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1 장 1

 

제 2 편

제 1 장

1

 

상석동골안에 늦은 해가 떠오를무렵에야 박송봉은 안흥시내에 들어섰다. 백운천다리를 건너 곧추 뻗은 도로를 따라가면서 살펴보느라니 몇해전까지 자연그대로 내버려두었던 강기슭비탈에도 까맣게 죽은 수수그루터기들이 널려있었다. 등뼈가 알른알른한 뉘집 염소가 길가집 울바자에 널어놓았던 시래기를 타래채 물고 달아나는 바람에 늙은이 한분이 뛰여나와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보짐을 이고 지나가던 녀인이 로인의 소리에 모르쇠를 못하겠던지 종주먹을 부르쥐고 염소를 좇아갔다. 하지만 인차 맥이 빠져 헐떡거렸다. 그러자 염소란 놈은 녀인을 골리기라도 하듯 저도 한참씩 멈춰서서 시래기를 뜯어먹다가 잡힐만 하면 또 달아나군 했다.

녀인은 끝내 따라가기를 단념하고 물러앉았다.

박송봉은 못 볼것을 본듯 고개를 떨구었다. 괜히 마음이 또 뒤숭숭해졌다. 그는 무릎우에 놓인 문건을 펼치고 다시 읽어보았다.

···××주재 우리 나라 무역대표부에서 보내온 통보에 의하면 지난 3월과 10월에 도착한 후라이스, 만능선반 등 기계설비 12대중 5대를 수요자들에게 팔았는데 시운전과정에 전동기가 타고 베아링이 깨지는 등 소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상대측에서는 나머지계약분의 질도 담보할수 없다고 하면서 계약취소를 요구해왔습니다. 기계공업성과 그 아래공장들에서는 제품들이 투박하고 소음이 많아 수출하기 곤난하다는 의견을 받고서도···

이에 김정일동지께서는 문건 6페지에 《총리, 연형묵, 박송봉 참고!》라고 친필을 써보내주시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여러 기계공장들을 돌아보는 길이였다.

얼마 안 가서 안흥공작기계공장이 나졌다.

공장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정문에 물어보니 모두 회관에 모여 회의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된바하고는 조용히 공장을 돌아보리라고 생각한 박송봉은 차를 멀찍이 세워두고 너렁청한 구내에 걸어서 들어섰다. 정문을 등지고 오른쪽에는 단조와 주물직장이, 왼쪽에는 가공직장들이 있었다. 더 생각해볼것없이 주물쪽으로 접어들었다. 로련한 실무가인 그는 공장의 맥을 어디서부터 짚어보아야 하는가를 알고있었다.

생산의 첫 공정인 주물이 멎어서면 나머지는 보나마나였다.

주물 1직장은 좀 나았다. 벽체를 훌 략하고 농촌탈곡장식으로 천정만 얹어놓은 2직장에 가보니 어느적에 쓰던 쇠물남비가 녹을 빨갛게 뒤집어쓰고 나자빠져있는데 까맣게 탄 점토와 활석가루들이 먼지를 풀풀 날리며 기여다니고있었다. 주물을 현대화한다고 헐어놓았다가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이 모양이 된것이였다.

어디선가 망치소리가 들려왔다.

박송봉은 소리가 나는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목형반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일자로 지은 단층건물에서 채양이 긴 작업모자를 비스듬히 눌러쓴 사나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고있었다. 가슴이 후둑 뛰였다. 목형에 일거리가 있다는것은 공장이 살아숨쉰다는것을 의미하기때문이였다. 다가가던 박송봉은 뜻밖의 광경에 놀라 멈춰섰다. 그사람은 관을 짜고있었다!···

《수고합니다.》

돌아본 사람은 예상외로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였다.

《목형에서 일하오?》

《아닙니다.》 하고는 또 뚝딱뚝딱 못질을 했다. 박송봉이 자기소개를 해서야 그는 놀라와하면서 일손을 거두려고 하였다. 그러는것을 붙들어세우고 철판을 잘라 만든 못을 섬겨주었다.

