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제 3 장 5

 

제 1 편

제 3 장

5

 

수령님께서는 회전식으로 된 팔걸이의자에 앉으시여 당 및 경제부문일군협의회를 지도하고계시였다. 원래는 무역부문 일군들만으로 협의회를 조직하실 생각이였으나 나라의 경제형편이 전반적으로 여의치 않아 회의규모를 확대하신것이였다.

마주하신 첫줄에 김정일동지께서 앉아계시였다.

정무원총리 연형묵이 앉은 자리에서부터 부총리들을 서넛 건너 박송봉이 병풍식으로 접어쥔 종이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앉아있었다. 거기에 적힌 깨알같은 부호와 수자들은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은 절대로 읽지 못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주의시장에 가서 장을 봐오군 했소. 아는 낯에 외상을 주고받기도 했소. 지금은 그 시장이 망해버렸소. 이렇게 되니까 벌써부터 오금이 저려하는 사람들이 있는것 같은데 그런 얄팍한 심장을 가지고서야 어떻게 혁명을 하겠소?》

수령님께서는 한손을 흔들며 말씀하시였다.

《화를 복으로 만들어야 하오. 달라진 환경에 맞게 경제관리, 무역방식, 이거 다 개선하고 오히려 이때다 하고 붉은기를 날리면서 자본주의시장으로 진출해야 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회의에 안시학도 참가시켜야 할걸 그러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하시였다. 얼마전 기계공업부장으로부터 안흥공작기계에 내려간 안시학이 안착되여 생활을 잘하고있을뿐아니라 젊은 기대공청년과 공동으로 창의고안까지 내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당장이라도 그를 불러올려 손을 잡아보고싶으시였으나 생각하시는바가 있어 마음을 고쳐먹으시였다.

연형묵이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어났다.

《내가 정무원에서 올려보낸 위원회, 부들의 수출지표를 다시 따져보았는데 아직 멀었소. 마그네샤크링카는 왜 그냥 원료대로 퍼넘기고있소? 국제시장의 내화벽돌가격을 알고있습니까?》

《예, 현재 마그네샤크링카는 톤당 60딸라정도이고 내화벽돌인 경우에는 그 가격이 4배나 됩니다. 그런데···》

《프레스가 없다는거겠지.》 하고 수령님께서 앞지르시였다.

《1만톤프레스도 만들어낸 우리가 내화벽돌을 찍어낼 프레스가 없어 그런다는게 말이 되오? 지금 공업관리에서 결함이 1차, 2차가공품생을 앞세우지 못하고있는거요. 밖에서는 밑지는 장사를 계속하고 안에서는 원료, 자재를 계약에 따라 공급하는것이 아니라 정무원이 가위를 들고 째주는 놀음을 하고있거던.

내가 수상을 할 때는 내각에서 원료, 자재를 분배하는 놀음같은것은 하지 않았소. 내각에서 경제문제를 토의결정하면 국가계획위원회가 그것을 계획화하고 그에 따라 관리국과 공장, 기업소들간에 계약이 맺어졌소. 그때는 1차, 2차가공품들이 여유있게 생산되였기때문에 원료, 자재가 딸려 지장을 받는 일이 없었소.》

(옳은 말씀이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첩에 감탄부호를 큼직하게 쳐놓으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경제관리사업이 제일 잘된 때가 바로 수령님께서 내각수상으로 계시던 때였다.

그때보다 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시장변화로 부족되는 원료, 자재를 마음대로 끌어들일수 없게 된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일군들이 마음먹고 달라붙기탓이라고 생각되시였다.

《다음, 전기문제요. 내가 요즘 매일 큰 공장들의 전력보장정형을 보고받고있는데 주파수가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주요전력계통들에서까지 정전이 된다고 하오. 그래서 공장, 기업소들이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하고있지만 누구 하나 똑똑한 대책안을 세워가지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수령님께서 회의장 어딘가를 눈더듬하시였다.

《여기 건설담당 부총리도 왔겠는데 동무넨 위원발전소 하나 세워놓고 만세를 부르는것 같소. 금야강발전소는 왜 함남도에만 떡 밀어놓고 관심을 돌리지 않소? 그 발전소는 내가 태천발전소건설을 제기할 때 벌써 강조한 대상인데 몇해째 길닦기요, 창고건설이요. 허드레일만 펴놓고 시간을 질질 끌고있지 않는가.》

건설담당 부총리가 일어나 수첩을 뒤적거리자 수령님께서는 《그게 할수 있다는 수자요, 없다는 수자요?》 하고 물으시였다.

그는 그만 수첩을 접고 아무 대답도 올리지 못하였다.

