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제 1 장 7

 

제 1 편

제 1 장

7

 

《···이숙이가 한사코 만류하는것을 내 미련한체 하고 보내는거라네. 며칠 있으면 그 애가 입원을 하게 되네, 산원에 말이야. 매주 진료소에 가서 검진을 받는데 지금까지는 다 정상이라더구만.

래달 초아흐레가 예정일이야. 엊그제 일요일에는 우리 령감이 저 미림에 가서 수염이 한발 되는 잉어를 건져왔겠지. 산모한테 그걸 먹이면 애의 눈이 잉어눈처럼 새까맣구 정기가 돈다나. 제 말로는 잡아왔다는데 모르지, 돈을 주고 사온건지···》

 

《이름?》

《리정.》

《출생일?》

《1957년 10월 30일.》

《당원입니까?》

《그렇습니다.》

《 출생지···》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당장이라도 기계를 척 들이대면 아들인지 딸인지를 다 알아낸다고 하네, 이숙이가 그러는걸 내가 반대했지. 글쎄 아무래도 낳을 아이를 이제 알아서는 어쨌단 말인가. 무엇이 나올가 하고 기다리는것도 하나의 락이 아닐텐가.》

 

《다시 확인합시다. 이것이 현재 창고에 보관하고있는 재산의 종류와 수량과 일치합니까?》

《일치합니다.》

 

《···말이 길어졌나본데 이렇게 편지를 쓰는것은 임자가 시간을 좀 낼수 없겠는가 해서네. 그래도 애를 받는 날에야 산원문앞에 애아비가 척 서있어야 좋지 않겠나. 이숙이도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야. 아무튼 마음은 그러하니 임자가 알아서 조처하게나.

건강에 주의하라구. 장모 보냄.》

 

리정을 취급하는 검사는 마음씨 착한 소년처럼 희고 단정한 얼굴에 안경을 낀 사십대의 사나이였다. 목소리도 연필깎는 소리처럼 사근사근했다. 그런데 몇마디 대화가 오고간 뒤로 검사는 리정이 와있다는것을 영 잊은 사람같았다. 이따금 꽁다리동소재로 깎은 먹통안에 펜대를 꾹 박아넣었다가는 펼쳐놓은 종이장우에 가져다가 부지런히 즙을 찌워가군 하였다. 리정이 기척을 냈다.

그러나 검사는 할일을 했다. 침착하게 했다.

이번에는 크게 몸까지 움직이며 기척을 냈다. 그래도 검사는 할일을 했다. 리정은 그만 자제력을 잃을번 하였다. 그렇다, 저 사람에게는 도대체 시간의 차이가 없을것이다. 10분전도 같고 20분전도 같으며 30분후에라도 같을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기지개를 켜는 시간에도 쉼없이 내달리고있다. 10분전에도 같고 20분전에도 같은 그런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기를 만나러오는 사람들은 응당 20분이나 30분쯤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큰 사무실과 전화통들을 거느리고 앉아있을 때 나라가 보게 될 손해는 누가 보상한단 말인가?···

태엽시계가 뗑뗑 시간을 알리였다.

《오래 기다려야 합니까? 검사동지.》

그러자 검사는 그라프트지로 만든 커다란 봉투를 리정의 앞으로 쭉 밀어보내며 례의 그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압수결정섭니다.》

목소리를 들어서는 무슨 《극장표입니다.》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도대체 나에게서 무엇을 압수한단 말인가?···

《제가··· 보라는겁니까?》

《예, 보십시오.》

그것을 받아들던 리정의 손이 굳어졌다. 며칠전에 받아보았던 장모의 편지가 떠올라서였다. 문수거리체신소의 발송도장이 찍힌 편지봉투에는 십전짜리 우표 넉장이 붙어있었다.

