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제 1 장 3

 

제 1 편

제 1 장

3

 

물이 푹 줄어든 남강을 만달산어귀에서 건너선 승용차가 신승호, 삼청리를 꿰질러 먼지발을 뽀얗게 일구며 달려가고있었다. 사개가 뒤틀린듯 덜그럭거리는 차에 앉아 두눈을 뚜부럭거리고있는 사람은 봉화기계공장 당비서 김경조였다.

(리정이 쫓겨났다?! 연구사업을 중지하고?···)

한달동안 진행된 당일군강습의 마지막날에 안시학이 걸어온 전화를 받은 그는 기화기가 어떻고 하는 운전사에게 괜히 역증을 부리며 페강하기 바쁘게 차를 불러댔다. 변변치 못한 기관소리가 아츠럽게 들려왔지만 김경조는 그냥 뜨다고 독촉이였다.

《이런 굼벵이라구야. 더 밟소!》

이쯤 되면 김경조의 가슴속에서는 《쏘라 쏘아라···》 하는 취주악소리가 울리기 십상이다. 김경조는 이따금 공장문화회관의 웃층에 자리잡고있는 기동예술선동대에 찾아갈 때마다 그들과 어울려 취주악을 연주하군 하였다. 곡목은 날이 가고 해가 바뀌여도 변함없는 한가지 《해안포병의 노래》였다.

그래 한때는 김경조가 저 동해안 어느 섬에선가 해안포병으로 복무했다는 소문까지 그럴사하게 나돈적도 있었다. 여하튼 김경조의 방문을 몇차례 겪고나서 기동예술선동대원들은 한가지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였는데 김경조가 직접 연주석에 틀고앉아 튜바를 불 때에는 기쁜 일이 생긴것이고 주먹을 대구 휘두르며 지휘를 할 때에는 성이 난 날이라는것이였다.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과 허구가 섞인것인지 알수 없으나 김경조가 취주악을 몹시 좋아하는것만은 틀림없었다.

리정을 데려온 날도 김경조는 튜바를 불었다.

저녁에는 내포를 한감 얻어다가 순대죽을 푸짐히 끓여 대접하였다. 그러면서 생각하였다. 이제야 조종계통을 구구표처럼 외우고있는 전문가도 모셔왔겠다, 새 기계의 개발은 시간표짜기지.···

차가 또 왈카닥 했다. 차상태가 말이 아니였다.

하기는 소갈데말갈데 쉴새없이 돌아치는 그 차를 가리켜 공장사람들부터가 《당비서땅크》라고 부르는 판이니 누구를 탓할것도 없었다. 눈을 감자 그의 머리속에는 이 한두해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어제런듯 되살아올랐다.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4차전원회의이후 큰 기계공장들에는 로보트연구실이 생겨났다. 봉화기계공장에서는 그 실장으로 온덕수가 발탁되였는데 그가 새 사업에 착수하면서 내건 목표가 바로 콤퓨터수자조종공작기계를 개발하는것이였다.

출발은 괜찮았다.

그러나 연구가 심화되면서부터 온덕수는 힘들어했다. 기계장치전문가인 그에게 있어서 프로그람조종계통을 중추로 하는 콤퓨터수자조종공작기계의 개발은 거의나 생땅뚜지기였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1. 4분기생산총화를 끝내고 계획을 넘쳐한 직장들에 시상품으로 내여줄 자전거를 보러 갔을 때니까 4월초쯤일것이다. 그때 김경조는 공장생필에서 시제품으로 생산한 《사슴》표 자전거에 올라앉아 흡족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었다.

《좋아, 아주 좋아! 외국제가 다 뭐야. 이런걸 한해에 2천대씩 만들자, 2천대씩!》

좀해 웃을줄 모르던 지배인 최윤동도 그 수자를 놓고 가만히 속구구를 해보더니 대단하다는듯 입귀를 척 벌려놓았다.

《지배인동무도 구경만 하지 말고 어서 이 꽁무니에라도 올라앉소그려. 내 공장안팎을 한바퀴 빙 돌려드리리다, 하하하!···》

생필통계원처녀가 달려온것은 그때였다. 낯빛이 하얗게 질린 처녀는 지배인과 당비서를 번갈아 쳐다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김경조가 버럭 소리질렀다.

