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4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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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큼직한 지함 두개를 량손에 갈라들고 기숙사를 찾으시였다. 지함속에는 책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기숙사에 있는 학급동무들의 책장은 대체로 교과서들과 몇권의 참고서들만이 끼워져있었다. 만페지책읽기운동에 도움을 주려고 책들을 구해오셨던것이다. 경제학부기숙사의 현관앞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지함들을 내려놓으시였다. 무겁게 들고오시느라 팔이 어지간히 뻐근하시였다.

휴식일의 기숙사구내는 청년대학생들의 노래와 춤으로 흥성거렸다.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대기가 쌀쌀하지만 대낮에는 이른봄의 훈기가 완연히 느껴졌다. 봄의 정취는 청춘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그들은 따스한 봄볕을 함뿍 받으며 학급별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청춘들의 랑만과 환희가 넘쳐흐르는 기숙사구내는 금시 떠나갈듯이 떠들썩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선채로 사위를 둘러보며 학급동무들을 찾으시였다. 그들은 기숙사 왼쪽 방울나무밑에서 춤판을 벌리였다.

그이께서는 빠른 시선으로 정다운 얼굴들을 더듬으시였다. 학급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서 이런판에는 대체로 섭쓸리지 않던 전쟁시기의 땅크중대장이였던 구동무까지 나타난걸 보면 호실에는 한명도 남아있는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옥류교원무곡》을 부르며 재간껏 춤동작을 이어갔다. 제대군인학생들은 팔다리가 어찌나 꽛꽛해보이는지 춤을 춘다기보다 보건체조를 하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자신은 자기의 춤동작이야말로 나무랄데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으로 한껏 만족스럽고 흥겨운 얼굴들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도 가슴이 설레이시였다. 남달리 다감한 정서와 락천적인 성품을 지니신 그이께서는 춤과 노래도 즐겨하시였다. 잠시 땀을 들이며 서계시던 그이께서는 춤판에 섭쓸리려고 그쪽으로 걸음을 떼시였다. 그런데 이때 기숙사안에서 최영화가 나왔다.

《아니, 학급동무들이 모두 춤을 추고있는데 동무는 왜 빠졌댔습니까?》

《나야 그럴 형편이 못되지 않습니까.》

최영화는 히죽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손에는 교과서와 학습장이 들려있었다. 홀로 호실에 남아 공부를 하다가 밖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에 정신을 모을수가 없으니까 도서관으로 떠난 걸음인것 같았다.

《통과하지 못했던 과목들의 시험도 다 친지가 오랜데 인제는 머리쉼도 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공부에서 남들을 따라가자면 난 아직 멀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성큼 다가서며 그의 손목을 덥석 잡으시였다.

《오늘은 내가 동무의 학습시간을 좀 빼앗아야겠습니다.》

그이께 손목을 맡긴 최영화는 어리둥절하여 두눈을 꺼벅거렸다. 자기의 학습을 늘 친절히 도와주는 그이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영문을 알수 없었다.

《나와 함께 춤을 춥시다. 짝패가 없던김에 최동무를 만났으니 마침 잘되였습니다.》

최영화는 흠칫 놀라며 물러서려고 했다.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나같은 서툰내기가 정일동무와 짝을 무으면 어찌겠습니까. 춤을 잘 추는 녀동무들도 학급에 많지 않습니까.》

《난 오늘 꼭 영화동무와 함께 춤을 춰야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격다짐으로 그의 손을 이끄시였다. 그의 불타는 학습열의를 값높이 사주고싶으셨지만 그대로 두면 학급집단의 정서와 분위기에 그만이 융합되지 못할수 있었다. 그리고 여차하면 책밖에 모르는 《글뒤주》로 되여버릴수도 있었다. 공부에만 전심을 하는 그의 생활에서는 그런 병집의 기미가 진작 나타나고있었다. 언제봐야 늘 조용한 구석을 찾아 외따로 떨어져서 책읽기를 좋아했고 공부할 시간을 얻으려고 다른 일에는 되도록 비치지 않는 그였다.