래달 초아흐레! 그날은 수십억이 산다는 이 넓은 세상에 리정의 피를 받은 자그마한 생명이 태여나는 날이였다. 리정의 가슴은 지금껏 체험해보지 못한 환희와 희망으로 설레였다. 그는 자기를 랭정하다고 평가한 아버지의 말을 믿을수 없었다. 과학 그자체에는 감정이 없지만 과학자야말로 최고의 감정가가 아니겠는가고 그는 생각했다. 사랑과 열정, 흥분이 없이야 어떻게 미지의 과학탐구의 길을 헤쳐갈수 있으랴. 꼭 가리라, 가서 나를 닮은 나의 작은 생명을 얼싸안으리라고 리정은 생각하였었다.

《무슨 생각을 합니까?》

검사의 랭정한 목소리가 그를 흔들었다.

리정은 현실을 자각했다. 검사는 지금 정당한 법적근거와 권리를 가지고 리정으로 하여금 부정하게 소유하였거나 거래중인 일체 설비 및 부분품들을 법의 관리하에 넘겨야 한다는것을 알리고있었다. 안해가 품고있는 생명이 바야흐로 탄생을 기다리는 시각에 여기서는 다른 한 과학적생명체가 꺼져가고있는것이였다.

《차라리 나를 구류하든가··· 그러십시오.》

리정의 목소리는 그자신도 놀라우리만큼 조용히 흘러나왔다.

검사는 반응이 없었다. 그의 눈은 마치 유리로 빚은것처럼 차겁고 투명하여 어떠한 감정도 영원히 비낄수 없을것 같았다.

《그거면 몰수처분의 몇십배는 되지 않겠습니까.》

《흥분하지 마시오, 몰수가 아니라 압수요.》

그 말이 어떻게 다른지 리정은 판단할수가 없었다.

법을 어긴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벌을 받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이 랭정하고 엄청난 현실을 즉시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숨가빴다. 이따금 행길에서 본 기억이 있는 대위가 나타나 리정을 밖으로 안내했다. 그때 리정은 《유리로 빚은》 검사가 《끌어가시오!》라고 웨친것처럼 생각되였다.

리정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걸어갔다.

갑자기 무엇이 앞을 막아섰다. 개발조건물이였다.

문을 열어보니 사람이 없었다. 벽에 걸린 전자벽시계의 초침이 전지약이 다되였는지 9자를 넘어서지 못하고 안타깝게 푸들거리고있었다. 언제부터 교체하려던것이였다. 리정은 웃주머니에서 가느다란 전지약을 꺼내가지고 시계에 교체해넣었다.

초침은 다시 돌아갔다. 그러고도 리정은 한동안 못박힌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주위에는 수많은 전자요소들을 구입하여 한뜸두뜸 수를 놓듯이 조립해놓은 결합기판과 계수기판 등 부분품이 널려있었다. 간난신고를 다 하면서 끌어들였던 두대의 콤퓨터도 있었다.

그 모든것을 놓쳐버린다고 생각하니 억이 막혔다.

(결국 이렇게 끝나고마는가?)

눈물이 울컥 치밀었다. 리정은 자기가 이렇게 쉽게, 이렇게 불쑥 울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밖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옛시절 시름없이 뛰여놀던 바다가가 그려지고 가지많던 그의 희망을 일매지게 다듬어주던 아버지의 엄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리정은 원래 작가가 될것을 꿈꾸던 소년이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반대했다. 리유는 아주 두리뭉실하고 이상한것이였는데 작가란 아무나 되는게 아니라는것이였다. 아버지는 자기의 아들을 그 《아무나》속에 확실히 포함시켜놓고있었다.

소년단 분단벽보주필이였던 그는 아홉살때 벌써 군도서관의 독자증을 손에 쥐였다. 처음에는 희곡을 읽고 흉내를 피웠다.

긴긴 겨울방학이 오면 화토불에 기름가재미들을 올려놓고 외발구타기에 싫증이 난 동네아이들을 불러들여 자작 만든 연극대본을 분담하군 하였다. 어머니가 몹시 귀히 여기던 《물건너온》 이불등을 뜯어 무대막으로 썼다가 볼기가 얼얼하게 경을 치기도 했다.

다음에는 소설을 읽었다. 가방에 늘 《체호브》며 《고리끼》를 《모시고》 다니는 아들을 보다못해서 아버지는 방비를 움켜쥐였다.

