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4 장 5

 

제 2 편

제 4 장

5

 

지난해 여름 창일의 운명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방직기계공장 공무동력직장 전동기수리작업반에서 로동생활의 첫걸음을 뗀 그가 30대의 젊은 나이에 지배인으로 임명된것이다. 지배인!··· 수백명의 종업원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넓은 사무실과 승용차가 생겼고 회의때마다 결론을 하고 수표를 해야 했다. 옛 공병상사에게 방직과 방직기계의 원리, 로동의 진미를 가르쳐준 사람들이 그를 만나면 먼저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그것은 공장력사상 가장 젊은 지배인으로서 그의 사업에서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믿음의 표시였다. 새 직무를 받아안고 창일의 마음은 무거웠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직기들이 시대의 발전에 비해 너무도 뒤떨어져있었던것이다. 공장의 기본생산지표는 재래식철편직기들이였는데 그나마 만들어본 사람들이 손꼽을 정도였다. 공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생산이 아니라 수리를 업으로 해오고있었다.

그렇게 된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다.

우선 방직기계에 대한 수요가 감퇴되였다. 방직기계는 제한된 전문공장들에서만 수요를 가진다. 1970년대까지 그러한 전문공장들의 생산능력이 기본적으로 조성되자 계획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리용자들은 또 그들대로 얼마나 설비를 아끼는지 일단 가져다놓으면 수명이 따로 없었다. 그것을 무턱대고 나쁘다고 할수도 없었다.

낡은 설비로도 어쨌든 천은 짜졌고 혁신자들이 나왔다.

원인은 또한 공장의 기술장비수준이 락후하고 더 좋은 직기를 만들려는 의지가 희박했던탓이였다.

새 직무수행에 착수하면서 창일은 2001년 12월 장군님께서 안흥방직공장을 돌아보시면서 하신 말씀을 다시 학습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때 안흥방직공장까지 우리 나라의 큰 방직공장들을 거의다 돌아보았는데 방직설비들이 전반적으로 낡았다고 하시면서 그러다보니 전기는 전기대로 쓰고 로력은 로력대로 쓰지만 천생산을 늘이지 못하고 질도 높이지 못하고있다고 지적하시였다.

방직설비의 현대화, 이야말로 방직기계공장이 틀어쥐고나가야 할 종자라고 창일은 생각했다. 그는 곧 안흥방직공장으로 떠났다.

그곳에도 창일이네 공장에서 수십여년전에 생산한 철편직기들이 대부분이였다. 생각이 많아졌다. 방직공업을 일명 《바줄당기기공업》이라고도 한다. 타면, 련조, 조방, 정방 등 작업과정을 거치는 그 당기기가 마감에는 천짜기준비공정을 거쳐 직기에서 천폭이 되여 흘러나온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것은 역시 직기다. 그런데 우리 방직공장들에서 쓰이고있는 직기들은 대체로 북직기, 철편직기, 억센창대직기들로서 기술적으로 뒤떨어진것들이였다. 방직이 추서자면 방직기계를 추세워야 했다.

창일은 유연창대직기에 눈독을 들이고있었다.

씨실을 날라가는 창대가 억센 창대에 비하여 유연하게 움직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만큼 제작상 요구가 까다롭고 기술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이 많았다. 그러나 창일은 대담하게 시도해볼 생각이였다. 그런 속내를 비치자 방직공장측에서는 목마른 사람처럼 숭늉이든 샘물이든 덮어놓고 내놓으라는 식으로 나왔다.

《글쎄 유연창대직기면 어딥니까, 그것 한대면 생산성이 저런 복직기 넉대와 맞먹는데. 하지만 우리 입에 맞고 안 맞고는 둘째치고 그쪽에서 언제나 만들어보내주겠는지 그게 걱정입니다.》

제 손으로 한대의 직기도 만들어보지 못한 젊은 지배인에 대한 로골적인 회의심이였다. 그러나 창일은 탓하지 않았다. 자기가 그곳 공장일군이라 해도 그랬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방직공장을 돌아본 다음 춘호를 찾아갔다.