얼마전에 대학에서는 봄철체육대회가 있었다. 학부별대항이 치렬하게 벌어질것이 예견되였다. 학부민청에서는 최영화더러 권투경기에 출전하라고 하였다. 그는 서울에서 뜨내기생활을 할 때 사설권투구락부에 다닌 일이 있었다. 그가 출전을 하면 위불없이 1등을 할수 있었다. 하지만 최영화는 끝내 거절하였다. 오래동안 손을 놓았던 권투련습을 다시 하느라면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게 될것이고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주먹바람만 드세다는 비난을 받을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후날 김정일동지께서는 최영화에게서 그러한 고백을 들으시였다. 확실히 그의 생활은 학습이 뒤떨어진탓으로 외곬으로 흐르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최영화를 이끌고 춤판에 들어서시였다. 그이께서 나타나시자 춤판은 더욱 흥성거렸다. 학생들은 그이의 률동적이고 활달한 동작을 바라보며 열을 올리였다. 새로 보급된 군중무용의 춤가락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최영화는 그이께서 이끄시는대로 엉거주춤이 돌아가며 팔다리를 어떻게 놀려야 할지 몰라했다. 그를 힐끔힐끔 훔쳐보며 녀학생들이 웃어댔다.

춤은 《옥류교원무곡》으로부터 《옹헤야》로 바뀌였다. 최영화도 《옹헤야》만은 남들 못지 않게 출수 있었다. 대학에 오기 전의 일터에서 휴식시간마다 북장단에 맞추어 즐겨 추던 춤이였다. 최영화는 몸에 익은 춤을 추게 되자 솜씨를 보이였다. 방금 웃어대던 녀학생들의 눈이 커졌다. 어깨로 률동을 잡으며 박력있는 박자에 맞추어 팔을 놀리는 모습이 자못 우아하기까지 하였다.

《영화동무한테 그런 춤재간이 있는줄은 몰랐구만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맞잡고 한바퀴 맴을 돌며 놀라와하시였다. 최영화가 춤추는것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기초실력이 낮은탓으로 기를 못 펴다나니 지난날에는 이런 춤판에도 뛰여들지 못했다는 측은한 생각으로 가슴이 아릿해오시였다. 드디여 춤판이 끝났다.

《자, 모두 기숙사로 들어갑시다. 내 동무들에게 주려고 책들을 좀 마련해왔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흩어지려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씀하시였다. 학생들은 환성을 터치며 그이를 따라 기숙사로 향했다. 명식이네 호실에 모인 그들은 책이 들어있는 지함들을 헤쳐보았다. 《김일성선집》을 비롯하여 혁명전통교양자료들과 당정책해설도서들 그리고 새로 나온 문예작품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학생들은 저마끔 한권씩 집어들고 펼쳐보았다. 대부분 책들에는 갈피마다에 그이께서 손수 그으신 밑줄과 표식들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로작들을 자자구구 새겨가신 그이의 깊은 탐구의 흔적이였다.

《아니, 정일동무가 자기 서가를 털어왔구만요!》

학급세포위원장이 감격하여 말했다.

《뭐 얼마 되지 않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제 만페지책읽기운동을 벌리자면 기숙사 호실들을 도서관화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기숙사 호실의 책장들에 위대한 수령님의 로작을 비롯해서 늘 보아야 할 책들을 갖추어놓으면 도서관에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수도 있고 아무때고 필요한 문헌들을 읽어볼수도 있단 말입니다.》

정일동무가 이렇게 많은 책을 가져왔으니 기숙사 호실들을 도서관화할수 있겠습니다.》

오명식이 흥분하여 말했다.

《아니, 아직 그 책들만으로야 부족하지요.》

김정일동지께서 빙그레 웃으시였다.

《우리자체로도 책들을 더 구해들여야지요.》

세포위원장이 그렇게 말하자 어떤 학생은 장학금을 타면 국수집이나 청량음료점을 찾아가던 버릇을 떼고 그 돈으로 책부터 사오겠다고 하였고 또 어떤 학생은 고향집에 적지 않은 책들이 있는데 오늘중으로 편지를 써서 부쳐오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녀학생들도 소근소근 귀속말을 주고받는데 청높은 남학생들의 목소리에 눌리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결같이 눈들이 빛나는것으로 보아 책들을 구해들일 좋은 생각들이 떠오르는 모양이였다.