《시골놈이 책 몇권 보고 작가가 된다면 이 나라에 농사군보다 많은게 작가일게다. 너는 우선 머리가 작다. 그건 둘레의 길이가 아니라 수련이고 체험이다. 다음, 성격이 틀렸다. 너는 침착하되 랭랭하다. 그래가지고는 글을 쓸수 없다. 작가는 피와 같고 불과 같다. 세상에 <물리도>나 <화학도>라는 말은 없어도 왜 문학도라는 말이 생겨났겠는지 그걸 알겠거든 알았소 하고 이 아비를 찾거라.》

가미한 《인종론》처럼 들리는 아버지의 말에 반격을 가하려고 그는 야심작을 써냈다. 《미래의 정복자들》이라는 영화문학이였다. 그것을 로농적위대(당시)창건 10돐기념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에 투고하였는데 그만 락선되였다. 바로 그러한 때 리정의 운명발전에 지울수 없는 큰 충격을 준 사건이 발생하였다.

군화학공장 지배인이였던 아버지가 공장보이라폭발사고의 책임을 걸머지고 법적제재를 받았던것이다. 종전의 미분탄보이라를 공장에서 나오는 팔프페액을 쓰는 보이라로 개조할 안을 내놓은것은 사람들의 눈에 그닥 잘 나타나지 않던 기술준비원이였다.

소심한 성격의 기술준비원이 좋은 착상을 하고도 사람들앞에 선뜻 내놓기를 주저하자 리정의 아버지는 자기가 직접 도면을 걷어쥐고 강행적으로 보이라개조작업을 벌려놓았다.

사고가 일어난 그때 리정은 야영을 하고있었다.

도안의 여러 학교들에서 모여온 야영생들이 성대한 체육대회를 벌려놓았던 그날에 공장에서는 보이라실과 잇닿은 ㄱ자형 생산건물의 지붕이 날아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날 리정은 읍중학교에서 온 나이가 두살 우인 소년과 씨름경기의 최종순위를 다투었는데 0대 2로 어방없이 패하고말았다.

2등을 하여 5전짜리 학습장 여섯권과 확대경을 상으로 받은 리정은 그때까지 학과경연을 포함한 일체 순위다툼에서 한번도 1등의 자리를 양보한적이 없는 자기에게 처음으로 패배를 준 상대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그의 이름은 최수광이였다.

집에 돌아오니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있었다.

지방경제를 발전시킬데 대한 당의 호소를 받들고 제대배낭을 화학공장건설장에 풀어놓은 때로부터 십여년세월 공장의 나무 한그루, 설비 한대를 자기 살점처럼 아껴온 아버지를 잘 알고있던 리정은 사람들속에서 기술준비원이 져야 할 책임을 지배인이 떠맡았다고 돌아가는 소문을 아프게 들었다. 기술준비원은 사고가 일어나던 날 어데서 날려온 기와장에 허리를 상했다면서 드러누워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리정은 집식구들도 모르게 법기관에서 조사를 받고있던 아버지의 면회를 갔다.

접수실에 앉아있던 나이지숙한 아바이가 《면회날은 따로 정해져있어. 그날에 오너라.》 하고 돌려보내려 하자 고집스러운 소년은 아버지의 책상서랍에서 찾아낸 자동면도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근데 우리 아버지 수염은 매일 나와요.》

《으응? 수염?!···》

아버지는 구레나릇이 보기 좋은 사람이였다. 하루라도 면도를 하지 않으면 얼굴이 온통 시꺼멓게 보이군 했다. 접수원아바이는 넥타이를 맨 어린 소년이 기특한듯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면회가 승인되여 접수실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금시 면도를 하고난듯 수염터가 깨끗했다.

그래도 아들이 가져온 손때묻은 면도기로 윙윙 벌떼가 날아예는듯한 소리를 내며 즐겁게 면도를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인상적이였던지 리정은 그만 때와 장소를 잊고 《아버지, 나도 크면 아버지처럼 수염이 많이 나올가요?》 하고 물었다.

