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장 1

 

서 장

1

 

1988년 9월 4일 밤 10시.

서평양역을 통과하는 밤렬차의 기적소리가 멀리 사라지고 이슬비에 젖어 번뜩이는 레루장을 쿵쿵 구을던 무쇠바퀴소리마저 어둠속으로 혼곤히 잦아들무렵 서포천과 보통강의 합수목인 남교동지구에 저력있고도 정중한 방송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당원동지들!

우리 당은 이미 우리 인민이 점령하여야 할 투쟁목표와 그 실현을 위한 옳바른 전략전술을 제시하였다. 우리 당이 내놓은 제3차 7개년계획은 공화국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와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사회주의건설의 웅대한 강령이다.

제3차 7개년계획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는 여기에···》

약간 내리워놓은 차창으로 흘러드는 방송원의 목소리를 듣고 박송봉은 운전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하였다. 아슴푸레한 외등빛이 안개를 뿌리듯 뽀잇이 휘감겨있는 전주에 회백색으로 보이는 원추형고성기가 매달려있었다. 거기서 울려나오는것은 공화국창건 40돐에 즈음하여 전체 당원들에게 보낸 당중앙위원회 편지였다.

박송봉자신도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서 그 편지를 채택하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 참가하였지만 공화국창건기념일을 눈앞에 둔 이밤에 다시 듣게 되는 감흥이 류달랐다.

《차는 저 앞마당에 가져다세우오.》

박송봉은 손을 들어 운전사에게 먼발치의 공작기계전시관마당을 가리켜보이고 걸음을 옮겼다. 9월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식을줄 모르는 복거리여운에 시달리던 도시상공에 비구름이 덮여 한결 신선한 공기가 환기되는것 같았다.

그는 걸으면서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당원동지들!

우리앞에 나선 과업은 어렵고 방대하지만 그것은 끝없이 영예롭고 보람찬 과업이다.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전통이 깃들어있는 혁명의 붉은 기발이 우리를 대진군에로 부르고있으며 당과 수령이 안겨준 주체의 혁명정신이 막을수 없는 힘으로 우리를 앞으로 떠밀고있다.》

방송원의 목소리에 격조를 보태듯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서평양조차장에서 무어낸 새 화차편성을 달고 길차지구간으로 들어서는 기관차의 기적소리였다. 우리 조국은 자기의 창건절을 며칠 앞둔 이밤도 쉬임없이 사회주의공업국가의 강력한 힘을 다지고있었다. 멀리 광복거리건설장쪽에서 번쩍이는 용접불꽃들과 간단없이 들려오는 기적소리, 프레스소리, 비속에도 랑랑한 방송원의 목소리에서 박송봉은 사회주의건설에 대한 끓어넘치는 의욕을 걷잡기 어려운듯 꿈틀거리는 조국의 힘을 느끼고있었다.

박송봉이 이번까지 네번째로 찾는 공화국창건 40돐기념 공작기계전시관은 우리 조국이 지니고있는 그 거세찬 힘과 미래에 대한 깊은 사색의 축도라고도 볼수 있었다.

원래 승리자동차종합공장 제관조립직장에 꾸리기로 되여있던 전시관을 여기 남교동지구의 새로 건설한 화차수리공장으로 옮겨주신분은 위대한 김정일동지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수령님께서 친히 발기하고 관심하시는 전시회를 수도의 한복판에서 크게 열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전국의 90여개 공장, 기업소들에서 개발한 공작기계와 건설기계들을 전시할것으로 예견했던 전시회규모도 더 넓혀 150여개의 단위(대학 및 연구기관 포함)가 참가하도록 하여주시였다.

개관이 박두한 오늘 박송봉은 겹쳐드는 일거리들을 모두 뒤로 미루고 전시관을 돌아보러 나왔다.

김정일동지께서 공작기계전시관에 수령님을 모실수 있도록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라는 가르치심을 주시였기때문이였다.