기숙사 호실의 책장들을 가득 채울 토론들이 즘줏해지자 구석에 앉았던 한 학생이 누구에게라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거 1년에 만페지나 되는 책을 읽는다는게 지내 아름찬 목표가 아닐가?》

자못 근심어린 얼굴로 조심히 의논에 붙이는것으로 보아 그로서는 깊이 따져보던 끝에 하는 말인가싶었다. 그러나 세포위원장은 마뜩잖게 여기며 그를 쳐다보았다.

《이미 초급일군협의회에서 심중히 토론을 하고 만페지로 락착을 지었는데 이제 와서 그건 무슨 소리요?》

《만페지라면 400페지짜리 두툼한 책을 1년에 25권이나 읽어야 한다는건데 아무래도 나나 최영화동무 같은 축들은 어려울것 같아서 하는 말이요.》

《그런 소극적인 학습태도를 가지고서야···》

《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손을 들어 버럭 성을 내는 세포위원장을 제지시키시였다. 그이께서는 그 학생의 심정이 리해되시였다. 그에게는 그가 대학에 입학하던 지난해에 인민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있었다. 평화시기부터 군대에 복무하였고 전쟁시기 땅크중대장으로 싸운 그는 최영화처럼 대학공부를 힘겨워하였다.

《저 동무에게는 사실 만페지목표가 아름찰수도 있습니다.》 하고 그이께서는 그 학생에게 시선을 돌리며 깨우치듯 친절히 말씀하시였다.

《나도 여러가지로 많이 타산을 해보다가 만페지목표를 제기했습니다. 1년에 365일이지만 휴식하는 날도 있고 다른 사정으로 제대로 책을 읽지 못하는 날도 있을수 있습니다. 줄잡아서 300일로 쳐도 하루에 30페지 남짓이 읽으면 넉근히 만페지를 돌파할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 학생은 그리도 엄청나게 여겨지던 만페지가 하루에 30여페지만 읽으면 된다고 하시는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듣자 그쯤이라면 자신이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지 비죽이 웃음을 지었다. 곁에 앉은 최영화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입을 열었다.

《동무, 우리도 기어이 만페지를 돌파해보세. 인민학교에 다니는 아들놈이 공부를 잘한다는데 대학에 다니는 아버지가 뒤져서야 어디 될말인가?》

《그렇지요, 구동무가 방학에 집에 돌아가면 아들애가 최우등성적증을 자랑스레 내보이며 아버지의 성적증도 보자고 할것 아닙니까.》

김정일동지께서 흥겨운 기분으로 최영화의 말에 응수를 하시자 학생들모두의 얼굴에 즐거운 웃음이 번지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성적증을 내보이며 온 가족이 배움의 행복을 체험하게 될 정경이 방불히 눈앞에 그려졌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좌중을 둘러보며 다시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만페지목표를 내세운건 학급에 대학공부를 힘겨워하는 제대군인동무들이 적지 않은 사정을 고려했기때문입니다. 정상적으로 공부해오던 동무들이야 어찌 1년에 만페지만 읽겠습니까. 어떤 동무들은 수만페지씩 읽을수 있습니다. 우리 학급의 구체적인 실정을 보아서 만페지목표를 세웠으니 누구나 이 목표만은 돌파해야 하겠습니다. 일정하게 경험도 축적하면서 준비를 잘했다가 학급궐기모임을 합시다. 구체적인 문제들은 그때 토론들을 합시다.》

학생들의 얼굴마다에 신심이 넘치였다. 잠시후에 그들은 김정일동지께서 가져오신 책들을 나누어가지고 자기 호실로 돌아갔다. 그이께서도 허리를 펴시려는데 세포위원장이 옷소매를 당기였다.

《잠간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하고 그이께 귀속말로 속삭인 그는 다른 초급일군들도 그냥 있으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물러가자 설레이던 방안의 분위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초급일군들은 김정일동지를 모시고 오붓이 둘러앉았다.

