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제 3 장 4

 

제 1 편

제 3 장

4

 

8월말에 접어들자 벌써부터 동네조무래기들이 추봉산으로 올밤청대 간다고 장대기를 질질 끌며 아침마다 부산을 피워대는 소리가 가을을 서둘러 몰아오는것 같았다. 온덕수가 출장을 떠난 다음날 봉화기계공장으로 볼이 넓은 검정편리화를 신은 애어린 처녀가 타박타박 걸어서 찾아왔다. 해는 이미 서산갓을 넘어갔는데 먼지오른 배낭끈과 어깨에 질적한 땀발이 돋은 그의 행장은 초라해보였다.

곱다기보다 생김새가 어딘가 한가하고 만만한 느낌이 드는 처녀의 이름은 지효은이였다. 어깨가 유별나게 동실한 이 처녀는 한해전 봉화기계공장에 내려왔던 그 검사의 딸이였다.

《저··· 여기가 봉화기계공장이나요?》

한동안 정문앞에서 머뭇거리고있던 효은은 주위에 벌써 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했다는것을 불안하게 의식했다. 그때 막 정문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본것인데 정작 얼굴을 마주하자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해질무렵에도 시꺼먼 색안경을 끼고있는 총각의 모습은 전혀 선량해보이지 않았던것이다.

《그렇소, 봉화기계공장이요.》

(그렇소? 참 우습게도 말하네.)

《동문 어데서 왔소?》

《평양에서···》

《평양?! 거기서 여기까지 혼자 걸어왔단 말이요?》

총각은 마치 대륙횡단을 한 사람이라도 만난듯이 신기해하며 효은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하였다.

《한데 누굴 만나려구?》

《지배인동지 계시나요?》

《출장중이요.》

《그럼 당비서동지는? 아니면 리정이라구···》

낯선 처녀의 입에서 큼직큼직한 이름들이 줄줄 불리워나오자 총각은 대뜸 《동문 누구요?》 하고 물어왔다.

《저··· 아버지가 이 공장에 가서 일을 배우라기에···》

《어, 우리 공장에서?!》

안경을 제외한 모든 표정이 즉시에 바뀌였다.

《내 이름은 온정림이요. 동무는?》

《지효은.···》

《동무 아버지 정말 괜찮은데! 우리 공장에 온걸 환영하오!》

총각은 그가 상상해온 로동계급의 손만큼은 커보이지 않는, 아직 채 자라지 못한것일수도 있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제가 무슨 공장을 대표하는 사람이나 된다구···)

《아, 악수는 우리 례법이 아니지.》

총각이 제잡담 시정하더니 《잠간 기다려.》 하고는 정문안으로 쑥 사라졌다. 그때 말투를 들으니 역시 나이는 어려가지고 로동계급의 식을 내느라고 괜히 이랬소, 저랬소를 한것 같았다.

효은은 사위를 둘러보았다.

떠나온 평양과는 너무도 달랐다. 네거리도 없었고 가로등도 없었다. 사방 둘러막힌것은 산뿐이고 한곬 트인 곳이라야 하루종일 그가 걸어온 길이 뻗어있는 평양쪽이였다. 아버지는 부디 이런 곳에서 일을 배우라고 중학교를 졸업한 그를 떠밀어보낸것이다. 금이야옥이야 키워온 자식을 낯설은 고장으로 보내기가 아쉬워서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의 말을 당장 뒤집지는 않았다. 집안에는 며칠동안 침묵만이 흘렀다. 어느날 효은은 잠자리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성이 높아지는것을 들었다.

《당신 정 고집을 쓰겠소?》

《고집이라니요. 저 애 선생님도 몹시 섭섭해해요. 수학재능이 뛰여난 앤데 왜 대학에 보내지 않고 로동생활을 시키는가구요.》

《거기에도 공장대학이 있소.》

《리해되지 않아요. 난 찬성할수 없어요.》 어머니는 거의 사정하다싶이 하였다. 《여보, 정 그러면 시내에도 공장이 많은데 하필 먼곳에 애를 보낼건 뭐예요? 다시 생각해봐요.》

《거기엔 훌륭한 사람들이 있소. 물론 다른 곳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겠지. 그렇지만 난 이미 지난해에 그 공장에 다녀올 때 효은이의 전망문제를 결심했소. 그리고 당신도 지지하리라고 믿었소. 당신은 시대를 선도하고 사람들을 교양한다는 기자가 아니요?》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그런 때 효은이 아버지의 말을 따르겠다고 솔선 나섰다.

로동에 대한 그리고 위훈에 대한 어떤 숭고한 감정이 북받쳐서는 아니였다. 다만 자기때문에 생길번 한 집안의 불화를 자기스스로 가시였다는 생각에 만족할뿐이였다. 그는 이런 처녀였다.

《자, 이젠 들어오오.》

총각이 다시 나타나 불렀다.

정문에 뭐라고 말했는지 효은은 거침없이 통과되였다.

