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제 3 장 6

 

제 1 편

제 3 장

6

 

쇠를 다루는 사람들은 추억도 쇠붙이와 련관시켜 하게 된다.

최윤동이 그러했다. 달포전 늦장마를 알리는 매지구름이 북부내륙의 첩첩한 산발에 갇히워 비꽃을 떨구기 시작했을 때 긴급발진한 직승기에 실려 이곳 교외의 병원으로 후송된 그가 만시름을 놓고 누워있는 침대도 역시 쇠붙이였다.

쇠! 그 한끝을 더듬어쥐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최윤동은 조용히 눈을 감고 지나온 한생을 더듬어보았다. 한꺼번에 돌아보기에는 너무 긴것 같았다. 그래서 한 십년씩 잘라보았다. 내가 언제 결혼을 했던가, 또 내가 언제부터 지배인을 했던가 하면 그것이 어느 기계를 만들던 때였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참, 내가 입당을 할 때 두사람이 손을 들지 않았댔지.

그때 나를 지지한 사람들보다 반대한 그들의 말을 더 깊이 새겼더라면 지금에 와서 후회되는 일들이 절반쯤은 줄어들었을수도 있지 않았을가? 일이야 40대에 좀 했지, 그다음은 땜때기였다.

그러고보면 이 최윤동이 살기는 살았는데 그중에 묶어볼만 한 십년도 없구나. 다행 늙마에 철이 좀 드는가 했더니 이제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갔다.

그가 병원으로 후송된 후 협동품을 실은 자동차는 장마로 불어난 청천강지류에 발목이 잡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최윤동을 싣고왔던 직승기를 재차 띄우시여 협동품들을 봉화기계공장까지 무사히 날라갈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 그때 비구름 덮인 청천강협곡에서는 직승기를 착륙시키느라 아슬아슬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젖은 나무에 기름을 들붓다못해 옷이고 신발이고 몽땅 태운 온덕수와 운전사는 주변 농촌사람들이 가져다준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쿨럭쿨럭 기침까지 하며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김경조가 면회와서 그 소식을 전해주면서 《장군님께서 지배인동무의 육체도 넋도 다 구원해주셨구려.》라고 하였다.

그후 최윤동은 병원측에서 권고하는 외국치료를 단마디로 거절하였다. 숨지는 순간까지 그는 이 땅의 냄새를 맡고싶었다. 이 땅에서 캐낸 우리의 쇠돌을 녹여만든 이 든든한 침대를 꽉 부여잡고 마지막까지 쇠붙이를 만지다가 눈을 감고싶었다.

(그가 또 올 때가 되였는데···)

김경조며 리정, 공장사람들이 그리웠다.

최윤동은 두두룩하게 덕을 잡아놓은 베개에 기대여 창밖을 내다보았다. 할일이 없는듯 제 이파리들을 뜯어 흔들흔들 내던지며 시간을 보내는 늙은 느티나무가 눈에 띄였다.

《지배인동지, 공장에서 면회왔습니다.》

갓 딴 복숭아처럼 솜털이 뽀얀 간호원이 문을 방싯 열고 알려주었다. 엊그제 찾아왔던 김경조가 오늘 남포쪽에서 마지막부분품을 접수해오면 총조립시험을 할수 있다고 하기에 그럼 돌아갈 때 그거라도 구경할수 있게 들려달라고 부탁했던것이다.

그런데 병원에는 리정이 혼자 나타났다.

김경조는 공장에서 총조립시험준비를 한다는것이였다.

최윤동은 면회구럭보다도 우선 침대머리에 갖가지 부분품들을 쭉 벌려놓고 이것저것 들여다보고 만져보며 싱글벙글하였다.

《우리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당신이 하던 말이 생각나는구만. 자, 제 손으로 〈뇌수〉를 만든다고 생각해보라. 허허···》

《예, 내가 그랬댔지요. 좀 드십시오.》

하얗게 껍질을 벗긴 사과를 쥐여주며 리정이 말했다.

《참, 그전에 공장에 내려왔던 검사가 생각납니까?》

《검사? 그럼, 생각나지 않구.》

《그가 중학교를 졸업한 딸을 공장에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딸을? 딸은 왜?》

《아버지의 편지를 들고 혼자 공장까지 찾아왔더라니까요. 아무 일을 시켜도 좋으니 공장에서 맡아 키워달라고 편지에 그렇게 썼다는가 봅니다. 아버지도 그렇지만 어머니는 어느 출판사에서 기자로 일한다는데 외동딸을 로동현장에 내보낸다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아무튼 생각되는바가 많았습니다.》

《그래, 우리 주위에는 다 좋은 사람들이지.》

최윤동은 부분품들을 하나하나 다시 만져보다가 《오늘 정말 하겠소?》라고 물었다. 총조립시험을 묻는것이였다.

《나도 갈가?》

《예에?!》 리정은 놀랐다.