《다름이 아니라 전국대학생웅변대회가 인차 열리는데 거기에 출연할 동무를 선발해야 하겠기때문에 좀 남으라고 했습니다.》

세포위원장이 좌중을 둘러보며 하는 말이였다.

《그러니 대학을 대표해서 우리 학급에서 누가 나간단 말이요?》

민청초급단체위원장이 억실억실한 눈을 번쩍이며 기쁨에 겨워 물었다.

초급일군들은 서로 마주보았다. 학부나 대학범위도 아니고 전국대학생경연이라니 경쟁자들의 수준이 높을것이다. 원고를 잘 쓸수 있을뿐더러 거침없는 달변에 다채로운 표정의 변화로 청중들의 심장을 격동시킬수 있는 학생만이 입선할수 있었다. 과연 학급에서 누가 그렇게 할수 있을가? 모두들 누가 좋겠다고 선뜻 말하기를 주저하였다. 방안에 일순 침묵이 흘렀다. 세포위원장이 김정일동지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정일동무 생각엔 누구를 선발했으면 좋겠소?》

잠시 생각에 잠기셨던 그이께서 고개를 드시였다.

《최영화동무를 출연시키면 어떨것 같습니까?》

초급일군들은 일시에 눈들이 커졌다. 권투경기라면 몰라도 웅변대회에 최영화를 출연시키다니? 학과토론시간에도 언제한번 선코를 떼고 나서보지 못한 최영화였다.

《최영화동물?! 대학에서 배워주는 학과도 따라가기 어려워하는 최동무가 어떻게 웅변대회에 나서겠습니까.》

세포위원장의 그 말을 명식이가 긍정했다.

《그 친구는 웅변대회에 나설 재목이 못됩니다. 본인자신도 웅변대회에 나서라면 화닥닥 놀랄겁니다.》

《최영화동무는 조국통일위업에 앞장서야 할 몸이고 통일된 후 남녘땅 인민들에게 우리 혁명위업의 정당성을 해설해주고 그 실현에로 대중을 불러일으켜야 할 동무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연단에 내세워 선동가적인 자질을 키워주자는겁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신중한 안색으로 생각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남반부출신일군들을 통일후 남조선혁명을 맡아해야 할 보배들로 보시며 그들의 정치적성장을 세심하게 보살펴주고계신다. 최영화는 수령님께서 그토록 귀중히 여기시는 그런 사람들가운데 한사람이다. 단순히 웅변대회에서 입선을 목적으로 출연자를 선발한다면 다른 동무들이 주장하는것처럼 최영화는 적임자가 못될수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유능한 정치활동가로 준비해야 할 최영화이고보면 이런 기회에 그를 꼭 출연시켜야 한다. 설사 그가 입선을 못한들 어떠랴. 이번의 기회가 그에게 필요한 자질과 양기를 키워주는 계기로 된다면 입선한것이상의 의의를 가진다. 그것은 조국통일과 남조선혁명을 떠메고나갈 한 일군의 성장을 촉진하는것으로 되기때문이다. 미제를 몰아내고 북남겨레가 하나로 되자면 어려운 투쟁을 동반해야 할것이지만 통일된 다음 남녘땅에 새 생활을 창조하는 일도 그만 못지 않게 어려울것이다. 그날을 위하여 최영화는 자신의 성장을 다그쳐야 할것이고 온 집단은 백방으로 그를 도와주어야 할것이다.

그이의 심중을 어렴풋이 엿본 명식이가 눈시울을 내리깔고 볼을 쓰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듣고보니 정일동무는 생각이 있어서 굳이 영화동무를 출연시키자고 하는것 같습니다.》

세포위원장이나 민청위원장도 명식의 말에 긍정을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을 다정히 바라보시였다.

《웅변이란 자기 생활체험을 절절하게 토로해야 성과를 거둘수 있습니다. 최영화동무는 남반부에서 쓰라린 생활도 겪어보았고 오늘 북반부에서 행복한 생활도 마음껏 누리고있기때문에 자기가 직접 당한 일들과 보고 느낀것을 가지고 생동하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동무도 사회정치과목들만은 공부를 괜찮게 하는편이 아닙니까. 내 생각에는 잘 준비만 하면 입선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봅니다.》

정일동무의 말이 옳소. 최영화동무를 준비시킵시다.》

새로운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세포위원장이 찬성했다. 다른 초급일군들도 일치하게 그이의 의견을 따랐다.