《혁명성이 없소, 혁명성이! 앞으로 수력과 화력발전능력을 년차별로 몇십만키로와트씩 늘이기 위한 투쟁을 단단히 마음먹고 벌려야겠소. 그러자면 대안중기계에서 210톤보이라를 해마다 열둬대씩은 생산해내야 하오. 문젠 고압관인데··· 그것도 헌바지 깁듯 하지 말고 성강에다가 생산기지를 따로 꾸리는것이 좋겠소.》

다음은 기계공업부장이 부르심을 받고 일어났다.

《기계공업부에서는 요즘 무슨 건설이요 하는데만 정신을 팔면서 협동생산조직은 다 집어치운 모양인데 대형공작기계들을 생산해낼데 대한 과업을 룡성기계에만 떨구다보니 다른 단위들에 있는 특수기계설비들은 놀고있지 않나. 내가 초보적으로 계산해본데 의하더라도···》 수령님께서는 문건을 몇장 번지시였다. 《지금 전국적으로 분산된 특수기계설비들중 40프로밖에 가동하지 않고있소. 언제까지 대책을 세울수 있겠소?》

기계공업부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씀올렸다.

《수령님, 어떻게 하나 이달중으로···》

《부장동무!》 수령님께서는 엄하게 나무라시였다. 《왜 되지도 않을 말을 망탕 하오? 시일이 좀 걸리더라도 어느 공장에는 어떤 설비가 있고 무엇이 부족한가를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하오. 올려바치는 보고서나 뒤적이지 말고 내려가서 타산해야 하오.》

《알겠습니다, 수령님. 다음달까지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 수령님께서는 연단에 놓인 마이크를 조금 앞으로 밀어놓으시며 《더 이야기할 동무가 없습니까?》 하고 언권을 참가자들에게 넘기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일어서시였다.

《생산조직과 지휘를 맡은 일군들이 경제관리를 주먹구구식으로 하는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일군들은 제품을 하나 생산하는데 로력과 전기가 얼마 소비되고 원가는 얼마나 드는지조차 잘 모르고있습니다. 열성이나 완력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모인 동무들이 알고있기엔 박사인 지배인이 몇명 있습니까? 박사인 당비서는 얼마나 됩니까?》

좌중이 술렁거렸다.

그이께서는 《흔치 않을것입니다.》라고 자답하시며 기계공장들의 실태를 례들어 말씀하시였다

《지난 시기에는 공작기계를 몇대 생산하여 종업원당 생산액을 얼마까지 높이라는 식으로 전망계획을 주었댔는데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오늘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공장, 기업소들에 생산계획을 줄 때 리윤과제도 같이 주는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옳은 생각이요. 그렇게 하면 기계공장들에서 많은 자재를 들여 값이 눅은 공작기계를 1 000대 만들기보다 기술을 발전시켜 수자식공작기계 같은것을 100대 만들자고 할게요.》

수령님께서는 그 문제는 앞으로 실무가들과 더 토론해보자고 하시면서 회의끝에 여담을 하나 들려주겠다고 하시였다. 이렇게 구수한 이야기로 회의를 마치시는 경우가 드문히 있군 했다.

《내가 일생에 마음먹고 외상을 크게 놓은적이 있었소. 그게 아마 우리 공화국이 창건된 후였으니까 1948년 가을쯤일거요. 자, 나라는 세워놓고 자리도 하나씩 맡겨주었는데 일을 시키자니 차가 있어야 할게 아니요. 국고는 텅 비고 내 수중에는 고작 해방전에 도지사들이 타고다니댔다는 중고차가 둬대 있었을뿐이였소.》

수령님께서 목을 추기시는 동안 김정일동지께서는 재빨리 종이장우에 글을 몇자 적어 연형묵의 앞으로 밀어보내시였다.

《끝난 다음 만납시다, 송봉동무도 함께.》

연형묵은 정중히 눈빛으로 대답했다.

《생각다못해 김책동무를 불렀소. 이것보오, 상이면 나라의 대신들인데 그들더러 걸어다니면서 일을 보라고 할수야 없지 않소, 내가 외국에서 선물받은 차가 두대 있으니 우선은 부수상들만이라도 그 차를 타고다니게 합시다, 그다음은 어쨌으면 좋겠소. 했더니 지금 홍콩에서 영국제승용차를 팔고있는데 그걸 외상해옵시다 하지 않겠소. 외상엔 소도 잡아먹는다고 했지만 대답이 쉽게 나가더라구. 자그만치 차가 50대라니 그럴만도 했지. 그게 아마 자본주의와의 첫 〈대외무역〉이라 해야 할것 같소. 허허···》

수령님께서 웃으시자 장내에도 소음이 일었다.