《야! 무슨 일인지 말을 해야 알지.》

《눈이··· 글쎄 당콩대가···》

《좀 차근차근 말해라.》 하고 최윤동이 타일렀다.

《정림이가 눈을··· 콩대를 세우다가 도끼밥이 튀면서···》

갑자기 정림이가 누구였던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여기 생필에 그런 사람이 있었던가?! 아니면 다른 직장에?···

《교환에서 그러는데 로보트실장동지의 아주머니가 막 울면서 찾아왔대요, 정림이 아버지를 찾아달라구.》

김경조는 이마를 쳤다. 정림이는 온덕수의 아들이였던것이다.

정신없이 몇걸음 뛰여가던 김경조는 다시 돌아와 시제품자전거를 끌고나갔다. 온덕수의 집마당가에는 세우다만 문제의 그 당콩대들이 길게 가로놓여있었다. 정신없이 달려온 김경조가 당콩대에 자전거를 들이박았을 때는 온덕수의 안해가 정림이를 부축하고 집을 나서는 참이였다. 어디서 생천을 뜯어냈는지 실밥이 터실터실한 면천쪼박이 정림이의 머리에 필요이상 두텁게 감겨져있었다. 어떻게나 상처를 많이 감싸주려는 본능적인 모성애가 작용한 모양이였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늘 집을 비우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일을 도맡아하던 정림이였다.

온덕수는 그때쯤 최윤동의 차를 타고 뒤쫓아왔다.

《정림아, 내가 잘못했다. 아버지가···》

온덕수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김경조가 직접 차를 타고 정림이를 군병원으로 후송하였지만 끝내 상한 눈을 살려내지 못하였다. 그때부터 온덕수의 얼굴은 나날이 컴검해졌다. 전에없이 집에 사정이 생겼다고 조퇴를 받는 일까지 드문했다. 한번은 김경조가 개발조건물에 찾아갔는데 로보트실에서 동원된 연구사와 기술과 부원이 마주앉아 장기를 두고있었다.

당비서가 곁에 온줄도 모르고 장기판을 두들겨대던 그들은 온덕수의 행처를 묻는 김경조에게 《우리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저께도 일찌기 집에 들어갔는데···》 하고 대답했다.

온덕수의 집에 찾아갔지만 비여있었다. 어느때든 오겠지 하고 기다리느라니 반시간쯤 지나서 그가 나타났다.

김경조는 코김을 킁 내불고 물었다.

《어델 나다니오?》

《읍거리엘 좀···》

《대낮에 뭐요? 남보기 부끄럽지도 않소?》 김경조는 급한 성미를 누르지 못하였다. 《일을 잘하라고 건물까지 따로 내주었더니 거기선 장기판이나 두드리고있지, 실장이라는 사람은 일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제볼장만 보러 다니지. 대체 어쩌자는거요?》

온덕수는 단마디로 《잘못했습니다.》라고 했다.

《답답하오. 무슨 일인지 속시원히 말이라도 하구려.》

《실은 오늘 정림이또래 아이들이 군대에 나간다고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보니 집사람이 부엌에서 혼자 울고있지 않겠습니까. 정림이가 동무들을 바래주러 역에 나가야 한다면서 점심을 싸달랬다던지···》 온덕수의 목젖이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그러고나니 어디 마음이 가라앉아야지요? 집사람은 애를 좇아가고 난 정림이를 편의사업소에라도 넣어볼가 해서 갔다오는 길입니다.》

그 말을 듣고 김경조는 자기를 후회했다.

그는 온덕수를 잡아끌어 옆에 꾹 눌러앉히며 말하였다.

