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제 2 장 4

 

제 1 편

제 2 장

4

 

이해도 다 갔다. 그제가 대설이였는데 흐릿한 하늘에서는 눈이 아니라 부슬비가 내렸다. 리정은 김경조와 함께 국가과학원에 가서 당에서 배려해준 전자부분품들을 싣고 돌아오고있었다.

하루밤을 묵고 새벽에 떠난 걸음이였다. 기분이 뜬 그들은 운전칸의 널널한 자리도 마다하고 적재함에 올라가 짐함을 덮은 방수포를 뒤집어쓰고 그저 좋다고 껄껄대고있었다.

《당신 장가든 얘기나 좀 들어보기요.》

김경조가 자못 궁금한듯 물어왔다.

《처가 미인인가?》

《박색은 아닙니다.》

《오, 녀자 고운건 사내부담이야.》

《그래도 녀자야 인물이 좀 있고봐야지.》

《쯧쯧, 그쪽물계는 영 아니로구만.》

《비서동지는 도통이나 한것 같습니다?》

《모르나? 간부되자면 그거 알아야 해.》

《하하하!···》

리정은 오래간만에 목이 뜨끔하게 웃어보았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제가 곱다는것을 너무 의식하는 녀자들은 교만해지거던. 다음은 지나친 자립성을 가진 녀자들일세. 그건 왜 그런지 아나?》

《글쎄요, 그 분야에서 제머리는 말하자면 포맷(Format-콤퓨터기술용어:초기화)이나 같은걸요.》

《그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나는 남편이 없어도 얼마든지 살아나갈수 있다, 이런다네. 이게 야단이 아닌가? 남편이 없어도··· 하고 생각하는 안해앞에서 자네의 존재란 무엇이겠나?》

 

《거 뭐 우리 집사람이 그러는것처럼 말합니까.》

《혹시 알겠나? 자네 색시도 그쯤 각오를 했는지두. ···》

결국 하자는 말은 가정생활에도 관심을 돌리라는것이였다.

리정은 안해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성실하고 리해력이 많은 녀성이였다. 남들은 이부자리밑에서 깨알을 굴린다는 신혼살림때부터 늘 집을 나가 사는 남편을 리해하고 리해하고 또 리해해준 채이숙이였다

리정이 그를 알게 된것은 일하면서 김책공업종합대학에 다니던 실험공시절이였다. 전자수판조차 어디 좀 보자고 하던 그때로서는 콤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까지 해부할수 있는 사람이 대학적으로도 몇손가락안에 꼽히던 때였다. 그중에 리정도 있었다.

그때 벌써 리정은 수자조종공작기계용조종기판을 자기 식으로 새롭게 만들어내놓아 청년과학기술축전에서 1등을 하였다.

주위에서 크게 떠들었으나 그만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왜냐면 1등에 대한 그의 견해는 이러하였다.

···1등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내뒤에 섰다는건가?

그래서 내앞에 더는 아무도 없다는것인가? 아니다. 그 의미는 모든 사람들이 너를 겨냥하고있다는, 바로 네가 너를 기어이 따라앞서려는 사람들의 하나같은 목표로 되고있다는데 있다!

저녁 7시부터 10시 15분까지 진행되는 강의를 마치고 리정은 한주에 두번정도씩 동료들의 성화에 못이겨 《특강》에 출연하군 하였다. 처음에는 두사람을 놓고 시작했던것이 두달만에는 열두명으로 불어났다.

그 열번짼가 열한번째 출석자가 다름아닌 후날 그의 안해가 되여준 채이숙이였다.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산업미술가가 된 그가 무엇때문에 전문가들이나 관심을 가질 그것도 일하면서 공부하는 학생의 《강의》에 그렇듯 열심히 참가하는지 알수 없었다. 후날 리정은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먼 친척벌의 총각애를 공부시키러 갔다가 문수거리의 같은 아빠트에서 살고있는 채이숙을 만났다.

이때부터 《특강》이 열리는 날마다 한명밖에 없는 《녀제자》를 위해 《리정선생》은 밤늦은 거리에 나서군 하였다

그때 물어보았다, 무엇때문에 극장이나 영화관이 아니라 따분하기 그지없는 나의 장황설을 들어주러 오는가고.

《저야 산업미술가가 아닌가요. 산업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산업미술가가 되겠나요.》

리정의 옷가지들이 밀송되기 시작했다. 이숙의 어머니가 그것을 알아차렸다. 이숙은 너무 바빠 묻지도 않는 말을 하였다.

《처음이예요.》

《시작이겠지.》

공화국창건 40돐기념 공작기계전시회가 열렸을 때 채이숙은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출품하는 소재공급용로보트의 도안을 그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했다. 전쟁로병이며 미술대학 교원인 채이숙의 아버지는 사위감을 만나보자 곧 붓을 휘둘러 신방에 걸어줄 두그루의 은행나무를 그리였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서로 상대에게 자리를 내여주는것이라고 리정은 생각했다. 한때 지나친 자존심으로 하여 사랑의 고뇌를 겪을번도 한 리정은 사랑하는 사람의 앞에서는 자기의 자립과 자존을 너무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왜냐면 그는 항상 자기의 상대에 대하여 뭔가 도와주고 뭔가 기쁨을 더해주고싶은 마음에 사무쳐있기때문이였다. 그렇기때문에 설사 자기의 모든 일이 더없이 잘되고 또 무엇이나 마음먹은대로 할수 있는 행운아라고 해도 어쨌든 상대에게 노력할 기회, 돌보아줄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호상 겹겹이 늘여지는 사랑의 뉴대가 건설되는것이다.