1동 2세대짜리 아담한 단층사택이였다. 터밭에서 올종강냉이가 거멓게 독을 쓰며 자라고있었다. 점심때라 토방우에 벗어놓은 신발이 보였다. 뒤축이 외켠으로 닳는 갈데없이 춘호의 신발이였다.

기척을 내자 안사람이 문을 열었다. 그는 대문가에 서있는 창일을 멀리서 띄여보고 공장사람이 찾아온줄 알았던지 《예, 집에 계셔요.》 하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였다.

《여보, 공장에서 사람이 왔어요.》

《누군데?》

춘호가 나왔다.

몇해사이에 몸이 더 퍼지고 머리도 빗어가꾼것이 중년일군의 체취가 풍겼다. 저리 공장으로 나갈 자세인듯 문턱에 주저앉아 신을 찾아들던 춘호가 눈이 커지더니 벌떡 일어섰다.

《아니?! 이게 창일이 아닌가!》

그들은 얼싸안았다.

춘호의 안해도 달려나와 《이게 얼마만이예요!》 하고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그들은 서로 밀고 끌며 집으로 들어갔다.

소박하게 꾸려진 살림방에는 특별한 치레가 없고 방안벽에 오누이자식을 앞에 내세우고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사진속에 권하세가 손자애들을 무릎에 앉히고 환히 웃고있었다.

《자네 부친이 아닌가?》

《지난봄에 우리 집에 다녀갔다네. 련하기계공장참관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렸댔지. 그 얘길 다 하자면 끝이 없을걸세. 참, 지배인이된걸 축하하네. 공병상사가 생각과는 다르거던, 허허. ···》

롱담절반, 진담절반 섞인 말이였다.

《말도 말라구. 지배인이 돼가지고 잠도 제대로 못 잔다네. 난 솔직히 자네가 부러워. 벌써 여러차례나 장군님을 공장에 모시지 않았나. 그에 비하면 난 너무 뒤떨어진것 같아 조바심이 난단 말이야. 그래서 이번에 마음먹고 새 직기를 개발하기로 결심했네.》

《새 직기를? 어떤건데?》

《유연창대직기라고, 첨단급이라고 할수 있지.》

《유연창대직기라? 그 문젤 련하기계와 토론해봤나?》

《련하기계와?》 창일은 의아해서 되물었다.

《그건 왜? 련하기계야 방직기계를 만드는것도 아니지 않나? 그리고 방직기계는 여느 기계와 달라. 만져본 사람만이 안다니까.》

(시작이 절반이라고 내밀고 볼판이지.) 하고 창일은 생각했다.

첫 유연창대직기의 시운전은 실패로 끝났다.

이른바 창일이 유연창대직기라고 만들어낸(그것도 단번에 10대나 만들었다.) 설비들은 천을 짜기는커녕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한대가 기저귀만큼 한 천을 뱉아놓았는데 여기저기 직단이 생기고 모래채처럼 구멍이 뚫려 천이라 할 꼴이 못되였다.

설상가상으로 지금까지 뒤에서 창일을 떠밀어주던 당비서가 소환되고 새 사람이 왔다. 오래동안 교육부문에서 당사업을 해왔다는 그는 창일에 비해 나이가 십년이상 우인데다가 교육기관출신이 돼서 그런지 대하기가 퍽 깔끔했다.

첫 상면이 있은지 며칠이 지나 창일의 방에 찾아온 그는 록색뚜껑을 씌운 두툼한 책 한권을 책상우에 놓아주었다.

《상봉기념입니다. 사업수첩으로 쓰십시오.》

《지금 쓰는것도 새건데요?》

《예, 그 사업수첩을 앞뒤로 쓰는것 같더라니.》

창일이 사업수첩을 앞뒤가 없이 쓰는것은 사실이였다.

앞쪽에는 사업과 관련되는 내용들을 적었고 뒤에는 그림을 그렸다. 더 정확히는 회전식나들문이며 담배대모양의 휴지통이며 포도덩굴처럼 생긴 긴의자 등의 도안들이였다. 앞으로 공장구내에 휴식터들을 꾸려놓을 생각으로 시작한노릇이 사업수첩을 절반이나 먹어치웠다. 혹시 새 당비서는 그것을 장난꾸러기가 학습장에 그려놓는 락서같은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유연창대직기의 실패를 놓고 벌어진 협의회에서 한 당비서의 발언은 더 뜻밖이였다.