그날 저녁 세포위원장은 토론된대로 최영화를 만나 웅변대회에 나갈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세포위원장동무, 혹시 롱담을 하는게 아니요?》

최영화는 어리둥절하여 세포위원장의 둥실한 얼굴을 얼없이 마주보았다. 전국대학생웅변대회에 출연하라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너무도 분수에 맞지 않는 과업이다. 최영화는 아무래도 세포위원장의 말을 믿을수가 없는듯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세포위원장의 낯색은 더없이 진지하였다.

《최동무, 롱담이 아니요. 웅변대회에는 동무가 꼭 출연해야 하오.》

그렇게 대답하는 목소리도 전에없이 무게가 느껴졌다. 최영화는 가슴이 철렁했다.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무거운 짐이 어깨에 실리는듯 하여서 부지중 몸을 흠칫했다.

《우리 초급일군들은 다른 학생을 선발하자는 생각들이였는데 정일동무가 동무를 출연시키자고 했소.》

정일동무가요?!》

정일동무가 영화동무를 선발하자고 한데는 우리로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깊은 뜻이 있었소.》하고 세포위원장은 최영화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초급일군모임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하기 시작했다.

최영화는 눈을 내리깔고 숨을 몰아쉬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정일동지의 크나큰 신임과 기대가 다른 모든 감정을 물리치며 가슴에 젖어들었다.

정일동무의 뜻이 그렇다니 내 한번 출연준비를 해보기로 하겠소.》 최영화는 마침내 수긍하였다. 대답은 미지근하게 하였지만 그는 그날부터 마음을 굳게 먹고 웅변련습에 달라붙었다. 워낙 필력이 시원치 못한데다가 난생처음 웅변원고라는것을 써보니 도무지 글귀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신문이나 잡지들을 뒤적이며 론리의 전개방식도 연구해보고 시와 소설들에서 형상적이고 선동적인 표현들을 빌려오기도 하면서 나무호미로 돌밭을 갈듯 힘겹게 한줄씩 엮어나갔다. 열성에 있어서는 누구도 최영화와 견줄 사람이 없었다. 며칠밤을 꼬박 새워가며 원고를 그런대로 다 쓰게 되자 화술련습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련습을해보아도 자신이 없었다. 혼자 속으로 원고를 외워볼 때에는 별로 막히는것이 없이 왼금으로 글줄이 술술 풀려나가다가도 청중을 피끗 련상하게 되면 눈앞이 아뜩해지면서 머리속이 뒤엉켜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였다. 강의가 끝난 다음 기숙사에 돌아온 그가 웅변원고를 책상에 놓고 한숨을 톺고있는데 명식이가 달려왔다.

《영화동무, 빨리 대학강당으로 가기요. 정일동무가 초급일군들과 함께 동무의 웅변을 한번 들어보겠다오.》

최영화는 무거운 마음을 애써 달래며 명식을 따라 강당으로 갔다.

객석복판의 긴 의자에 초급일군들과 나란히 앉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를 보자 동정어린 미소를 보내시였다. 묻지 않고도 그가 웅변련습에 얼마나 고심을 하고있는지 짐작이 가셨던것이다.

《영화동무, 어서 연단에 올라서 한번 열변을 토해보십시오. 그동안 준비를 착실히 한것 같은데 어디 좀 들어봅시다.》

최영화는 연단앞에 나섰다. 강당의 넓은 공간이 확 안겨오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시선들이 자기에게 쏠리고있는것 같았다.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건기침을 톺고나서 입을 열었다.

《피끓는 청년학생 여러 동무들!》

자기딴에는 열정적으로 첫꼭지를 떼였는데 어찌나 어음이 굳고 부자연스러운지 제 귀에도 마치 딴사람의 목소리같이 들리였다. 몇문장 더 부르짖던 그는 제스스로도 어색해지는 바람에 당황해졌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아래다리가 떨렸다. 외워두었던 글줄들이 헝클어졌다. 하는수없이 원고를 펼쳐놓고 독보를 하는것처럼 몇줄 더 내리읽다가 입을 다물고말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수굿하고 연단에서 도망치듯이 내려온 그는 김정일동지께 사정하듯 말했다.