《안됐소. 정림이 직장문제는 내 좀 알아보겠소.》

《그리고 저··· 비서동지, 많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프로그람조종계통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될바에는 자식앞에 좋은 아버지라도 되는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는···》

《으응?!》

온덕수가 그렇게까지 나약해지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김경조였다. 며칠밤을 모대기다가 김책공대에 걸음을 하게 되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당비서가 어데서 정보를 입수해가지고 같은 연구과제를 다루던 사람을 공장에 데려왔다고 하지만 사실은 눈을 감고 대학에 찾아갔다가 뜻밖의 횡재를 한것이였다. 리정은 공장에 온지 보름만에 필요한 자재와 자금타산안을 줄잡아 사무용지 두장에 빼곡이 적어서 참모회의 뒤끝에 제기하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했다. 우리 공장이 무슨 전문과학연구기관인가? 그 아니라도 안고있는 과제가 방대한데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일에 밑천을 털겠느냐 하는 자세였다. 그들의 리해를 도모하기 위해 리정은 친절히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했다.

···이것이 바로 현대자동화의 정수인 수자조종장치다.

이것은 작업기구들의 자동조종을 실현하는 중앙조종부로서 말하자면 사람의 뇌수나 같다. 근 7백종에 1만여개의 전자요소들로 이루어졌다. 제 손으로 뇌수를 하나씩 만든다고 생각해보라.···

허구픈 웃음소리가 울려나왔다.

그의 말이 동화처럼 들렸는지도 모른다.

《웃지 마시오.》 하고 김경조는 말했다. 《그러니 동무들의 견해대로라면 당에서 매 공장, 기업소들에 일일이 밑천을 쥐여주면서 제발 해주십사를 하기 전에는 못하겠다는거요? 물론 비용이 드는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마음먹기탓이 아니겠소.》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김경조가 무엇을 념두에 두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김경조는 공장의 기본생산과제수행을 위해 지출되는 자금과 자재의 일부를 먼저 연구용으로 돌려쓸수 없겠는지 하는 의향이였다. 그가 처음 그런 의향을 내비쳤을 때 최윤동은 어이없어 웃고나서 《과시 당신만이 범할수 있는 과오요.》 하고 롱으로 넘겨놓았었다.

그러나 김경조는 한사코 설명하려들었다.

···금년과 명년에 걸쳐 우리 공장은 경제건설에 절실히 필요한 몇가지 생산지표들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제는 공장의 현존기술장비수준으로써는 원만히 해결할수 없다. 이렇게 놓고볼 때 새 기계를 개발하는것은 공장이 맡고있는 기본생산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일환으로도 된다. 성공만 해보라. 자금상환 같은것은 문제가 아니요, 나라에도 큰 리득을 주게 될것이다.···

김경조는 끝내 최윤동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 자금으로 부분품들이 들어오고 개발조에는 자그마한 단층건물까지 차례졌다.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던 그곳에 처음에는 오솔길이 생겨나고 다음에는 알뜰한 석비레길이 열리였다.

그러던것이 이런 된서리를 맞게 될줄이야.···

김경조의 승용차가 공장정문을 통과한것은 점심시간이 좀 지나서였다. 담장덩굴이 기세좋게 뻗쳐오르기 시작한 공장합숙앞에서 차를 멈추게 한 그는 곧장 리정의 호실로 달려올라갔다.

설마 했던것이 방에는 정말 쇠가 걸려있었다. 관리원을 찾을가 하다가 그만두고 개발조건물에 찾아가보니 거기 광경은 더 딱했다. 문에 대못들이 박혀있었다. 어느 서툰 목수쟁이가 그랬는지 갓 뼁끼칠을 했던 문짝에 망치자리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어떤 녀석인지 용서하지 않겠다!)

김경조는 발길을 돌려 최윤동의 방으로 찾아갔다.

손기척만 듣고도 김경조라는것을 알았는지 그는 문이 열리는것과 함께 반대로 돌아앉았다. 그 심사도 과히 좋지 않다는 뜻이였다. 김경조는 책상밑에서 의자를 뽑아내며 최윤동을 쳐다보았다.

로동복바지를 한뽐이나 접어입어야 했던 시절부터 오늘까지 기계공업부문에서 일해온 최윤동은 1960년대에 벌써 수령님께서 달아주신 영웅메달을 지닌 사람이였다. 초봄감기를 여적 달고있는듯 손수건을 코밑에 가져가는것을 보며 김경조는 생각했다.

(늙었구나!)