그는 회의마감에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새 직기개발을 일단 중지하자는걸 제기합니다.》

창일은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가 공장의 실정을 깊이 파악하지 못한데로부터 적극적인 찬동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침묵쯤은 지켜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 예상을 뒤집어놓았던것이다.

협의회뒤에 당비서가 그를 찾아왔다.

《우리 지배인동무가 기분이 대단히 좋지 않았구만요.》

《뭐 그럴리야···》

《그 얼굴에 다 씌여있는데두요?》

창일은 자기의 표정을 만져보려는 사람처럼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당비서는 에두르지 않고 이야기했다.

《실패의 원인이 정밀도를 보장하지 못한데 있다지요?》

《예, 이자 회의때도 말했지만··· 확실합니다.》

《그러니 해결방도는 뭡니까?》

《방도요?》

창일은 말문이 막혔다.

《우선 데려왔던 기능공들부터 돌려보냅시다.》

당비서가 돌려보내자고 하는 사람들은 이전에 공장에서 일하다가 나이가 되여 집에 들어갔던 기능공들이였다. 이번에 새 직기를 만들면서 창일이 제일 애로를 느낀것이 기능공이 부족한것이였다.

오래동안 직기생산을 하지 않다보니 웬간한 직장장들까지도 직기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다. 온 시내를 훑어서 《천리마》직기를 만들던 옛 기능공 세 사람을 찾아냈다. 그들을 신주모시듯 공장에 데려다가 잔소리를 받아가며 만들어낸것이 첫 유연창대직기였다.

《한데 그들이 꽤 납득할가요?》

《그보다 지배인동무가 납득을 하는가가 더 중요하지요.》

《제가요?》

《지배인동무, 산모가 튼튼해야 충실한 후대를 볼수 있다는것은 제말이 아니라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공장의 기술장비수준은 어떠한가? 허약하지요. 지나친 물음인지 모르겠지만 장군님께서 왜 기계공업의 현대화를 공작기계공업으로부터 시작하셨겠습니까? 기계를 낳는 기계가 우선 좋아야 하기때문입니다. 순리지요. 그런데 지배인동문 공장의 기술장비수준이 60년대 수준에 머물러있다는것을 알면서도 그것으로 첨단을 빛어보자고 했지요. 나는 수리가 아니라 생산을, 그것도 유연창대직기를 만들겠다는 지배인동무의 끓는 의욕에는 쌍수를 들어 환영합니다. 그렇지만 무슨 일에서나 선후차가 있지 않겠습니까.》

문득 련하기계에 찾아가라던 춘호의 말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뭐라고 했던가?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련하에서 방직기계를 만드는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랬댔지.)

창일은 어쩔수 없이 련하기계에 찾아가야만 하는 필연을 감수하였다. 창일의 《기술고문》들은 공장당위원회에서 마련해준 송별식사까지 대접받고 과히 섭섭치들 않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후 공장에서는 현대화의 바람이 불었다.

창일은 우선 공장의 일부 설비들을 CNC설비로 개조할것을 결심하고 그 첫 대상으로 공구직장을 꼽았다. 그렇게 하는것이 응당할뿐아니라 대중의 열의를 계발시키는 견지에서도 좋을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공구직장을 현대화한다는 소문이 나자 공장안은 상반되는 의견들로 하여 삽시에 뒤숭숭해졌다.

다른 직장이라면 몰라도 공구직장만은 원상그대로 보존하는것이 원칙이라는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무시할수 없는 의견이였다.

공구직장현대화문제는 오랜 로동자, 기술자, 기능공들까지 참가한 협의회에서 취급하게 되였다. 회의는 참가자들에게 무제한 언권을 주었다. 공장의 목소리를 다 들어보자는 의도에서였다.

그렇다고 장판바닥에 물붓듯이 제 좋을데로 흘러가라고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이따금 론의가 허투루 번져질 때마다 창일이 나서서 시정해주었다. 론의는 점차 열기를 띠였다. 워낙 째지게 소리가 높은 전동기반장이 공구직장은 다치지 못한다고 야단을 하자 그 론거보다도 귀청이 아파 못 견디겠는듯 단조직장장이 핀잔했다.