수령님을 모신다면 그전에 반드시 김정일동지께서 나와보실것이라는 확신으로 하여 박송봉은 흥분되여있었다.

그래서 어두운 구석이 없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일부러 차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던것이다. 그는 뽀뿌라나무들이 우중충하게 늘어선 뒤길로 방향을 꺾어들었다. 사람들의 눈이 잘 가닿지 않는 곳이 어떻겠는지 념려돼서였다. 그는 라이터불을 벙긋거리며 예견성있게 전지를 준비해가지고 오지 못한것을 자책했다.

어데선가 초타는 냄새가 연하게 풍겨왔다.

얼마 안 가서 나란히 키를 솟군 뽀뿌라나무들중에 별스레 키가 작은 나무에 잇대여서 지은 막이 나타났다. 박막으로 벽을 둘러쳤는지 고깔모양을 한 가설막이 불초롱처럼 휑뎅 들여다보였다.

의문을 품고 다가가던 박송봉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가설막을 몇발자국 앞두고 맨땅에 누워있는 사람의 형체가 안겨왔던것이다. 가슴이 후두둑했다. 박송봉은 애써 마음을 진정하며 자기 주머니를 더듬었다. 빈 종이장이 한장 나왔다. 거기에 불을 달아들고 사람을 살펴보았다. 겉옷은 어쨌는지 흰 와이샤쯔에 맨 양말바람의 사나이가 축축한 땅우에 불편스레 누워있었다. 소심한 가을비가 사나이의 갱핏한 몸을 소리없이 적시고있었다.

《동무! 동무!···》

기척이 없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불덩어리였다.

박송봉은 다짜고짜 그를 둘쳐업고 오던 길로 되돌아섰다.

그러나 몇걸음 못 가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말았다. 기신없이 업혀있던 사나이가 별안간 요동을 치면서 그의 몸중심을 흔들어놓았던것이다.

진땅에 발이 미끌면서 그만 넘어질번 하였다.

사나이가 손을 흔들며 헛소리를 쳤다.

《도와주시오, 살려··· 주시오!》

박송봉은 어둠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누가 없소? 장동무!》

장동무란 그의 운전사였다.

전지불이 흔들거리고 사람들이 나타났다.

《누구요?··· 무슨 일이요?》

《사람이 쓰러져있구만!》

《원, 이런···》

《누구 아는 사람이 없습니까?》

박송봉은 혹시 모여온 이들중에 사나이를 아는 사람이 있을가 해서 얼굴을 살폈으나 선뜻 다가서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전시회참가자인것 같은데?!···》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박송봉의 바로 곁에 서있던 중년사나이가 《가만, 이 사람을 봤소. 우리 〈안흥104〉호옆에 로보트를 전시했던 사람이요. 그렇지, 봉화기계요!》 하고 소리쳤다.

《봉화기계?! 틀림없습니까?》

박송봉이 거듭 확인했다.

《예, 전 안흥공작기계공장에서 왔는데 한유준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며칠전에 우리 전시대곁에 자리를 잡았댔지요. 그제 저녁부터인가 로보트가 잘 동작하지 않아 애를 먹다가 끝내 퇴송되여가는걸 보았댔는데 어떻게 여기에···》

신분이 밝혀지자 주위에는 오히려 이상한 침묵이 흘렀다.

몇달전부터 여기 전시관으로는 전국의 수많은 공장, 기업소와 과학연구 및 교육기관들에서 출품한 백수십종에 수백여대의 공작기계들과 로보트, 전자 및 자동화요소들이 꼬리를 물고 밀려들어와 대성황을 이루었었다. 서평양역으로부터 전시관뒤쪽 운반통로까지 꽃보라와 꽃테프에 묻혀버린 기계설비들이 실려오고 들려가고 야단이더니 얼마전부터는 해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뒤문신세를 지고 빠져나가는 단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동기계나 로보트들의 경우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금시까지 잘 돌아가던 기계들이 멎어서는 일이 종종했다. 처음 한동안은 물러앉아 두드려볼 여유를 주는것 같더니 개관날자가 박두해오자 기상이 선들선들해진 주최측에서는 단위별로, 품종별로 전시품을 확인하고 부실한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이 되돌려보냈다.