지난해 관리국에서 후임문제가 거론되던 일까지 떠오르면서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알알해왔다. 그렇지만 방금 개발조건물에서 목격한 광경이 떠오르면서 퉁명스럽게 첫말이 나갔다.

《지배인이 리정이를 쫓아냈소?》

《쫓아내다니, 누가 그러오?》

《그럼 못은 왜 쳤소?》

《그건··· 안부부장의 지시로 온실장이 그랬을거요.》

《온덕수 그 사람이?!》

놀라는 한편 김경조는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부부장의 지시라 해도 최윤동이 그렇게 모르쇠를 할줄은 몰랐던것이다.

《그러니 내쫓기는 내쫓았구려, 남의 손까지 빌려서.》

《나도 그를 생각해서 한 일이요. 사람이 백사람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병이 없이도 죽는다는데 그가 성화를 어떻게 견디겠소? 그러니 일단 돌아갔다가 형편을 봐가면서 다시 오던가말던가···》

《지배인동무!》

김경조와 눈길이 마주치자 최윤동은 《에이, 참!》 하고 책상을 탕두드렸다. 《이거야 어디 힘들어서 해먹겠소? 우아래로 틈바구니에 끼워 살이 내리오, 살이!···》

김경조는 이통이 난 사람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요즘은 그저 쩍하면 힘들다, 못해먹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난사였다.

《그가 언제 떠났소?》

《아침부터 안 보이오.》

그렇다면 지금쯤은 대학에 돌아가고도 남았을것이다. 김경조는 마음을 눅잦히려는듯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다시 물었다.

《안부부장은 뭐라고 합디까?》

《뭐라겠소. 한냥짜리 굿하다가 천냥짜리 징 깼다지.》

《흠, 그렇군.》

벌써부터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그저 끝날 일이 아니라느니, 법에서 개입할지도 모른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돈다고 최윤동은 자못 걱정이 되여 말했다. 김경조는 최윤동앞에 놓여있던 전화기를 끌어당겼다. 교환수의 목소리는 언제나 개여있었다.

《아무데나 대오.》

아무데나 댄다는게 말이 되는가? 김경조는 그만 스스로도 짜증이 나서 어리둥절해있는 교환수에게 다시 소리쳤다.

《정문에 대오!》

곧 정문에서 전화를 받았다.

《누구 한사람 시켜서 그 합숙뒤에 개발조건물 있지? 거기 문짝에 못질을 해놨는데 당장 원상대로 복구해놓소, 원상대루!》

《거 안부부장이 가만있겠소?》

김경조가 송수화기를 내려놓자 최윤동이 념려하는 말이였다.

《이번 일의 책임은 전적으로 나한테 있으니 정 문을 닫아매겠거든 내 방부터 못을 치라고 해야지요.》

김경조는 반시간쯤 앉아있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옷걸이에 모자를 훌 던져걸고는 손이 닿는대로 앞에 놓인 의자를 끌어당겼다. 그러나 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외가대기를 끄는 소처럼 머리를 짓수그리고 서있었다. 최윤동의 앞에서 소리는 쳤지만 분명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덜미가 서늘해왔다.

김책공대에 전화를 걸 생각으로 손을 가져가는데 맞받아 신호가 울렸다. 받아드니 안시학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참, 여태 방에 있으면서도 전화를 안 받았나?》

《자넨가? 지배인방에 가있었네. 내 이제 숙소로 가지.》

《아니 아니, 내가 올라가겠네.》

담배 한대를 거의 태웠을 때 손기척이 나더니 안시학이 방에 들어왔다. 어느때 보아도 회의장에 나서는듯 단정한 차림새를 흐트리지 않는 그가 얼굴표정까지 심각하게 하고 나타나자 서름한 공기가 떠도는것 같았다. 안시학은 김경조가 회포요, 뭐요 하면서 모처럼 벼르어 마련한 공식적인 분위기를 흐려놓을가봐 념려되는듯 대뜸 사업얘기부터 꺼내놓았다. 당비서가 당사업은 하지 않고 돈, 돈 하며 돌아간다느니, 공장에 난데없이 《유령회사》가 생겨나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에 숱한 자금을 쏟아붓고있다느니 떠도는 소문들에 대하여 안시학은 어성을 높여 지적했다.