《아, 거 누가 공구직장을 없애버리자고 했게 그 야단이요? 몸은 가만 놔두고 머리만 개조한단 말이요. 머리만!》

《머리만?》 전동기반장이 코웃음쳤다. 《그럼 당신 목을 뚝 잘라서 나하구 바꿔놔보오, 누가 그 몸을 보고 당신이라고 하나.》

《차, 거 목을 자른다 어쩐다 뚱딴지같은 소리는!》

《뚱딴지라구? 이거야말로 목에 관한 일이 아니고 뭐요? 공구직장은 우리 공장의 목이나 같단 말이요, 목!》

협의회는 종내 끝을 보지 못하였다.

회의가 끝난 후 공구직장장이 그를 찾아왔다.

《지배인동무, 좀 할말이 있는데요.》

《회의땐 고집스레 침묵을 지키더니, 그래 뭡니까?》

《여긴 좀 답답하구만요. 밖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새로 꾸려놓은 야외휴식터로 갔다.

《직판 물어봐도 될가요?》

《예, 물어보시오.》

《우리 설비들을 개조하는것 말입니다. 지배인동무 발깁니까?》

《그렇소, 한데 그건 왜 묻소?》

《지배인동무, 그래서는 안됩니다.》

《안되다니? 직장장동무까지 이러면 어떻게 하오?》

창일은 난감해졌다. 일단 공구직장장이 반대를 하면 판이 기운다고 할 정도로 공장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가 중요했던것이다.

더구나 그의 아버지는 장군님께서 공장에서 생산실습을 하시던 당시 직장 세포비서였고 지금은 아들인 그가 대를 이어서 영광의 일터를 지켜가고있었다.

《물론 나는 현대화 그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직장의 한대한대의 설비들이 어떤 설비들입니까. 이자 협의회때는 모두 생각이 뻔하면서도 말을 피합디다만 우리 직장 설비들을 현대화한다면··· 거기에 26호도 포함되는가요?》

《26호요?!》

창일은 무엇에 찔리우기라도 한것처럼 굳어졌다.

《그것 보십시오. 지배인동무도 대답을 못하지 않습니까. 이건 단순히 현대화문제가 아니지요. 공장의 전통과 관계되는 문제인데 심사숙고해야 하지 않을가요? 지배인동무, 저의 아버지가 운명직전에 남긴 말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로동을 가장 신성시하시는분이시다, 여기서 손에 기름을 묻히며 일하신 추억을 일생 간직하겠다고 하시였다, 언제인가는 우리 공장에 꼭 찾아오실거다라고 말했지요.

난 그날을 꿈에서도 그려보군 합니다. 장군님께서 찾아오시면 우리 공구직장부터 들려보실거라고 믿고있습니다. 그런데 낯익은 단 한대의 설비도 없는 일터를 돌아보신다면 얼마나 섭섭해하시겠습니까. 아무쪼록 장군님의 마음속에 소중히 찍혀있을 일터를 고스란히 지켜가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가요?》

창일은 머리를 싸쥐였다. 그리고 자기가 지나친 욕심을 내세운것이 아닌가고 돌이켜보았다. 하필이면 공구직장인가? 사람들의 말대로 그아닌 다른 직장을 얼마든지 내세울수 있지 않는가?···

《직장장동무, 좀 생각해보기요.》

그는 끝내 창일의 가슴을 헤집고야말았다.

《우리 공장에는 나뿐만아니라 부모들의 뒤를 이어 이날이때껏 기대를 지켜온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지요. 이런 말은 하지 말자던건데··· 지배인동무, 우린 다 알고있습니다. 지배인동무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고있단 말입니다. 내 진심으로 권고합니다. 설사 모든것이 달라진다 해도 우리에게는 달라지지 말아야 할것이 있지요.》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공장참관을 온 학생들이 공구직장쪽으로 렬을 맞춰 행진해가고있었다. 공장에 기적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그들은 26호선반을 보러오는것이다. 대렬에서 떨어져나온 한 소년이 쏜살같이 달려와 창일의 목을 부둥켜안았다.

《아버지!》

창일의 아들이였다.