《이렇게 난방장치도 없는 승용차나마 들여다가 우리 상들에게 나누어주던 날 내가 얼마나 기뻤겠소. 후에 김책은 이렇게저렇게 애써서 차값을 약속한 날자에 물어주었소. 그가 뭐 빨찌산에서 무역을 배워가지고온건 아니였소. 자기가 신용을 지키지 못하면 갓 창건된 우리 공화국의 깨끗한 얼굴에 흙칠을 하게 된다고 그런 기적같은 일을 해놓았던거요. 이게 애국이요. 신용도 방도도 애국심에서 흘러나온단 말이요. 동무들도 우선 애국자가 되시오.》

협의회가 끝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연형묵과 박송봉을 데리고 집무실로 돌아오시였다. 정무원사업때문에 수령님으로부터 지적의 말씀을 받아서인지 연형묵의 낯빛은 밝지 못했다. 총리로서 나라의 경제사령관구실도 할래 요즘은 북남고위급회담 우리측 단장사업까지 맡아보느라 눈코뜰새없이 볶이우는 그였다.

《수령님께서는 저를 믿고 나라의 총리직을 맡겨주시였는데 저의 능력이 모자라는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연형묵이 자기 심정을 고백했다.

이제는 3차 7개년계획도 고비에 달했는데 나라의 경제형편은 여전히 파동적이고 주요전망목표를 점령하는데서 큰몫을 담당한 공장, 기업소들까지 맥을 놓고있는 형편이였다. 뒤떨어진 단위들에 나가보면 하나같이 숨넘어갈듯 한 사정을 이야기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우에서 해결해주십시오.》 하고 밀어붙이는것 같아 속에 불이 당기는 때가 많았다. 이제 연형묵이나 박송봉까지 《우》를 쳐다본다면!··· 그 《우》에는 오직 한분 장군님께서 계시였다.

그것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소스라치는 연형묵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두사람의 주위를 돌며 말씀하시였다.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4차전원회의에서 수령님께서는 기계공업의 현대화를 다그쳐야 3차 7개년계획의 돌파구도 열수 있다고 가르치시였소. 우리 나라의 기계공업발전에서 자강도가 차지하는 몫이 참으로 중요하오. 그래서 지난해에도 수령님께서는 년로하신 몸으로 자강도를 찾아주신것이 아니겠소. 그때 정무원에서 자강도에 내려가 현지교시집행대책을 잘 세워왔소.》

연형묵은 지난해 수령님의 현지교시집행을 위해 정무원 책임일군들과 함께 자강도에 찾아갔던 일이 떠올랐다

1949년에 평안북도와 함경남도의 일부 지방을 갈라내여 자성과 강계의 첫 글자들을 붙잡고 떨어져나온 자강도는 주민구성에서 공업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다가 자연지리적조건마저 렬악하여 자급자족이 어려운 고장이였다. 나라의 경제가 하강선을 긋기 시작하면 그 여파가 제일먼저 닥쳐들 곳이 자강도였다.

연형묵이 갔을 때 벌써 그곳에서는 경공업제품들이 수요를 따라서지 못하고 식량공급이 늦어지는 등 이상증세가 나타나고있었지만 일밖에 모르는 자강도사람들은 식량공급주기가 좀 벌어져도 그것을 별치 않게 여기면서 꿈만해하고있었다.

《연동무.》 하고 그이께서 찾으시였다.

공식적인 부름이 아니였다. 그이께서 힘든 말씀을 하실 때마다 그러신다는것을 연형묵은 잘 알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자강도에 견실한 호주가 있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소, 마촌병기창의 진짜 주인이 말이요. 아, 가만···》

연형묵이 당장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자 그이께서는 격동된 그에게서 서슴없이 흘러나올 대답이 두렵기라도 하신듯 손을 들어 만류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생각하시였다.

(연형묵은 백번이라도 자진해나설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라의 총리이다. 총리로부터 도당책임비서라는, 그것도 평양으로부터 제일 멀고 언제까지라고 기약할수도 없는 직무의 변동이 그에게 과연 아무렇지 않은것일수 있겠는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지 않겠는가? 물론 연형묵은 그런데 신경을 쓰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동지의 존엄에, 운명에 개의치 않는 결정을 서둘러 내릴수 없다. 그가 백번 자진한다면 나는 백한번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다음 수령님께 보고를 드려야 한다. ···)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송수화기를 드시였던 그이께서는 《뭐요?! 언제 그렇게 됐소?》 하고 몹시 격하게 물으시였다. 두사람에게 돌아서신 그이께서는 《자령기계공장에서 협동품을 싣고 돌아오던 최윤동지배인이 로상에서 쓰러졌다오.》라고 하시였다.

《빨리 구조직승기를 띄워야겠소.》

새벽에 올라온 의사협의결과는 치명적이였다. 복강경검사와 간혈관조영, 초음파검사 등을 종합하여 확진한바에 의하면 최윤동은 이미 원발성간암의 말기증상을 나타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