 나라의 존엄마저 매각할번 했던 저였습니다. 그후 로동계급과 함께 산 나날에 그리고 련하기계로 제국주의의 기술패권주의를 통쾌하게 무너뜨리는 과정에 늦게나마 실력이 안받침되지 않는 애국은 우국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이어 안시학은 방직공업에서 하나의 혁명이라고도 할수 있는 유연창대직기를 개발하자면 반드시 정밀가공설비들이 있어야 한다는것과 그로부터 평양방직기계공장에서 공구직장을 현대화할데 대한 목표를 내세웠으나 론난이 일어나고있는데 대하여 썼다.

《장군님, 제가 이 편지를 올리게 되는것은 그때처럼 로동계급속으로 들어가고싶어서입니다. 장군님을 모시고 기계와의 첫 인연을 맺었던 곳에 다시 달려가 생의 마무리를 깨끗이 하고싶습니다.》

그이께서는 안시학이 쓴 편지도 넘겨주시였다.

《동무의 편지를 몇번이나 읽어보았소. 그 공병상사와 얽힌 사연이 유별나더구만. 동무가 평양방직기계공장에 내려가 새 직기의 개발을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대해서는 나도 찬성이요. 그런데 거기서 벌어지고있는 론난이란 구체적으로 어떤것이요?》

《예. 공구직장의 일부 설비들을 개조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론의되고있습니다. 대개가 사적설비들이고 공장의 얼굴이라는데로부터 개조를 의문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음, 그렇다?···》

그이께서는 문제가 가볍지 않다는것을 직감하시였다.

《동문 그것이 공구직장에 한한 문제라고 생각하오?》

《예?!》

안시학은 그렇게 넓은 생각은 해보지 못하였었다.

《어느 한 직장문제가 아니요. 난 보다 큰 문제로 보고있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짧은 공간을 두시였다.

《그 공장의 생산수준과 순환, 능력을 파악하고있소?》

《저, 그렇게까지는 모르고있습니다, 분야가 다르다나니···》

《분야가 다르다?》

어쩐지 곱씹어보게 되시였다.

결국 중공업과 경공업의 사이가 뜨다는 말이겠는데 지난 시기 우리가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으로부터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국방공업을 위주로 하는 중공업에 선차적힘을 넣은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오늘날에 와서까지 경공업을 먼 다른 세계의 일처럼 생각해서는 안될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CNC화를 추진해오고있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공작기계공업에 국한시켜 리해하고있소. 다른 부문들에서는 CNC화에 대한 초보적인 표상도 가지지 못하고있소. 평양방직기계공장을 현대화하는것은 중공업이 경공업으로 침투하는 생동한 실례가 되는 동시에 CNC화의 불길을 공작기계공업만이 아니라 모든 부문으로 확대하는데서 신호가 될것이요.》

안시학의 놀라움은 컸다. CNC화의 장엄한 물결이 경공업과 농업, 교육과 보건, 체육과 문화생활 등 모든 부문, 모든 단위로 노도쳐가는 광경이 눈앞에 보이는것만 같았다.

《공구직장이 공장의 얼굴이기때문에 다칠수 없다는것은 외면적인 견해요. 그렇기때문에 더우기 현대화해야 하오. 재래식설비들을 개조하는것과 함께 CNC기계를 넣어줍시다. 지금 계획하고있는 기계공업부문 공장, 기업소들의 현대화안을 잘만 타산하면 CNC설비를 몇대쯤 얻어낼수 있을것 같은데, 어떻소?》

《장군님, 그렇게 타산하겠습니다.》

《좋소. 군수가 민수를, 중공업이 경공업을 지원하고 호상 침투하면서 발전하는것은 선군시대 경제건설의 합법칙적요구이기도 하오. 재삼강조하지만 CNC화의 정신이 기계공업부문에만 국한되여서는 안되오. 온 나라가 더 높은 곳으로 더 빨리 내달려야 하오.》

철길교차점에서 차들은 잠시 지체했다.

그사이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사색에 잠기시였다.

벌써 십여년세월이 흘렀다.

우리 나라 기계공업의 현대화를 결심하고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준비할 때 수령님께서는 공장은 젊은 김정일동무가 건설하고 자신께서는 사람을 건설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도 수령님께서는 소년단원들의 대회에 참석하시였으며 그 한해전에는 김책공업종합대학 새 교사를 돌아보고 대학명판을 친필로 남겨주시였다.

수령님께서 남기신 친필아래서 공부한 사람들이 이제는 지배인이 되고 기사장이 되여 내곁에 믿음직하게 서있다.

고마우신 우리 수령님, 조선의 후손만대의 번영을 위한 가장 귀중한 재부를 가꾸고 물려주신 어버이수령님···

그들속에는 평양방직기계공장 지배인도 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뇌이시였다.

《그가 오영옥의 아들이란 말이지. ···》

《예, 아직도 그때의 모표를 건사하고있다고 합니다.》

《음, 모표··· 그 생기발랄하던 처녀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였다고는 상상하기 어렵구만. 촌에서 산다지. 왜 아들을 따라서 평양에 올라오지 않고?···》

《공장사람들앞에 면목이 없다고··· 그러는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그이의 억양이 조금 빨라졌다.

《난 그때 당 총비서도 국가령도자도 아니였소. 그저 보통의 대학생이였을뿐이요. 그런데도 나와 한 약속을 한생 집처럼 얹고산 그것부터가 눈물이 나오. 그는 어머니구실을 했소. 그가 공장에 남아서 기계부속을 더 깎아내는것도 좋겠지만 공장의 래일을 떠메고나갈 훌륭한 자식을 키워낸것이 더 기쁘오. 그는 나에게 제일 큰것을 주었소. 바로 사람이요, 창조하는 사람!》

안시학은 가슴이 뭉클했다.

그에게서 처음 기계를 다루는 묘리를 익힌 자신도 뜻밖의 인연에 놀라기만 했을뿐인데 장군님께서는 한 인간이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 살아온 꿈과 삶의 가치를 헤아려주신것이다.

《아무래도 안동무가 걸음을 해야 할것 같소. 오영옥동무를 평양에 데려오기요. 며느리의 공대도 받고 손자들의 어리광도 받아주면서 여생을 즐겁게 보내도록 해주기요. 이제 군부대에 도착하면 곧 떠나시오. 그래야 내 마음도 기쁘겠소.》

《알겠습니다, 장군님.》

어데선가 힘찬 군악소리가 들려왔다.

먼 산기슭에 공화국기와 최고사령관기가 펄펄 휘날리고있는것이 보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를 영접하기 위해 정렬한 군인들이 틀어잡은 총검에서 해빛이 번쩍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