《난 아무래도 자신이 없습니다. 이제라도 다른 동무를 준비시키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시였다.

《첫술에 배부르겠습니까.》

《가슴이 떨려 입조차 벌리지 못하겠습니다. 빈 강당에서도 이 꼴이니 참··· 웅변만은 못하겠습니다. 권투경기에 나가라면···》

말끝을 맺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그를 지켜보는 초급일군들도 난감한 기색이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어느새 웃음을 거두고 쑥스러워하는 최영화의 손을 잡아 옆자리에 앉히며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왜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합니까. 동무야 조국이 통일된 다음 고향에 나가 정치사업을 해야 할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말주변이 없어가지고서야 어떻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겠습니까. 웅변대회에 출연하는걸 부담으로 여기지 말고 조국통일의 앞날을 위한 일로 생각한다면 그런 약한 소리를 할수 없지 않을가요?》

그이의 따뜻한 시선을 느낀 최영화는 갑자기 목이 메여들었다. 그이의 크나큰 기대와 다정한 고무가 새삼스레 가슴을 쳐오기때문인지 아니면 그 믿음에 따를수 없는 자기의 준비정도가 울고싶도록 안타깝고 부끄럽기때문인지, 여차하면 금시 눈물이라도 쏟아질듯싶었다.

《그 원고를 좀 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최영화의 손에서 원고를 넘겨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영화가 어려워하리라는것을 잘 아시기에 진작 원고집필부터 도와주실 생각이시였다. 그러나 원고를 제 손으로 써봐야 그가 창조적사고능력과 필력을 키울수 있다고 생각하시였다. 그래서 아니아니한 심정을 누르며 오늘까지 미루어오시였던것이다. 원고를 읽어보시니 우선 내용부터가 착실히 엮어지지 못했다. 허공 뜬 일반적인 말들이 많고 그나마 다른 글들에서 따온 문장이나 표현들이 엇섞여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말재주를 가진 사람의 입을 거친다 하여도 그 원고로써는 남을 감동시킬수가 없었다. 방금 연단에서 그가 민망할 정도로 꺽꺽 갑자른것은 웅변술보다 원고의 내용자체가 진실하게 꾸며져있지 못한탓이였다.

《재간껏 쓰느라고 했는데 워낙 재간이 무디다보니 원고가 잘되지 못했습니다.》

곁에 앉아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그이의 안색을 살피던 영화가 하는 말이였다.

《웅변원고를 쓰느라고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원고를 돌려주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좀 휴식을 하면서 나와 함께 산보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랬으면 오죽 좋겠습니까. 골치아파 죽을 지경입니다.》

영화는 귀가 번쩍 열리면서 선뜻 응하였다. 인제는 그이께서도 어차피 다른 학생을 선발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달리하신것 같았다. 도저히 감당 못할 무거운 짐을 벗은듯 하여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초급일군들은 실망을 한채 교실로 돌아갔다. 강당에서 나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영화를 데리고 룡남산숲속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최근에도 안해한테서 편지가 옵니까?》

은근한 어조로 물으시는 그이의 눈길에 애틋한 정이 어리였다. 아직 한번도 만나보신 일이 없지만 인제는 무척 살뜰히 느껴지시는 영화의 안해와 그의 아들애였다.

《아 참, 내가 요즈음 성사도 못할 웅변련습때문에 정신이 없다보니 깜박 잊었댔군요. 이걸 보십시오. 며칠전에 집사람이 보내온 편지입니다.》

영화는 불쑥 생각이 난듯 황황히 품속에서 편지를 꺼냈다. 락제과목들을 퇴치한 소식을 받고 안해가 써보낸 회답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양치 않고 받아드시였다. 잠간사이에 편지를 다 읽으신 그이께서는 다시금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절절한 편지입니다. 동무가 대학공부를 하는 이 기쁜 소식을 남녘땅의 시어머님한테 전하지 못하는것이 절통하다는 구절도 있구만요. 동무 안해의 심정이 그럴진대 동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이의 음성이 유난스레 뜨겁게 울렸다.