《혹 그 줄방전가공반을 만든다고도 해보자구. 이 공장이 어떤 공장인가? 수령님께서 자력갱생본보기공장이라고 내세워주신 단위가 아닌가. 그러니 여기서야 마땅히 자력갱생표본이 나와야지.》

김경조는 묵묵히 미간을 문지르고있었다.

《내 다 알아봤네. 말이 개발이지 사실은 이것저것 모아다가 조립을 한다더구만. 뭐 조종장치는 어느 나라제, 볼나사는 또 어느 나라제··· 거기다 현행생산자재와 자금까지 류용하고?》

그에는 할말이 없었다. 사실 김경조는 모든 일이 잘되여 새형의 공작기계가 탄생하면 공장이나 나라에 큰 리득이 되리라고만 생각했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줄은 예상치 못했었다.

(그래, 분명 잘못이 있다.) 하고 김경조는 생각했다.

(성공에만 눈이 어두워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헤덤벼쳤다. 이건 정말 위험하다. 이것을 방임한다면 앞으로도 이런저런 김경조들이 나타나 나라의 법질서를 문란하게 할게 아닌가?)

해당한 절차를 밟아 연구사업을 시작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험하게 번져지지는 않았을것이라는 생각, 하다못해 안시학에게라도 귀뜀했더라면 어떻게 되였을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여간 일은 일이고···》 안시학이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말을 돌렸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를 그냥 합숙밥만 먹이다가 돌려보낼셈인가? 난 벌써 자네가 돌아왔다는 소리를 듣고 식당에다가 저녁은 나가 먹겠노라고 말을 해놨네.》

그제야 김경조도 시장기를 느꼈다.

《우리 집에 가세.》

그들이 방을 나섰을 때는 이미 청사에 불켜진 방이 몇 안되는 때였다. 봄바람치고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멀리 추봉산쪽에서 내리불어왔다. 맞바람이 부는데도 단추를 몇개 헤쳐놓은 김경조는 걸으면서까지 자기 생각에 골몰해있었다.

이 하루밤만이라도 골치아픈 사업얘기에서 벗어나 순수한 정희를 나누고싶었던지 안시학이 보다못해 한마디 했다.

《아직도 미련이 있어 그러나? 그러다간 진짜 일을 쳐.》

《글쎄, 벌을 받으라면 받겠네. 하지만···》

《하지만은 또 뭔가? 당비서가 이러니 밑에서도 닮아가지.》

《그건 무슨 말인가?》

《최수광이라더라? 그 젊은 부원 말이요. 리정을 돌려보내면 안된다고 통사정을 하더구만. 그런데 그의 말은 연구사업이 중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리정이라는 사람한테 빠져서 그러는지 분간을 못하겠거던. 뭔가 내속은 터놓기 힘들어하는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그 리정이라는 사람도 록록치는 않습데. 겨우 설복을 해서 돌려보냈으니 당신쪽에선 그저 모르는체 하고 덮어버리게.》

《덮어? 그렇게 될가?》

《사람이 왜 이리 떨떨해졌나? 아무리 열가지를 하고싶어도 당에서 한가지를 하라면 한가지를 해야 한다고 그렇게 종업원들을 가르치겠지? 당비서가 말과 행동이 달라서야 안되지.》

(정말 그럴가? 우리는 전문공작기계를 생산하는 공장도 아니니 새 기계와 담을 쌓아도 무방하단 말인가? 아니, 지금은 공장의 기술장비수준을 보다 높은 단계에 올려세우는것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그 요구가 몸에 느껴지는데도 당에서 어련히 그 필요를 충족시켜줄테니 침착하게 기다리자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 집이 이쪽이 아니던가?》

자기 생각에만 옴해서 김경조는 하마트면 집앞을 그냥 지나칠번 하였다. 안시학을 뒤에 달고 마당에 들어섰을 때 한쪽구석에서 불쑥 인기척이 느껴졌다. 공장탁아소에 다니는 안해였다.