《나오지 않구. 한데 넌 아버지를 닮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건 왜요?》

《정아, 돌아가서 공부를 착실히 하거라.》

다음날에도 소년은 면도기를 들고 접수에 찾아왔다.

그러나 이날은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였다.

집에서 문을 닫아매고 앓는다던 기술준비원이 법기관의 호출을 받고 그곳에 나타났던것이다. 혹시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려고 온건 아닐가? 저로서도 자신이 없는 설계를 내놓고 주저하는 사이에 지배인이 성큼 도면을 걷어안자 모르는척 하고 밀어버린데 대해 반성하고 스스로 책임을 떠맡으러 온건 아닐가? 막연한 기대를 안고 리정은 담장모퉁이에 쭈그리고앉아 기다렸다. 비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굉장히 큰 플라타나스나무가 있어 그밑에서 비를 그었다. 마침내 기술준비원이 나타났다.

그러나 혼자였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검은 면직바지에 흰 남방샤쯔를 받쳐입고 접수원의 바래움을 받으며 걸어나오는 그의 모습은 상상외로 건강해보였고 지어 기뻐하는것 같았다. 행길에 나선 그가 바다쪽으로 밀려가는 구름장들을 바라보며 비를 긋고 가야 할지, 그냥 가야 할지 망설이는데 《아버지!》 하는 부름소리가 리정이 서있는 나무뒤에서 들려왔다.

파란 비옷을 입은 소년이 나타나 자기 아버지-기술준비원의 머리우에 우산을 펼쳐주었다. 소년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리정은 놀랐다. 그는 다름아닌 최수광이였다. 한우산을 쓰고 비꽃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를 즐겁게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부자를 바라보느라니 왜 그런지 서글퍼졌다.

법기관의 조사는 화학공장에서 일어난 사고를 행정법적제재의 대상으로 규정하였고 리정의 아버지는 해당한 처분을 받았다.

년례대로 그해 가을철에 열린 군내 중학교(당시)학생들의 체육대회때 리정은 또다시 씨름경기에 출전했다. 최수광과 결승전에서 다시 맞다들렸다. 그러나 또 0대 2로 패하였다. 그것도 아주 우습게 넘어져버렸다. 리정의 학교에서는 2등도 대단하다고 칭찬하였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리정은 밥맛을 다 잃었다.

《너 갑자기 씨름선수라도 되려니?》 그날 씨름경기를 직접 목격한 누이 리순이 핀잔했다. 《넌 상대가 안되더라.》

《뭐?! 누난 도대체 누구편이야?》

《누구편이긴, 나야 둘 다 이겼으면 하지.》

《핫! 세상에 둘 다 이기는 경기가 어데 있어.》

창황중에도 웃음이 나와 배를 그러쥐였던 리정이 물었다.

《누나 그를 알어?》

《이름은 잘 몰라. 그저 나 혼자 8번이라고 해.》

《8번? 그게 뭔데?》

《올여름 군학과경연때 한책상에 앉아 시험을 쳤거던. 난 좀 덤볐지 뭐. 8번문제풀이에서 괄호를 벗길 때 미누스부호를 쁠류스로 고치지 않아 답이 왕청같이 나왔어. 그런것도 모르고있는데 옆에서 책상우에다가 손가락으로 자꾸만 8자를 그리지 않겠니. 그래 8번문제가 틀렸다는걸 알았지뭐. 마음이 참 곱더라.》

《쳇, 그렇게나 3등을 해선 뭘해.》

리정은 입을 비죽거리며 생각했다.

(어디 래년에 또 해보자!)

삼복의 무더위가 바다가마을아이들을 백사장으로 부르던 이듬해 여름을 리정은 잊을수 없었다. 그무렵 공장에서는 보이라개조가 성공하였다. 6개월만에 다시 본직무에 돌아온 아버지가 제일먼저 찾아간 곳이 기술준비원의 집이였다. 욕을 해도 시원치 않을 그 사람에게 엎드려 도와달라고 간청했다던지···

어느날 점심녘에 남의 자전거까지 빌려타고 집으로 달려온 아버지가 다짜고짜 한주일전에 사놓은 이불장을 내라고 하였다.