《자다가도 문득 서울에 두고온 어머니와 동생얼굴이 보여 소스라쳐 깨여나군 합니다.》

영화의 얼굴색이 불시로 추연해지며 목소리가 갈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화제를 돌려 서울에서 살 때 그가 겪은 생활에 대해 물으시였다. 이미 그에게서 들으신바는 있었지만 쓰라린 체험의 생동한 세부까지를 알아보고싶으시였다. 그의 웅변원고를 수정해주시기위해서였다.

영화는 그이의 심중을 깊이 알지 못했지만 걸음을 옮기면서 물으시는대로 대답했다. 너무도 처참히 흘러간 그 시절이여서 남들에게 쉬이 말 못했던 일들조차 숨김없이 터쳐놓았다.

새벽이면 신문배달부, 낮이면 역에서 손님들을 맞아들이는 짐군, 밤이면 변소청소부··· 오금에 자개바람이 일도록 쉼없이 달려야 하고 어지러운 일에 몸을 적셔야 하는 고달픔도 컸지만 더욱 참기 어려운것은 권세있고 돈있는 놈들의 멸시와 수모를 무시로 겪어야 하는 정신적고통이였다. 그래서 눈꼴사나운 놈들에게 주먹맛을 보이려고 앙심을 품고 권투를 배웠으나 그것이 무서운 화단을 가져올줄이야···

한번은 어머니가 장마당에 나가 파지를 줏다가 억울하게 《도적》으로 몰려 손찌검을 당했다. 영화는 알아보지도 않고 로약한 어머니의 몸에 매를 들었던 놈들에게 이런 때를 위해 배워두었던 주먹을 휘둘렀다. 그 순간에 그는 불시에 달려든 경찰들에게 잡히였다. 돈앞에서는 론리도 도덕도 통하지 않는 사회였다. 영화는 그 일로 하여 류치장신세를 지게 되였다. 그가 류치장에서 풀려나와 집에 돌아오니 시름시름 앓고있던 아버지는 그간 세상을 떠나고 여윌대로 여윈 어머니와 어린 동생은 모상을 알아보기조차 어려웠다. 상실의 비애에 먹을것마저 떨어진지 오래여서 그들도 자리에 누운채 다가오는 죽음의 시각을 기다리고있었다. 영화가 며칠만 더 늦게 풀려나왔다면 어머니와 동생마저 굶어죽었을것이다. 영화는 천추에 풀길없는 한을 남기고 돌아간 아버지의 묘소앞에서 놈들에게 본때를 보이려고 벼리였던 그 주먹으로 놈들이 아니라 자기의 동가슴을 쳤다. 그 이후에도 생활의 수난은 끊임없이 계속되였다. 그 모든 일들을 생생히 더듬는 최영화의 눈시울은 저도 모르게 축축히 젖어들고있었다. 그는 김정일동지의 안광에도 눈물이 어린것을 보았다.

《내가 그만 지나치게···》

영화는 자기의 과거사를 지나치게 자세히 터놓아서 그만 그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드린것 같아서 죄송스러웠다.

《아니, 나는 동무의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미제를 하루빨리 몰아내고 반드시 우리 시대에 통일을 하여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게 하였습니다!》

《내 정일동무앞이니 숨김없이 다 말했습니다.》

《영화동무.》

그이의 조용한 부르심에 영화는 소나무줄기를 안고돌며 마주섰다.