《사망한 사람이 누구요?》

《우리 직장 프레나공이였는데··· 노래 잘하고 인심이 후한 아바이였지요. 어제 저녁 퇴근길에서 쓰러졌는데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그만···》 그러다가 미처 자기소개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청년은 슬그머니 모자를 벗어들었다. 《저는 4가공에서 부직장장을 하는데 권춘호라고 합니다.》

《권춘호?!》

어데선가 들은 이름이였다.

지난해에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부직장장으로 배치되였다는 말까지 듣고서야 박송봉은 (아, 봉화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하실 때 장군님께서 물어보시던 그 대학생!) 하고 기억을 되살려냈다. 련하기계에 받아달라고 편지까지 썼던 그가 어떻게 안흥에 내려왔는지 알수 없었다.

박송봉은 물어볼가 하다가 그만 말을 돌렸다.

《이자 오면서 들으니 무슨 회의가 있다던데?》

《예, 그 회의에서 난 제욉니다.》

《그건 어째서?》

《저의 아버지를 비판하는 회의니까요. 또 직장에 이런 불상사도 있구 해서···》 하면서 그는 작업대우에 망치자루를 딱딱 그루박았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가십시다.》라고 했다.

회관으로 가자는것이였다. 공장구내는 박송봉도 그에 못지 않게 아는바였지만 말없이 뒤를 좇아갔다. 회관복도에 들어서자 벌써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속에서도 누군가가 회의장규률을 바로잡느라고 청을 돋구고있었다.

《자자, 떠들지 말고! 현장동무들의 말부터 들어보기요.》

그와는 대조되게 쟁쟁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지배인동지는 공부를 안합니다. 주먹구구지요. 자꾸 돼지랑 싣고 뭘 얻으러다니지 말구 그걸 다 우리 기술자들한테 먹여보시지요.》 그러자 객석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울려왔다. 《했더라면 벌써 자동인물대나 볼나사, 직선안내베아링 같은게 막 쏟아져나왔을겁니다. 이번 용접사건도 그렇지요. 지배인동진 말하기를 다른 공장들에서도 다 그런다고 하는데···》

《지금 말하는 동무는 만천이라고 우리 공장 창의고안명수인데 비판을 받는쪽이 저의 아버집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아버지는 공장의 기본생산지표를 수자조종공작기계가 아니라 탁상형볼반으로 바꾸어놓았는데 얼마전에는 또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설비들을 보존한다고 하면서 현장출입구들을 용접으로 아주 봉인해치우려고 했지요. 로동자들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박송봉은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젊은 부직장장을 과연 그 아버지의 아들이 옳을가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십분 가늠이 갔다. 그 비슷한 일들이 문건상으로나 혹은 소문으로 그에게도 종종 와닿군 했던것이다.

이번에는 좀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뭐요? 로동자지요. 일하는 사람이란 말이우다. 한데 지배인동무는 우리한테서 무얼 빼앗으려고 했소? 바로 그 로동의 권리를 빼앗으려고 했지요. 어디 그 연탁에다 손가락으로라도 좀 써보시우, 〈로동자〉 하구. 거기서 〈로동〉이라는 글자를 떼던지고나면 무엇이 남소? 그저 몸뚱이라는것밖에 뭐가 더 남는가 말이요? 이런 때 지배인이라면 무슨 발버둥을 쳐서라도 공장을 살리겠다고 나서야지 엄동에 개구리 입봉하듯 그게 뭐요?》

잠시후 박송봉은 춘호와 함께 회관을 나왔다. 마침 회관뒤에 넓은 운동장이 있어 응원석으로 지어놓은 계단에 가앉았다.