《갑자기 이불장은 왜요?》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이사를 가게 됐소.》

《우리가 이사를요?》

《아니, 우리 기술준비원 최동무 말이요. 보이라개조에 성공해서 단단히 내세워주자고 했더니 도에서 선손을 썼거던. 쟁쟁한 사람인데 놓쳤어. 차가 도착하면 떠날판인데 빨리 해주오.》

어쩌다 생긴 새 이불장을 내놓기가 아수해서 옷고름을 뜯는 어머니의 모습도 리정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애도 이사를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치자 그는 대문밖으로 달려나갔다.

바다가쪽으로 바투 나앉은 그의 집에서부터 철길건너 자작고개방향으로 갈라지는 길녘에 자리잡고있던 최수광의 집까지 무슨 정신에 달려갔는지 알수 없었다. 마침 이사짐들을 벌려놓은 마당에 최수광이 앉아있다가 리정을 보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이사를 간다기에 찾아왔다.》

그러자 최수광의 얼굴에는 몹시 감동된 빛이 떠올랐다.

아마 리정이 자기를 바래주러온줄로 지레짐작한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좀 별내졌지만 내친김이라 말했다.

《그래서 둘이 마지막으로 붙어보자는거야.》

최수광은 아무말없이 따라섰다. 당장 이사를 가야겠는데 리정의 뒤를 쫓아 경기를 해주러 가는 최수광의 성격도 여간했다. 두 소년은 샅바도 없이 반시간동안이나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을 벌렸다.

나중에는 둘 다 솔밭속에 너부러졌다.

《너 그렇게도 1등을 하고싶니?》

리정은 그를 피끗 쳐다보았을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최수광을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것은 그때였다. 두 소년이 자리를 차고일어났을 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량쪽 부모들이 다같이 그들을 찾아 솔밭가까이에 와있었다. 땀과 먼지로 얼룩진 얼굴이며 옷주제를 보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짐작한듯 리정의 아버지는 성이 나서 아들의 볼기를 쳤다.

《이녀석! 어따대고 밸풀이냐?》

《아니, 이거 왜 이러십니까? 애들끼리 장난을 좀 한걸 가지구.···》

최수광의 아버지가 끼여들어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장난이라구? 아니요, 이녀석은 내가 아오. 머리꼭뒤까지 승벽이 꽉 들어찬 녀석이지. 언제봐도 똑 제일인것처럼 우쭐해가지고 무슨짓을 해도 정도가 지나친단 말이야, 덜된 녀석 같으니!》

그날 아버지의 손에 끌려 리정은 공장사람들과 함께 최수광의 가족을 바래웠다. 다만 아버지의 엄한 《요구》에 의해 그 마당에 나와선 리정의 마음속에서 최수광이라는 존재는 이사짐을 가득 싣고 석비레깔린 언덕길을 넘어가는 화물자동차처럼 빠르면서도 힘겹게 그리고 어느정도 장쾌하게 잊혀졌다.

그날 저녁이였다. 저녁상을 받아놓은 아버지가 조그마한 술잔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거기에 술을 채우면서 말하였다.

《기술준비원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물론 그가 자기의 착상을 과학적으로 끝까지 담보하지 못한것은 유감이다만. 왜 그랬겠느냐? 그건 자기의 과학기술적준비에 대한 자신심이 부족해서였다. 한데 나에게도 그것을 메꾸어줄 지식이 없었다. 결국 과학자로서 부족되는 그의 자신심을 지배인의 열성으로 메꾸어보려고 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것은 이제 새삼스레 무슨 시비를 가르자는것이 아니라 너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이다. 너에게는 분명 좋은 점이 있다. 그건 자신심이다. 너의 준비정도를 이 잔이라고 한다면 자신심은 거기에 담겨지는 술과 같다고 말할수 있다. 만약 잔의 크기에는 관계없이 술을 계속 부어넣는 다면 어떻게 되겠니?》

마침내 잔을 넘어난 맑은 액체가 밥상우에 흘러내렸다.