상대에게 마음속 고충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는것을 그에게서 어떠한 《덕》을 보려는 비도덕적타산이며 자기의 자존심을 말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네 일에 내가 삐칠게 없고 내 일에 네가 상관할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인생에 두사람이 합쳐져야 할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사랑은 받는것이 아니라 주는것이라는 말도 있다. 바꾸어 말해서 그것은 상대의 사랑이 들어올수 있는 자리를 언제나 내여놓고있으라는 뜻으로도 될것이다. 서로를 돌볼 기회를 서로에게 주는것, 이것이 바로 사랑의 건설이 아닐가?···

리정과 김경조가 공장에 도착한것은 오전 10시경이였다.

차에 리정을 태워 부분품들을 부리우라고 보낸 김경조는 행정청사로 향했다. 마침 현관앞에 그의 차가 서있었다. 거기로 작달막한 창고원이 휘발유초롱을 들고 낑낑거리며 다가가고있었다.

《당비서운전사면 단가. 휘발유도 받쳐줘야 먹겠어?》

창고원이 두덜거리자 차안에서 《뭐야?》 하는 소리와 함께 운전사가 뛰여내렸다. 어디 틀어박고 졸댔는지 머리가 푸시시했다.

《말 다했어?》

《내가 뭐 못할 말을 했나?》

때마침 김경조가 기관본체뚜껑을 탕탕 두드렸다.

《왜들 그러오?》

창고원은 냉큼 자리를 피하고 운전사가 억울한 소리를 했다.

《지배인동지가··· 해임된답니다. 이 차로 평양에 올라가자는데 글쎄 뭐가 좋아서 휘발유를 타러다니겠습니까.》

《뭐이?! 누가 그래?》 하고 김경조가 버럭 소리질렀다.

《기름을 넣고는 당장 평양으로 떠나려던 참입니다.》

《지배인차는?》

《죽었습니다.》

그 쇠붙이도 맥을 놓았는지 아니면 이제껏 모시고 다니던 주인의 마지막길을 바래우는 일만은 차마 못하겠던지 엊그제부터 아예 꼬꾸라지고말았단다. 김경조는 다시금 차체를 쾅 두드리고는 돌아서서 최윤동의 방으로 올리뛰였다. 2층계단에서 목도리를 감으며 내려오는 최윤동과 마주쳤다. 다짜고짜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게 무슨 소리요? 당비서도 모르게 해임이 뭔가 말이요?》

《이보우, 사람들이 듣겠소. 나가기요.》

김경조는 최윤동을 붙잡고 차에 같이 올랐다.

《운전사! 차를 정문밖에 뽑으라.》

말뜻을 알았는지 운전사는 공장을 멀찍이 벗어나 차를 세웠다.

길옆에는 키가 껑충한 아카시아나무들이 으시시하게 늘어서있었다.

먼저 김경조가 내리고 뒤따라 최윤동도 차에서 내렸다.

《나도 이렇게까지 될줄은···》 최윤동은 말을 잇지 못했다.

턱밑까지 휘감은 목도리에서는 입김이 훌훌 불리였다.

《도대체 무슨 엉뚱한짓을 했소?》

《당중앙에 사직서를 냈소.》

《뭣이?!》

《그러면 검열도 넘기구 새 기계도 살릴것 같아··· 그랬소.》

《용소! 용해! 에, 이 비겁한 사람!》 하고 김경조는 소리쳤다.

《친애하는 그이께서 우리가 하는 일을 다 지지해주셨는데 무슨 발이 재려서 뒤걸음질이요? 당신이 수령님께서 아시는 최윤동이 옳소? 수령님께서 영웅메달을 달아주신 사람이 옳은가!》

꼭 30년전의 일이였다.

그의 가슴에 달아줄 영옹메달을 손에 드시고 《최윤동동무!》 하고 수령님께서 부르시였을 때, 그때는 정말 얼마나 장하게 대답올리며 가슴을 쭉 펴고 연단앞으로 걸어나갔던가.

수령님께서 풀떡거리는 젊은 로동계급의 심장우에 영웅메달을 얹어주실 때 그의 모습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힘에 넘치였던가.

그러던 내가 무슨 꼴을 하고 수령님앞에 나서려는것인가. 힘들어서 일을 못하겠다고? 그러니 제발 가만 놔둬달라고?···

《아닙니다, 수령님! 그건 저의 진심이 아니였습니다.》 하고 최윤동은 소리치고싶었다. 그는 몸을 겨우 지탱하고 서있었다.

《내가 지금 자신을 얼마나 원망하고있는지 당신은 아마 모를거요. 글쎄 이 손으로 쓴 사직서가 수령님께 큰 심려를 끼쳐드렸다니 이 일을 어쩌면 좋소, 응? 비서동무!···》

차에 오르려던 최윤동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불쑥 돌아서며 《그 회관옆에 사과나무들 말이요. 명년 봄엔 아무래도 그루바꿈을 해야 할것 같소. 빼빼 늙었더구만.》라고 하였다.

그를 떠나보내자 김경조는 회관으로 향했다. 층계를 탕탕 구르며 기동예술선동대로 찾아올라간 그는 자, 한번 올려보자구! 하며 주먹을 부르쥐였다. 금관악기들이 드세찬 울림을 터쳐올렸다.

쏘라 쏘아라 바로 쏘아라···

곡이 끝나는것과 함께 일체 악기들이 종지부를 찍듯 다시금 쾅! 하고 울리였다. 원래 편곡에는 그런 대목이 없었는데 김경조가 자작 《최후의 일제사격》이라는 주석을 달아 붙여놓은것이였다.

등골이 선뜩한것이 땀발이 돋은 모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