《동무 생각엔 공장을 살릴 방도가 뭔것 같소?》

박송봉의 물음에 권춘호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과학을 중시해야지요, 기술자들을 우대하고.》

《음, 한데 동무는 아버지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것 같구만. 지어 그 세대를 허무적으로 대하는것 같기도 하고.》

박송봉은 성미 급한 젊은이의 신경을 눅잦혀주려는듯 나무꼬챙이를 하나 주어들고 무의식적인 도형을 그려가며 말하였다.

《저기로 한 30분쯤 걸어올라가면···》

춘호가 상석동쪽을 가리켜보이며 말을 뗐다.

《저의 아버지가 지배인을 하는 분공장이 있는데 반죽음이 됐습니다. 당에서 얼마만 한 품을 들여 건설해준 공장이게 그 꼴을 만들어놓는단 말입니까. 기술자소리가 나왔으니 말이지 우리 설계사업소에 한유준이라고 기술자가 한분 있는데···》

《한유준이라면, 그 5면반을 설계한 동무 말이요?》

《예, 아시누만요.》 하고 춘호는 계속했다.

《그가 자동인물대와 직선안내베아링을 국산화하려고 애를 쓰다가 끝내 쓰러졌는데 공장에선 아무 딱실한 대책도 없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됐소?》

이때 회의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남의 눈에 띄우는것이 싫어서 그들도 인차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정문에 가서 단속일지를 보면 알수 있을겝니다.》

(단속일지?!)

그 고정한 기술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단속일지를 보라고 하는지 이상했지만 박송봉은 가보면 알겠지 하고 돌아섰다. 이때 후문쪽에서 한 젊은 청년이 열서너살쯤 나보이는 사내애의 덜미를 잡아끌고 나타났다. 애리애리해보이는 사내아이는 뼈대굵은 로동자에게 덜미를 꽉 잡힌채 소리도 내지 못하고 끌려오고있었다.

《동무, 무슨 일이요?》 박송봉이 그들을 멈춰세웠다.

《당위원회에 갑니다.》 말시키지 말라는 투였다.

그 찰나 손이 좀 풀렸는지 끌려가던 애가 소리를 질렀다.

《이걸 놓으라요!》

《이자식, 죽지 않겠으면 가자!》

박송봉은 더이상 점잖을수가 없었다. 그는 소년의 덜미를 조이고있는 젊은 로동자의 손을 움켜잡았다.

《동무, 이게 무슨짓이요? 당장 놓소!》

《야, 승철이! 놓으란 말 못 들었어?》

뒤따라온 춘호의 목소리가 더 효력을 나타냈다.

사납게 날치던 청년이 그 말에는 꼼짝 못하고 손을 내리웠다.

《이게 무슨 행동이요?》 하고 박송봉이 따져물었다.

《저 앤 내 동생입니다.》

박송봉은 다시한번 놀랐다. 그는 청년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생긴것을 보면 영 완력을 부릴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돼서 제 동생에게 그런 험한짓을 했는지 알수 없었다.

《저녀석이 어디서 들었는지 공장후방부에서 밀가루를 실어왔다는 말을 듣고는 그걸 받아오겠다고 하면서 글쎄···》

《난 먹지 않고도 살겠지만 엄마가 아파한단 말이야!》

어린 녀석이 또 고아댔다.

《입 다물지 못하겠어?》

《왜 다물어? 왜? 왜?》

주먹이 날아들어갔다. 소년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였다.

《야! 정신나갔어?》 춘호가 청년을 그러잡았다.

《부직장장동지! 저자식이 아주 반동이 됐어요! 저걸 보라요. 밀가루를 타먹겠다구 집에서 글쎄 무얼 내왔나 보란 말입니다. 앓는 어머니가 아시면··· 어머니가 이 일을 아시면···》

청년은 오열을 삼키며 어데론가 달려갔다. 소년도 쿨쩍거리기 시작했다. 춘호가 그 애의 품속에서 흰천으로 정성스레 감싸안은것을 받아냈다. 거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명의로 된 표창장이 들어있었다. 거기에 사회주의건설에서 로력적위훈을 세운 박소임동지를 표창한다고 씌여져있었다.