그리고는 어데로 간다는 말도 없이 효은을 꽁무니에 달고 총각은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앞서 걸었다. 공장은 넓기도 하거니와 분주하기도 했다. 어디에 눈길을 두어야 할지 허둥거리는 그를 보자 으쓱해진 총각은 뒤짐까지 척 지고 여기는 무엇이고 저기는 무엇이고 설명을 하며 공장구경을 시키듯 자꾸자꾸 걸어가기만 했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는데 어쩌자는건지 알수 없었다.

《저···》 말은 뗐지만 몸을 씻고 잠자리도 잡아야 한다는 소리가 고작 이삼년터울로 보이는 이성의 앞에서 차마 나가지 않았다.

《알만 하오. 내 다 생각이 있소.》

총각은 그를 안심시키려는듯 어른스러운 말투로 돌아갔다.

마침내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느슨한 산비탈을 등에 지고 서있는 2층짜리 건물앞에서였다. 거기서는 밝은 불빛과 함께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혹시 합숙?!···

《들어가보오.》

《예?!》

《들어가라는데.》

《나만요?》

그러자 총각은 하하! 하고 큰소리로 웃어댔다. 효은은 그 소리에 쫓기듯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갔는데!··· 합숙이 아니라 목욕탕이였다. 그런걸 모르고 《나만요?》 했으니 웃지 않게 됐나.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줄게지.···)

효은은 수집음과 함께 나어리게만 보았던 그가 웅심깊은 손우의 오빠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너누룩해왔다. 목욕탕옆에는 수영장까지 달려있었다. 로동자들을 위해서 퇴근시간후에도 봉사를 하는것 같았다. 목을 한껏 쳐들고 샤와를 맞으니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고 내가 지금 어느 촌골안이 아니라 집에서부터 뻐스 한정거장길인 창광원에 와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불쑥 총각이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살아났다. 부랴부랴 목욕을 끝내고 나와보니 정말 그는 없었다!

(기다리다못해 가버렸을거야. 그러니 이젠 어쩌면 좋담.)

그때 어둠속에서 솟아난듯 총각이 나타났다.

《벌써 나왔소? 난 더 걸릴줄 알고 우야 천천히 왔는데.》

《어마, 혼자 간줄 알고 혼났네.》

《가다니, 날 따라오오.》

《어데로요?》

《합숙이지. 내 거기 갔다 오는 길이요.》

그러니 먼저 합숙에 말을 하고 방도 물려놓은 모양이였다.

합숙에서는 《자진하여》 공장에 진출해온 평양처녀를 맞이하느라고 새 침구를 편다, 식사를 차린다 야단법석이였다. 생각지 않았던 환대에 효은은 어쩔줄 몰라했다. 합숙관리원과 식모들은 도시사람 밥먹는 구경을 하듯 식탁옆에 빙 둘러앉아 당치도 않게 참 이쁘다느니, 제발로 굴러든 복둥이라느니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해서 끝내 밥술을 다 들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 제 동생의 칭찬을 듣듯 문뒤에서 싱글벙글하고있던 웅심깊고 지어 흥클해보이기까지 한 총각의 모습은 효은의 뇌리에 깊이 새겨지게 되였다.

이튿날 아침 김경조가 합숙에 나타났다.

효은은 아버지가 공장일군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내놓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버지가 누구라는걸 말하지 말랬어요.》

《오, 그래? 그럼 절대비밀이다. 허허···》 김경조는 웃으며 물었다. 《효은아, 우리 공장은 넓고 크단다. 무슨 일을 하고싶으냐? 분석실이 어떨가? 아니면 온실에서 일할수도 있지.》

《난 기계를 다루고싶어요.》

김경조는 만족한듯 입을 하 벌리더니 《옳다. 기계공장에서야 기계를 배워야지. 우선 로동안전교양부터 받구. 가만, 오늘은 이 사람을 찾아가 만나봐라.》 하고 쪽지편지를 써주었다.

《내가 데려다줄수도 있겠지만 혼자서 찾아가봐라, 공장구내도 익힐 겸. 사람들에게 이 이름을 내보이면 다 알게다.》

겉에다가 《장현국동무!》라고 쓴 쪽지편지를 내보이자 정말 모든 사람들이 군말없이 길을 대주었다.

직장휴계실에서 조회를 하던 장현국은 당비서가 보낸 글쪽지를 단숨에 읽어보고나서 《우리 직장에 방울새가 날아왔단 말이지. 동무들! 우선 평양처녀의 노래 한곡 들어봅시다.》 하고 제멋대로 선포하였다.

《아니, 그 좋은걸 우리만 듣겠습니까?》

누군가 소리치자 장현국은 《그렇지, 기왕 나가서 부르자구. 직장사람들이 다 듣게.》 하면서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효은의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재청!》 하고 박수를 쳤다.

전날 그를 합숙까지 안내해준 안경을 낀 그 청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