《당비서가 그 말은 안합데?》

《뭘 말입니까?》

《내가 요구하면 데려오라구. 분명 그렇게 약속했는데?》

《그보다도 병원에서 승인을 안할겁니다.》

리정은 미타한 소리를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걱정말라구. 차를 가져왔겠지?》

《예, 지배인동지의 차로 왔습니다.》

그러자 창밖을 흘끔 내다본 최윤동이 아이처럼 중얼거렸다.

《야, 내 차를 타보고싶구나!》

그 소리가 일을 더 하고싶구나 하는 소리처럼 들려와 리정은 차마 거절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최윤동은 소풍도 할겸 손님을 바래준다고 하고는 환자복차림으로 내뺐다. 차에서 최윤동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숨차하면서도 그냥 통쾌하게 웃어댔다.

그리고는 오늘의 도망이 자기의 일생에서 가장 성공한 작전이라고 우스개를 피워댔다.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리정으로서도 병원에서 데려내오기를 잘했다는 위안이 들었다.

차는 곧장 준공검사를 앞둔 련하기계청사앞에 멎어섰다.

거기서는 련하기계 연구사들이 물걸레를 쥐고 비물에 얼럭이 간 창문을 닦고있었다. 이때 행정청사쪽에서 김경조가 당위원회사람들을 대동하고 달려왔다. 그러니 연구사들과 당위원회사람들이 판가름을 하듯 떡 마주서게 되였다.

김경조가 물바께쯔를 탕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뭘 멍청해있소? 창문은 우리가 닦을테니 동무넨 가서 연구사업을 하란 말이요. 시간이 금같다구 말만 하지 말구! 어서!》

연구사들은 돌아섰다. 솔선 두팔을 걷어붙인 김경조가 너덧개의 창문을 도맡아 걸레질을 하고있었다. 이채로운 풍경이였다.

《다 닦은 사람들은 나한테 검열을 맞구야 돌아가오!》 하고 김경조가 좌우를 향해 거퍼 소리쳤다. 그때 최윤동의 승용차가 경적소리를 울리였다. 최윤동은 그 소리와 함께 차에서 내려섰다.

김경조가 물걸레를 집어던지며 달려왔다.

《지배인동무! 이게 웬 일이요?》

《내가 뭐 못 올데를 왔나, 꽥꽥거리면서···》

최윤동은 앓는 사람같지 않게 벙글거리며 새 청사주변을 제발로 돌았다. 김경조는 아무래도 미타하여 즉시 공장병원 원장을 불러다가 이제부터 한순간도 지배인곁을 떠나지 말라고 단단히 오금을 박았다. 총조립시험은 그날 저녁 조립직장에서 있었다.

그전에 이미 한차례의 예비시험이 있었다.

그때는 가공직장에서 카프링나사를 0.1미리메터정도 내다깎는 바람에 무감도구간이 생겨나 볼나사의 역회전운동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시험적으로 따낸 원형본테두리에 미세한 흠집들이 생겨났다. 누구나 속이 덜컥했었다. 1미크로메터정도의 분해능을 가진 기계에서 그러한 오차는 거의 치명적인것이였기때문이였다. 기계장치냐, 조종계통이냐 론의가 벌어졌는데 리정이 균일하게 나있는 흠집을 분석하고 2시간만에 원인을 해명했었다.

최윤동은 누군가 놓아주는 역시 쇠붙이로 만든 의자에 무거운 몸을 실었다. 이 력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듯 최수광은 사진기를 들고 나타났다. 리정이 최윤동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시작할가요?》

최윤동은 대답대신 리정의 손을 꽉 잡았다가 놓아주었다.

《시동!》 하고 웨치는 리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최윤동은 벌떡 일어서려고 하였다. 오른쪽옆구리가 뜨끔하더니 누군가 손을 밀어넣고 마구 쑤셔대는것 같은 동통이 몸에 뻗쳐왔다. 그는 터져나오는 신음소리를 가까스로 씹어삼켰다.

온덕수가 전원을 투입하고 조종체계를 가동시켰다.

가공프로그람이 현시되고 출력단에서 보내오는 임플스신호에 따라 사보전동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랭각수가 투입되고 안내로라를 따라 반짝거리는 동선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소재와 맞닿자 눈부신 불꽃방전을 일으키면서 형타를 따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최윤동의 눈앞이 번쩍했다.

사진을 찍는가?··· 다시한번 번쩍했다.

그 백광은 걷히지 않고 점차 빨갛게 변해갔다. 최윤동은 눈앞을 가리운 그 막을 걷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붉은색은 점차 피빛으로, 캄캄한 암흑으로 변해갔다.

그런 속에 누군가 《성공이다!》 하고 웨치는 소리를 들었다.

(성공이란 말이지? 성공이다, 성공!···)

일생토록 기다려온듯 한 그 말을 입속으로 거듭 외워보며 최윤동은 허리를 가로지른 의자등받이를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쇠로구나, 쇠!··· 쇠!··· 그 선뜩한 감각을 최후로 느끼며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성공의 희열에 넘쳐서 껴안고 돌아가던 사람들이 최윤동을 생각한것은 얼마후였다. 입귀에 잔주름이 가득 잡히는 인상적인 웃음이 석고빛으로 굳어진 최윤동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고통의 흔적도 찾아볼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