《저 애들 7남매의 어머닙니다. 우리 공장 생필에서 재봉공으로 일하던 처녀시절에 수령님을 만나뵈온 로력혁신자였습니다. 이젠 집에 들어간지가 몇년 잘되였는데···》

박송봉은 승철이라는 로동자청년이 사라진쪽을 이윽히 지켜보다가 소년에게로 돌아섰다. 애녀석이 풋밤송이같은 머리칼을 그의 가슴노리에 마구 비벼대며 그냥 형님을 찾았다.

《녀석, 매를 맞고도 형님을 찾아?》

여물지 못한 등뼈를 어루만지는 춘호의 손길이 떨렸다.

박송봉은 춘호에게 뒤일을 부탁하고 공장정문으로 찾아갔다. 모자채양밑에 고수머리를 멋스럽게 내놓은 경비원은 그가 단속일지를 요구하자 눈이 뎅그래지면서 뭔가 좀 꺼려하였다. 사무용지를 절반씩 접어서 만든 단속일지를 번져가던 박송봉은 의아해졌다. 설계사업소 한유준의 《위법행위》에 대하여 밝힌 비고란에는 판에 박은듯 꼭같이 《국수》라고 적혀있었다.

《이게 뭐요?》

젊은 경비원이 이마를 쓱쓱 긁었다.

《뭐 다른게 아닙니다. 식량공급은 못하지, 일은 해야겠지 하니까 공장에서 생각다못해 부업지에서 난 강냉이로 기술자, 기능공들에게만 점심 한끼 국수를 보장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먹지는 않고 출근할 때 차고온 빈 밥곽에다 고스란히 담아가군 했습니다. 부모들이 생각나서··· 또 아이들이랑 생각나서··· 그래 얼리기도 하구 욕도 해보았지만 어디 말을 듣습니까. 나중엔 우리 정문에 이런 별 단속일지가 다 생겨났습니다. 에에···》

고수머리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유준설계가도 부모를 모시고있소?》

《아닙니다. 아주머니가 중병을 앓고있었는데 전번 여름에 복골을 넘기지 못하고 끝내···》

《그럼 앓고있다는 그를 누가 돌보오?》

《아마 그 집 딸이···》

권춘호가 왜서 기술자소리를 곱씹어 꺼냈는지 리해가 갔다.

박송봉은 노기가 치밀어 당장 공장당위원회로 찾아갔다. 모두 현장에 나가고 사무실에는 부원이 하나 남아서 방금 진행된 회의문건을 정리하고있었다. 박송봉은 앉지도 않고 따져물었다.

《한유준설계가가 앓고있다는것을 알고있소?》

《예,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동무들은 어떤 대책을 세웠소?》

《대책이라는게 그··· 사실 지금 공장에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래도 기술자이고 해서 감자와 밀가루를 좀···》

《동무!》 박송봉은 참지 못하고 책상을 쳤다. 《감자나 실어다주면 단가! 그거면 체면은 세웠다, 이거요? 공장을 살리는건 저런 문서장이 아니라 기술자들이요. 우린 그들을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한단 말이요. 왜? 만나면 꾸벅꾸벅 인사를 하니까 그들이 눈아래로 보이오? 그러니 동무들에게 일군자격이 있는가, 있소?》

박송봉은 시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원장을 찾아가지고 급한 환자가 생겨 그러니 의사들을 공장에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얼마 안 있어 공장정문에 왕진가방을 바구니에 세워넣은 자전거 두대가 나타났다. 기술부원장과 내과과장이라고 하였다. 한유준의 집은 상석동에서도 막바지에 자리잡고있었는데 수수그루터기를 뚜져다가 구들을 덥히고있던 딸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집에 들어가보니 한유준은 이불속에서 정신없이 자고있었다. 기술부원장은 맥도 짚어보지 않고 서있기만 했다.