그것도 곱게 잔등을 쓸어보낸것이 아니라 전시회를 총찰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학년말시험에서 락제를 한 애꾸러기들을 닥달하듯 한참씩 다불러대고야 야밤퇴송을 승인해주었다. 그런 단위의 출품자들은 머리도 못 들고 황황히 사라지기가 통례였다.

이 사나이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다른것이 있다면 순순히 물러간것이 아니라 이틀째 내리는 비속에서 가설막을 지어놓고 퇴송된 로보트와 함께 있은것이였다.

《왜들 멍청해있소? 이러다 사람죽이겠소.》

환자를 알아본 그 안흥사람이 야단을 치자 누군가는 전시관 어느 홀에 자리를 잡았다는 의료봉사대를 찾아 뛰여가고 다른 사람들은 퇴송조직도 제대로 하지 않은 공장측을 욕하며 환자를 업어갈 잡도리로 저마끔 등을 내댔다. 그때였다.

《덕수! 이게 우리 온덕수가 아니야?!》 하는 소리와 함께 웬 덩지큰 사나이가 담을 허물며 들어왔다. 그 바람에 윷가락들처럼 갈라진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래서 사나이를 쳐다보았다.

《온동무, 왜 이러오? 무슨 일이요?》

대답이 없었다. 사나이는 모여선 사람들에게서 사연을 따져묻고싶은듯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모두 눈길을 외면하였다. 전지불에 비쳐져서인지 눈섭이 엄지손가락같이 굵고 여느 사람들보다 한뽐쯤 넓어보이는 어깨가 안쪽으로 약간 우그러든 사나이는 몹시 거쿨져보였다. 사나이가 고개를 드는 순간 박송봉은 그를 알아보았다.

봉화기계공장 당비서 김경조였다.

《김경조동무가 아니요?》

김경조도 그를 알아보고 반기는것을 박송봉이 제지하며 《환자부터 살피기요. 비를 맞지 않게 해야겠소. 의사를 데리러 보냈으니 그가 올 때까지 가설막에 다시 데려다 눕히기요.》라고 했다.

《제가 업겠습니다.》

《됐소. 기왕 옷을 마친바에 내가 업고가지.》

박송봉이 업고 몇사람이 뒤따르고 해서 찾아간 곳이 환자가 대충 둘러쳐놓은 가설막이였다. 자리가 좁아서 머리만 들이밀었던 안흥사람은 제김에 물러나고 박송봉과 김경조 그리고 목재로 만든 짐함우에 뉘여 놓은 온덕수만이 남게 되였다. 허리굵은 초대가 꿈지럭꿈지럭 불꼬리를 말아올리고있었다.

《1부부장동지, 고맙습니다.》

김경조가 자기네 사람을 도와준데 대한 인사를 했다.

《그런 말 마오. 한데 저 동문 누구요?》

《온덕수라고, 우리 공장 기술자입니다.》

《공장기술자라고?···》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일이···》

《아니, 그럼 퇴송련락을 못 받았단 말이요?》

《퇴송이라니요?!》

박송봉이 사연을 이야기해주자 김경조는 몹시 당혹해하는 눈치였다. 약간 우그러든 어깨가 흥분으로 해서 가볍게 오르내렸다. 김경조는 이 모든것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듯 주먹을 쥐였다폈다하며 닷새전에 찾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벙실벙실 웃고있던 온덕수를 망연히 내려다보고있었다. 지금쯤은 전시관에 자리를 잡고 개관시간만 기다릴거라며 공장당위원회에 갓 배치된 젊은 부원 최수광의 손에 다과구럭까지 들려가지고 찾아왔던것이다.

그런데 이게 뭐냐? 우리 봉화기계가 온 나라 기계쟁이들이 다 모인 전시회장에서 밀려났다는 말이다.