《공장 참관왔어요. 우리 동무들이 아버지가 〈26호〉지배인이라는걸 알고는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몰라요. 저길 보라요.》

공구직장으로 렬맞춰 들어가던 애들이 멈춰서서 이쪽을 바라보고있었다. 녀선생의 모습도 보였다. 여느때 같으면 례의를 지켜 선생을 찾아가 만났을테지만 창일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곁에서는 공구직장장이 그들부자를 지켜보고있었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가보시오.》

그는 돌아가다가 창일의 아들에게 한마디 했다.

《참관을 잘하거라. 우리 공장은 아주 뜻깊은 곳이란다.》

그것은 마치 창일에게 하는 말 같았다.

《선생님이 기다리신다. 어서 가봐라.》

창일은 착잡한 심정으로 아들의 등을 떠밀었다.

촌에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는 꼭 기계를 배우라고 당부하시던 어머니··· 앞으로 공장의 훌륭한 기능공이 되기 바란다고 하시며 장군님께서 기념해주시였다는 그 모표···

하지만 어머니는 그 당부를 지켜드리지 못했다. 영예군인이였던 아버지를 따라 낯설은 고장에 새살림을 편 때로부터 어머니는 초물제품생산협동조합에서 왕골모자며 구름노전을 결었다.

(어머니가 이 일을 안다면 나를 지지했을가? 아니면 공구직장장을 지지했을가? 혹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있는 일터에 함부로 손을 대는것을 반대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그래, 나는 장군님께서 하신 당부를 지켜드리지 못한 옛 형삭공의 아들이다. 그런데 부모들의 뒤를 이어 공장을 지켜온 사람들이 묻고있다. 너는 어데 갔다가 불쑥 나타났는가? 그리고는 공장에 새겨진 우리들의 삶의 가치를 지워버리려고 하는가?···)

그날 밤 창일은 잠들수 없었다.

탁상등마저 꺼버린 그는 뒤척이고 뒤척이다가 전화기를 끌어당겼다. 그맘쯤이면 어머니가 직장경비실에 나와있군 하였다. 년로보장을 받은지 오랬지만 그렇게라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고있는 어머니였다. 송수화기를 들었다. 내려놓았다. 다시 들었다.

어머니의 정답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제 창일입니다.》

《이 밤중에 웬 전화냐? 어디서 전화를 거니?》

《집에서 합니다.》

《집?! 요즘은 일이 바빠 집에도 못 들어간다더니··· 응, 그래. 이젠 한숨 돌리게 된 모양이구나. 밥은 먹었니? 집에선 다 잘있구?》

《예, 다 잘있습니다. 밥도 많이 먹구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새 퍽 늙으신것 같구만요.》

《원, 자식두. 보지도 못하고 그런 말이냐?》

《목소릴 듣고 알지요. 다 알아요.》 어머니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보였다. 《어머니, 어머니가 다루던 기대가 생각납니까?》

《생각나잖구. 그걸 어떻게 잊겠냐.》

《어머니한테는 그게 자식같이 느껴지겠지요?》

창일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너··· 무슨 일이 있은게 아니냐?》

《아니요,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저 잠이 오지 않는구만요.》

《그러고야 몸이 견디냐? 내가 잠 잘 오는 노래를 불러줄가?》

《허허, 노래를요?》

《네가 어릴 때 잠자리에 들면 늘 불러주군 했댔지.》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있습니까?》

《그래 어미겠지.》

《예, 불러주세요. 어머니 ···》

어머니는 나직하고 갈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어머니의 따뜻한 숨결이 창일의 볼에 와닿는것 같았다.

《어머니, 우리 애들이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싶어합니다. 그만 일손도 놓았는데 평양에 올라와서 함께 살면 좋지 않겠습니까?》

《또 그 소리냐. 창일아, 너야 이 어미심정을 알지 않느냐. 난 갈수가 없구나. 여기서 평양을 바라보며 사는것만으로도 족하다.》

《어머니, 전 사실···》

목이 메여와 말이 나가지 않았다.

《됐다, 그만 눈을 붙이거라.》

전화가 끝난 뒤 창일은 어머니가 물려준 사연깊은 그 모표에 도두룩하게 남아있는 땜흔적을 매만지며 밤새도록 앉아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