《진찰을 할것도 없습니다. 이런 환자가 처음도 아니니까요. 이 사람은 지금 자고있는것이 아니라 심한 허탈상태에 빠져있습니다. 뇌혈관계통에도 이상이 생긴것 같은데 우선은 영양보충부터 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합니다.》

박송봉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한유준의 집에는 이상할 정도로 시계가 많았다. 각진것, 둥그런것, 세워놓은것, 걸어놓은것, 전자시계, 구식태엽시계가 저마끔 찰칵대고 똑딱거리는 소리가 긴 지속음처럼 혼탁되면서 운명의 마지막길을 바래우는 엄청나게 큰 고동소리처럼 들려왔다.

《선생, 이 사람은 죽어선 안될 사람이요. 장군님께서 아시는 기술자란 말이요. 내 말을 듣소? 사람의 생명이 꺼져가고있는데 왜 그렇게 보고만 있소? 부원장선생!》

그것은 박송봉이 자신에게 묻는 소리이기도 하였다.

한 인간의 생명만이 아닌 숨져가는 모든것을 안타깝게 쥐여흔드는 소리였다. 목이 꽉 메였다. 랭각수가 꽝꽝 얼어붙은 기대우에 박막을 쳐놓고 선반을 돌리던 기계공장들의 참혹한 광경이 눈앞에 되살아나서였다. 형편은 어디나 비슷했지만 특히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의 실태는 말이 아니였다. 집을 나가 떠돌아다니는 종업원자녀들을 찾아오느라 아흐렌가 열흘만에야 공장에 돌아왔다는 그곳 당비서를 만나지 못해 박송봉은 한나절동안 헤매고다녔다. 날이 어슬어슬해져서야 사람들이 일명 공작기계아빠트라고 부르는 다층살림집현관밑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당비서가 행처도 밝히지 않고 이게 뭐요?》

그는 퀭해진 눈을 내리깔고 휘청거리며 일어섰는데 가뜩이나 큰 키에 몸까지 반쪽이 돼서 제때에 붙잡아주지 않으면 넘어질것 같았다. 무엇이 절그렁했다. 동선으로 꿰여맨 열쇠뭉치였다.

《빈 집들이 계속 생겨나고있습니다.》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빈 집! 그 말이 박송봉의 가슴에 콱 박혀왔다. 언제든 집주인들이 돌아오면 호별로 꼬리표를 붙여놓은 열쇠들을 하나씩 벗겨주리라던 기대도 사라져가고있는듯 그의 얼굴빛은 컴컴했다.

쇠뭉치속에 나이론실을 길게 꼬아 끈을 해단 복숭아열쇠가 유별나게 눈길을 끌었다. 철부지 어린 자식이 집열쇠를 잃어버릴가봐 늘 목에 걸고다니도록 끈을 만들어주었을 다심한 녀인의 손길이 어려와 박송봉은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석달전에 순직한 주물반장동무네 집열쇱니다. 아홉살난 오누이가 있었는데 그 애들 어머니는 며칠전에 저 시중쪽에 니탄을 캐러갔다가 의식을 잃고 실려왔습니다. 내게 이 열쇠를 주면서 친정에 맡겨놓은 애들이 돌아오거든 문을 열어주라고··· 그랬는데는···》

억대우같은 사람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였다.

공장까지 20분도 안 걸릴 출근길을 한시간씩 걸어나온 로동자들이 먹을것이 아니라 일감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데 선반에 물려줄 자재도 원료도 동력도 모든것이 부족했다. 사회주의공업국가의 장엄한 힘을 다져가던 공장들이 하나, 둘 멎어가는것만도 가슴이 아픈데 그것을 지키고 살려내야 할 사람들까지 이렇게 누워있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한유준은 차겁고 흰 한덩이 대리석처럼 누워있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오길래 돌아보니 아까 당위원회에서 만났던 부원이며 또 누구며 하는 사람들이 줄레줄레 마당에 들어서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