《잔을 크게 하든지 술을 적게 채우든지 결심해라.》

리정은 달라졌다. 아버지는 《체호브》대신 고대를 들고 성성한 라지오며 또 무엇이며 련속 못쓰게 만드는 아들의 모습을 대견스럽게 지켜보았다. 학교를 졸업하자 리정은 군대에 나가 공병이 되였다. 여러가지 기술기재들을 많이 다루는 공병부대에서 리정은 마치 물을 만난 고기같았다. 그는 실천속에서 배우고 배우면서 실천했다. 무엇이나 막히는것이 없다는 초기복무사관들까지도 기재에 이상이 생기면 《차렷담배》를 주런이 모자에 꽂아가지고 나어린 상등병(당시)을 찾아오군 하였다. 그 시절에 어느 로교수의 지도가 아니라 구대원들의 훈시를 들으며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 책을 써냈다. 그 책이 활자로 찍혀나왔을 때 온 부대가 들썩했다. 감격한 부대장은 자기의 《갱생》승용차에 그를 태워가지고 관하구분대들을 순방하였다. 고향의 아버지는 무려 사흘간이나 걸음을 하여 군도서관에 한부밖에 배당되지 않은 《임플스흐름길의 기초》를 자기의 소유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책에 틀린 곳이 있더라. 너는 <신호대 잡음비가 커야 한다.>고 써놓았던데 <작아야 한다.>가 옳지 않으냐?》

리정은 회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S대 N이라는것은 분수식으로 볼 때 S/N와 같으므로 S, 즉 신호가 커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할가?···

자기가 약해졌다는것을 의식하자 리정은 불쾌했다.

살구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길우에는 바람에 날린 꽃잎들이 널려있었다. 락화··· 이제 저것들은 향기를 잃는다. 빛갈도 죽는다. 하여 저것들은 더이상 꽃이 아닐것이다. 한때 필적에는 아름다운것이 저뿐인가 싶더니 어쩌면 이리 가없어질수 있단 말인가?

또 몇잎이 그의 머리를 스치며 발아래 떨어졌다.

그렇다, 약자들만이 떨어졌다. 너는 수난자가 아니다, 박약자이다! 다른 사람들은 차마 너를 밟지 못해 에돌아갔다. 그러나 나는 에돌지 않겠다. 너를 밟고 가겠다. 떨어지면 짓밟힌다, 떨어지면 노예가 된다.··· 온몸을 휩싸는 이상야릇한 기분에 리정은 오한이 난듯 어깨를 떨었다. 그는 김경조를 만나볼 생각으로 걸음을 내짚었다.

한참만에야 김경조를 찾아냈는데 그는 공장주변에 새로 일군 부업밭에서 강냉이영양단지를 옮겨심고있었다. 맨발바람의 후방부지배인이 김경조와 나란히 이랑을 타고가면서 새 품종의 강냉이종자를 어렵게 구해들였다는것과 농장들의 경험을 본받아 영양단지 옮겨심는 날자를 지금쯤으로 잡았다는것을 이야기하고있었다.

《단지가 너무 쉽게 부스러지는것 같지 않소?》

《원, 그럴리가··· 딱 규정대롭니다. 뇨소 하나에 과석 열 비률로 맞추고 닭똥이랑 진거름을 고루 섞어빚었는데 에··· 부피상으로는 부식토 70프로에 밭흙이 30프로정도 들어갔습니다.》

《말은 청산류수요. 좌우간 가을에 보기요.》

《좋습니다. 8톤을 못하면 자릴 내놓지요.》

《듣는 사람이 없다고 제법 큰소리요.》

《정말 내가 8톤을 내면 어떡하겠습니까?》

《내면? 그럼 나팔을 불어주지. 독주를 하겠단 말이요.》

리정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김경조가 셈평좋게 가을소리를 하는것이 놀라운 한편 그 배포가 부럽기도 했다. 체격이 덩실한데다가 얼굴색까지 거무스레한 김경조는 큰 바위를 굴려다놓은듯 하여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묵직하게 하는것 같았다.