한데 온덕수는 왜 공장에 알리지 않았는가?···

김경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가운데 문제의 소재공급용로보트가 각을 뜯기운채 놓여있고 온덕수의 양복은 뚫어진 천정구멍에 비받이물건처럼 매달려있었다. 문득 속에 파고드는바가 있었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듯 기계공은 기계를 낳는다.

그것은 차고 무겁고 감정이 없는 쇠붙이지만 어쩌면 자기를 닮은 친자식처럼 생각되는 그런것이다. 온덕수는 자기가 직접 설계를 하고 제작과정까지 책임졌던 로보트가 공장의 이름을 부끄럽게 한데 대하여 참을수 없는 수치를 느꼈을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고장을 퇴치해보려고 홀로 이런 곤혹스러운 일을 벌려놓았을테지···

김경조가 밖에 대고 《최동무!》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과일과 당과, 음료, 통졸임 같은것이 들어있는 구럭을 량손에 갈라 든 젊은 사람이 비옷고깔을 벗어넘기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내가 자리를 뜬새 온실장의 전화를 받은게 없었소?》

《없었습니다.》

물어보나마나한것이였다.

최수광의 깐깐한 성미로 보면 이렇듯 중요한 문제를 잊고있었을리 만무했다. 뒤축에 두툼한 다이야고무를 덧댄 온덕수의 구두가 보였다. 김경조가 그것을 집어들고 들먹하게 고인 비물을 쏟아버리려는데 박막이 너풀하더니 오목한 눈매에 생김이 여간치 않아뵈는 젊은이가 위생복차림의 녀성을 앞세우고 나타났다.

죽은듯 누워있던 온덕수가 무엇을 움켜쥐려는듯 팔을 뻗치며 헛소리를 쳤다. 녀의사가 온덕수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공대··· 공대! 도와주시오, 로보트···》

《이자 로보트라고 하지 않았소?》

박송봉이 믿어지지 않는듯 물었다.

《예, 이 사람은 지금··· 기계를 살려달라고 하는겁니다.》 녀의사가 무겁게 허리를 폈다. 《제가 아니라 김책공대를 찾고있습니다.》

녀의사의 말은 비상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박송봉은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기계를 살릴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있는 기술자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든 도와주고싶었다. 그는 밖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여기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온 동무가 없습니까?》

《예, 접니다. 제가 김책공대에서 왔습니다.》

방금 의사를 불러온 눈매가 칼자리같은 그 젊은이였다.

몇걸음 다가오던 그의 발길이 무춤 굳어졌다. 문앞에서 김경조와 함께 온 봉화기계공장의 비옷입은 부원과 마주쳤던것이다. 뜻밖의 상봉에 당황한듯 반보가량 물러서기까지 한 최수광은 상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나서 《리정이···》 하고 불렀다.

허나 그 소리는 겨우 입속에서 맴돌았다.

박송봉이 끼여들며 단도직입 물었다.

《봉화기계를 도와줄수 있겠소?》

《해보겠습니다.》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한지 얼굴이 희고 몸매가 날씬한 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고는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고맙소. 가능한껏 도와주시오. 이건 내 부탁이 아니요.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부르는 저 목소리가 동무에게 의무를 지워주는거요. 그럼 믿겠소.》

손을 잡아준 다음에야 박송봉은 자기소개도 없이 너무 일방적인 부탁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상대도 몹시 감심한 상태여서인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박송봉은 김경조에게 뒤일을 부탁하고 막을 떠나갔다.

한편 봉화기계공장 당비서 김경조는 녀의사의 권고대로 온덕수를 림시치료시설이 갖추어진 전시관안으로 옮긴 후 돌아와서 귀인처럼 나타난 젊은 연구사와 다시 마주앉았다.