《아유, 왜 인제야 들어와요?》

《내 무슨 세살난 아이라구 여기까지 나와 야단이요?》 하고 김경조는 모름지기 사람들속에서 나도는 무슨 소린가를 얻어듣고 속이 까매서 기다리고있었을 안해에게 핀잔조로 이야기하였다.

《참 여보, 쌍둥이아버지가 왔소.》

《안녕하시오? 안시학이올시다.》

남편에게만 신경이 가있던 안해는 안시학의 인사를 받자 《어마나, 정말 쌍둥이아버지가 오셨구만요. 한데 이걸 어쩌나···》 하고 급해맞은듯 몸을 돌려 부엌문쪽으로 뛰여갔다.

《뭐 어쩔게 있소, 있는대로 차리시구려.》

안시학의 목소리가 뒤를 좇자 안해는 잠시 멈춰섰다.

《그런게 아니라 집에 손님이 와있어서···》

《손님이?》 김경조는 앞서 손님이 와있다는 소리에 졸짱을 푸려다 말고 허리를 폈다. 《손님이라니, 그게 누구요?》

《말도 마시라요. 전에 순대죽을 대접할 땐 여간 얌전해뵈지 않더니 내 그렇게 집요하구 끈덕진 사람은 처음 봤다니까요.》

《가만! 당신 이자 뭐랬소, 순대죽?》

김경조는 뭔가 더 설명하려는 안해를 돌려놓고 제 먼저 집으로 달려들어갔다. 신발 한짝이 잘 벗겨지지 않아 뒤발질을 하며 방안을 넘겨다보는데 바로 코앞에서 리정이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리동무! 옳구만, 옳아!》 김경조는 죽다살아온 사람이라도 만난것처럼 붙잡고 돌아갔다. 《가지 않았구만, 가지 않았어! 허허허. 가만, 그러니까 오늘 하루종일 여기 와있었단 말이요?》

《그럼 뭐 울며불며 돌아갈줄 알았습니까?》 푸접좋게 웃음짓는 리정의 주위에는 실로 꿰여맨 종이뭉테기며 참고서들이 널려있었다.

《보다싶이 전 비서동지네 집 전실에 저의새 <파티션> (Partition-콤퓨터기술용어:분할, 공간, 구획)을 갈라놓았습니다.》

《방안에 들어가 기다릴게지.》

대답은 뒤에 서있던 안해에게서 들려왔다.

《들어가서 기다리라는데 어디 말을 들어야지요. 아이구, 내 오늘 빈집에 저 선생을 앉혀놓고 땀을 뽑은걸 생각하면, 호호호···》

손님을 혼자 둘수도 없고 그렇다고 결근할수도 없고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김경조는 리정의 팔을 끼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에게 방석을 권하다가 불쑥 안시학이 생각나서 《아차!》 하고 밖으로 뛰여나갔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가버린것이였다.···

안시학은 벌써 공장을 가까이하고있었다.

생각할수록 일이 맹랑하게 되였다. 대학에 돌아간줄로 알았던 리정이 그때껏 김경조의 집에 틀고앉아 버티기를 하고있을줄이야!

더우기 섭섭하고 놀라운것은 김경조의 태도였다.

공장문을 나설 때만 해도 비판을 접수하고 자기를 반성해보는것 같더니 리정을 만나자 태도가 돌변하여 언제 그랬더냐싶게 돌아가는것이였다. 오늘 밤 그 집의 진짜손님은 자기가 아니라는것을 깨닫자 안시학은 돌아서고말았다.

수일내로 그는 그 말썽많은 수자조종공작기계분공장의 설비납입문제로 외국출장을 떠나야 했다. 이전 동유럽나라들과 맺은 계약들이 모두 휴지장이 되여버린 조건에서 갈 필요가 있겠는가고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떻게 해서나 해결해볼 심산으로 떠나는 길이였다. 안시학이 봉화기계공장에서 일어난 사고와 줄방전가공반개발문제를 조용히 처리해보려고 한데는 설비납입을 마무리할 때까지 주변이 들볶이지 않았으면 하는 심리도 작용했었다.