《동무의 그 이야기는 나 혼자 들을것이 아니라 착취받고 억압받던 지난날의 체험이 부족한 우리의 모든 청소년학생들이 들어야 할 이야깁니다. 방금 한 그 이야기를 가지고 웅변대회에 나가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을 감동시킬수 있습니다.》

《그럼 내가 끝내 웅변대회에 나가야 한단 말입니까?》

《동무는 꼭 나가야 합니다. 내 이제부터 동무를 적극 도와주겠습니다.》

《그렇다면야··· 그런데 번번이 나때문에···》

영화는 목으로 치미는 뜨거운것을 꿀꺽 삼키며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중으로 원고를 다시 쓰십시오. 필요없는 수식이나 일반적인 론리는 피하고 북과 남의 판이한 제도하에서 체험한 생활을 그대로 쓰십시오. 동무의 가슴속에서 불타는 조국통일의 열망을 그대로 쓰란 말입니다. 래일 원고를 다시 봅시다.》

정일동무 , 고맙습니다!》

영화는 김정일동지를 감격이 어린 눈길로 우러르며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이튿날부터 강의가 끝나면 영화의 웅변준비를 도와주시였다. 손수 원고를 다듬어도 주시고 화술련습도 지도해주시였다. 영화는 새로운 신심과 용기를 가지였다. 자신이 체험한 생활을 그대로 터놓는 일이여서 전처럼 어렵지 않았다.

드디여 웅변대회의 날이 다가왔다. 강의가 있었기때문에 학급에서는 누구도 웅변대회장까지 그를 따라갈수 없었다. 학급학생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영화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가 과연 어떻게 되였을가? 워낙 뭇사람들앞에 나서기를 주저하던 그가 난생처음 올라보는 높은 연단에서 얼어들지나 않았는지? 그 어떤 실수로 망신을 당하지나 않는지? 그들의 머리속에는 학과토론에도 나서기 주저하던 최영화의 인상이 굳어져있기때문에 좋은 결과보다 실패에 대한 예감이 더욱 커서 가슴들을 조이였다. 공부가 끝났지만 누구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기숙사생들은 대학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그길로 교실로 돌아왔다.

정일동무, 어떻습니까? 승산이 있을것 같습니까?》

세포위원장이 초조감을 누를길 없어서 그이께 물었다. 영화의 웅변련습을 지도해오신 그이께서만은 가늠이 가실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다른 학생들의 눈길도 일제히 그이에게 쏠렸다.

《그간 영화동무가 열성적으로 련습을 해서 웅변술이 부쩍 높아지기는 했지만 출연자들이 모두 만만치 않을테니 등수에 들기는 힘들수 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동무들의 눈길을 피하며 말씀하시였다. 최영화가 전국대학생웅변대회에 나섰다는 사실자체만으로도 대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입선을 해야 한다. 그의 웅변련습을 위해 매일 저녁 늦게까지 애써오신것만큼 성공을 바라는 마음은 누구보다 크시였다. 매일 달라지는 영화의 웅변술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시였지만 그가 입선하리라고 장담할수는 없으시였다.

그이의 대답을 듣고난 학생들의 마음은 더욱 긴장해졌다.

《젠장,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제 시집가는 편이 낫다더니 제가 출연하는것보다 속이 더 타누만!》

명식이가 큰 소리로 푸념하듯 부르짖었다. 그통에 초조하던 얼굴들에 가벼운 웃음이 비꼈다.

이때 교실문이 벌컥 열리며 영화가 들어섰다. 웅성거리던 실내에 순간적으로 숨가쁜 정적이 깃들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영화의 얼굴에 눈길을 박은채 어찌되였느냐고 누구도 선뜻 묻지 못했다. 왜서인지 그의 대답을 서둘러 듣기가 두렵기까지 했던것이다. 불이 일게 달려온 모양으로 영화는 숨을 몰아쉴뿐 입을 열지 못했다. 한순간이 지나자 영화의 길쑴한 얼굴에 격정의 파문같기도 하고 환희의 미소같기도 한 야릇한 표정이 떠올랐다.

《영화동무, 수고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굳어진 그의 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어떤 결과를 안고오든 그를 축하해주고싶으시였다.

영화는 자신을 통채로 맡겨버리듯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그이의 손을 움켜잡았다.

정일동무, 입선했습니다! 내가 글쎄 그렇게 큰 웅변대회에서···》

《입선했단 말이지요. 축하합니다! 영화동무!》

영화의 손을 힘껏 맞잡으신 김정일동지의 존안에 밝은 미소가 어리시였다. 학생들이 눈들을 슴벅이며 환성을 터치였다. ···