이름은 리정, 아직 독신인데 김책공업종합대학 로보트공학연구소 연구사였다. 바오래기 당겼더니 소 묻어온 격이라 할지··· 프로그람전문가라는데 기계속은 또 어찌 환한지 분해된 부분품들을 한번 살펴보고 곧 장치부분에는 이상이 없으니 프로그람에 문제가 생겼을거라고 하였다. 김경조가 머리를 기웃거렸다.

《거 너무 쉽게 속단하는게 아니요?》

그 말은 하지 않을걸 그랬다.

연구사는 김경조를 피끗 눈찌사납게 쳐다보더니 능란한 솜씨로 입출구장치에 물려있던 종이테프를 분리해냈다. 로보트는 자동조종기계들에서 보편적으로 리용되는 기계어프로그람에 따라 움직이게 되여있었다. 정말 프로그람이 잘못되였다면 수만행이나 되는 명령문들이 기록된 착공테프(구멍테프라고도 하는데 종이테프에 구멍을 뚫는 방법으로 자료와 명령문을 기록한다.)를 일일이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것인데 그게 가량있는노릇같지 않았다.

김경조는 비에 젖은 모자를 줌안에 꾹 쥐여짜며 생각했다.

(리정이라고 했지. 이 량반 참 헐치 않겠어. 저것 좀 보지? 일을 하면서도 그냥 목대가 뻣뻣해있는걸···)

정말 독한 사람이였다. 리정은 하루낮, 이틀밤을 꼬박 가설막에 들어박혀 방대한 프로그람을 몽땅 세척해내고야말았다.

9월 6일 동틀무렵 로보트는 다시 살아났다.

미열을 단채로 뛰쳐나와 리정을 보조하고있던 온덕수는 너무 기뻐서 눈물까지 보였다. 봉화기계공장의 로보트는 삽시에 유명해졌다. 사실보다 허구가 더 많아진 소문이 전시관을 비쓸듯 지나갔던것이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이 직접 찾아와 구석진 곳이기는 하나 예비로 내놓았던 자리에 봉화기계공장의 소재공급용로보트를 다시 전시해도 좋다는 이례를 베풀고 돌아갔다.

그도 실은 박송봉이 로보트가 살아나면 전시회에 다시 출품할수 있게 도와주라고 미리 부탁해놓은것이였다.

김경조는 리정에게 절이라도 하고픈 심정이였다.

등 뜬김에 희떠운 소리도 던졌다.

《동무, 전에 화술을 하지 않았소?》

《예? 허허허···》 알만 하다는듯 짧게 웃고나서 리정은 《중학교때 씨름경기에 나가 2등까지는 해봤습니다만.》라고 대꾸했다.

《길에 돌도 연분이 있어야 찬다는데 우리 친하기요. 무슨 일이 또 생겨도 그래 며칠간만 우리 전시대에 남아줄수 없겠소?》

《예, 그러지요.》 리정은 쾌히 동의했다.

전시작업이 끝나자 일단 기계옆에 온덕수를 세워놓은 김경조는 그냥 뻗쳐대는 리정을 한사코 차에 태워 대학 교직원기숙사에까지 실어다주고서야 공장으로 돌아갔다. 하기는 리정으로서도 이 며칠간의 긴장과 피곤이 쌓일대로 쌓여 더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남향받이창문으로 흘러드는 해빛이 한쪽벽에 붙여놓은 침대우에 와닿아 모포가 따스했다. 볼을 대면 저절로 눈이 감길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자리에 눕자 전시관에서 만났던 최수광의 퉁투무레한 얼굴이 떠오르면서 정신이 새록새록해졌다.

누이가 생각났다. 이름처럼 순하던 누이 리순···

누이가 최수광을 보고 뭐라고 했던가?

그래, 《8번》이라고 했댔지.···

아니, 자꾸 허튼 생각을 하지 말고 우선 잠을 좀 자고보자.

아늑하고 정이 든 호실··· 내 침대, 침대란 참말 좋구나!···

베개모양을 잡느라고 몇번 머리를 짓싯거리고나서 리정은 깨끗한 백포냄새를 맡으며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