물덤벙술덤벙하는 김경조를 눅잦히고 설비납입까지 성사시키면 당앞에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허나 이 순간 안시학은 자기가 김경조와의 인간관계며 유리한 사업환경이며를 내심 타산하면서 원칙과 어긋나게 행동한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되였다.

부에 반영해서라도 김경조를 멈춰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온 그는 평양에 전화를 걸어 차를 불렀다.

공장에 더 머물러있을 필요가 없었던것이다.

김경조의 집에서는 소주를 받친 저녁상이 들어왔다. 집에서 기르던 콩나물을 둬접시 뽑고 봄남새를 올린 간소한 상이였다. 그러나 리정을 만난 순간부터 김경조는 시장기를 잊어버렸다.

《자금류용문제야 내가 책임을 져야지. 한데 그 조립품이니 뭐니 하는 소문만은 정 듣기 싫더군. 부모도 똑똑치 않은 물건을 당앞에 우리것이라고 내놓을수 있느냐 하는건데···》

《그러니 볼트, 나트까지도 우리가 만들어서 채워야만 우리거라는겁니까? 난 자력갱생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고 리정은 반박했다.

《전엔 국내에서 할수 없는것은 사오고 할수 있는것은 저마다 들고일어나 만들었지요. 그런 식으로 자력갱생을 해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 있는 공장들에서 생산이 정상화되면 얼마든지 보장받을수 있는것까지 자체로 만들겠다고 돈과 시간을 랑비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면 돈과 시간을 어디에 투자할것인가? 지금 발전되였다는 나라들은 남들이 따라올가봐 닫긴형체계로 기계를 개발하고있는데 례하면 이런걸 깨야지요. 우리 식의 새로운 조종체계를 개발하는것과 같은 일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래!》 김경조는 무릎을 쳤다.

누구나 할수 있는 자력갱생기지를 차려놓고 90프로의 자력률을 보장했다고 자랑하기보다 단 10프로라도 남들이 손을 대지 못하는 첨단기술을 돌파하는데서 자기 몫을 찾겠다는 말이였다.

리정에 대한 찬탄과 함께 김경조는 새 기계의 개발을 놓고 자기가 취한 방법상에는 잘못이 있을지언정 초지는 굽히지 말아야 하겠다는 자각이 새삼스럽게 갈마들었다.

그의 집에는 김정일동지를 모시고 찍은 한상의 뜻깊은 기념사진이 모셔져있었다.

사진속의 김경조는 무척 젊어보였다.

전쟁마저 에돌아간 심심산골, 하늘조차 세모배기로 바라보이는 곳에서 태여난 그의 소원은 바다, 배, 갈매기··· 이런것이였다.

전후 소원대로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배를 뭇는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뗀 김경조는 한창나이에 김정일동지를 몸가까이 모시고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는 영광도 지니였다.

《내가 슬하를 떠나올 때 그이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오?

<경조동무, 내려가서 일을 쓰게 하지 못하면 다시 중앙당에 올려다 놓겠소.> 하시더란 말이요. 롱담삼아 하시는 말씀이였지만 난 정말 많은것을 생각했소. 마음놓고 일을 잘하라는 말씀이시구나, 내 능력이 모자라면 다시 불러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그래서 영원히 혁명의 길을 함께 가자는 믿음이시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두려운게 없었소. 그런데 지금은 이게 무슨 꼴이요!》

덧국을 펴들고 올라오던 김경조의 안해가 밥상을 밀어놓고 불덩이를 토하는 두사람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다시 부엌으로 내려갔다.

얼마후 리정은 일어섰다. 김경조는 자고 가라고 했지만 정림이가 공부를 하러 오는 날이라고 기어이 가야 한다는것이였다.

이튿날 아침일찍 김경조는 간밤의 일로 미안한것도 있고해서 안시학의 숙소로 찾아갔다. 그런데 안시학은 밤중으로 차를 불러서 평양으로 떠나갔다는것이였다.

(그쯤한 일에 노염을 사서 가버린단 말인가.)

안시학이 말없이 떠나가버린데 대해 김경조는 사적감정관계인것으로 가볍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며칠후 리정이 검사의 호출을 받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