《당비서동지.》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소?》

김경조가 리정을 발견하고 걸어오는데 걷어붙인 종다리에서 흙부스레기가 푸실푸실 떨어졌다.

《검사를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그래서 소태씹은 인상이요? 미간을 좀 펴오.》

《연구설비와 부분품들을 모두 압수하겠다고 합니다.》

《나도 알고있소.》

대답이 범상히 흘러나오는데 리정은 놀랐다.

《그게 없인 한걸음도 나갈수 없다는걸 알지 않습니까.》

《그게 없이는 못 나간다?》 김경조는 웬일인지 퍽 웃고나서 《난 말이요, 그게 다 없더라도 당신만 정신을 똑똑히 가다듬고있으면 아무 걱정할게 없을것 같구만.》라고 하였다.

《걱정할게 없다구요?》

《내 언젠가 말하지 않았소, 일이 잘못됐다면 그건 다 김경조가 책임질 일이니 개의치 말라고 말이요. 자꾸 뒤를 돌아보지 마오. 일단 뛰기 시작했으면 결승선을 내다봐야지, 안 그렇소?》

한낮의 볕기운이 모락모락 아지랑을 피워올리는 먼 밭머리 어디에선가 봄꿩이 푸드득 날아올랐다. 이때부터 리정은 김경조에게 붙잡혀서 오후내내 호미자루를 들고 밭일을 하였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뜬해지는것 같았다. 해가 거의 서산마루에 내려앉을무렵에야 일손을 거두고 돌아오면서 리정은 래일이나 모레쯤 대학에 다녀올 의향을 김경조에게 내비쳤다.

《대학에는 왜?》

《사고난 설비를 살리자니 혼자힘만으로는 아무래도···》

《그럼 모레쯤 떠나오. 래일은 당신이 공장에 있어야 할거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압수요.》

이튿날 개발조건물에서는 공장을 대표하는 립회인으로서 최윤동이 참가한 가운데 압수가 시행되였다. 모든것이 빠르게 그리고 묵묵히 진행되였다. 압수가 끝나자 검사가 압수품목록등본을 넘겨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최윤동의 낯빛은 몹시 어두웠다.

그날 밤 리정이 합숙을 떠나갔다. 소문은 벌써 출근시간에 온 공장에 퍼졌는데 집생각이 나서 갔을거라고 좋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아주 돌아오지 않을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경조는 합숙에서 리정의 방을 내려 한다는 통보를 받고 성이 독같이 나서 달려갔다. 리정이 잠시 공장을 떠난것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아마 전혀 다른 의미로 가닿은 모양이였다. 그가 계단을 오르고있을 때 리정의 방앞에서는 앞서온 최수광이 합숙책임자녀성을 불러다놓고 추궁을 하고있었다. 우에서 큰 간부가 내려온다는데 비여있는 방들은 변변치 않고 마침 리정이 공장을 떠나갔기에 이 방을 내려 한다는 합숙책임자에게 최수광은 따져물었다.

《그가 아주 갔다고 확신할수 있습니까?》

《그야 뭐, 사람들이 다들···》

녀인은 시원한 대답을 못하고 갑자르기만 했다.

《숱한 종업원들의 생활을 돌보아야 할 동무가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소리를 합니까. 방을 내선 안됩니다. 공장일군들에게는 내가 반영하겠으니 우선 다른 방을 한칸 깨끗이 정돈해놓으시오.》

김경조는 그 말을 듣고 계단에서 되돌아섰다.

저 최수광이 나이는 젊지만 속이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비사고가 났을 때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나섰던것을 봐도 그래 이모저모 리정을 위해 마음쓰는것이 알렸다.

(한데 모를 일이야. 최수광이 관심해주는데 비해 리정의 태도는 너무 쌀쌀하지 않은가. 한고향내기인 그들사이가 친밀해지지 못하고있는것은 무엇때문일가? 리정의 모진 성격탓이 아닐가?)

합숙울타리를 벗어나면서 김경조는 다시금 리정의 호실창문을 올려다보았는데 얼핏 최수광의 둥그런 얼굴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